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0:1-15
신앙의 시련
욥은 이전의 행복과 명예를 현재의 불행과 비천함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욥은 과거에 매우 영예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굴욕적인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전에는 위대한 사람으로 존대함을 받던 욥이 이제는 가장 비천한 사람들에게까지도 멸시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대로 가진 것이 없으니 모든 사람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욥을 조롱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1절...그들은 욥보다 어릴 뿐만 아니라 천한 신분이며
2절...약하고 쓸모 없는 자들이며
3절...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해진 자들이며
4절...문명화된 사회에서 추방된 자들이며
8절...본래 미련한 자들입니다.
욥은 자기의 현재의 고난이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이런 자들에게까지 멸시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욥에 대한 온갖 조롱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욥으로 하여금 번민을 더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후원해주거나 옹호해주는 이가 없어도 그들끼리 연합하여 그 악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굴레벗은 송아지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날뛰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욥을 대적하여 멸망시킬 길을 쌓으며, 욥의 길을 헐고 그의 재앙을 재촉하였습니다.
높은 권세를 가졌던 욥이 갑자기 치욕의 밑바닥으로 떨어져버린 불쌍한 모습을 보십시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명예나 권세, 재물과 영화는 언제나 불확실한 것임을 깨닫아야 합니다.
그리고 쉽게 무너져버릴 세상에 뜻을 두거나 자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진정한 가치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살고 있습니까?
현대인 모두가 자신의 소유라고 인식되는 모든 것들을 상실치 않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며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건강과 정력에 좋다는 이야길 믿고 코부라 뱀을 하루에 두 마리씩 2년 간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결국 뱀 독에 빠진 채 사경을 헤매고 있다니 몬도가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할 해괴망측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T.V보도...웅담이 정력에 좋다고 수백만원씩 주고 사서 먹지만 그것은 아무 효과도 없다는 의학계의 진단이 내렸다.
이처럼 현대인은 누구나 할 것없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건강, 권력, 명성, 재산, 인기 따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그러나 처참하리만큼 강력한 자기 보존의 투쟁에도 아랑곳 없이 현대인은 얻는 것보다는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은 아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가치관의 정립이 없는데서 오는 혼란, 바로 그것이 바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청진기로 내 인생의 맥박 소리를 들어보십시다.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아파하고 있습니까? 잃은 것과 찾은 것, 그것들을 올바로 분별하는 능력이야말로 현명한 삶의 비결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삶을 점검해 보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욥 30:16-31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
어느 때이든지 하나님께서는 무릇 당신이 들어 쓰실만한 사람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를 연단하여 장차 쓰여지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녹슨 도끼도 풀무불에 달구어 몇번이고 두들겨대면 새 도끼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같은 방법으로 인재를 만들어 냅니다.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요셉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훌륭한 꿈을 주신 다음에는 형들에게 죽을 곤경을 치르게 하셨고, 마침내는 애굽의 노예로 팔리게 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욥이 겪었던 엄청난 고난도 진정 하나님께서 주신 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 하실 때 어떤 방법들을 쓰실까요? 욥의 경우를 들어 이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 1.내던져 버리십니다
욥은 자기의 처지가 얼마나 참담했던지 본문 19절에 보면 <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로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자기가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극도의 비애를 절감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큰 인재로 만들려고 하실 때는 그에게 엄청난 고난과 곤경을 겪도록 만드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다는 막다른 상태까지 절감케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손에 의하여 깊은 구덩이에 내던져짐을 당함으로써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다는 절박한 상황을 체험하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셨던 한마디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그런 막다른 순간을 겪으셨던 것입니다. 사자도 자기 새끼를 훈련시킬 때에는 높은 절벽으로 끌고 올라가서 땅으로 내던지는 비정한 방법을 쓴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연단하려 하실 때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듯한 환경으로 시험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사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극단의 상태를 만나더라도 도리어 더 큰 용기를 가지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2.부르짖어도 대답지 않으십니다
욥은 또 당시의 쓰라린 체험을 이렇게 토로하였습니다. 20절입니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주께서 대답지 아니하시오며...>
참으로 부르짖어도 대답지 않으신다는 것은 이제는 너와 내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마지막 통첩과도 같은 것입니다.
--외면함으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 3.죽음으로 위협까지 하십니다
욥은 이윽고 자기가 경험한 최악의 사태를 토로하였습니다. 본문 21,22절을 보십시다. <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히 하시고 나를 대풍 중에 소멸케 하시나이다.>
이는 자기가 사경에서 헤매게 되었던 일을 실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크게 쓰시려고 할 때는 심지어 그를 사경으로 몰아넣는 일까지 감행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사도 바울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위대한 제자로 손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만큼 위대한 사도가 되어지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후 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그러니까 바울은 그와 같은 연단을 통하여 누구보다도 출중한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처형장에서 풀려 나온 후 '죄와 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 불멸의 명작들을 집필하였습니다. 죤 밀턴 역시 단두대에서 풀려 나온 후 '실락원'과 '복락원'등의 빛나는 작품들을 써냈습니다. 죤 번연은 사경과 다름없는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집필하였습니다.
--영국이 나은 세계적 문학가이고 목사였던 죤 번연은 젊은 시절부터 돈독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그는 열심히 교회 출석을 하였고 기도생활에 힘썼다. 비록 그의 직업은 땜장이였지만 틈틈이 익힌 지식과 문장력으로 '천로역정'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저서를 남기도 하였다
이러한 번연의 실력과 믿음이 널리 알려지자 그가 출석하고 있던 교회의 성도들과 목사님은 그를 존경하였고 마침내 교회 회의에서는 번연을 후임설교자로 세우도록 결의하였다. 그는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다. 그는 본 교회뿐 아니라 먼 지방까지 부름을 받아 설교하러 다니기도 하였다. 이처럼 귀하게 쓰임을 받은 자였지만 인생은 모진 핍박의 연속이었다. 16세 되던 해 그는 가장 의지하고 사랑하던 어머니를 여의였고 한달 후 그의 여동생을 잃는 불운을 맞이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옥바라지와 사역을 위해 고생하던 아내가 죽자 장님이 된 딸과 철없는 두 아들을 부양하며 교회 일을 꾸려 나가야 했으며 마침내는 가엾은 딸 메리마져 하늘 나라로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다.
영국의 국교인 천주교가 신교를 탄압하자 당시 그는 신교의 전도자로 같은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60년의 생애 동안 12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으니... 그러나 번연은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체포되어 가는 중에도 다음과 같은 말로 교인들을 위로하였다. "조금도 두려워 마십시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기회를 빼앗겼지만 하나님의 진리가 실패를 당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박해자가 되는 것보다 박해를 당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진정 사람이 죽음을 통과하고 나서야 명작을 남길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전권 대사와 같은 역할을 감당할 자가 만들어짐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는 영락없이 죽게 되었구나'하고 최악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고생을 겪어 보아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속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고자 할 때는 그 연단이 어떠하겠습니까? 욥이 위대한 성경적 인물이 되었던 것은 하나님께 내어 던짐을 받고 부르짖어도 대답을 얻지 못하고 사경까지 헤매고 난 연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고 작은 고난은 물론 어떤 최악의 곤경까지도 하나님의 연단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