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의무 높이 평가하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 위한 길도 마련해야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입대 문제가 세간을 시끄럽게 한다. 얼마 전 전방 부대 GOP 총기 난사 사건으로 안타까운 젊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고, 방위 산업체 비리나 군 간부의 성추행 문제 등 도덕적 해이에서 오는 각종 비리와 사건들 때문에 군의 위상이 많이 실추됐다.
하긴 과거에도 이런 사건들이 없지 않았겠지만 이제 군도 많이 변화됐다. 일단 군 내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게 되면 온 국민들이 알게 되고, 군 전체가 들썩이는 것 같다. 지휘관들이 북한군의 동향이나 주변 국가들의 군사적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보다 오히려 휴가 나가 있는 부대원 동향에 더 촉각을 세운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회자할 정도로 군 비리나 폭력행위 등에 대한 통제가 더는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인천대신학교 신학생들은 학부 2학년을 마치고 현역으로 입대하는데, 얼마 전 군대에 간다고 인사하는 신학생들을 보니 마음이 짠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보면서 문득 25년 전 입대하던 때가 떠올랐다. 1989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나는 군에 봉헌(?)됐다. 당시만 해도 의무 복무 기간이 30개월이라 3년 가까이 신학교에서 떠나 있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학생으로서 군 생활은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혼재해 있다. 6주간의 기초 군사 교육과 자대 배치 후 8주간의 의장 훈련은 구타와 욕설,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 속에서 신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렸던 시간이었다. 하루하루를 맘 졸이며 살았지만 결국 26개월 10일의 시간은 지나갔고 건강하게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군 생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의장대원으로서 멋진 행사복을 입고 의장 행사를 했다는 것보다 탈영하려는 후임 병사를 설득해 군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이끈 일이다. 그 후임병은 여자 친구 문제로 탈영을 고민하면서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고 나는 고민을 들어주었다. 그래서였을까, 후임병은 마음을 고쳐먹고 탈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휴가를 다녀와서는 고마움을 표시했다. 여자 친구와 모든 오해를 풀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총만 선택해야 하나?
입대하는 신학생들을 보면 우리 한국이 처해 있는 안보 상황을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학생들이 꼭 입대해야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랑과 용서를 가르칠 사제가 될 신학생들의 손에 타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총과 칼을 쥐여주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가 있고, 자기 나라를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군을 유지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국방의 의무 수행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방법의 하나가 바로 대체 복무 제도다.
한국과는 안보 상황이 많이 다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국가의 재산과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하나다. 비록 군 복무가 의무인 나라라고 하더라도 그 나라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병역 의무를 군 복무뿐만 아니라 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나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한다더라도 수감되거나 형사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양심적 선택으로 다른 형태로 병역 의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6월 유엔 인권위원회(UNHRC)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종교와 신념 등을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해 수감 중인 사람이 전 세계에 723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중 669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이 통계는 아직도 한국이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 통계는 지구 상 거의 유일하게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사회교리는 우선 모든 군인이 전 세계의 선과 진리, 정의를 수호하도록 소명을 받았고, 이러한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리고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고자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군인으로 살아왔음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군대와 군인의 존재 이유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역시 배려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양심의 동기에서 무력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사목헌장」 79항, 「간추린 사회교리」 503항).
이제 군사력도 예전처럼 군인 수나 재래식 무기의 보유량으로 평가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어찌 보면 우리 한국 사회도 서서히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대체 복무제 시행에 관해 다시 논의의 불을 지필 때가 지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