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시편 107편 1-9절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이 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 3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4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성 어거스틴은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라고 말했는데 여기 누군가 나에게 한 가지만 더 하라고 말한다고 하면 나는 서슴없이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감사는 항상 있을 것인데... 감사를 플러스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신앙생활에 있어서 감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사가 부족합니다. 주님께서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었을 때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단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수영선수 출신인 한 청년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23명이나 구조해주었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이 나이가 들었을 때 토레이 목사님이 “당신이 구해 준 사람 중에 몇 사람이나 찾아와서 감사를 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내게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인사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초막절을 통해서 신약교회들은 추수감사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도록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성희 목사는 감사를 잘하려면 초점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돋보기는 초점이 잘 맞아야 사물이 선면하게 보입니다. 초점이 맞지 않으면 흐리게 보이고 눈을 피곤하게 합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희 목사가 소개하는 다섯 가지 초점을 소개하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경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야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 편에서 내 일을 보면 감사가 넘칩니다. 내 편에서 하나님의 일을 보면 불평이 넘칩니다.
둘째는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의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도 감사했습니다. 그까짓것을 가지고 감사기도 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감사할 때에 기적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꿔보십시오.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가진 것이 많을 것입니다.
셋째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인간은 소망의 존재입니다. 미래의 존재입니다. 미래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감사 생활의 실천의 한 방법은 열망하는 좋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불감사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나사로를 살리러 가셨을 때에 무덤 앞에서 말씀합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11:41). 그리고 또 말씀을 들으실 것을 미리 감사하셨습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면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으나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면 지금은 어려운 것 같아도 곧 승리할 것입니다.
다섯째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존재 그 자체가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마르틴 바텐이란 독일 재무장관을 지냈던 분이 여행 중 분실한 구두 때문에 불평하였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발목이 없는 사람이 감사하는 것을 보며 자기 삶의 기준을 바꾸었습니다. 다 떨어진 신발이라도 신을 수 있는 발목을 가진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감사에 얽힌 영적 체험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성도가 열심히 기도를 해도 자기에게 특별한 응답이 없어서 몹시 실망하고 있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창고 두개를 보았습니다. 한 창고는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그는 천사에게 “이 창고는 어떤 창고입니까?” 물었더니 “간구창고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울며 매달려서 이것 주십시오. 저것 주십시오. 애원할 때마다 간구하고 기도할 때마다 이 보화 창고를 열고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빈 창고가 되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간구창고 옆에 보니 더 큰 창고가 있었는데 보화가 하늘 천정까지 가득히 쌓여있었습니다. 그 성도가 “이 창고는 무슨 창고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감사창고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쌓아 둔 보물창고입니다. 작은 은혜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나누어 주려고, 낮게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은혜를 나누어 주려고 쌓아 두었던 보물창고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하도 감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보물이 쌓여져 있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는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권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하라고 명령했는데 순종하지 않는다면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살전5:18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감사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말씀에서는 감사의 때를 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범사에...”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이 아닙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좀 대범함이 필요합니다. 작은 일만 있어도 벌벌 떨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상처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일만 있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때마다 상처를 받으면 세상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힘들어도 감사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매튜 헨리 목사님은 으슥한 길을 걸어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맞았던지 초죽음이 되었고 피투성이가 되었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엉금엉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염려 가운데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과 교우들이 울며 목사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때 사랑하는 가족과 교우들의 손을 붙들고 매튜 헨리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게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시 생명을 살려주셔서 사랑하는 가족과 교우들을 보고 손 붙들어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저들보다 더 끔찍한 강도가 되었을 터인데 나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목사가 되었으니 주여 감사합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어느 날 내 곁의 모든 환경이 나를 떠나는 날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나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간다 할지라도 내게는 영원한 나라가 있으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주여 감사합니다.” 얼마나 보기 좋은 모습입니까!
본문에서는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몇 가지 말하고 있습니다.
1. 좋으신 하나님이시니 감사해야 합니다. 1절에 보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며 인자하심이 한이 없으신 분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일을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8절에 보니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기이한 일을 행하셨다고 말합니다. 9절에서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주린 영혼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외로움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곁에 친구가 있어주는 것만도 고마울 것입니다. 그 친구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도 고마운 일입니다. 부모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은 부모가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일 것입니다. 그분들이 인생을 사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하더라도 곁에 계신 것만도 감사할 것입니다. 어느 날 우리 둘째가 텔레비전에서 폭력적인 부모에 대한 내용을 시청한 후에 좋은 엄마와 아빠를 만난 것이 감사하다고 고백하더군요. 가나안의 신들 중에는 자식을 제물로 요구하는 신들이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옛날 가나안 사람들의 집을 발굴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의 종교생활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집을 지으면 흙으로 벽을 세우면서 어린아이를 흙과 함께 발라버렸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종교의식을 행했던 신전 밑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유골들이 엄청나게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가르쳐주는 것입니까? 가나안 사람들이 믿었던 신이 어떤 신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제물로 받는 무시무시한 신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신을 만나기 위해서 자식을 제물로 드려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서운 신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사55:1에 보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합니다. 값없이 거저 주는 은혜를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2. 구속의 은혜를 받았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2-3절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구속은 속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적은 애굽 사람들이었습니다. 애굽이 7년 흉년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요셉을 보내셔서 그를 총리 자리에 앉게 하셨고 요셉으로 하여금 7년 흉년을 대비하게 하셨습니다. 만약 요셉이 없었다면 애굽 사람들은 7년 흉년에 다 굶어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7년 풍년 기간 동안 7년 흉년을 대비하게 하셨습니다. 요셉 덕택에 애굽은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애굽 사람들은 요셉의 공로를 잊어버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를 위하여 노동력을 착취당했습니다. 심지어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자를 낳으면 죽여야 하는 법령까지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적인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주셨고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지으셨으나 사람들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났고 죄를 범하여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마귀라는 놈은 본래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사람들은 마귀에게 유린당했습니다. 영혼은 죽어 하나님과 단절 되었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막혀서 죽음 후에는 지옥에 떨어져야 하며 마귀의 역사로 환경적인 저주와 육체의 질병 등으로 고통당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끈 떨어진 연과 같습니다. 결국 영원한 멸망으로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인생들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요1:12 말씀대로 우리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으며 지옥 대신에 천국에 갈 수 있는 존재들이 된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만큼 큰 은혜는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가난하다 할지라도 구속의 은혜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환란이 있다하더라도 구원 받은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생명인데 구속의 은혜를 받아 영생을 얻었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3.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니 감사해야 합니다. 4-6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었습니다. 광야 사막과 같은 길에서 방황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리고 목마르고 피곤했습니다. 그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괴로움을 당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셔서 애굽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만나게 되었는데,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의 철병거가 놓여 있어서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막에 나왔지만 물이 없어 고통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로 반석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위에서 생수가 솟아 나와서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주셨습니다. 마라에서는 물을 만나기는 했는데 먹어보니 쓴물이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가 그 상황에 또 다시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한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니 쓴물이 단물이 되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사람들이 볼 때는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 동일한 역사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국에 F.B.Meyer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가 한번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긴 여행 중에 그를 알아본 선객들이 그에게 선상예배를 인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이어 목사님이 흔쾌히 허락하고 예배를 인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무신론자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권고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마이어 목사님은 "기도의 응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 하셨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그를 예배로 인도한 친구가 설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난 절대로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무신론자가 예배 후에 갑판 위를 거닐다가 어느 부인이 창백한 안색으로 안락의자에 앉아 반쯤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 부인의 의자위로 펴져있는 그녀의 양손에 오렌지 두 개를 쥐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친구가 "당신 이 부인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면서 그냥 심심풀이 장난이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가 그리스도인 친구와 갑판을 한동안 거닐다가 다시 이 부인 곁을 지나게 되었는데 잠을 깬 부인이 아주명랑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자기가 주었던 오렌지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오렌지 맛있게 드시네요.”하니까, 부인이 갑자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정색을 하고 “왜 하나님을 찬양하십니까? 사실은 이 오렌지 두 개는 제가 부인에게 드린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인이 그 무신론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 그랬군요. 당신이 바로 하나님의 기도응답의 도구 이셨군요. 사실 저는 배 멀미가 너무 심해 갑판에 나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오렌지 두 개만 먹고 싶다고 기도했거든요” 마이어 목사님은 나중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기도를 비웃는 무신론자를 웃기시고자 무신론자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제 2005년도 겨우 한 달 조금 더 남았습니다. 대망의 2006년도가 우리 코앞에 와있습니다.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더 크고 비밀한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4. 바른 길로 인도하시니 감사해야 합니다. 7절에 보니 하나님께서는 갈 길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셔서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는 길이 다 옳다고 생각하나 어떤 길은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부흥회를 다니다보면 초행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집회하는 교회에서 길을 안내해 주지만 전화로 알려주기 때문에 상대가 말하는 것을 내가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엉뚱한 길을 가르쳐줘서 심하게 고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훨씬 수월합니다. 금년에는 집회인도와 효도관광 때문에 제주도를 두 차례 다녀왔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가고자 하는 곳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길 찾는데 도사라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길이 잘 돼있습니다. 지도를 가지고 도로 번호를 보면서 운전을 하니까 목적지를 찾는 것이 식은 죽 먹기처럼 쉬었습니다. 제 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있습니다. 원하는 목적지 주소를 입력하면 기계가 저를 인도해 줍니다. 좌회전 우회전 유턴 등 기계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운전만 하면 목적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 중에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초행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옳은 길을 가르치고 있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는 어리석은 가르침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적 소경의 인도를 받아서 함께 구덩이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잘못된 길을 옳은 길로 알고 목적지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인도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이라는 지도를 주셨고 성령이라는 네비게이션을 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대로 가기만 하면 가장 안전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인도자이시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면 가장 아름답고 성공적이며 행복한 길을 가게 됩니다. 히11:8에 보니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그가 의지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음성뿐이었습니다. 창12:4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의 인생은 그 시대에 살던 어떤 사람의 인생보다 성공적인 인생이었습니다.
5. 좋은 것을 주시니 감사해야 합니다. 9절에서는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9절 말씀을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주께서는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실컷 마시게 하시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좋은 음식을 마음껏 먹게 해 주셨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렘31:25말씀입니다.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 성경에 보면 목마른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만족하게 되었던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한나는 자식에 목말랐던 여인입니다. 그녀는 결혼을 했지만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부다처제였는데 남편에게는 브닌나라는 또 다른 아내가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여럿이었는데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한나는 자식에 목마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치 새술에 취한 사람처럼 하나님께 매달려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에게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응답의 생수를 마셨습니다. 하나님은 목마른 한나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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