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묵상(263) 다시 “Ecce homo.”(이것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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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 바울로
2026.04.03. 13:02
다시 “Ecce homo.”(이것이 사람이다)
재의 수요일(2026.2.18.)에 진슬기 신부님의 오늘의 묵상 “Ecce homo.”(이것이 사람이다)를 읽으며 ‘그래 다시 시작하자’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인간적 연약함에 처절하게도 무너져 가기만 했습니다.
닭이 울기 전 세 번 예수님을 저버린 사도 베드로가 생각납니다. 이후 세 번의 충성 맹세하고 죽음의 순간에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수는 없다며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성 베드로를 떠 올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며 숨을 거두신 예수님 앞에서, “Ecce homo.”(이것이 사람이다)를 다시 읽으며, ‘예수님!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용기를 내었으면 합니다.
“Ecce homo.”(에체 호모)
오늘의 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Ecce homo - Luis de Morales
“Ecce homo.”(에체 호모)
매를 맞으시고 초라해지신 예수님을 빌라도가 군중 앞에 내보이며 던진 이 말은, ‘이 사람을 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사람이다.’로 옮깁니다. 라틴 말 ‘ecce’가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존재의 실재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문법이 아니라, 이 말이 가리키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입니다.
과연 무엇이 사람이라는 것일까요?
상처투성이가 되신 예수님, 아무 힘도 없이 조롱당하시는 그분을 두고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서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결코 자신의 힘만으로는 완전에 이를 수 없지만, 완전을 꿈꾼다는 점에서 더욱 좌절할 수도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짓고 싶어서 짓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없이 넘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 돼.”라며 자책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그렇게 넘어질지라도 우리가 당신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십니다.
넘어지는 것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cce homo.”(이것이 사람이다)
자신이 얼마나 자주 넘어지는 존재인지 절실히 깨닫는 그 순간,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는 하느님의 물음에 비로소 진심으로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고백이 바로 신앙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넘어지는 사람으로서, 처절히 자신을 마주한 사람으로서 맞이해야 합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Ecce homo - Luis de Mora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