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가면 ◾패티킴 ◀이별 ◾임선혜(소프라노) ◀사랑엔 아유가 없어요 (L’amour c’est pour rin) ◾앙리코 마샤스
◉오랜 봄 가뭄을 달래는 비가 밤부터 새벽까지 내렸습니다. 그리 많이 내리지 않아 다소 아쉽기는 합니다. 그래도 밤새 와준 것만 해도 다행이고 고맙습니다. 그만큼 물이 귀한 봄날입니다. 벼농사 밭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즈음이지만 땅은 말라서 풀썩입니다. 아무리 물을 줘 봐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이달이 가기 전에 좀 더 많은 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새벽 이른 시간에 그것도 초록빛을 잔뜩 품은 풀잎에 내리는 비는 패티킴의 노래 초우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나온 지 꼭 60년이 되는 노래입니다. 初雨 또는 草雨란 말은 사전에도 없습니다. 영화나 노래 제목에 등장한 초우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영어로 Early Rain이라고 표기한 것은 初雨에 해당합니다. 한자로 草雨로 표기한 것은 ‘풀잎에 내리는 비’의 조어(造語)입니다. 예전에 몽골 초원에 머물면서 뜨고 지는 태양을 이야기할 때 지평선 대신 초평선(草平線)이란 조어를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어느쪽이나 산뜻해 보이는 말이지만 노래나 영화 속의 ‘초우’는 그렇게 산뜻한 비는 아닙니다. 좀 더 애절하고 처절한 비입니다. 그래도 패티킴의 ‘초우’는 그녀에게도 노래를 만든 박춘석 작곡가에게도 의미 있는 노래입니다. 미 8군에서 노래를 시작한 패티킴은 번안곡 등을 부르면서 미국 쪽의 콜을 받아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박춘석이 곡을 줘 녹음한 노래가 ‘초우’입니다. 이 노래 테이프를 박춘석이 열심히 돌려서 정작 가수는 한국에 없는데 노래는 유명해졌습니다.
◉별 성과 없었던 데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그녀가 1966년 귀국했을 때 ‘초우’ 때문에 패티킴은 이미 유명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한국의 디바’의 출발점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난 2013년 패티킴은 75살로 은퇴했습니다. 은퇴를 앞둔 특집 쇼에서 그녀는 오프닝 송으로 이 ‘초우’를 올렸습니다. 그만큼 의미 있는 노래였습니다. https://youtu.be/7d0SEKLaLmk
◉지난주 ‘불후의 명곡’에서 홍경민이 ‘초우’를 불렀습니다. 여기서는 오래전에 ‘불후의 명곡’에서 ‘안방마님’ 알리가 불렀던 ‘초우’로 만나봅니다. 항상 정성 들여 무대를 준비하는 알리가 라벨의 볼레로(Bolero)를 매시업해 넣었습니다. 그러면서 스캣도 등장시켜 감칠맛을 더해줬습니다. 볼레로는 스페인 민속 무용의 한 형식으로 발레리노가 등장해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춥니다. https://youtu.be/e2jbR75qjrY
◉트롯인 ‘초우’를 재즈 버전으로 들어보면 어떤 느낌인지 나윤선을 만나봅니다. 웅산, 말로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가수입니다. 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활동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초우’를 불렀을 때 유럽 청중은 뜻도 모르는 우리말 가사에 더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한국어로 부르는 재즈 감성이 그들에게 신성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입니다. 중간에 들어간 스캣도 이색적입니다. https://youtu.be/0J0MksA8IHA
◉이달이 끝나가면서 생각나는 또 하나의 패티킴 노래가 ‘4월이 가면’입니다 패티킴과 작곡가 길옥윤을 부부의 인연을 맺게 만들어준 노래입니다. 1966년 5월이면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던 패티킴에게 4월 어느 날 길옥윤이 전화를 걸어 들려준 노래가 바로 ‘사월이 가면’입니다. 프러포즈로 생각한 패티킴은 내성적인 길옥윤 대신 먼저 결혼하자고 청혼했습니다. 그해 6월 약혼, 12월 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하객들은 이 노래가 담긴 음반을 답례품으로 받았습니다. 물론 패티킴의 미국행은 없었던 알아 됐습니다. https://youtu.be/UDPZMpC87LQ
◉이 노래가 길옥윤이 작사 작곡한 노래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프랑스의 노래를 가져와 길옥윤이 가사를 붙이고 편곡한 번안곡입니다. 어쨌든 ‘초우’를 영화로 만들어 재미 본 정진우 감독이 이 제목을 내세운 영화도 만들어 역시 재미를 톡톡히 봤습니다. 영화에서도 가장 큰 매력은 탱고 리듬을 타고 흐르는 패티킴의 노래 ‘사월이 가면’ 이었습니다.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말아’ 4월 봄꽃들과 함께 한 송창식의 커버곡입니다. https://youtu.be/3fp0y0ggQoQ
◉패티킴과 길옥윤은 6년도 채 함께 살지 못하고 헤어집니다. 패티킴은 나중에 노래 잘하고 작곡 잘한다고 좋은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길옥윤의 술과 도박을 갈라서게 된 가장 큰 이유로 꼽았습니다. 두 사람의 헤어짐은 만남만큼이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특히 헤어지기 전에 길옥윤이 만들어 패티킴이 불렀던 ‘이별’이 화제의 노래가 됐습니다. 헤어진 건 몸이지 마음이 아니라고 했던 길옥윤은 1995년 세상을 떠납니다. 장례식에서 패티킴은 ‘이별’을 불러달라는 요청에 ‘서울의 찬가’로 대신했습니다.
◉이 노래 ‘이별’은 소프라노 임선혜의 노래로 만나봅니다. 리릭 소프라노가 부르는 ‘이별’은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클래식으로 표현한 이별의 감성이 고급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중간에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Vocalise)가 매시업으로 들어가 크래시컬한 분위기를 높여줍니다. 하지만 대중가요는 대중가수가 불러야 제맛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https://youtu.be/1-StNoU66iE
◉‘사월이 가면’의 원곡 ‘L’amour c’est pour rin’ (사랑엔 이유가 없어요)를 들으며 마무리합니다. 한국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샹송 가수 앙리코 마샤스의 노래입니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유대계 가수입니다. 탱고 춤과 잘 맞아떨어지는 노래입니다. https://youtu.be/h_2l9ATdR1I
◉은퇴한 지 9년! 패티킴은 우리 나이 85세가 됐습니다. 그녀는 할머니 김혜자로 돌아가서 아이들과 만년의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은퇴 당시 소망대로 그녀는 여전히 기억되는 가수로 남아있습니다. 후배 가수들이 수시로 그녀의 노래를 커버하면서 그녀를 기억하게 만듭니다. 55년 동안 노래 부르고 아직 채 10년도 쉬지않은 그녀의 만년이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