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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피의 숙청을 이어가던 예후는, 당대 경건한 신앙의 상징이었던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요나답)'을 만납니다.
예후의 과시: 예후가 그를 자기 병거에 올리며 이렇게 외칩니다.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Come with me, and see my zeal for the LORD)"
Theological Lens: 이것이 예후의 치명적인 질병이었습니다. 참된 사역자는 "십자가를 보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예후는 **"나의 열심(My Zeal)"**을 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는 바알을 멸망시키는 거룩한 사명을, 자신의 영웅주의와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퍼포먼스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자아(Ego)가 살아 펄떡이는 사역은 폭력입니다.
B. 거짓과 기만으로 세운 제단 (왕하 10:18-25)
예후의 사기극: 예후는 뭇 백성을 모으고 기가 막힌 거짓말을 합니다.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10:18)." 그는 바알 선지자들을 위한 성대한 제사를 드리겠다고 속여, 전국에 있는 바알의 제사장들과 숭배자들을 빠짐없이 한 신당에 모아들입니다.
대학살: 그리고 무장한 군사 80명을 들여보내 그들을 칼로 진멸하고 바알의 목상들을 불사르며, 신당을 헐어 변소(Latrine)로 만들어버립니다.
Theological Lens: 결과적으로 바알 종교를 뿌리 뽑은 것은 통쾌한 일입니다. 그러나 '과정'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기 위해 '거짓말과 속임수, 잔인한 살육'이라는 마귀의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악한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방식(거짓)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결코 받으시지 않습니다.
C. 예후의 치명적 한계: 금송아지는 남겨두다 (왕하 10:28-31)
반전: 28절은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라고 칭찬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29절은 그의 개혁이 철저한 '가짜'였음을 폭로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진단: 왜 예후는 바알은 박살 내면서 금송아지는 남겨두었을까요? 바알은 이전 정권(아합)의 상징이었기에 정치적 숙청을 위해 반드시 죽여야 할 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금송아지'는 백성들이 남유다(예루살렘)로 빼앗기지 않게 묶어두는 자신(예후 왕조)의 정치적 통치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의 개혁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권력을 향한 탐욕에서 나온 '정치적 학살'이었습니다.
3. 신학적 렌즈 (Theological Lens): 십자가 없는 열심의 맹독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 2-3절에서 예후와 같은 자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후의 칼에는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그 피는 자신을 대속하기 위해 흘린 '십자가의 피'가 아니라, 남을 정죄하고 찔러 죽인 '심판의 피'였습니다. 내가 죽어 교회를 살리는 십자가의 은혜가 빠진 종교적 열심은, 결국 다른 사람을 죽이고 내 의를 세우는 바리새인의 칼날이 되고 맙니다.
훗날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예후의 이 잔인한 학살을 심판하시겠다고 선고합니다(호 1:4). 하나님이 허락하신 도구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는 잔인함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4. 목회적 적용 (Pastoral Point)
1. "목회적 분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동역자 여러분, 교회 안에서 "불의를 참을 수 없다!"며 예후처럼 병거를 미친 듯이 몰고 돌진하는 사역자나 중직자들이 있습니다. 이단의 세력을 몰아내고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랑과 긍휼을 잃어버리고 형제를 향해 무자비한 칼을 휘두르고 있다면, 그것은 종교개혁이 아니라 '내 감정의 배설'일 뿐입니다. 분노로 교회를 정화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의 피로만 정화됩니다.
2. "나의 열심을 보라(See my zeal)는 영적 과시를 회개하십시오."
사역의 현장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고 헌신한 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성도들이 내 열심을 알아주겠지? 담임목사님이 내 수고를 보시겠지?" 하는 기대감이 올라온다면, 여러분의 병거를 즉시 멈추십시오. 인간의 인정을 구하는 사역은 결국 보상받지 못할 때 시험에 들고 공동체를 찌르는 가시가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 뒤에 철저히 숨어야 하는 무익한 종들입니다.
3. "내 안의 '금송아지(기득권)'를 철저히 박살 내십시오."
남의 눈에 있는 티(바알)는 기를 쓰고 빼내면서, 내 목회적 기득권과 편의주의라는 들보(금송아지)는 교묘하게 남겨두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성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고 묵인하는 그 금송아지를 박살 내지 않으면, 여러분의 개혁은 가짜입니다. 나에게 손해가 오고 성도가 떠나갈지라도, 타협의 제단을 허무는 자가 진짜 영적 지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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