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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 묵을, 내가 오널 똥얼 밟았는개비구만. 병 든 서방헌테 열부노릇험서 사는 것이 기특해서 씨다듬어 준 것이 멋이 그리 홰낼 일이라고. 구정물 바가지럴 뒤집어 썼구만이.” |
옹녀 년이 말했다.
“미안시럽소, 나리. 서방님 말고넌 따로 남정네의 손얼 탄 일이 없어서
이년이 도에 넘치게 홰럴 냈는갑소. 천천히 드시씨요. 이년언 나가볼랑구만요.”
“나갈라고?”
“쪼깨만 있으면 해가 질판인디, 얼렁 설거지 끝내놓고 서방님헌테 가봐야지라.”
옹녀 년이 방을 나와 부억으로 들어갔다. 방아에서 일어 난 일을 다 듣고 있던 주모가 물었다.
“참말로 갈 것이여?”
“가봐야겄구만요. 더 있다가넌 정사령헌테 먼 일얼 당헐지 모르겄구만요.”
“함양 이생원언 어떡허고?”
“아까막시 살풀이가 실퍽했응깨, 이 년이 없다고 아짐씨헌테 머라고넌 안 헐 것이구만요.”
“함양으로 따라갈 것 처럼 말허드니.”
“이년이 한 사내헌테만 목매달고넌 못 사는구만요. 허면 이생원헌테 받은 꽃값이나 주시씨요.”
“아, 줘야제. 헌디 언제 또 올 것이여?”
“모르제라, 언제올지.”
“내 생각에넌 어채피 지달리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디, 여그서 나랑 살았으면 좋겄구만.”
주모가 함양 이생원한테 받은 엽전 꾸러미에서 몇 닢을 빼내고 건네 주었다.
“‘더 있고 싶어도 방안의 쥐새끼 뵈기 싫어 못 있겄구만요.
내 그리 부실헌 연장언 또 첨이요.
그걸로 밭얼 갈겄다고 뎀빌판인디,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소.”
옹녀 년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다고 그냥 말 정사령이 아니구만. 꼴에 고집언 있어가지고 뒤가 끈질기당깨.“
“그냥 안 말면 어쩐다요?”
‘나럴 귀찮게 헐 것이랑깨. 이녁이 어디사냐? 어디로 간다고 허드냐?
꼬치꼬치 캐물을 판인디, 사타구니에 밤송이를 넣고 전디제, 저 놈의 닥달에는 못 전딘당깨.“
“허면 적당히 둘러대씨요. 이년이 대강언 말해주었구만요.
저그 산내골에 산다고라. 내 집에서 쪼깨만 더 가면 은대암이라고 암자가 있소.
그것꺼정 말해줄 것은 없을 것이오만.”
"거그서 병든 서방님과 산다고 허까? 비록 병언 들었을망정 서방님이 있다고 허면 지놈이 어쩌겄어?“
“서너쪼금도 못 가서 들통이 날 것인디, 그짓꼴얼 헐 것이 멋이다요? 그냥 여그저그 주막에서 굴러 묵든 계집이 거그서 사는갑드라고만 말허씨요.”
그렇게 일러놓고 옹녀 년이 주막을 나왔다.
혹시 정사령 놈이 따라오지 않은가, 뒤를 돌아보았으나 벙거지는 보이지 않았다.
‘흐참, 보챌 때는 곧 바로 따라나설 것 같드만, 안 따라오네.’
옹녀 년이 중얼거리며 삼거리를 벗어나 작은 내를 건너 막 산내골로 들어섰을 때였다.
길가 잡목 사이에서 사내 하나가 불쑥 튀어 나왔다.
질겁을 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가 고개를 드니, 강쇠 서방님이었다.
“아니, 서방님. 여꺼정 어쩐 일이시래요?”
“임자가 걱정이 돼서 집안에 있을 수가 있어야제.”
강쇠 놈이 하얗게 웃었다.
“걱정도 팔자요이. 안 그래도 이년언 가심이 벌렁거리는디.”
‘임자 가심이 왜?“
“잘 난 서방님얼 탐내는 계집덜이 많은깨 글제요.
인월 주막의 주모는 허리 낫기만을 학수고대허고 있고라,
정사령의 마누래도 눈에 불얼 켜고 찾고 있습디다.”
“그래? 괜찮헌 계집들이었는디.”
강쇠 놈이 눈을 번쩍이면서 인월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잡놈겉으니라고, 나허고 살풀이 헌 것이 얼매나 됐다고 펄쌔부텀 껄떡거리는구만이,
하고 옹녀 년이 중얼거리는데, 강쇠 놈이 화들짝 잡목 사이로 몸을 숨겼다.
“왜라? 서방님.”
옹녀 년이 멀리 인월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쪽에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벙거지가 따라오는구만.”
“벙거지가라?”
옹녀 년이 다시 인월 쪽을 돌아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벙거지 하나가 논두렁 담벼락길을 막 돌아나오고 있었다.
“저 놈이 저 죽을지 모르고 따라오고 있소이. 어뜨케 허끄라?”
“임자넌 그냥 모른체끼, 집으로 가소. 내가 뒤에서 바람만 바람만 따라갈 것인깨.
방안에 들이고 판만 벌여놓소. 나머지넌 내가 알아서 헐 것인깨.”
“호호, 속창아리 없는 놈겉으니라고. 이년언 먼첨 가요이.”
강쇠 놈이 잡목숲 속으로 몸을 깊숙이 숨겼고, 옹녀 년이 히죽거리며 가던 길을 갔다.
주모한테 주막에서 굴러먹던 계집이 산내골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서둘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정사령 놈은 꼭 그만큼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
‘저 잡놈을 서방님의 손을 빌리지 말고 내가 어뜨케 해뿌리까?’ 옹녀 년은 강쇠 서방님을 만나고 나서는 비록 사내와 아랫녁 송사를 벌여도 사내가 고태골로 가는 꼴은 면했지만, 그것은 제 년이 사내의 진기를 다 빨지 않아서 그렇지 제 년이 마음 먹고 사내를 다룬다면 계집에 허천들린 사내 하나 쯤 고태골로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핫고 있었다. 정사령놈을 고태골로 보내지 않드래도 허리만 못 쓰게 만들어 놓으면 서방님을 죽이겠다고 찾아다니지는 않을 것이었다. 가다가 성황당이나 상여막같은 곳에서 사내의 아랫도리만 벗기면 일은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옹녀 년이 꽃을 꺾는 체, 다리가 아파 무릎을 두드리는체, 슬쩍슬쩍 돌아다 보면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 원래 작정한대로 정사령 놈을 제 집에서 작살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인월 주막으로 나갈 때만해도 며칠은 걸리려니, 생각했는데 일이 쉽게 풀린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강쇠 서방님은 또 주막의 투전판에라도 기웃거리고 싶어 좀이 쑤셔 안달인데, 정사령이 이삿짐 뒤의 강아지처럼 따라오는 것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서쪽 산날망으로 해가 꼴깍 넘어가고 난 다음이었다. 산골의 어둠은 골짜기를 뭉텅뭉텅 타고 내려와 이내 마당을 덮기 마련이었다. 회색으로 변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반 쯤 닫은 사립 너머로 검은 벙거지 끝이 기웃이 넘겨다 보았다. 인월 주모가 그러는디, 주막얼 굴러댕기던 계집이람서? 꽃도 팔고 웃음도 파는 계집이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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