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만에 재개하는 家苑 선생의 ‘논어’ 강의입니다. 매주 화요일(오전10시~오후1시) ‘논어반’을 개설했으나 수강생이 매우 저조합니다. 『論語』가 가진 의미를 두 번에 걸쳐 새겨보면서 여러분들의 현장 강의 참여를 독려하고자 합니다.
현대사회는 물질문명이 고도화하면서 매우 강퍅(剛愎)한 사회로 치닫고 있습니다. 재테크의 이익 창출 우선과 함께 개개인의 고립된 삶이 가속화되면서 ‘人間社會(인간사회)’를 지탱하는 ‘人本思想(인본사상)’마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속에 『論語』는 우리는 ‘삶’의 의미와 함께 ‘人間社會’에 대해 두루 돌아보면서 삶의 가치관을 定立(정립)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경전입니다.
먼저 『論語』라는 책 제목에 담겨 있는 뜻을 선현들이 해석한 말씀을 통해 그 의미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論語集解・序解(논어집해・서해)』 疏(소)에서 宋나라 때의 邢昺(형병)은 『論語』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논어』는 공자가 제자들과 당시 사람들과 응답한 내용이고, 또한 제자들이 대화하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내용이라. 당시 제자들이 각각 기록한 바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돌아가심에 문인들이 함께 서로 모여서 의논하여 편찬함이라. 그러므로 『論語』라고 함이라. 그렇게 한 까닭은 선생님께서 이미 돌아가심에 함축(含蓄)된 정미(精微)한 말씀들이 거의 끊어졌기 때문이라. 제자들이 떨어져 살면서 그 뒤로는 각각 이견을 내면서 성인의 말씀이 영원히 없어짐을 두려워했음이라. 그러므로 서로 모여서 의논하여 편찬함에 당시의 현인과 옛 명왕의 말씀을 중심으로 채집하여 모아서 하나의 법을 이뤘기에 『論語』라고 함이라. (한나라 때의) 정현은 중궁과 자유와 자하 등이 골라서 정했다고 하니라. ‘論’이라는 뜻은 실로 옷감을 짬과 같고, 수레바퀴와 같고, 이치이고, 각 편과 장은 이치에 따른 순서가 있고, 엄선하여 편찬한 글이라. 따라서 이 글로써 가히 세상에 온갖 일을 다스릴 수가 있으므로 ‘綸(짤 륜)’이라 했고, 모나지 않고 능숙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법도가 무궁히 담겨 있으므로 ‘輪(바퀴 륜)’이라 했고, 만 가지 이치를 다 머금고 있으므로 ‘理(다스릴 리, 道理)’라 했고, 편과 장이 순서가 있으므로 ‘次(이치에 따른 순서)’라 했고, 여러 현인들이 모여서 정했으므로 ‘撰(지을 찬)’했다고 함이라(論語者는 孔子應答弟子時人及弟子相與言이오 而接聞於夫子之語也라 當時弟子各有所記한대 夫子旣卒에 門人相與輯而論纂이라 故로 謂之論語라 然則夫子旣終에 微言已絶일새라 弟子恐離居에 已後各生異見而聖言永滅이라 故로 相與論纂에 因採時賢及古明王之語하여 合成一法하니 謂之論語也라 鄭玄이 云仲弓子游子夏等이 撰定이라 論者는 綸也요 輪也요 理也요 次也요 撰也라 以此書可經綸世務라 故로 曰綸也요 圓轉無窮이라 故로 曰輪也요 蘊含萬理라 故로 曰理也요 篇章有序라 故로 曰次요 羣賢集定이라 故로 曰撰也라)”
또한 南朝(남조)시대 梁(양)나라의 劉勰(유협)은 『文心雕龍·論說』에서 “論이라고 한 것은 여러 말씀들을 두루 짜면서 一貫(일관)된 이치로 정미하게 다듬어놓았음이라(論也者는 彌綸群言而精研一理者也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論語』는 각 문장이 짤막하여 아무 편에서나 하나씩 뽑아서 읽기에 좋은 글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論語』를 읽었다는 많은 이들이 중간중간에 골라낸 글들만을 읽고 다 공부했다고 합니다. 위에서 간략히 살폈듯이 『論語』는 짜임새 있는 글로 一以貫之(일이관지)의 이치가 있기에 全篇(전편) 20편을 순서에 따라 차근히 읽어보지 않고는 그 깊고 넓은 의미를 알고 豁然貫通(활연관통)하여 쓰지 못할 것입니다.
수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家苑 선생의 『論語』 강의에 여러분들의 참여를 열렬히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