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번째 공유]
[ 둘째 등급의 무한 - 상호적 포함 ]
19. 첫 번째 과제는 본질을 정의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고서는 이 과제를 수행할 수 없는데, 따라서 우리는 이미 정의 가능한 본질들로부터, 이것들이 전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로 출발한다.
20. 정의는 하나의 항(피정의항)과 적어도 두 개의 다른 항들(정의항들 또는 이유들) 간의 동일성을 설정한다. 피정의항을 정의로 대신할 수 있는 치환이 있으며, 이러한 치환은 ‘상호적인 포함’을 구성한다.
21. 예를 들어, 나는 2와 1을 가지고 3을 정의한다. 그러므로 몇 가지 사항을 주석으로 덧붙여야 한다.
(1)첫째 피정의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재적인 또는 발생적인 정의가 문제가 된다.
(2)둘째, 이러한 정의는 단지 유(類)나 종차(種差)에 의해 작동하지 않으며, 개념의 이해나 확장을 요청하지 않고, 게다가 유명론적 정의로 회귀하는 추상이나 일반성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3)셋째, 논증은 정의의 연쇄로서, 즉 상호 포함의 연쇄화로서 정의될 수 있다.
(4)끝으로, 이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가 ‘앞에 옴’과 ‘뒤에 옴’이라고 말한 바 있던(여기에는 시간의 순서가 존재하지 않음) 先行이 복잡한 관점이라는 점을 우리는 예감한다.
22. 정의항들 또는 이유들은 피정의항에 선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의항들은 피정의항의 가능성을 규정하기 때문인데, 그러나 이것은 오직 ‘잠재태’에 따라 그러하지 ‘현실태’에 따라 그러한 것은 아니다.
23. 현실태는 반대로 피정의항의 선행을 전제한다. 이로부터 바로 상호 포함, 그리고 모든 시간 관계의 부재가 등장한다.
24. 그러므로 자명하게도, 정의에서 정의로 ‘비시간적인’ 연쇄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의할 수 없는 것에, 즉 마지막 이유들이면서 더 이상 정의될 수 없는 정의항들에 도달한다. 왜 무한정하게 진행되지 않는가, 이 질문은 우리가 실재적인 정의들 사이에 놓이게 되자마자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무한정은 유명론적인 정의만을 제공하게 되며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25. 우리는 ‘앞에 옴’과 ‘뒤에 옴’의 질서 안에서 절대적으로 일차적인 것으로서 ‘단순하고 원초적인 관념’을 발견한다.
26. 정의에서 정의로 갈 때(논증), 정의할 수 없는 항들로부터 출발할 수 있을 뿐이며, 이 항들은 일차적인 정의 안에 들어온다.
27. 이 정의 불가능한 것들은 분명히 정의들과 같이 ‘상호 포함이 아니라, 자기-포함’이다. 이것들은 순수 상태, ‘동일적인 것들’이며, 그러므로 각각은 자신을 포함하며 오직 자신만을 포함하고, 각각은 오직 자기 자신하고만 동일시될 수 있다.
28. 라이프니츠는 동일성을 무한 안으로 실어 나른다. ‘동일적인 것’은 무한의 자기-정립이며, 이것이 없다면 종일성은 가언적인 것으로 남는다(만일 A가 있다면, A는 A이다……).
29. 동일성의 이러한 특징은, 라이프니츠가 이 원리로부터 매우 특별하고 정말 바로크적인 개념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30. 라이프니츠의 원리들은 보편적인 공허한 형식이 아니다. 이 원리들로부터 존재를 만들어내는 기체나 유출은 더욱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등급을 규정한 것’이다.
31. 우리는 동일성의 원리가 우리로 하여금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동일성의 원리, 정확히 말해 모순의 원리는 라이프니츠가 말하듯 하나의 등급의 존재들, 완전한 존재들은 바로 이 ‘동일적인 것들’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32. 동일성의 원리, 모순의 원리는 오로지 ‘동일적인 것들’의 외침이며, 그것으로부터 추상화된 것일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이다.
33. ‘동일적인 것들’은 그 자체로 정의 불가능하며, 우리에게 인식 불가능하다.
34. 그럼에도 그것들은 그 원리로 인해 우리가 인식하거나 듣게 되는 하나의 규준을 갖는다.
35. 그 자신에 의해 무한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형상, 어떤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 무한으로 직접 상승되는’ 모든 형상은 스스로에게 동일하다. ‘최후의 정도가 될 수 있는 본성’. 이러한 것이 그 규준이다. (神 - 김재홍)
36. 반면 사유는 무한으로 상승할 수 있는 형상인 듯하고, 또 연장 자체도 그러하다. 이 형상들이 전체도 아니면서 부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다. 이것들은 ‘절대자들’, ‘가능한 일차적인 것들’, ‘절대적으로 단순한 원초적 관념들’, A, B, C ……이다. ‘전체도 아니고 부분도 갖지 않는’ 잡다한 절대자들. (사유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 181004, 김재홍)
37. 이것들은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가 말한 것처럼 ‘비-관계(non-rapport)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모순율을 말하는 것이다. 모순율에 따르면, 구분되는 두 ’동일적인 것들‘은 서로 모순될 수 없으며 능히 하나의 등급을 형성한다. 이것을 ’신의 속성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38. 사람들은 여기에서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와 라이프니츠에게 공통적인 사실상 유일한 테제, 즉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애써 피했던 우회로를 神 실존의 존재론적 증명을 위해 요구하는 공통된 방식을 발견한다.
39. 하나의 무한히 완전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실존한다고 결론내기에 앞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실재적 증명)을, 그리고 그것이 모순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야만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즉 절대적 형상이 서로 모순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같은 ‘존재’에 속할 수 있으며, 또 이것이 가능하면서 실제로 같은 ‘존재’에 속한다.
40. 형상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구별은 형상적이며, 또 각각이 속성으로 귀속될 존재(인간 - 김재홍)들 사이에 어떤 존재론적 차이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존재론적으로 하나이고 형상적으로 다양한 단 하나의 같은 ‘존재’에 귀속된다.
41. 이미 여기에서 실재적 구별은 분리 가능성을 초래하지 않는다. 이후 칸트가 말할 것처럼 존재론적 증명은 모든 가능성의 집합으로부터 필연적 존재의 개체성으로 나아간다.
42. , ‘동일적인 것들’은 하나의 등급의 존재들이지만, 그러나 단 하나의 유일한 구성원을 가진 등급의 존재이다.
43. 여기에서 선행(先行)의 규칙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절대적 형상들은 신의 가능성의 일차적 요소들로서 신에 앞선다. 비록 신이 ‘실재적으로’, ‘현실적으로’ 그것들에 앞서지만 말이다.
44. 어떻게 ‘동일적인 것들’에서 ‘정의 가능한 것들’로 나아가는가?
45. ‘동일적인 것들’은 절대적으로 단순한 원초 관념들 A, B, ……이며, 이것은 유일한 ‘존재’를 형이상학적으로 ‘합성’한다. AB……. 그러나 형이상학적 합성과 ‘논리적 파생’은 혼동되지 않을 것이다.
46. ‘정의 가능한 것들’은 파생된 관념들이다. 이것들이 만일 자신의 질서 안에서 일차적이라면 단순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것들은 어떤 관계 하에서, ‘결속’ 하에서 또는 그 자체로 단순 복잡한 소사(小辭)를 통해(예를 들어 B in A) 자신을 정의하는 최소한 두 개의 원초적인 것을 언제나 상정한다.
47. 이렇게 ‘동일적인 것들’에서 ‘정의 가능한 것들’로, 원초적인 것들에서 파생된 것들로 수준을 구분하며 나아가는 것은 바로 이 ‘조합’이다.
(1)수준Ⅰ은 원초적인 것들 또는 정의 불가능한 ‘동일적인 것들’을 포함하며,
(2)수준Ⅱ는 어떤 단순한 관계 하에 있는 두 원초적인 것들에 의해 정의된, 단순한 파생물들을 포함한다.
(3)수준Ⅲ은 세 개의 원초적인 것, 또는 그 자체로 합성된 어떤 관계에 있는 단순한 하나의 원초적인 것과 하나의 파생물에 의해 정의되는 합성된 파생물들을 포함한다.
48. 비록 우리가 우리의 사유를 파생시키기 위해 절대적인 원초물에서 출발할 수는 없지만, 어떤 영역에 상대적으로 원초적인 것들은 언제나 인정할 수 있다.
49. 따라서 소수는 정수론에서 원초적인데, 소수 각각은 오직 자신 아니면 하나에 의해서만 나누어지는 바 자기-포함의 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50. 혹은 기하학에서 정의 불가능한 공리들(‘점’, ‘공간’, ‘매개하는’ ……)운 수준Ⅰ을 형성하며, 여기서부터 매번 두 개의 원초적인 것의 조합을 통해 수준Ⅱ가 파생되고, 그 다음으로 수준Ⅲ이 파생된다(직선은 두 ‘점’ 사이를 ‘매개’하는 ‘공간’이다.).
51. 확실히 신의 지성 안에는 많은 영역이 있다. 관계(rapport)는 더 이상 신 그 자체가 아니라 창조의 가능성과 관계하는 영역에서 솟아오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2. 바로크적 사유는 사실 무한을 여러 등급으로 구분하는 것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한다. ①첫 번째로, 만일 절대적 형상들이 전체와 부분들을 배제하는 자신에 의한 무한으로서 신을 구성한다면, ②창조의 이념은 원인에 의한 두 번째 무한을 지시한다.
53. 이것은 더 이상 어떤 집합이 아니라, 마지막 항도 극한도 갖지 않는 어떤 계열이다. 이 계열은 더 이상 엄밀하게 동일성의 원리에 의해 지배받지 않으며, 새로운 등급의 존재들을 신호로 알리는 상사성 또는 상사 변환의 원리에 의해 지배받는다. 이것은 모두 외연 또는 외연체라고 불릴 만한 것이다.
54. 이 계열의 각 항은 앞선 항들에 대해서는 전체를 형성하며 뒤에 오는 항들에 대해서는 부분을 형성하는데, 둘 이상의 단순한 항들을 통해 정의된다. 이 항들은 이 새로운 함수(!) 하에서 지정 가능한 관계를 가지며, 부분의 역할이 아니라 요건, 이유 또는 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55. 원초적인 것들이 관계없이 단순한 자기-포함인 한, 이것들은 신의 속성들,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의 술어들이다. (관계 = 비율 = rapport – 181005, 김재홍)
56. 그러나 이 ‘존재’로부터 파생되는 두 번째 등급의 무한을 고려해 보면, 술어들은 관계가 되기 위해 속성이기를 멈추고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이 관계는 무한히 부분과 전체를 정의하며, 이중의 선행에 따라 그 자체로 피정의항과 상호 포함 상태에 있다.
57. 사람들은 이미 ‘충족 이유’ 안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왜냐하면 관계 하의 정의항들은 매번 피정의항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만일 관계를 정의해야 한다면, 비-관계와 ‘물질 전체-부분들’ 사이의 통일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9월 2일 2:50pm 단체톡방에서 옮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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