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22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산거(山居)
감산 덕청(憨山德淸) 선사
춘심우과낙화비
春深雨過落花飛
염염천향상납의
冉冉天香上衲衣
일편한심무처저
一片閒心無處著
봉두의장간운귀
峰頭倚杖看雲歸
봄 깊어 빗발 지나자
꽃잎은 떨어져 흩날리니
상큼한 그 꽃잎 향기가
옷깃 마다에 스며들었네
한 조각 이내 마음씀(심사)을
차마 지어서 둘 곳이 없어서
산봉우리 저 하늘 구름만
지팡이에 기대어 바라보네.
"
※
* 염염(冉冉)
향기가 나는 모양을
이른다.
※
눈부시고 아름다운
봄날(春日)의 풍경(風景)을
이렇게
멋지게 시(詩)로서
표현(表現)하여
읽는 이(사람)
독자(讀者)의 마음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人物)이
몇이나 될까 ?
그저 감탄사가
절로 절로 일어나서
몇 번이고
다시 되새기며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명문(名文)의 아름다운
글(문장)이다.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는
감산덕청(憨山德淸,) 선사의
시(禪詩)이다.
감산 덕청(憨山德淸,
1546~1623) 선사(禪師)
스님(僧, 沙門)은
중국(中國)
최고 고승(高僧)이자
명(明, 1368~1644) 나라
시대의 불교(佛敎)를 대표하는
스님(僧侶, 沙門)이다.
지금의
안후이성(安徽省)에 속한
금릉의 전초(全椒)에서
태어났다.
속성(俗姓)은
채(蔡) 씨(氏)이고
이름(俗名)은
덕청(德清)이며
자(字)는 징인(澄印)
호(號)는 감산(憨山)이다.
일반적으로
감산 대사(憨山大師)
라고 존칭되며
황제가 내린 시호는
홍각선사(弘覺禪師)이다.
감산 덕청(憨山德淸) 선사는
염불(念佛)과
간화선(看話禪)을
함께 닦았으며
주굉(袾宏, 1536~1615)
진가(眞可, 1543~1603)
지욱(智旭, 1596~1655)과
더불어
명(明) 나라 시대의
사대고승(四大高僧)
가운데(中) 한 명(一人)이라고
칭송(稱頌) 된다.
1546년 금릉
남경에서 태어나
열두 살(12歲) 때
보은사(寶恩寺)로 입산(入山)
출가(出家)하였다.
그 후
제방(諸方, 여러 곳,
동서남북 여기저기 사방팔방)을
두루 널리 다니면서
도업(道業)을 닦아
선취(禪旨 선의 종지)를
터득(攄得)하고
여러 곳에서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여는 등(等)
많은 활약을 하였다.
여산(廬山)에
오래 머물다 조계(曹溪山)로
돌아와서
1623년
78세로 열반(涅槃, 해탈)
입적(入寂)하시었다.
자신의
어록(語錄)을 비롯한
《감산노인몽유집
(憨山老人夢遊集)》
《몽유전집(夢遊全集)》
《관릉가경기(觀楞伽經記)》
《법화경통의(法華經通義)》
《원각경직해(圓覺經直解)》
《기신론직해 (起信論直解)》
등(etc)
특정한 종파(宗派)에
제한되거나 구애받지 않고
폭넓게
저술(著述) 했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는
불교의 여러 종파에 걸친
저서들뿐만 아니라
유교, 불교, 도교
3교의 조화(三敎調和)를 추구한
저서(著書)들도 있다.
위(上記)에서 언급했듯이
중국 명(明) 나라
최고 고승(高僧)이자
등신불(等身佛,
육신공양 보살)이였던
감산 덕청(憨山德淸,
1546~1623) 대사(大禪師)는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벗어나는 방편(方便)으로
"
염불(念佛)이
그 어떠한 참선(參禪)보다
더욱 수승(殊勝)하다.
"
하였다.
감산 덕청(憨山德淸,
선사(禪師)의 사상(思想)은
선(참선, 禪)과
화엄(교리, 華嚴)의
융합(融合, 합일, 선교통일)에
가장 핵심(核心)을 두고 있으며
여러 종파(宗派間) 사이의
조화(調和, 화합)를 이룩하고자
하였다.
또한
《노자해(老子解)》
《중용직지(中庸直指)》
《장자내편주(莊子內篇註)》
등도 저술했는데
모두가
불교사상을 기준점으로
삼아서
유교(儒敎)와
노장사상(老莊思想)의
전적(典籍 경전적 문서기록)을
해석한 것으로
유교, 불교, 도교
3교(三敎)의 조화를 추구한
3교 조화사상
(三敎 調和思想)이
잘 나타나 있다.
"
관노장영향론
(觀老莊影響論)
즉,
삼교원류이론론
(三敎源流異同論)
"
이라고 하는
저서(著書)는
3교(三敎)를
함께 논(論)한 것으로서
유명하며
유교(儒敎 성리학)
불교(佛敎 부처님 가르침)
도교(道敎 무위자연)
3교(三敎)의
다른 점(異他要點)과
같은 점(同質性)에 대한
비교 검토를
통하여
유교. 불교. 도교
3교(三敎)가 함께 나아 갈
수맗은
방향(方向)을 제시하고
조화점(調和點)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
ㅡ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
ㅡ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후배(先後輩)
제현(諸賢)님들 께서는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