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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 호수 산책 - 오병이어와 생명의 양식
요르단 강 세례를 통해 공생애의 시작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대부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활동하시면서 많은 말씀과 기적을 남기셨다.
성경을 보고 상상을 하든, 실제로 순례를 하든, 우리 가슴에 가장 아름답게 다가오는 곳도 갈릴래아 호숫가인 것 같다.
많은 군중을 치유하시고 먹이시고, 참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물질에 치우치지 않도록 영생의 빵 말씀을 전해주신 곳.
◆ 갈릴래아 호수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다.
호수 서쪽 티베리아스는 2,000년 전 무덤을 깎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예수님 시대에는 이방인들이 살았고,
루카 복음 8장 돼지 떼의 기적이 있었던 호수 동쪽 게라사에도
정결하지 않은 짐승들이 사육되고 있었던 만큼 대표적인 이방인 도시였다.
종교적 정결을 중시 여긴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갈릴래아 호수 북쪽
코라진, 카파르나움, 그리고 벳사이다에 따로 살았고, 예수님이 활동하신 3대 마을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말씀과 기적을 베푸셨음에도 믿음이 없음을 느끼시면서 한탄하신 고을이기도 하다(마태 11,20-24).
이와 같이 갈릴래아 호숫가에는 유다인, 이방인, 부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 회당장, 세리, 백인대장, 창녀 등
각양각색의 다양한 계층이 함께 모여 살았고, 예수님이 왜 이곳을 공생애의 센터로 선택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갈릴래아 호수는 티베리아 바다, 겐네사렛 호수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민물임에도 “바다”라고 한다.
요르단 강처럼 조그마한 물줄기들만 보다가 갑자기 둘레가 50km나 되는 거대한 호수를 접하면
그야말로 대단한 바다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게다가 겨울에는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바람이 불면 파도까지 쳐서 “갈릴래아 바다”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예전부터 어족이 풍성했던 갈릴래아 호수에는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도 생선이 많이 등장했다(마태 7,10).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 되는 군중들을 먹이신 곳도
갈릴래아 바닷가였다(마태 14,13-21; 요한 6,1-14).
◆ 2,000년 전에는 교통이 불편하여 사람들이 대부분 걸어다녔고,
장거리 여행을 위해 빵이나 정어리 종류의 생선을 염장하거나 구워서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다.
아마 예수님이 사용하신 오병이어도 원래는 비슷한 용도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겨진 가장 오래된 성지순례기 중에 4세기 후반 에제리아(Egeria) 수녀님이 기록하신 내용을 보면,
빵의 기적 장소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갈릴래아 호수를 바라보는 곳으로 카파르나움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이곳은 물이 풍부하여 푸른 풀밭이 있고 수많은 나무, 대추야자가 자란다.
이 풍성한 장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셨다.”
◆ 1,600년 전 에제리아 수녀님이 방문하셨을 때에는 아마 비잔틴 로마시대 성전이 봉헌되어 있었을 것이다.
수녀님이 거닐었을 갈릴래아 호수를 함께 산책하면서 빵의 기적 기념 성당으로 들어가면,
제단 아래 거무스름한 반석(아래 사진 참조)이 보인다.
이곳에서 예수님이 손에 빵을 들고 축복하셨다고 한다.
에제리아 수녀님이 오병이어 지역을 “푸르고 물이 많은 장소”라 묘사하신 것처럼 이곳은 그리스어로 헵타페곤(Heptapegon),
“7개의 샘”이라 불렀고, 지금은 발음이 아랍어로 약간 와전되어 타브가(Tabgha)가 되었다.
현재는 4세기 고대 유적을 보존하면서 재건한 베네딕토 수도원 성당이 있고,
검은 반석 앞쪽으로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네 개가 담긴 바구니 문양이 조그맣게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 모자이크에는 빵이 네 개만 새겨져 있는데,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따로 상징하면서 오병이어를 장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성당 바닥에는 1,600년 전의 오병이어 문양뿐 아니라 나일강 동식물들의 모자이크들이 함께 새겨져 있다.
예수님 시대 문화의 중심지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였기 때문에 갈릴래아 호수가
나일강처럼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일강 모티브들을 바닥에 장식했다고 한다(왼쪽 사진 참조).
세월의 무상함 속에 나일강 모티브들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한때 고대 근동을 주름잡았던 이집트 패권은 모두 사라지고 나일강은 이전의 풍성함을 잃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성당 안에 앉아서 잠시 묵상하노라면,
내가 지금 무언가를 가졌다고 해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일깨워주는 것 같다.
◆ 그러나 적게 가졌다고 해서 서로 나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이 가졌다고 늘 베풀고 사는 것도 아닌 것처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지만, 나눔의 기적 속에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실 수 있었다.
오병이어 이후 예수님이 당신께서 주로 활동하신 카파르나움 회당(위 사진 참조)에 오셨을 때
빵의 기적을 보고 흥분했던 사람들도 함께 모였을 것 같다(요한 6,22-26). 또 다른 빵의 기적을 기대하면서.
에제리아 수녀님이 기록하신 것처럼
빵의 기적 장소와 카파르나움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걸으면 40분, 버스로는 5분 거리다.
카파르나움에 모여 또 다른 표징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먹고 나면 배고파지는 육체적인 빵이 아니라
하늘의 만나를 찾으라고 가르쳐주셨다(요한 6,33-35).
빈곤에 빠져 배고픈 사람도 있고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넘치게 부유한 사람도 있지만,
하늘의 만나는 누구나 똑같이 누릴 수 있는 복이라는 것을.
기쁨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오병이어는 늘 우리 안에서 반복될 수 있는 나눔의 기적일 것이다.
그리고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봉헌하는 성체성사 속에서 오늘도 내 영혼을 채워줄 “생명의 양식”을 기다려본다.
에제리아 여행기
이름이 에제리아 (Egeria) 또는 애테리아 (Aetheria)라고 하는 한 유럽 여성 신자가 4세기 후반쯤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몇 년에 걸쳐 중동 성지를 순례했다.
이 여인은 고국에 남아있는, 아마도 수도생활을 하는 동료 “자매들” (sorores)에게 이 순례 여정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우리는 이 서간을 ‘에제리아 여행기’ (Itinerarium Egeriae)라고 부른다.
이 여행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에서 에제리아는 신구약성서에 따라 걸어간 순례 길을 자세히 말하고 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에 따라 이집트를 탈출한 위대한 사건의 중심이 된 시나이 산을 둘러본다 (1-9),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가 생애를 마친 느보 산을 거쳐 (10-12),
카르네아스를 여행한다 (13-16).
그러고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오는 길에 에데사까지 이르는 시리아 북부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방문하고 (17-21),
성녀 테클라의 무덤을 참배한다 (22-23).
그리고 여행기의 둘째 부분에서는 395년경 예루살렘 교회 전례를 자세히 전해준다 (24-49).
에제리아는 예루살렘 교회의 전례주년에 따라 직접 전례에 참여하면서,
평일과 주일의 전례, 주님의 공현 대축일, 사순시기와 금식, 성주간, 파스카 대축일, 성령강림 대축일 전례를 말하고,
그리고 끝에는 예루살렘 교회가 세례를 받고자 하는 예비신자를 어떻게 교육시켰는가에 대하여 그 절차를 말하고 있다.
타브가-베드로 수위권 성당
갈릴래아 호수 북쪽, 빵의 기적 성당에서 5백미터 정도 북쪽으로
"베드로의 수위권 성당" 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 기념 성당"이 있다.
여기는 요한복음 21,1-17절의 내용과 관련있는 장소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생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였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 밤새껏 그물을 쳤으나 고기 를 한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그런데 새벽녘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호수가에 서 계셨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시 그물을 쳤는데 많은 고기들이 잡혔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 고기를 구워 드셨다.
이곳에서 베드로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요한 21,16)는 명령과 함께
수위권을 받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베드로 수위권 성당"이라고 부르며,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서 계셨고 제자들과 함께 숯불에 구원 생선을 나누어 먹었던 장소에
현재의 기념 성전이 세워졌다고 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 기념성전"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4세기부터 이곳에 기념 성전이 암반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1263년 이슬 람교도 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로 방치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700년이 지나 오늘의 기념 성전이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타브가 '빵의 기적 기념성당
빵의 기적
복음서는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40개를 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네 복음서 모두가 소개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빵의 기적'이다.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
(마르 6,30-44; 마태 14,13-21; 루카 9,10-17; 요한 6,1-15) 내용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 빵의 기적이 예수의 일생에서뿐 아니라
구원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직접 이 빵의 기적에 관한 의미를 자세히 설명(요한 6,22-59)해 주셨다.
빵의 기적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묵상 글로 정리했다.
"하느님께서 땅을 통해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 세 가지는 빵과 포도주, 올리브 기름(시편 104편)이다.
빵은 창조주가 선하시고 피조물이 좋다는 사실을 실체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단순한 일상생활의 소박함을 상징한다.
갈릴래아에서 벌인 예수의 활동이 끝나갈 무렵 그분이 이루신 빵의 기적은
그분의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보여주는 탁월한 표징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그분 활동의 갈림길이 되기도 했으며
그때부터 그분의 활동은 뚜렷하게 십자가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빵의 기적이 이뤄진 끝에, 사람들이 예수를 임금으로 모시기에 앞서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요한 6,14)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구원을 순전히 물질적으로만, 잘 먹고 잘사는 것으로만 보았다.
그래서 인간을 그런 존재로 축소시키고 아울러 하느님을 사실상 완전히 제외시켜 버렸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먹여 살리는 선물은 그보다 더 위대하고 다른 수준에 속하는 것이어야 한다.
율법을 통해서 하느님 말씀을 양식으로 삼을 수 있다(요한 4,34 참조).
그러나 율법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뒷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율법은 '그림자'일 뿐이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요한 6,33).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이것은 예수께 대한 믿음으로 이뤄진다.
이 말씀에는 육화, 곧 말씀이 사람이 되신 행위가 최종 목표에 이르게 되었으며 최종적인 완성이라는 사실이 암시된다.
그것은 죽음에까지 이르는 예수의 자기 헌신과 십자가의 신비다.
무엇보다 성체성사의 근본이 되는 예수의 제헌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하신 빵의 담화에서는 육화에서 부활에 이르는 길을 거치면서 성체성사를 향해 방향을 잡는다.
그리하여 성찬례는 그리스도인의 실생활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됐다"(「나자렛 예수」 1권, 390~402쪽 참고)
타브가
예수께서 이 빵의 기적을 행하신 곳이 '일곱 우물'이 있던 타브가 지역이라고 교회 전승은 밝히고 있다.
타브가는 예수께서 '참행복'에 관해 산상설교를 했던 쉐이크 알리 산 아래 갈릴래아 호수 서북쪽 연안에 있다.
예수 시대 이전부터 이 지역을 '일곱 우물'을 뜻하는 히브리말 '엔 세바',
아랍말 '아인엣 타브카', 그리스말 '헤프 타페곤'이라 불렀다.
타브가 지역에는 오늘날 도로변에 위치한 한 바위에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
(마르 6,30-44; 마태 14,13-21; 루가 9,10-17; 요한 6,1-15),
가까운 언덕에 있는 바위굴 근처에서는 산상설교(마태 5-7장),
호숫가 바위에서는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요한 21장)을 기억하는 베드로 수위권 기념 성전이 있는 곳이다.
4세기까지 가파르나움에 살던 유대계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님께서 타브가 지역에 머물렀다는 추억을 전하며
3개의 바위(바위는 굳건한 신앙과, 사도 베드로를 상징)와 연관시켰는데,
그것은 바로 참 행복 선언 기념 성전에 있는 언덕의 “바위 동굴”
(비잔틴 시대의 기념 성전을 발굴해 놓은 상태이며-도로 옆, 현재 기념 성전은 언덕 위쪽에 위치 함)과
베드로 수위권 성당 안에 있는 “주님의 식탁” 그리고 빵의 기적 성당 안의 제대 아래에 있는 “바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도교 성지 순례기로 가장 유명한 에테리아의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383년경에 타브가 지역을 순례 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곳은 가파르나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거기 에는 일곱 샘이 있었고 모두 풍부한 양의 물을 담고 있었다.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굶주린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예수께서 기적을 베푸실 때 빵을 올려 놓으셨다고 생각되는 바위 위에 제단을 꾸며 사용하고 있었다.
순례객들은 그 바위 조각을 조금씩 떼어갔는데 그들은 그것이 병과 건강에 효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에테리아에 의하면 350년경에 주님이 빵을 얹으신 바위를 제단으로 하여 기념 성전이 건축 되었는데
그 성당 기초의 일부는 현재 제단 우측 유리판 아래와 성당 북쪽 부분에 남아 있다.
450년 경 비잔틴식 성당이 건축될 때 기적에 연관된 바위를 새 제단 아래로 옮겼고,
제단 주위는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을 하였다.
타브가는 성경 표현대로 '외딴 곳'(마태 14,13; 마르 6,32)이다.
오늘날도 순례자들의 발걸음 소리만 메아리칠 정도로 한적한 곳이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자신이 거주했던 카파르나움에서 약 3㎞ 거리에 있는 외딴 이곳을
간혹 찾아와 군중을 피해 조용히 쉬며 기도를 했다.
그런데 마르코ㆍ마태오ㆍ요한 세 복음서는 예수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신 장소를 모두 '외딴 곳'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루카만이 '벳사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벳사이다는 타브가와 정반대 지역이다.
카파르나움에서 타브가는 서쪽, 벳사이다는 동쪽에 있다.
유일하게 루카만이 빵의 기적 장소를 밝히는데도 베드로와 안드레아, 필립보의 출생지인 벳사이다에서
빵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성경고고학자들의 일반적 입장이다.
우리말로 '어촌'이란 뜻의 벳사이다는 많은 상인이 드나드는 항구 마을로 결코 외딴 곳이 아니다.
또 루카는 다른 세 복음서 저자들과 달리 예수의 목격 증인이 아니고,
팔레스티나의 지형도 잘 모르는 저자였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빵의 기적 장소가 타브가라는 증거는 교회 전승에서 찾을 수 있다.
타브가는 초대 교회 때부터 순례의 중심지였다.
350년께 예수께서 빵을 얹으셨다고 하는 바위를 제대로 하는 성당이 세워졌고,
많은 순례자가 이곳을 방문해 바위의 작은 돌들을 가져갔다.
또 450년께에는 비잔틴 양식의 새 성당이 세워졌고, 그때 설치한 모자이크를 지금도 볼 수 있다.
타브가 성당은 614년 페르시아군과 637년 무슬림의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된 후
1300여 년간 폐허로 남아있다가 1932년 독일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됐다.
지금의 타브가 성당은 독일 가톨릭교회의 도움으로 지어졌다.
1982년 봉헌된 이 성당은 성 베네딕도회 예루살렘의 성모승천수도원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성당 주변 성지는 '독일 성지회' 소유다.
넓은 정원을 지나 성당으로 들어서면 제대 주변으로 5세기 비잔틴 성당의 화려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바닥 모자이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예수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는 바위 바로 위에 제대가 있고,
바위 밑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빵 4개가 들어있는 성합이 모자이크 돼 있다.
빵 4개만이 모자이크가 돼 있는 까닭은 매일 미사를 통해 행해지는 성체성사가 나머지 하나의 빵이기 때문이다.
빵의 기적 성당을 상징하는 빵 네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모자이크는 제단 바로 앞쪽에 있다.
주의 깊게 모자이크를 본 순례자들이라면, 그리고 “오병 이어”의 기적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왜 “네 개의 빵”이지 하는 의문이 들것이다. 그럼 한 개의 빵은?
그리스도 신자들에겐 “제대”는 단순히 미사를 봉헌하기 위한 “탁자”나 “단(壇)”이 아니다.
“제대”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한 “제대”는 그리스도를 제물로 드렸던 골고타(갈바리아) 산을 의미하며,
매일 미사성제에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드릴 장소이기에 제대는 성당의 중심이자 미사성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 개의 빵”은 모자이크 바로 앞쪽에 있는 “제대”가 있음으로 인해
다섯 개의 빵이 되는 것이며, 매일 봉헌되는 미사성제를 통해서
지금도 “빵의 기적”은 새롭게 일어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참 행복 선언 기념 성전(산상 설교, 진복팔단 성당)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마태 5,1-12)
갈릴래아 호수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 “타브가”를 중심으로 호수를 끼고
예수님의 고장이라고 부르 는 가파르나움 성당, 베드로 수위권 성당, 빵의 기적 성당이 있고,
호수 왼쪽에 있는 “쉐이크 알리” 언덕엔 “진복팔단 성당” 또는 “산상설교 성당”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참 행복 선언 기념 성당”(The Church of the Beatitudes)이 있다.
“산상 설교”라고 부르는 것은 마태오 복음 5,1-2절에서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군중을 가르쳤다는데서 유래하고,
루가복음에서는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서”(루가 6,17) 가르쳤다고 하여 “평지설교”라고도 한다.
기념 성전에서 호수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야외 제대가 있는 쪽에 조그만 동굴이 있는데
이곳 에서 1933년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를 발견했고, 예수님의 참행복 선언을 기념한 경당이었을 것으로 추정 하지만
비잔틴 시대의 참행복 선언 기념 성전은 베드로 수위권 성당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베드로 수위권 성당 출입문 맞은편 언덕), 현재의 도로 옆 언덕에 위치 했었다고 한다.
현재의 참행복 선언 기념성전은 가파르나움 기념성당에 약 3km 정도 거리에 있고,
갈릴래아 호수면 에서 150m 정도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갈릴래아 호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망대 이기도 하다.
이 기념 성전은 1937년 이탈리아 프란치스코회 수녀회(Franciscane Missionarie del Cuore Immacolato di Maria)가
여덟 가지의 참행복을 뜻하는 팔각형의 돔 모양으로 이탈리아 건축가 바르루찌(Barluzzi)가 설계한 작고 아담한 성당이다.
천장의 돔 아래엔 소박하게 참행복의 여덟 가지 말씀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새겼고,
가운데 있는 성당 중앙에는 감실과 제대를 모셨고, 감실 둘레 성당 바닥에는 일곱 가지 덕을 상징하는
믿음 ․ 소망 ․ 사랑 복음삼덕과, 지혜 ․ 정의 ․ 용기 ․ 절제의 네 가지 덕을 모자이크로 장식해 놓았다.
성지가 좋다 15회 갈릴리 - 이강근 박사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은혜로운 주일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