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선객이 돼 선방을 떠돌면서 공부를 하다 사고로 크게 다쳐 선방에 앉을 수가 없었다.
대중생활조차 힘들어서 작은 토굴을 마련해 홀로 수행정진했다.
은사스님은 토굴생활을 못마땅해 했고 몇 번이나 스님 곁에 와서 대중생활을 하라고 일렀다.
이즈음에는 어른스님을 좀 더 많이 모시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단다.
토굴생활은 스스로가 자신을 다잡아나가야 하기에 밤낮없이 염불수행에 매달렸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은 수행자로서 오롯하게 살아낼 것을 시시각각 요구했다.
고성염불로 목에서 피를 쏟을 정도로 자신을 혹독하게 다스렸다.
‘극락세계는 죽어서 가는 세계인지 아니면 죽기 전에 극락세계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여쭈었다.
스님은 “신심이 부족한 사람은 극락세계가 있느냐 없느냐 의심하는데,
부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분”이며 <아미타경(阿彌陀經)>은 누가 물어서 설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경임을 강조했다. <아미타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십만억 불토를 지나가면 극락이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에 계신 부처님 명호는 ‘아미타불’이시며 지금도 설법을 하고 계시느니라.”
“이렇게 선명하게 말씀하셨는데, 극락을 의심하면 안 되지요.
정토불교는 수행과 더불어 무한한 빛과 무한한 수명의 아미타불이 한없이 밝고 영원히 지속되는
우리의 불성과 같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십만 억 국토를 지나서 있는 정토에 가려면 과학적으로 보면 현재의 인공위성으로 가도
1조억 년이 걸려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인공위성은 빛의 속도를 말합니다. 부처님이 데려가지 않고는 도저히 극락세계에 갈 수가 없습니다.
아미타불의 48대원 가운데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이 있어요.
임종 시에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불러도 극락세계에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두고 아파서 ‘아’소리도 안 나오는데 어떻게 ‘나무아미타불’이 나오겠어요?
오랜 세월동안 염불 수행이 습성이 돼있는 사람이라면
기력이 떨어져 소리를 낼 수 없다하더라도 생각이 살아있다면 염불을 할 수 있어요.
꾸준히 수행한 사람이라면 극락세계에 갈 수 있습니다.”
“극락세계가 어디 있나? 하면서 ‘극락은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망언이라. 뼈 깎는 수행으로 극락이 내 마음 속에 있을 정도로 견성을 이루었을 때
극락이 내 마음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함부로 극락은 내 마음 속에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화두가 염념상속(念念相續)해야 하듯이 염불수행 또한 망념(妄念)이 섞이지 않도록
일심으로 염념상속해야 염불삼매에 이를 수 있는 것이기에 염불선도 결코 쉽지 않단다.
일체중생 모두 부처님 성품을 지니고 있지만 업이 두텁고.
번뇌에 휩싸여 있어 수행이 수순하게 잘 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선에는 염불선과 화두선이 있는데,
어느 것을 하더라도 견성하면 되는 것이지 더 수승하다고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단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불자는 성불하는 것이 목적이잖아요.
아무리 팔만장경을 다 외워도 금생에 성취 못하면 다 외도(外道)라.
왜냐하면 죽어서 다음 생에 꼭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보장도 없고
또 어디 태어날지 모르는데, 다음 생에 깨닫겠다고 한다면 도리에 맞지 않아요.
그러니 다음 생으로 미루지 말고 사람 몸 받고 불법을 만난 금생에 정진해 해탈해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을 만났는데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 해결하겠어요?
아미타부처님의 48대원이 염불수행을 발원한 중생들을 받아들이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합니다.
그래서 염불행자는 꼭 아미타부처님에게 ‘명을 마치면 나를 극락세계로 데려가 달라’고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우주에 무수한 부처들이 있는데 꼭 아미타불을 불러야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근본 서원이 가장 강력하고 그 서원은 오탁악세에 가장 알맞기 때문”이며
또 “아마타불의 공덕과 지혜, 신통력과 수행력, 중생을 제도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무한하기”때문이란다.
광덕사를 ‘만일염불수행도량’으로 만든 연유를 알 것 같다. 스님의 정토관은 확고하다.
스님은 아직 수행이 부족해서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스님의 치열한 수행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평생을 염불수행으로 일관해 온 중국의 우익 스님은 결가부좌하고
서쪽을 향해 손을 든 채로 입적했다고 하는데, 운성 스님의 원력도 그러하다.
글ㆍ사진=문윤정(수필가ㆍ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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