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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강 십자가와 용서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서론 - 용서를 갈구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감동적인 단편집 가운데 아버지와 십 대 아들이 크게 다툰 이야기가 있다. 관계는 깨어지고 아들은 집을 나간다. 아버지는 곧 후회하고 아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마드리드 시내는 워낙 넓고 혼잡하여 아들을 찾아낼 단서조차 얻을 수 없었다. 그는 신문에 광고를 내기로 결정했다. “파코야, 내일 오전 10시 신문사 정문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사랑한다. 아빠가.”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신문사 앞에 수백 명이나 되는 파코가 용서를 갈망하며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세상엔 상처 받고 마음 상한 사람이 가득하다. 말하자면 학대당하고, 홀대당하고, 소외당하고, 희생당한 사람, 분노, 원한, 참담함, 외로움, 우울증, 공포,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 증오와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사랑, 환대, 동정, 용서를 갈구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분에게 가해진 가장 불명예스러운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용서에 대한 최고의 본을 친히 보여주셨다. “네가 메시야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 받았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놀라운 기도를 드리셨다. 이 말씀은 십자가 상에서 하신 첫 말씀이다. 첫 말씀이 용서에 관한 말씀이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개적인 용서의 선언이다.
1.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속 상처가 깊은 이유
2010년 12월22일 새벽 5시쯤, 주택가 골목에서 등산 모자를 쓴 한 남자가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다가 어떤 집 앞으로 다가간다. 이 남자는 무언가를 내려놓고 유유히 사라진다. 놀랍게도 이 남자가 대문 앞에 놓고 간 것은 사람의 배설물이었다. 주택가에 설치된 CCTV에 촬영된 이 남자는 25세의 장 아무개씨였다. 그리고 그가 인분을 놓고 갔던 집은 장씨의 초등학교여동창생인 김 아무개씨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장씨의 주장에 따르면, 7년 전에 시내에서 걸어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김씨가 자신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개○○’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 이에 앙심을 품고 있던 장씨는 2010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동안 김씨를 위협했다. 새벽에 김씨의 집 거실 창문에 돌을 던져서 유리를 깨고, 붉은 글씨로 ‘SEX’라는 단어를 집 담벼락에 적어놓았다. 60여 차례에 걸쳐 새벽 3~5시쯤 공중전화로 김씨의 휴대전화에 전화한 뒤 아무 말 없이 수화기만 들고 있기도 하고, 대문 앞의 하수구 뚜껑을 열어 사람이 빠질 수 있게 만들어놓은 적도 있다. 집 대문과 직장 출입문을 자전거용 자물쇠로 밖에서 잠가놓는 방식으로 김씨와 가족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누가 왜 이런 짓을 자신들에게 하는지 몰랐던 김씨와 가족들은 모자 쓴 사람만 보아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1월25일 장씨는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짓을 저지른 장씨가 어떤 정신 병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도 아무런 정신적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장씨와 김씨의 기억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에 따르면, 자신은 CCTV에 나오는 장씨를 처음 보았을 때 누구인지도 잘 몰랐었다고 한다. 사건이 진전되면서, 확인 과정을 통해 장씨가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더구나 김씨에 따르면, 자신이 장씨에게 욕을 했던 적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은 10년 만에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초등학교 동창생을 알아보고 반갑다는 의미로 쑥스러운 미소를 건넸는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상대방은 ‘저 사람 왜 저러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냥 지나쳐버렸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도 않은 사람이 상대방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일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고, 7년이 지나서까지 화가 풀리지 않아 상대방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을까?
몸에 난 상처보다는 마음에 난 상처가 더 오래 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딱지가 아물고 떨어지는 과정을 통해 치유된다. 하지만 마음에 입은 상처는 몸에 난 상처보다 잘 아물지 않고 더 오랜 시간 우리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왜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까? 아물기도 전에 되새김질하면서 더 키우는 잘못 반복하는 경우 많아 몸에 상처가 나면 우리는 그 상처가 잘 아물 때까지 상처를 다시 건드리지 않는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잘 소독하고, 밴드나 거즈로 안전하게 감싸기도 한다. 잘못해서 상처를 건드렸다가는 상처가 덧나게 되고, 상처가 낫는 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몸에 난 상처와는 달리 마음에 난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일이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의 상처는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는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갑자기 의식 속으로 뛰쳐나온다. 뒤끝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사건과 사람을 단번에 잊을 수는 없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마음의 상처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되새김질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되새김질은 이미 난 상처 위에 다시 한번 생채기를 내는 결과를 낳게 한다. 따라서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오래 가는 이유는 몸의 상처는 아물 때까지 다시 건드리지 않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물기도 전에 수도 없이 다시 되새김질하면서 상처를 덧내기 때문이다.
즉시, 무조건적으로 / 제임스 조니 존슨은 지금까지 800번의 각종 상을 받은 사람이다. 흑인인 그는 특히 인종 장벽을 허무는 일에 노력해왔다. 그는 흑인으로서 첫 미국 해병대 준위로 임명되었으며, 칼리포니아 주 재향군인회장, 첫 미합중국 중앙인사위원회 부의장, 첫 미합중국 해군 차관보, 첫 미국 보이스카웃 이사회에서 봉사한 사람이다. 이 사람의 좌우명은 ‘즉각적 용서, 무조건적 사랑”이다. “여러분이 즉각적인 용서와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을 비평하고 여러분에 대해서 이러쿵 저렁쿵 말하면서 여러분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을 즉시 초월할 것이다.” 그런 좌우명의 실천이 그를 미국의 유명인사로 만든 것이다.
사람들이 즉각적인 용서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먼저 교훈을 배워야 돼.” “쉽게 용서해 주면 무책임한 행동을 부추길지 몰라.” “용서하면 다시 그럴걸.” “한동안 애를 좀 태워주다가 용서해 주는 게 그 사람한테 좋을거야.”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줘야 돼.” “그런 짓을 하고서 잘 되기를 바라다니.” “잘못한 쪽은 저쪽인데, 내가 먼저 용서해주는 것은 옳지 않아. 내가 피해자인데.” “미안해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용서를 한단 말인가.” 종종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관계를 단절하기도 한다. 아니면 침묵으로 냉전에 돌입한다. 어떤 경우는 수주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남편과 아내는 극단적인 경우는 쪽지로 소통하면서 수 년 동안 갈 수도 있다.
십자가는 즉시로 주신 용신, 무조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들 - 용서해주라 / 평생원수 / 가족들 친구 교우 직장동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2. 상처와 고통을 대하는 요셉의 특별함
(창39:1-41;45) 결코 긍정적일 수 없는 주변 환경 속에서도 - 가정형편, 이복형제들과의 갈등, 노예로 전락- 요셉은 의연한 믿음과 성품으로 요셉은 자라났다. 환경과 여건을 초월하여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기로 결심한 요셉은 역경과 순경 속에서도 변함없는 한결같은 초심을 유지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역경 앞에 좌절하고 인생의 정로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또 보통 사람들은 순경을 만나 오히려 방만한 마음으로 인생의 기본자세를 흩트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셉은 달랐다. - 억울한 위기를 맞아 그는 더욱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로 결심하였다.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의 자세 - 바로 여기서 승부는 결정된 것이다.
바로 요셉의 인생의 당찬 선언이 요셉을 승리하게 했다. -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보디발의 집에서 신실한 요셉, 아무도 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는 요셉, 누명을 쓰고 들어감 감옥에서도 살아있는 믿음으로 삶의 자세를 꼿꼿하게 세웠다. ● 17세 - 애굽 노예로 팔림 ● 27세 - 10년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봉사 ● 2-3년 감옥에서 보냄 ● 30세 - 애굽의 총리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잘 됐다가 아니라 요셉의 인생해석은 탁월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 요셉의 생활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드러나고 실감되었다.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창 40:8)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
요셉은 과거의 상처와 원통함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되었다. 이것이 요셉의 창성함과 형통함의 비결이었다. “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창 41:51-52)
므낫세 - 과거를 용서하고 청산하고 벗어나라 / 에브라임(창성)- 희망의 미래가 있다.
“요셉이 그의 친형들에 의하여 이방인에게 팔린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제자들 중 한 사람에 의하여 가장 큰 원수들에게 팔리셨다. 요셉은 그의 결백 때문에 거짓 고소당하고 투옥되었다. 그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의로우신 극기의 생애가 죄에 대하여 견책이 되었기 때문에 멸시와 거절을 당하셨다. 요셉이 불공평과 압박 아래서도 인내하고 온유하게 행하였으며 인도(人道)를 어긴 그의 형들을 기꺼이 용서해 주고 고상한 자비심을 베푼 것은 구주께서 악인들의 악행과 능욕을 불평없이 참으시고 당신을 살해한 자들 뿐 아니라 당신에게 나와 저희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들을 모두 용서해 주신 것을 예표한다(부조 239,240).”(화잇주석, 창 45:1-15)
상처를 치유하는 더 나은 방법 / 예수님은 우리가 받은 상처가 치유되는 유일의 방법은 용서하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저주하고, 앙갚음하고, 간접적으로 우리의 공격성을 해소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들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 한 가지 조건을 걸으셨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기도하도록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막 11:25). 우리는 이 말씀을 “용서의 황금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 만델라의 생애,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이었나? 이 나라의 흑인 어린이는 흑인 전용 병원에서 태어나 흑인 전용 버스로 집에 돌아오고, 흑인 거주지역에서만 살아야 하며 ,흑인 전용 학교에만 다녀야 한다. 커서도 흑인들만 다니는 직장에만 취직할 수 있고, 흑인 거주 지역 내에서만 집을 빌릴 수 있으며, 흑인 전용 기차만 탈 수 있다. 밤낮을 불문하고 통행증을 제시하기 위해 수시로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하며, 통행증을 보여주지 못하면 경찰서에 연행된다. 백인들이 남아프리카에 상륙한 이래 약 340년 동안에 걸쳐 흑인들은 가혹한 억압체제 속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해왔으며, 이런 잔인무도한 체제에 저항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아 살해당하거나 실종되는 참상을 겪었다.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은 27년 동안 외딴섬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최악의 정치범인 D급 죄수였습니다. 면회는 6개월에 한 번, 편지도 한 통밖에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듬해에는 큰 아들마저 자동차 사고로 죽었습니다. 물론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둘째 딸은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앞엔 절망의 절벽만 놓여 있는 듯 했습니다. 14년 동안이나 보지 못한 맏딸이 자식을 낳았다고 찾아와 "아버지, 그때 편지로 말씀드린 제 딸의 이름은 정하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딸은 그 쪽지를 조심스럽게 펼쳐서 보고는 종이에 얼굴을 묻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아낼 수 없었습니다. 종이에 묻은 잉크가 눈물로 얼룩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적혀 있는 글자는 '아즈위(Azwie, 희망)였습니다. 만델라에겐 희망이 있었습니다. 만델라는 소수의 백인이 대다수 흑인들의 인권을 짓밟고 고문하고 투옥하고 살해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인간파괴는 억압받는 흑인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탄압하는 백인들의 영혼도 똑같이 파괴하고 타락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사명은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모두를 해방시키는 것”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은 사람은 증오의 포로가 되어 편견과 편협심의 창살에 갇혀 있게 된다. 내가 만약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다면 남에게 나의 자유를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그의 희망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만델라는 대통령이 되어 데스 몬드 투투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여 복수의 악순환을 끊고자 했습니다. 규칙은 간단했습니다. 백인경찰이나 군인이 자발적으로 고소자들 앞에서 범행을 털어놓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그 범죄로 인해 재판을 받거나 처벌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청문회 자리에서 반드 브렉이라는 경찰관이 자기의 죄를 털어 놓았습니다. 자신과 동료들이 18세 소년을 총으로 쏘고 시체를 불태운 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그 시신을 바베큐처럼 불에 그슬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8년 후 반드 브렉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소년의 아버지를 체포했는데, 불쌍한 그 아내는 경찰관들이 남편을 장작더미에 묶어놓고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뒤 불을 붙이는 광경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아들과 남편을 차례로 잃은 노부인에게 법정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판사는 물었습니다. “반드 브렉 씨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녀는 남편의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부탁한 후 한 가지 요구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반드 브렉 씨는 제 가족을 모두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아직도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많습니다. 제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한 달에 두 번 우리 집에 와서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나는 반드 브렉 씨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나도 그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나는 내가 정말 용서했다는 것을 반드 브렉 씨가 알 수 있도록 그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결론 - 참된 용서는 참된 치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요셉이 불공평과 압제 하에서도 참고 온유하게 행한 일과 인륜을 어긴 그의 형들을 기꺼이 용서해주고 고상한 자비심을 베푼 일은 구주께서 악인들의 악행과 능욕을 불평 없이 참으시고 당신을 살해한 자들뿐 아니라 당신께 나아와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들을 모두 용서해 주실 것을 예표한다. ”(부조, 240)
신년 메시지 십자가의 용서를 전하라!
103편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6.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7.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