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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10월10일(日) 雲雨 ▲희양산(曦陽山)(은티-지름티-정상-성재-은티)
해봉산악회(31명)
▲희양산(曦陽山)
♠개 요
위치 : 충북 괴산군 연풍면, 경북 문경시 가은읍
높이 : 999m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과 괴산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
럼 보이는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있다. 산세가 험해 한말에는 의병의 본거지이도 했
다. 산 정상 일대는 암릉으로 이루어진 난코스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겨울에 등산하기엔
위험한 반면 전문 클라이머들은 즐겨 찾는다.
남쪽 자락에는 음력 초파일을 전후한 약 한 달 가량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
지되어 있는 조계종 특별수도 도량인 봉암사가 있다. 이 사찰은 신라시대 구산선문 중
의 하나이기도 하며 경내에는 지증대사 적조탑(보물 137)과 지증대사 적조탑비(보물
138), 정진대사의 원오탑(보물 171), 정진대사 원오탑비(보물 172), 삼층석탑(보물
169), 함허당득통지탑, 환적당지경지탑, 상봉대선사비, 노주석, 백운대, 마애불좌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극락전은 경순왕이 잠시 피난 왔을 때 원당으로 사용되었다.
산행은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을 들머리로 하거나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홍문정 마을
을 들머리로 하여 골짜기를 따라 정상에 오르는 길이 있다. 은티마을 입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지름티재를 넘어가면 봉암사 길이 나오고 능선으로 가면 정상으로 가
는 길이다. 고지대로 갈수록 울창한 숲과 절벽이 나타난다. 험한 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928m 지점의 희양산성에 닿는다. 이 산성은 신라와 후백제가 국경을 다투던 접전지로
929년(경순 3)에 쌓은 성터이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산성을 지나 약 30분을 오르
면 널따란 암반으로 된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 서면 봉암사가 있는 봉암용곡 너머로 대야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을
연결시키는 장성봉과 악희봉․민주지산 등이 바라보인다. 북쪽은 참나무 숲에 가려 시루
봉의 일부만 보인다. 그러나 동북쪽으로는 백화산․ 운달산․ 주흘산 줄기가 막힘없이
조망된다. 하산은 성터를 돌아 궁터를 거쳐 학바위골로 내려가며 산행시간은 4시간 남
짓 걸린다.
※봉암사(鳳巌寺)
♠개 요
경북 문경시 가은읍(加恩邑) 원북리(院北里) 희양산(曦陽山)에 있는 절.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879년
창건자 : 지증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선문구산(禅門九山)의 하
나로 879년(헌강왕 5) 지증(智証:智詵)이 창건하여, 희양산파(曦陽山派)의 본거지가 되
었다. 고려에 들어와 935년(태조 18) 정진국사(静真国師)가 재건하였다. 조선시대에 화
재로 소실된 것을 1674년(현종 17) 신화(信和)가 중건하였다. 보물 제169호인 삼층석탑
․보물 제137호인 지증대사 적조탑(寂照塔) ․보물 제138호인 지증대사 적조탑비 ․보
물 제171호인 정진대사 원오탑 ․보물 제172호인 정진대사 원오탑비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참선승방으로, 사찰을 초파일에만 개방하고 있다.
※지명유래 문의에 대한 괴산군수의 답변.
번 호 420 작 성 일 2002-02-28
작 성 자 김영근 홈페이지 http://
은티재 지명
먼저 우리군의 명산을 찾아주신 남상기님께 감사드립니다.
은티마을은 병자호란 당시 金海金氏家가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하며, 1812년 작성된 洞節
目에는 仁智洞 義人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래 연풍군 현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연풍면 주진리로 편입되었습니다. 마을의 지명인 '銀峙'는 경술국
치이후부터 불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구체적인 유래는 불명입니다.
은티마을 주변에 있는 고개(재)로는
․기름티(油峴, 지름티) : 희양산 서쪽에 있음. 가은 봉암사로 넘어가는 고개.
․대궐터재 : 희양산 북쪽에 있음. 희양산성을 거쳐 가은으로 넘어가는 고개.
․오봉정재(은티재) : 마을 남쪽에 있음. 가은 오봉정으로 넘어가는 고개.
․호리골재 : 마을 남쪽 구왕봉 서쪽에 있음. 가은 원북으로 넘어가는 고개
․주티봉재(周峙峰峴) : 희양산 동쪽에 있음. 梨花嶺과 가은읍으로 가는 고개.
♣ 산행 코스
은티(12시50분)--지름티재(13시35분)--정상(14시55분)--성재(15시40분)--은티(16시43
분) 총 3시간53분
☞☞문경 가은쪽에서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피라미트형의 바위산으로 보여 산명
그대로 양지의 밝은 희양산.
1년 전 백두대간 종주 시, 지나쳤든 산이지만 당시 깜깜한 새벽에 도착하여 은티마을과
성재까지는 암흑 속에 제대로 촬영도 못했고 겨우 희양산 정상에서 장엄한 일출만 보고
바쁘게 내려와 구왕봉 사이로 지나가는 기막힌 운해의 흐름을 촬영하며 경탄한
기억밖에 없어 이번에 당일 산행으로 느긋하게 주변을 촬영할 기대감속에 참여하게
되었다.
1년 전의 백두대간 희양산과 대야산 코스의 산행모습을 비디오로 보면서 가랑비를
맞으며 달리다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에 올라 예천I/C로 빠져,
문경을 거쳐 당시 이화령 아래 공사 중이든 이화령터널로 통과하여 은티마을에
도착한 게 12시42분. 비는 거쳐 있었다.
마을입구에 세워놓은 큼직한 ‘은티마을유래’석비가 시선을 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은티부락은 연풍 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東은 중
리, 北은 삼풍 리, 南은 경북 가은과 접하고 있고 연풍 면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는 부락
으로서 형성된 시기는 정확히 알수없으나 연풍면지 등 여러 문헌에 의하면 조선초기 연
풍 현 당시 현내면 연지동에 속해 있었으며 1821년 작성된 동절목(洞節目)에는 인지동
의인촌리(義仁村里)로 기록,
1910년 경술국치 후 왜인들이 의인은 한국의 민족정신이 함유되었다 하여 은티(銀峙)
로 개칭,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주치(周峙),진촌(榛村)응암(鷹岩)조봉(鳥峰)중
리(中里)를 병합, 주치와 진촌의 이름을 따서 주진리라 하였으며 8.15 광복 후 행정구역
의 세분화에 따라 주진 리를 3 개 마을로 나눠 이곳을 은티라 칭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은티는 여궁혈(女宮穴)에 자리하고 있어 동구에 남근을 상징하
는 물체를 세워야 마을이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하여 동구 송
림 안에 남근석을 세워놓고 매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을 정제일로 마을의 평안과 동민 가
족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지(焼紙)를 올리며 제(際)가 끝나면 한자리에 모여 음복하
고 제물을 나눠 먹는 동 고사를 지내고 있다. 1966.6.20. 마을일동)
도착시간이 너무 늦은 탓인가 곧장 이동하여 새끼줄로 얽어놓은 남근석이 있는 가게
앞의 공터에서
바쁘게 인원파악을 하고
12시50분, 당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촬영을 못했든 엉성한 남근석을 촬영하고 후미를
쫓아 산행에 들어간다.
선두는 모처럼 나온 김성수가 서고 이 태근 대장이 중간,
임 대장은 배기사에게 주변의 지리를 알려 준다며 쳐지는 모양이다.
사과가 발갛게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과수원과 작은 억새밭을 지나 빨갛게 영걸고 있는
고추밭을 끼고 올라간다.
왼편으로 희양산 자락이 오른편으로 구왕봉 자락이 그 웅자를 들어내고 있다.
얼마 후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꺾어지는 게 계획과 달리 지난번의 역순으로 산행하
는 모양이다.
지난 여름의 폭우 때 수해로 등산로가 깊게 파여 왼편으로 바짝 붙어서 올라간다.
13시15분, 중간구릅이 잠시 휴식을 취한다.
13시35분, 백두대간 지름티재에 올라선다.
서너명의 회원이 앉아서 쉬고 눈에 익은 성황당 터 돌무더기를 오른편으로 바라보며
촬영하고 왼편 가파른 S자 코스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작은 너럭바위를 거쳐 두 암괴사이를 빡빡하게 빠져나가는 코스를 거쳐
13시52분, 오른편으로 커다란 암괴가 앉아 있는 곳에 올라선다.
1년 전, 당시 후미로 등산로에서 빗겨 돌아앉은 암괴 뒤편으로 아침햇살을 받은 황금빛
구왕봉 자락 밑으로 유유히, 장엄하게 넘어가든 운해를 넋을 잃고 촬영했든 장소까지
건너가 이제는 잿빛 공기 속에 그냥 우람한 봉우리로만 보이는 구왕봉과 뒤돌아
희양산 자락을 촬영하고 뒤따라 올라간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전에 없든 나무사이를 연결시켜놓은 자일을 발견한다.
R회원이 가파른 코스를 힘들게 올라서서 여유가 생겼는지 뒤따라 올라오는 한 아주머니
회원에게 한마디 한다.
“아줌마! 이리로 오이소. 잡아 주께!”
이제 본격적인 낭떠러지 코스. 자일은 계속이어지고 캠코더를 복부 쪽으로 배낭벨트로
묶고 바위와 나무뿌리를 잡으며 올라가다 그만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찰과상을 입는다.
아가씨들과 아주머니회원들로 정체가 되어 진행이 지연된다.
당시 내려 올 때, 직벽 골짝구간에서 보조자일을 이용했을 정도였는데 오늘은 고정자일
에다 든든한 젊은 집행부의 도움으로 큰 지체 없이
14시38분, 무난히 주능선에 올라선다.
좌로 빠지는 대간 길을 두고 오른편 희양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넓은 너럭바위에서 잠시 주변을 조망하며 모두 시름을 잊는다.
낮게 깔린 구름이 언제 비를 또 뿌릴지 가름 할 수 없다.
다시 올라가는 고사목과 고래 등 같은 너럭바위 암능을 거쳐 모가 없는 두 암괴사이로
비집고 올라갔다 길이 보이지 않아 되돌아 빠져 나와 왼편으로 통과한다.
14시55분, 사방이 소나무로 가린 정상에 올라선다.
당시 모 산악회에서 정상표찰을 소나무에 매달아 놓았는데 지금은 그마져 보이지 않고
먼저 도착한 회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동남 편 너럭바위 쪽으로 내려와 오른편으로 희미하게 내려다보이는 봉암사와 원북리와
멀리 대야산과 장성봉을 촬영하고 카메라를 준비 안했다는 집행부 아가씨들의 부탁으로
근처의 벼랑 끝에 있는 고사목을 배경, 기념 촬영한다.
(서남쪽으로 가면 멀리 대야산과 버리미기재 까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준비해간 빵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15시17분,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과 비구름에 쫓기어 올라왔든 길로 되돌아 내려간다.
대간 낭떠러지 갈림길을 지나 비탈을 내려
15시40분, 성터가 있는 성재에서 왼쪽으로 난 비탈길을 타고 조심조심 내려간다.
15시56분, 오른편으로 암괴를 바라보며 내려가다 또 다른 커다란 바위 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나뭇잎에 떨어지는 사각대는 빗소리가 들리고 곧 본격적인 빗방울이 떨어진
다.
배낭에서 우의를 꺼내어 입고 은티 마을을 저만큼 두고 뒤돌아보니 희양산 자락의 안개
비구름들이 오르내리며 난무를 한다.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들이 물방울을 매달고 그 싱싱함을 자랑하고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도 더욱 싱그럽게 보인다.
16시43분, 남근석이 있는 은티마을 도착. 3시간43분의 산행이 끝난다.
우선 배낭을 차안에 두고 근처에 있는 가게에 들려 피 묻은 오른손을 씻고 응급 자가
치료를 한다.
17시12분, 빗발이 더욱 거세지는 가운데 부산으로 출발한다.
이 태근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늘 악천후에 밧줄도 많이 있는 난코스를 한사람도 낙오자 없이 산행을 마쳐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며
인사를 하자 뒤에서 누가
“그럼, 노래 한 곡조 뽑어이소!”하고
이에 동조한 회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자 젊잖은 이 대장이
“사실 우리 해봉산악회는 버스 안에서 노래를 안 부르는데 오늘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해서 딱 한 곡만 부르겠습니다.”며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른다.
그리고 끝이다.
우중을 달리는 차안에서 임 대장 형님등 몇몇 회원들에게 산행소감을 물으니 한결같이
너무 좋았고 그 위험한 코스에서 집행부의 도움으로 한사람도 낙오자나 사고 없이
산행을 하게 되어 고맙다고 한다.
한데 허 회원에게 캠코더를 들이대니 얼굴을 가리고 엉뚱하게
“짝지가 없어 너무 슬품니더!”며 웃는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두어 시간 달리다 도중에 들린 휴게소에서 문제가 생겼다.
버스안에서 기다리는데 밖에서 갑자기 고성이 터진다. 오늘 처음 참여하는 일일회원과
조 회장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연유를 알아보니 두 사람이 해병대 출신이라며 서로 기수를 물으며 인사를 나누었는데
일일회원이 조 회장이 해병대 출신 사칭을 하고 있다며 논쟁, 일일회원이 언성을 높인 것.
조 회장이 체구가 작아 얕잡아 보았는지 결코 자기보다 윗 기수가 아닐 뿐 만 아니라
해병대 출신도 아니라는 것.
오늘 산행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겸손한 마음을 읽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인데...
얼큰히 취한 탓인가 옆의 회원이 육탄전까지 벌리려는 걸 간신히 말려 버스에 올라온
그 일일회원에게
“오늘 산행하러왔지, 해병대 기수 따지러 왔습니까?...그룹산행에서 하찮은 일로
기분이 상하면 전체 분위기가 흐려지지 않겠습니까.”
라고 부드럽게 이야기 했더니
“죄송합니다...”
며 한발 물러서기에 다시 이야기를 한다.
“회장님의 기수는 얼마인지 잘 모르지만 해병대 출신은 확실합니다...
나중에 올라오면 화해 하이소.”
버스는 다시 달리고, 갈 때나 올 때나 버스 안은 조 회장 특유의 목소리가 판을 쳤는데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뒤편에서 화해가 되었는지 일일회원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얼마 후 장년해병대는 오늘 동반한 아내가 생일이라 도중에 생일케이크 사겠다며 빵
가게가 있는 읍면을 통과할 때 잠시 정차해 달라고 집행부에 부탁을 하는 모양이다.
어렵게 케이크를 사서 올라왔는데 기척이 없어 임 대장에게 기왕이면 전례가 없지만
생일축하를 산악회에서 주제하여 치러주라고 부탁한다.
임 대장의 사회로 생일축하인사와 생일케이크 불끄기와 축하박수 속에 분위기는 일신한다.
이렇게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하는 걸 왜 나만 옳고
상대방을 부정하며 속을 썩인단 말인가. 희양산 산행은 이름값을 못 받고 우울한
가운데 막을 내리려다 겨우 막판에 미소로 끝낸다.
22시12분, 비 내리는 부산T/G를 빠져나간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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