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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도적놈이 복을 받을까?
말라기 3:7-12
20020804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3: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3: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설교: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글자는 "福"자입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연초가 되면 집집마다 문에 빨간 바탕에 "福"을 큼직하게 써서 붙여 놓습니다. 어떤 집은 福자를 거꾸로 붙여 놓은 집도 있답니다. 아마도 들어온 복이 새 나가지 말라는 의미로 그렇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에 못지않게 복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이름에도 福자가 꽤 많고 생활도구에 福字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福자를 써놓는다고 복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福자를 많이 써놓아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헛수고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님들 머리 위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당분간 몇 주간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방법, 성도의 물질 축복의 비결, 더 쉽게 말하면 돈 버는 비법을 성경에서 찾아 설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깊이 새겨 베풀어주시는 복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奉讀한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차고 넘치는 복을 받기를 소원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犯罪함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6:14에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를 경고하시고 복을 받지 못한다 하실까요?
1.복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떠났단 말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고 자기들이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말라기3장7절 上半절을 읽읍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祝福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저주를 받은 중요한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과 조상들이 하나님이 명하신 律例와 規例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시며 설득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당시 신앙생활은 어떠했을까요? 말라기 초반부를 살펴보면 한마디로 신앙이 形式化되었으며, 低質의 祭物로 하나님을 무시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번거로운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거기다가 제사장들마저도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종들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거침돌이 되었습니다. 家庭은 破壞되고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렸습니다. 그러니 복을 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2)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창고를 비게 하였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십일조를 구별하여 때를 따라 하나님의 집에 들여야 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떼어먹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도적질이라고 경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도 그것을 도적질이라 생각을 못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성전의 창고는 텅텅 비게 되고 결국 주의 종들인 제사장들과 레위인 들이 하나님을 隨從드는 일을 해나갈 수 없게 되자 먹고살 궁리를 합니다. 결국 다 성전을 버리고 도망을 칩니다. 이지경이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것을 도적질해도 절도, 강도죄로 벌을 받고 배상을 해야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는 어떻게 그냥 넘어가기를 기대합니까? 하나님은 절대로 속일 수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것을 도적질하는데 어찌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도적질도 상대를 봐가며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도적질했다고 하십니까? 다름 아닌 "하나님 것"인데 그것은 十一租와 獻物입니다. 이 십일조는 다 아실 것이고 獻物은 드리는 예물로 오늘날 감사헌금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명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도적질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언을 합니다.
왜 십일조와 獻物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 것이고 하나님이 첫 것은 내 것이라 하셨기에 하나님 것입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그것을 "내 것"이라고 정해 놓았습니다. 그것도 그것을 잘 드리면 복을 주겠다고 약속을 해가며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당신 것 당신에게 드리는 것은 당연한데도 하나님 것을 잘 드리며 복을 주시겠다고 하면서까지 말씀 드렸는데 그런데도 도적질을 합니다. 애들 말로 환장할 노릇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한 복을 받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성경이 말씀하는 복 받는 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2. 그렇다면 참복을 받는 길은 무엇일까요 ?
하나님은 오늘 성경을 통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처럼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돌아오라"는 말은 "turn back, return"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돌아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롬12;1-2).
구약시대 선지자들은 "회개"라는 말 대신에 "돌아오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질문을 하였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이 말은 `어떤 면으로`(where in), `무엇으로`(where with)등의 뜻으로 특별한 방법을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이 어두워져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첫 걸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는 물음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라는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물이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온전한 것으로 드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지난해 부흥회를 하셨던 충주 용원교회 임만재 목사님은 묵은 십일조, 밀린 십일조를 집에 찾아가서 받아내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지론은 성도가 복을 받게 하려면 십일조 도적질에 대한 회개를 해야 하는데 가장 완벽한 회개는 묵은 것, 밀린 것까지 받아내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교인의 95%가 십일조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골 면단위 교회에서 30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고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듣기 싫어한다고 안하고 듣기 좋은 설교만 한다면 그 설교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설교이며 동시에 여러분에게 참된 복을 주는 설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좀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고 맘에 안 들어도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을 믿는 목사와 성도의 자세라고 믿습니다.
2)하나님의 집에 채워야 합니다.
10절의 말씀에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라고 했습니다.
십일조 어디에 해야 할까요? 그것은 주님의 殿인 교회입니다. 주님의 집에 하라는 교훈은 구약에서는 성전에다 하라는 것이며 오늘날은 주님의 몸인 교회인 것입니다. 일부 잘못된 신학자들과 이단들이 십일조를 안 해도 된다고 하는 무리도 있으나 성경을 무시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변질시키려는 사단의 간교한 작전에 말려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일부 성도는 교회에다 하지 않고 고아원에, 복지 기관에, 그리고 구제단체에 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그것 또한 도적질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 이름을 높이며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교만이며 동시에 무서운 도적행위인 것입니다.
3)온전한 것으로 드려야합니다.
왜 하나님은 십일조를 달라 하실까요? 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의 통로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해 보라고 하시면서 까지 약속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정말 복을 주시나 안주시나 한번 시험해 보라고 하시며 약속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 약속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이라는 말은 한 부분이 아닌 전부(all)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온전한 것을 드리려고 힘써야 합니다. 여기 온전하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양과 소를 예물로 드리고 곡물로 드릴 때 병든 것, 몸 쓸 것, 약한 것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말라기1장 8절을 보세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加納하겠느냐" 책망합니다. 총독도 안 받을 예물, 하나님은 받으실 것 같으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온전한 것일까요?
일부분을 꼬불치고 떼먹는 십일조, 精誠없는 십일조, 억지로 드리는 십일조, 이런 것은 우리 예수님도 이제 진절머리를 내십니다. 1장 10절을 보세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심지어는 1장13절에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과 정성 그리고 우리 신앙 고백이 담겨져 있는 온전한 예물을 자원하며 감사하며 드리시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복의 통로를 막는 어리석은 사람 되지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록펠러는 시카고 100만평의 대지 위에 12개의 종합대학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유명한 "시카고 대학"입니다. 시카고 대학은 5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대학인데 현재 29명의 대학 교수가 노벨 수상자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명문대학입니다. 그는 평생 동안 4,828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 세계에 모든 선한 일을 하면서 하나도 자기 이름으로 거기에 새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으로 한 일이니 내가 한 일이 없다고 명언을 했던 것입니다.
위대한 그의 생애를 이끌어 간 비밀이 바로 어머니의 유언에 있는데
1)첫 번째 유언이 "십일조를 꼭 하라"는 것이었고
2)두 번째 유언은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는 언제나 앞자리에 앉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자리에 앉든, 중간에 앉든, 뒷자리에 앉든 그것은 자유지만 목사님의 영적 파장이 앞에는 소낙비처럼 오고 뒤에는 이슬비처럼 내리니 앞에 앉아서 그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3)세 번째 유언은 "너는 교회에 가면 절대로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라"
그런 록펠러도 열심히 십일조생활을 하다가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鑛産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기를 당해 원금을 모두 날렸습니다. 광부들은 폭도로 변해 밀린 임금을 요구했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록펠러는 너무 괴로워 `자살`을 떠올렸습니다. 기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철저한 십일조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주십시오." 록펠러는 통곡했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위로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이 말씀을 믿고 폐광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록펠러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황금 대신 "검은 물"이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쳤습니다. 그것은 바로 석유였습니다. 자살 직전의 록펠러는 유전을 발견해 일약 거부가 되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록펠러가 대부호가 된 것은 철저한 "십일조"생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3. 십일조를 드리면 어떤 복을 받습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1)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십일조는 복의 통로입니다. 그 통로를 막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2)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 주시는 복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3)재앙에서 보호받은 복입니다.
갖가지 재앙이 우리 앞에 찾아오는데 그 재앙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전능자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땅이 아름다워지는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십일조는 세 가지 시험과목이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1)믿음에 대한 시험입니다.
십일조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확증입니다. 구원받는 믿음도 온전한 십일조의 믿음에 이르지 아니하면 허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내가 확증시키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2)십일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원하십니다. 헌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고백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물질로 고백을 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험입니다. 사랑의 확증입니다.
3)십일조는 소망의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 가운데 십일조는 무슨 축복이냐? 십일조 신앙은 나 자신의 개인적 축복일 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의 소망을 가진 자가 받는 축복입니다. 어머니가 십일조 신앙으로 살아가면 그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현세와 내세의 축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이럼에도 돌아서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1. 도적놈 소리를 듣습니다.
계속해서 경고하는데도 고집부리고 돌아서지 못하면 평생 도둑놈이 될 것이며 일평생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통해 "너는 떼먹은 도둑놈"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게 됩니다.
2. 하늘 門이 닫힙니다.
하늘 문이 닫히면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우리의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닫았는데 누가 열겠습니까?
3. 더 이상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그치게 됩니다.
왜요? 말라기3장11절을 보세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재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황축을 금하여 2)소출을 많게 하시는 복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3)과실을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므로 극상품의 열매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없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습니까? 아니면 도적놈으로 남겠습니까? 도적놈이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