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잘 잡으십시오
성경본문 : 느헤미야 11: 1-2
1.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2.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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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허가 되었던 예루살렘성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52일만에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성은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같은 쓸슬한 성읍이었습니다. 당시에 도시가 텅비어 있는 모습을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성은 광대하고 거민은 희소하여 가옥을 오히려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느 7:4)'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얼마가지 않아 흉가처럼 폐가가 되고 맙니다. 아무리 잘 건설하였어도 성읍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오래지 않아 폐허가 되고 말 것입니다.
바벨론의 침략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던 예루살렘성은 142년동안 외부에 의해 수없이 침입과 약탈을 당하였습니다. 그 성에 거주하여 산다는 것은 대단히 불안한 일이었습니다. 목숨을 내건 모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점차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시골로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유대민족의 예배의 중심지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신앙의 구심점입니다. 그 성을 어렵게 건축하였으나 사람들이 살면서 지키지 않는다면 성읍뿐아니라 신앙과 함께 민족정신이 영영히 무너질 위기인 것입니다.
그처럼 그 성에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인들로서는 예루살렘으로 입주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습니다. 누구나가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지향하기 때문에 새로운 거주지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예루살렘성은 주변 적들의 침략위험이 가장 많은 성읍이었습니다. 반드시 누군가는 이주해와서 살아야 했는데 모두가 망설이는 중에 세 종류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옮겨와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결단한 이들은 백성들의 두목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백성들중에서 제비뽑힌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 지도자 - 백성들의 두목
지도자들이 편안한 곳만 차지하고 위험한 곳으로 백성들을 내모는 나라와 민족은 시끄럽습니다.
그 운명이 위태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6,25전쟁시 정부는 전투에서 이기고 있으며 안전하다고 발표했습니다. 백성들로 안심하게 하고 지도자들은 최후방으로 도망가고는 한강다리를 폭파했습니다.
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희생을 당하였습니까?
훌륭한 인재들을 그때 많이 잃었습니다. 지금도 나라가 어려워지면 지도자들은 자기들 살길을 찾아 외국에 재산과 가족들을 빼돌린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지도자들이 위험을 감수할 각오가 없이는 나라가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몇 년전 미국과 전세계를 감동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 재벌 타임 워너사의 아들이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뉴욕의 할렘가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작법을 가르치다가 불량한 학생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조너선 레빈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검소하게 살면서 헌신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조너선을 추모하는 눈물의 행렬은 인종을 초월하여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선생님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계실거예요."라고 울먹였습니다.
자식들을 편하게 살도록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금력과 권력을 동원하는 우리의 지도층들과 달리 희생과 헌신을 가르치는 지도층들의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험한 예루살렘성에 가장 먼저 살기로 결단한 이들은 백성들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랬기때문에 다 망한 것 같은 민족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유다지파, 베냐민지파, 레위지파에서 그런 인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유다지파는 왕족입니다. 레위지파는 제사장지파 즉 종교지도자들을 배출하는 지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위기를 극복하고 큰 일을 감당하는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지도자격인 목자들이, 그리고 중직자들이 대접받는 자리, 존귀한 자리보다는 욕먹는 자리, 손해보는 자리, 힘들고 희생하는 자리를 감당하려고 앞장서야 합니다. 다른 사람 눈치나 보며 위험부담을 기피하지 말고 부담스런 일을 홀로 감당하려고 용감하게 총대를 메야 합니다.
여러분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지도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십시오.
은사와 소명에 따라 믿음이 성숙된 사람들이 많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앞장서서 희생하려고, 부담스러운 일을 힘껏 감당하려고 여러분 자신을 기꺼이 주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2. 선택된 사람
많은 백성들중에서 십분의 일이 제비뽑기로 선택되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으로 제비뽑기를 하였습니다.
가룟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선출하는데도 맛디아와 요셉 두 사람을 추천하고서 기도하고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습니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16:33)'
그런데 눈여겨 볼점은 제비뽑기로 결정된 백성들이 보이는 자세입니다. 아무도 반발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예루살렘성읍으로 이주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믿음속에서 순종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 교회안에서 어떤 결정이 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성도들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제비뽑기는 하지 않았어도 대부분 기도하며 무엇인가를 결정합니다. 그런 결정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를지라도 일단은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이고 수긍하고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과 직결된 반응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런 부담스런 일에 많은 사람중에 내가 선택되었을까? 재수 더럽게 없네!'하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당시에 좋아보이지 않으나 엄청난 축복의 기회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교회안에도 3D가 있습니다. 얼굴은 하나도 서지도 않으면서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일 말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합니다. 대부분 싫어하는 그 일을 다른 사람아닌 내가 하도록 선택되었다고 기분나빠하지 마십시오. 불만을 접고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자세를 보이시기 바랍니다.
3. 자원하는 사람
모두가 기피하는 일이었으나 자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백성들이 축복 하였습니다. 그들이 왜 자원하였을까요? 자신의 안전이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원자들을 통하여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헌금도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더 귀하게 받으십니다. 봉사도 자원하여 하는 것을 귀히 여기십니다. 희생도 자원한 희생이 진짜입니다.
벧전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여러분은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여서 다른 이들이 기피하는 힘들고 위험하고 희생이 요하는 일에 자원하여 앞장선 때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우리 교회가 모든 일에 눈치보고 기다리지 않고 자원하여 서로하려고 앞장서는 이들이 많은 교회가 되어 주님께 크게 스임받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처음에는 모두가 기피하는 위험한 성읍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고 매력이 없는 쓸쓸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모든 사람이 다 살고 싶어하는 중요한 성읍이 됩니다. 하나님께 축복받고 안전한 땅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좋은 곳만 찾아 다니면 더 좋은 곳을 따라 계속 옮겨다녀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가리키는 곳을 향하여 시선을 고정하고 결단하고 순종하면 그 곳을 가장 좋은 곳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옮겨가라고 가리키시는 여러분의 예루살렘이 어디입니까? 순종하라고 지시하시는 당장의 눈에 좋아보이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축복을 확신하고 감사함으로 자원함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