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한국문학회(이사장 이철호)에서 발행하는 한국문인 10.11월호에 강원지회 특집으로 실린 심영희 수필입니다.
빈 의자
심영희
아침 운동으로 약사천을 한 바퀴 돌아 KBS춘천방송국 옆을 지나 강원도 향토공예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른 아침이라 주위는 조용하다. 요즈음 비가 자주 내린 탓으로 꽃과 나무도 싱그러워 보인다. 붉은 벽돌 건물 역시 더욱 붉어 보이는 아침이다.
내 어린 시절 고향집 꽃밭에 감초처럼 섞여 있던 다알리아꽃을 보고 사진을 찍으려고 계단을 올라가니 벽돌보다 더 붉은 긴 의자가 놓여있다. 평화롭다 못해 한가한 분위기다. 빈 의자를 보니 새삼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IMF때 많은 일꾼들이 직장에서 강제 퇴직을 당하며 이 땅의 아버지들이 앉을 자리를 잃었었다. 아버지에 뒤이어 누구의 어머니 또다른 집의 아들딸들도 직장을 잃고 하루 아침에 앉아 있던 의자와 이별을 해야 했다.
오늘 아침 문뜩 그 생각을 하니 그때는 정말 마음 아팠던 시대였고 앉을 의자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자고 일어나면 뉴스마다 무슨 회사가 부도가 났고 잘나가던 사업자와 직원들이 거리를 방황하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니 우리의 역사상 누구를 탔 할 수 없는 시대의 뼈아픈 아픔이었다.
저 붉고 긴 의자는 누구를 위해 세상에 태어났을까. 몇 사람이 앉을 의자인데 텅 비어 있다. 요즈음도 젊은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 힘든 일은 기피하기에 더욱 일자리 찾기가 어렵지만 학교에서 공부만 하던 학생들이 힘든 일을 기피하는 현상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청소년들이 노동이나 공장 일에 익숙하지 못하니 참고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어디 본인에게 딱 맞는 직장에서 정해진 편안한 의자에서 사회생활 하기가 쉽겠는가, 어려움을 참고 또 참으며 앉을 의자를 찾아야 한다. 여기에 놓여 있는 이 빈 의자는 만인을 위해 놓여있는 것이다. 정해진 주인이 따로 없다. 공예관을 찾아온 손님이 앉으면 그 사람이 주인이고, 길가다 힘들어 쉬어 가려고 앉으면 또 그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든 앉으면 주인이 되는 의자다. 비단 사람들만 아니라 새나 동물이 앉아있으면 그 시간은 그들이 주인 노릇을 한다.
이렇게 빈 의자는 사람을 차별 하지도 않고 아름다운 모습과 넉넉한 마음으로 앉을 자리를 내주며 배려 한다. 그러면서 이세상의 아름답고 어려운 대화를 엿들으면서 함께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빈 의자에 누구나 마음 놓고 앉아서 주인이 되듯이 일터에 많은 일자리가 생겨 젊은이들이 자기가 앉을 의자를 찾아 척척 취직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쯤 사회 첫발을 내딛는 청소년들이 앉을 자리 걱정을 안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인지 모르겠다.
요즈음 자기 의자를 버리고 방황하며 더 단단한 의자를 만들려는 의사와 이를 억압하는 정부, 일명 “의정 갈등”이다. 어느 쪽도 잘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 대립보다는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내가 한자리 할 때 뜯어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이 따른다. 하루 빨리 의사들이 자기 의자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는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약사인 우리 아들도 약국을 운영하다 정부가 내세운 “의약 분업”으로 결국 약국을 정리하고 선배가 운영하는 대형 약국 관리 약사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으며, 간호사인 손녀는 지난해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인천 모 대형병원 간호사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는데, 요즈음 신문에는 의정갈등으로 간호사들의 취직도 어려워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간병인들도 일거리가 없어 생계 위협까지 받는다는 뉴스도 나온다.
오늘 신문기사에는 올해 80명을 선발하는 강원대 병원 2025년 졸업예정자 간호사채용에 1679명이 지원해 21: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지난해 160명을 채용할 때 경쟁률은 3.4:1이었다니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것은 병원에 의사가 없으니 환자를 받을 수 없고, 그에 따라 간호사도 많이 필요하지 않고 경영난으로 간호사를 많이 채용할 수도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하루 속히 의정 갈등이 끝나서 의사도 간호사도 자기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정부는 밀어부치지만 말고 “온고지신”이란 낱말을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약 력(심영희)
ㅇ 「수필과 비평」 지로 수필 등단(1995)
ㅇ 수필집「아직은 마흔아홉」 외 3권/시집「어머니 고향」/
포토에세이「감자꽃 추억」/민화에세이「역사와 동행하는 민화이야기」
ㅇ 동포문학상/한국수필문학상/소월문학상/황희문화예술상 시부문 금상/
춘천여성문학상/한국문협 수필분과 수필의 날 2022년 수필작품상 수상
현:한국문인협회 문단정화위원/한국수필가협회 이사/새한국문학회 강원지회 회장/강원문협 이사/춘천문협 회원/ 춘천여성문학회 고문/한국민화협회 홍보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