動物社會에서는 대화가 없다. 동물은 弱肉强食의 살벌한 暴力法則으로 살아간다. 人間世界에만 大畵家 있다. 對話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요, 인간다운 방법이다. 인간만이 대화를 할 줄 안다. 말과 손이 인간을 가장 偉大하게 만들었다. 손은 創造와 노동의 놀라운 道具요, 말은 理性과 思想을 담는 지혜로운 그릇이다. 인간은 말과 손의 힘으로 萬物의 靈長이 되었고, 文明의 創造者가 되었다. 우리는 대화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대화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成熟한 社會의 成熟한 인간만이 眞正한 대화를 할 줄 안다. 未熟한 사회의 未熟人은 서로 대화하다가 勘定의 極甚한 노예가 되어 暴力이 亂舞하고, 狂氣의 싸움이 벌어지고 무질서한 데모가 발생하여 殺伐한 不祥事를 일으킨다. 偏見의 奴隸, 獨善의 捕虜, 我執의 종, 閉鎖的이고 排他的인 勘定에 사로잡히면 對話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對話의 訓練을 해야한다. 自由롭고 평화로운 民主社會를 건설하려면 국민들이 먼저 對話社會의 對話人이 되어야 한다. 대화란 무엇이냐. 얘기의 雙方通行이다. 내 이야기를 네가 듣고 에 이야기를 내가 듣는 것이다. 말의 一方通行은 대화가 아니다. 對話에는 네 가지의 原理 네 가지의 姿勢, 네 가지의 정신이 필요하다. 첫째는 開放的 정신이다. 우리는 開放社會의 開放人이 되어야 한다. 먼저 마음의 窓門을 활짝 열어야 한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漢文에 開心見誠이란 말이 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나의 誠實한 태도를 상대방에게 보여야 한다. 서로 敵意를 품고 相互不信하면 대화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偏見과 我執과 獨善과 閉鎖的 태도를 버려라. 이것이 대화의 基本姿勢다. 閉鎖的인 사람, 獨善的인 사람, 排他的인 사람, 頑固한 사람, 驕慢한 사람, 固執不通인 사람은 남과 원만한 대화를 하지 못한다.
둘째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조용히 傾聽해야 한다.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傾聽한다는 것은 民主市民의 훌륭한 德이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Learnt listen, 傾聽하는 것을 배우라. 傾聽의 傾 字는 기울일 경 字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몸을 기울이고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이고 精誠을 기울여 상대방의 이야기를 熱心히 謙虛하게 들어야 한다. 聽 字는 글자의 構造가 意味深長하다. 聽 字의 제일 마지막 부분은 一心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精神을 통일하고 한마음으로 열심히 들어야 한다. 人間의 最高의 境地를 聖이라고 한다. 詩의 최고봉이 詩聖이요, 書의 최고경지가 書聖이요, 음악의 최고의 단계가 樂聖이다. 聖 字의 構造는 意味深長하다. 먼저 귀 이(耳)를 쓰고 그 옆에 입 구(口)를 쓰고 그 밑에 王자를 쓴다. 聖人은 民衆의 소리, 歷史의 소리, 眞理의 소리, 하늘의 소리, 神의 소리를 두 귀로 조용히 듣고 그 다음에 입(口)을 열어 眞理의 소리, 歷史의 소리를 우리에게 傳한다.聖人은 듣고 말하는데 있어서 으뜸가는 最高의 存在다. 우리의 얼굴의 構造를 보라. 입은 하나밖에 없는데 귀는 左右 양쪽에 두 개가 있다. 神이 인간의 얼굴을 만들 때, 왜 一口二耳로 만들었는가.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먼저 見聞을 넓혀라. 그리고 적게 말하라는 神의 깊은 攝理가 內包되어 있다.
셋째는 易地思之의 정신이다. 處地를 바꾸어 생각하라. 부모는 자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고, 자식은 부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아야 하고, 경영자는 근로자의 처지가 되어 생각해 보고, 근로자는 경영자의 처지가 되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을 바로 理解 할 수 있다. 古人은 兼愛人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謙虛한 마음으로 남의 말을 받아들이고 남의 처지가 되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易地思之는 對話의 核心的 요소다.
끝으로 서로 眞實을 말하고 진실을 추구하려는 誠實한 姿勢를 가져야 한다. 서로 상대방을 속이고 거짓말을 할 때 眞正한 對話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간에 속임수와 거짓말이 오고 갈 때 對話는 虛妄하고 無意味하다. 말이라고 말이 아니다. 참과 眞實한 말이 말의 資格이 있다. 거짓말은 말의 가격이 없다. 남을 속이는 虛言, 虛行이 一致하지 않는 食言, 거짓되고 虛妄한 妄言이 서로 오고 갈 때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겉을 꾸미는 僞裝된 언어, 공허하게 지껄이는 饒舌, 남을 헐뜯고 陰害하는 重傷의 언어는 대화를 파괴시킨다. 그것은 對話의 敵이다. 先人은 不忘語라고 하였다. 남을 속이는 虛妄한 말을 하지 말라. 生産的인 대화, 진실한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서로간에 眞實과 信義의 言語가 오고 가야한다.
巧言令色鮮矣仁(論語 學而篇)
마음에도 없는 말을 꾸미고 奸巧한 얼굴 表情을 짓는 사람은 眞實性이 적다. 鮮은 적을 선 字다. 論語 첫머리에 나오는 孔子의 名言이다. 말에는 活語와 死語, 산 말과 죽은 말이 있다. 虛僞와 不信의 언어는 죽은 말이요, 眞實과 信義의 언어는 산 말이다. 일찍이 老子는 이렇게 말했다.
信言不美, 美言不信(老子 道德經 81章) 知者不言, 言者不知(老子 道德經 56章)
참된 말은 듣지 좋은 말이 아니요, 듣기 좋은 말은 眞實性이 적다. 참된 智者는 말수가 적고, 말수가 많은 사람은 智慧가 적다.
眞理의 一面을 갈파한 노자의 名言이다. 진실한 말은 甘言利說처럼 듣기 좋은 말이다. 또 우리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은 참된 말이 아닌 경우가 許多하다.
참으로 아는 자는 沈?하는 경우가 많고, 大言壯談하는 사람의 말에는 거짓이 많다.
우리는 참말과 거짓말을 구별할 줄 아는 聰明한 智慧를 가져야 한다. 民主主義 社會는 對話社會다.
生卽言
산다는 것은 서로 대화라는 것이다. 인간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 理解라고 서로 親해진다. 對話는 人生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무엇이 人生의 비극이냐. 對話의 斷絶이다. 대화가 단절된 부부, 대화가 끊어진 부모와 자식, 대화가 없는 師弟之間, 대화가 없는 人間關係, 그것이 곧 인생의 비극이다. 不信과 佛畵의 거짓된 언어가 오고갈 때 사회는 어둡고 불행하다. 信賴와 和睦의 따뜻한 말이 오고 갈 때 사회는 밝고 번영한다. 對話에 관한 誡命으로서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나는 언제나 옳고 너는 언제나 틀린다고 盲信하는 傲慢을 버려라. 我執과 獨善과 偏見의 포로가 된 사람은 남과 대화를 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開放的 精神을 갖는 開放的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람직한 民主的 시민이다. 둘째, 인간은 누구나 有限者요, 未完成의 存在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判斷의 過誤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실수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절대로 善한 사람도 없고 절대로 惡한 사람도 없다. 어떤 点은 선하고 어떤 점은 악하고 얼마큼 선하고 얼마만큼 약하냐 하는 程度의 差異가 있을 뿐이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單純한 黑白論理로 사물을 간단하게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成熟한 사람은 단순한 흑백논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多樣하고 多元的인 思考를 하는 成熟人이 되어야 한다. 셋째, 謙虛한 태도와 慣用的 정신을 가지고 남의 이야기를 조용히 傾聽하고 理解心이 풍부한 對話人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왜 대화를 하는가. 대화의 目的이 무엇이냐. 서로 理解하기 위해서요, 서로 和睦하기 위해서요, 서로 協同하기 위해서다. 위대한 智慧의 스승인 孔子는 이렇게 말했다.
子曰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論語 子路篇)
君子는 여러 사람과 和合하고 협동하지만 附和雷同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附和雷同하고 남과 화합하고 협동하지 않는다. 和와 同, 비슷하지만 큰 差異가 있다. 세상에 和처럼 좋은 것이 없다. 和는 調和의 화요, 平和의 화요, 和睦의 화요, 和合의 화요, 親和의 화요, 和樂의 화요, 溫和의 화요, 和解의 화요, 和氣의 화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春風接人 和氣滿面의 따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봄바람처럼 훈훈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얼굴에서 따뜻한 和氣가 넘쳐야 한다. 和는 어디에서 생기는가. 즐거운 對話에서 생긴다. 明心和氣人이 되어라. 밝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