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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회상, 16) 왜 이래조부님(할아버지)인가? 의구심에 질문을 던지다 !
세상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이 관영하여 노아시대의 1차때엔 물심판으로 인류를 멸하였고 2차는 예수님의 영으로 두번째 심판주로 오신 이래 조부님(할아버지, 노광공)이 불로서 이 세상을 멸하고 좁은길을 배도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며 끝까지 따르는 자(성민)들은 새 하늘과 새 땅 이른바 천년왕국에 들어간다는 이론이 핵심진리로서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성민)들이 매료 되었던 것이 사실이였읍니다!
부산 영주동 제 2교회의 성전지기 요셉 목사에게 질문을 하였다 "왜 두번째로 오신 메시야를(노광공) 이래 조부님(할아버지)으로 부르느냐?" 고 질문하였는데 그때 즉석에서 성경 신약 로마서 8:15절을 펼치더니 나보고 직접 읽어 보라는 것이였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이구절을 읽게 하고는 무엇이라고 부르느냐고 나에게 다시 묻는것이 아닌가!!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고 하였읍니다! 자! 그것봐! 성경은 하나님 말씀인 것을 믿어? 안믿어? 아버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아닌가? 그러므로 두번째 오신 분이니 이래 조부님(할아버지)으로 부르는 것이야! 하는 것이였다! 성경적 지식이 없었던 어릴때였기에 아!~ 예 그렇읍니까! 하고 액면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무식이 유식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혹세무민 아전인수격 짜맞추기식 논리였던 것인데 내가 제도권 교회에 출석하여 성경공부를 하는 중에 요셉목사의 성경해석이 순 엉터리였음을 깨닫게 되었고 허탈과 맨탈붕괴에 빠졌던 대목이 아닐수 없었던 것이였읍니다!
한번 집고 넘어가자면 아버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로 해석할수 있지요 즉 "의"라는( 관형격 조사) 가 붙었을때는 "의" 뒤에있는 체언(명사)를 수식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됨이 맞지요! 하지만 저가 이문제를 가지고 공부를 한결과 아바 아버지의 "아바"는 아람어로써 사랑스러운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애칭이란 뜻으로 해석해야 맞는 것입니다.
참고로 부연설명을 하건데 아람어는 성경이 쓰여진 시대와 그이후 시대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던 언어인데 즉,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 중에서도 일부분 스바냐 4:8 6:18 7:12 7:28 예레미야10:11 다니엘2:4 7:28 등은 아람어로 기록 되었다. 또 이 아람어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중근동 (중동과 근동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써 지금의 리비아에서 아프카니스탄 까지의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를 가리킨다)의 통상적인 일상어였다. 신약성경에서도 아람어가 여러번 등장하는데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막5:41 "에바다"(열려라) 막7:34 "엘리엘리 라마 사박 다니"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27:46, 막15:34 " 마라나타" ( 주여! 어서오시옵소서) 고전16:22, 끝으로 문제의 '아바 아버지'의 "아바" (아빠) 막14:36, 롬8:15, 갈4:6 등이다!!
고백과 회상, 17) 내 생명의 위협을 당했던 그때를 어찌 잊으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년제 초급대학 전자학과 1학년을 마치고 휴학계를 내고서 좁은길(동방교)의 전도사로 봉사하게 되었다! 사실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기에 무자격인 셈인데 어쨌던 좁은길(동방교)내에서 훈련받고 지시에 따르고 순종하며 봉사했더니 전도사직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사실 70년대 그당시 가출하여 충성 봉사를 서약하고 또 중2때부터 핍박을 무릅쓰고 달려온 과정을 봤을때 동방교에서는 필요충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당근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동방교에서의 목사나 전도사라는것은 역활상의 호칭일 뿐이지 무슨 신학을 이수한다던지 신학교를 다녔다던지 하는 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었다. 그냥 목사라고 부르면 목사요, 전도사라고 부르면 그날부터 바로 전도사가 되는 것이었다.
동방교의 최고위직인 사주(四柱)목사 정재덕(요나단)도 양학식(베드로)도, 그리고 김인경(입다)목사, 그외의 모든 다른 목사나 전도사도 모두 신학을 공부하거나 신학교를 다닌 사실이 없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기독교의 신학과는 거리가 사돈의 팔촌보다도 더 멀었다. 옛날에는 지성(헌금)바치고 상신해서 받은 여자 장로들은 많이 있었지만 여자 목사는 전혀 없었는데 지금은 여자 목사도 많이 있는 모양이다. 대기자나 연단선님 출신 여자들이 어떻게 목사가 되었을까~~ 실상을 알고보면 배꼽잡고 웃을 일 뿐일 것이다. 남자 목사도 물론이지만~~ 또한 그들이 기독교의 목사나 전도사라는 용어를 차용해서 사용하지만 동방교의 노광공교주를 구세주로 믿고 있는 이단사이비의 신도들이니 기독교적 '목사'나 '전도사'의 자질은 애초부터 있을턱이 없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 당시 부산의 초량12교회는 부산경남지방 동방교의 중앙이며 본부교회였는데 입다목사(김인경)가 감독겸 인사 재무 대내 대외 총 책임 목사였던 것이다. 그때 당시 나는 동방교의 경남지방교회를 두루 순회 하며 상부의 지시나 시달과 성례식(동방교에서는 예배를 성례식이라 부름)을 인도하였다. 명지9교회를 비롯하여 대동7교회, 김해교회, 가락교회, 진영교회, 진해교회, 충무교회, 밀양교회등을 두루 순회하였다. 그리고 부산의 동상동교회는 요나단목사(정재덕)가 주일저녁 예배인도를 나에게 시켰다 . 왜냐하면 구성민(노광공이 죽기전에 입교한 동방교 신자들을 칭하는 말)들이 출석하는 교회였기에 비중을 두었던 것인데 내가 설교를 특별히 뛰어나게 잘해서가 아니라 나를 재목으로 키워서 일꾼 만들어 써 먹을 심산으로 여겨지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런 짐작이 드는 것이다.
때는 1970년 겨울 토요일 오후... 명지9교회에 중2년생 청소년으로 입교했던 내가 세월이 흘러 청년전도사가 되어 모(母)교회의 성례식(예배)을 인도하기 위해 진해행 버스를 타고 명지9교회에 들어서니 중2때 연단선님이 되어 나도 왕의씨가 되겠노라고 생활필수품을 행상으로 팔러 다니다 배가 고팠을 때 부엌으로 불러서 바가지에 누룽지라도 먹으라고 인정 베풀어 주었던 성전지기 스데반전도사의 그 어머니 장로가 반겨주는것이 아닌가!! 참으로 감회가 깊고 새로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 장로의 아들 스데반전도사(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둑거림)가 서울 대기처로 이래조부님의 지시(동방교의 노광공교주가 죽은 이후지만 그 아들 아브넬 노영구가 하늘로부터 노광공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교주행세를 하던 시기임)를 받아 몇일전 떠났다기에 서운하기 그지 없었다.
김해군 명지면 중리에 사는 동방교의 명명을 '이리네오'(김금순, 현재 동방교 전라북도 남원교회 여자목사)라고 하는 동방교 신도의 집 아랫채에서 취침을 하고 다음날 주일이 되어 명지9교회 성례식(예배) 인도를 마치고 성민(동방교 신도)들과 인사를 나눈 뒤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바로 그때 어떤 신체 건장한 한 사나이가 예비군복에 야전 잠바를 걸치고 술에 잔뜩 취하여 갑짜기 명지9교회에 들이닥쳤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M1소총으로 나를 위협했다. 인근지역의 예비군 보초근무후 미처 반납하지 않고 임시 소지하고 있던 총기인 모양이었다. 당기면 5만파운드의 압력(21.25톤)으로 탄환이 발사되어 사람을 즉사시키는, 사격가능거리가 183m에 까지 이르는 그 M1소총의 총구를 나의 이마에 다짜고짜로 들이 대면서 "야 ~이 새끼야, 우리 형님(스데반전도사) 찾아 내어 놓아라"고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는게 아닌가! 그는 스데반전도사의 배다른 동생인데 동방교를 믿고있는 신도가 아니었다. 형이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고 없으니 분명 전도사인 내가 알것이라 짐작하고 나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른다고 하였더니. "이 새끼가 죽어봐야 알겠나!" 고 하면서 총기를 정조준하여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는 것이 아닌가! 순간 피할 겨를도 없이 새파랗게 질려 급거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라할 때 나를 위협하는 그 건장한 사나이의 모친이며 스데반전도사의 새 어머니(계모)이기도 한 여(女)장로가 재빨리 총구를 낚아채어 나의 이마에서 떼어 놓으면서 큰 소리로 방성대곡 하는 것이었다! "이 어린 전도사가 어찌 안단 말인가~ 으 앙~~" 하면서 민망스러울 정도로 울어대자 술에 취해서 씩씩거리며 잡아 먹을듯이 나를 노려보던 스데반전도사의 배다른 동생이 고개를 푹 떨구며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리쉬는 것이었다!
그날의 난리 법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하며 나의 뇌리를 때리는 것이다!
아~~ 어찌 잊으랴 그날의. 비애를!!...
고백과 회상, 18) 악령의 기운을 체험했던 산기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했다. 즉, 천지창조와 지구의 종말을 세칭 동방교, 좁은길에서는 설교중에 굉장히 강조했었다.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 성읍을 멸망시키기로 계획했으나 그러나 그곳에 의인 50명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생각해 본다. 결국 다섯번이나 무르고 무르고 자신이 없는 아브라함이 그 엄위하신 하나님께 간구하여 마지막으로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양보를 받아 내었었다.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1차로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고 2차 심판주로 이땅에 이래 조부님(노광공)을 보내어 3년뒤에 불로 심판한다고 제단에 서서 세칭 동방교의 목사나 전도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역설하였기에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겁에 질려 있었는지, 치가 떨렸던 것이다. 좁은길(세칭 동방교)을 핍박하는 자는 부모형제라도 사탄이요 마귀라고 하였기에 나는 근심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어린 마음에 큰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머리를 스치는 한가닥 희망 ! 그것은 아브라함이 기도와 간구로 의인 50명에서 10명까지 양보를 받아냈던 아브라함 처럼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이 번뜩 드는 것이었다.
여름 어느날 나는 중학교로 공부하러 가던 등교길 걸음을 돌려 서낙동강에서 나룻배를 타고 해발 663m 김해 굴암산으로 걸어서 산기도하러 입산하였다. 입산하여 정상을 찾았다. 왜냐하면 어린마음에 높은 꼭데기 바위에 꿇어 앉아야 기도를 잘 들어 주실꺼야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먼 산길을 걸어 왔기에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정오를 넘긴 시간이었다. 책가방을 바위에 놓고서 꿇어 앉았다. 그리고 합장을 하고 눈을 감고 기도히기 시작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이~~~
"이땅에 심판주로 오신 전지전능하신 이래 조부님! 저가 아직 저를 낳고 기르신 아버지 어머니 또 형님 누나 그리고 동생들을 전도하지 못하였는데 3년뒤에 이 세상을 불심판하게 되면 어찌됩니까 한5년 정도 유보해주셔서 전도하고 난뒤에 불심판 하시면 안되겠사옵나이까" 라고 울면서 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회개기도를 하였는데 그 내용은 신생활 제대로 하지 못한것, 예도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것, 지성금을 제대로 드리지 못한것 등등 그외 사소한 일까지 회개하였다. 그런데 한참 기도하는 중에 갑짜기 귀가 멍~해지면서 흑암이 눈을 감은 상태에서 사위가 어두워지는 느낌과 무서움이 엄습하며 도저히 기도를 계속할수 없을 정도로 공포에 휩싸여 눈을 번쩍뜨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고 한갓 우리와 같은 인간 이래 조부님이란 허울속의 노광공에게 기도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여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이래 조부님, 노광공에게 기도하니까 사탄의 엄습이 무서움과 공포로 나를 덥쳐왔던 것이었다. 참으로 희한한 체험이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닌 사탄의 악한 영이 내 영혼을 노략질할 찰나에 더이상 기도할수 없었고 그 바위를 박차고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참으로 묘한 악령 기운의 체험이었던 것이다 !!!
고백과 회상, 19) 내가 격은 이봉상 사건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포장하여 이나라 대한민국의 어진 백성들을 미혹하였던 핵심의 주체는 우리 모두가 굳게 믿고 죽기까지 충성하며 섬기고 따르기로 맹세하고 서약했던 이래조부님 (고 노광공)인 것이다. 이땅에 심판주로 하늘의 권세를 가진 분 ! 다시 말해 거룩하고 깨끗한 분 !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 일반인들이 할수없는 이적기사를 행하는 분 !~~~ 더 쉽게 말해 죽은 사람도 안수해서 살리고 ! 하늘에 오르락 내리락(휴거)하고 ! 죽을병에서 치유의 은사로 낫게하고 ! 사람의 영과 육을 훤히 꾀뚫어 보는, 사람의 모습이지만 신이신 분 ! 이라고 칼이나 그어떤 위협과 죽음앞에서도 부인할수 없는 믿음의 대상 이였던 그(노광공)가 걸어온 행적과 발자취를 재조명 해보았을때 허위와 날조로 과장되어 사실이 아님이 백일천하에 다 밝혀짐에 따라 생명길이라고 믿고 따랐던 좁은길(동방교)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던 사건이 바로 1975년의 '이봉상사건'인 것이다 ! 이것은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 모두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충격 ! 충격 ! 멘탈붕괴 ! 바로 그것이었다.
이봉상(갈렙전도사)씨는 외국어대학을 졸업한 자로서 육하원칙을 헤아릴줄 아는자였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이래조부님 (고 노광공)의 이적기사를 (죽은 사람살렸다는 등) 현장 확인 함으로서 믿음이 더욱 뿌리내리는 확신을 가지고 제단에서 신도(성민)들에게 힘있게 말씀을 전해야겠다는 선한 동기로 이래조부님이 죽은사람 살렸다는 곳곳에 본인이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사실이 아님을 알게된 것이었다 ! 그토록 신봉했던 것이니만큼 실망 또 실망~~ 엄청난 회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깊이 좌절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각 지방 순회자들에게 모든것을 공개하고 그는 출가하여 불교에 귀의하여 스님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의 이봉상씨는 고민 고민 하다가 결단을 내렸다고 내가 그의 거처를 직접 방문하여 만났을때 술회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불려 올라가 노광공의 사후 2대교주가 된 노광공의 둘째아들 아브넬 노영구의 곁에서 근접보좌하던 그가 일반 신도(성민)들에게는 비밀에 싸여있던 노영구와 여신도의 동거생활, 3년만 있으면 세상이 불바다가 되어 심판당할것이기 때문에 세칭 동방교의 청춘남녀들이 결혼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도록 긴장을 조성하고 그런 사례 자체도 전혀 없었던 긴박한 시대에 노영구의 불미스런 개인행각들을 알게 되었고 하늘같이 여겼던 노광공의 허구를 알게 되었으므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심정을 추스리고는 이 중대한 내용을 각 지방별로 배치된 순회 전도사들에게 사실을 말하여 좁은길의 픽션(허구)을 밝혀버린 것이었다. 즉 노광공의 이적기사가 거짓으로 판명됨에 따라 이를 계기로 각 지방별 순회자들을 통하여 전국에 산재하는 좁은길, 동방교의 전도사들(사실은 전도사라고 할수도 없었지만)에게 노광공을 하나님이요 재림주로 따를수는 없으므로 동방교의 실상을 알려주어 본인들의 자유의지에 맡길테니 제각기 자기 앞길을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부산경남지방에도 그 바람이 불었던것이다. 이래조부님(노광공)이 거짓 하나님이요 거짓 재림주인데 어찌 따를수 있으랴 !! 이러한 맥락에서 때는 1975년 어느날 부산 초량12교회에 부산경남지역 전교회 남여 전도사 2~30명이 긴급히 소집되어 회의를 하였다. 노광공의 실체를 알았으니 각자들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그래도 좁은길(동방교)이 참 구원의 길이라고 믿어 여기에 남고 싶은 자는 남고 제 갈길을 찾아 떠날자는 떠나도록 하자는 회의 내용이였는데 나는 군에서 제대하고 사회로 돌아온지 1여년이 체 되지않는 시기였기 때문에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어리둥절하였다. 어릴적부터 좁은길(동방교)에 죽자 사자 미쳐 빠졌다고 부모 형제에게 받은 그 핍박과 설움도 다 이겨내고 충성 했던터라 아직 좁은길(동방교)에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그후에 점점 좁은길의 거짓과 미혹의 인간 노광공의 역겨운 행각이 드러남으로 인해 그토록 믿었던 나의 신앙도 허망한 세월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므로 좁은길과 노광공의 이단사이비 사상에서 참 신앙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백과 회상, 20)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친구, 후배들에게!!
그들이 소위 '좁은길'이라고 말하는 세칭 동방교에서의 예배형태는 여느 기성 제도권 교회와 흡사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주일날 예배 볼때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설교 제목앞에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주보를 만들어 모든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순서에 따라 예배를 인도하는 기성 제도권 교회와 같이 똑같이 흉내내어 현재의 좁은길, 세칭 동방교에서 예배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서도 그 중심 사상은 그들이 '이래 조부님'이라고 부르는 노광공 목사(?)의 사상을 넌지시 설교의 클라이막스에 끼워 넣는 형태로 진행하는 것인데 이젠 제발 지난 세월 그 허망한 날들을 한갓 거짓과 술수, 미혹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노략질하며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내가 깨끗하니 너희도 깨끗하라' 고 하였으나 여색을 탐하여 온갖 추태를 부린 것이 드러난 한 인간 노광공을 신격화시켜 재림주로 믿게 하고 그 많은 젊은 선남선녀들을 가출시켜 하늘의 왕의 씨가 된다고 꼬드기고 나중에 큰 상급을 받는다고 미혹하여 연단선님이란 이름으로 껌팔이등 행상을 시켜 거두어들인 돈과 지성금이란 명목으로 신도들에게 갈취한것이 진정사건과 재판결과로 만천하에 드러난 그 돈으로 부동산을 구입하고 비지니스를 벌려 수십년이 지난 지금 어마 어마한 재물을 일구어 미술관이며 빌딩이며 각지의 교회 건물이며 금산에 있는 청남수양관이라는 수련장 비슷한것 등 부정하고 썩은 재물위에 허울좋은 종교집단 행세를 하는 작금의 현실에 입이 쩍 벌어질 지경이지만, 지금은 옛날하고 다르며 옛날은 그때 일이라는등 치매같은 헛소리를 해대면서 그 허울좋은 허상에 매료되어 계속 노목사님 노목사님 하고 그를 우리 후대의 자손들에게 까지 신격화 시키고 우상처럼 숭배하게 한다면 언젠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을 것을 명심하기를 충고하는 바, 그곳의 모든 지도자급 인사들은 전직 총회장들이나 현재 총회장 이하 모든 남여 목회자들(그들을 목회자라고 부를수도 없지만), 특히 아직 그곳에 남아 있으면서 천지분간을 못하는 몇 안되는 이단사이비에 눈멀고 세뇌된 신도들앞에 호가호위하면서 연명하는 나의 친구들, 후배들이 눈물로 회개하고,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 들이고 자기자신의 아이덴티티(믿음의 정체성)를 확실히 하기를 간곡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첫댓글 제도권 기독교 교회인 것처럼 위장한 세칭 동방교에 아직도 미련스레 출석하고 있는 옛날 사람들을 간혹 만날 기회가 있다. 그들은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골수분자들이다. 서로 알것은 다아는 사이니까 편하게 이야기 한다. 이제 때가 다 되었다고, 할아버지(노광공)말씀(?)이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고있다고... 어서 ‘좁은길’로 다시 들어오라고 정신병 같은 넋두리를 하곤한다. 4-50년 전에도 하던 꼭 그소리다. 그들은 나를 걱정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는 그들을 연민으로 쳐다본다.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을 끝없이 달리는 두가닥의 철로처럼...그래서 인간은 슬픈 존재인가 보다. (이단의 추억 # 13, 기록을 이어가면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