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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RISTMASS 의미 : 영어 어휘 '크리스마스'는 '크라이스트(christ)'와 '매스(mass)'의 합성어로, '크라이스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말인 '그리스도'를 다시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기독교의 '기독'도 이 그리스도를 한자로 음차한 '기리사독(基利斯督)'에서 따왔다. 구원자는 당연히 예수를 지칭한다. '매스'는 라틴어 동사 'Mittere(파견하다)'가 명사화되어 만들어진 'missa(파견)'[22]에서 따 온 것으로, 가톨릭의 핵심 전례인 미사를 뜻한다. 즉,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의미이며, 흔히 하는 인사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도 '즐거운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이 된다. 이런 어원으로 인하여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는 '기독탄신일'로 표기되어 있다.[
2. 유래 : 예수 그리스도는 12월 25일 오전 0시에 탄생하였다고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신약성서 마태오의 복음서나 루가의 복음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그 날짜에 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은 3세기에 들어와서부터 행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초기에는 그 날짜가 일정하지 않아서 1월 6일, 3월 21일(춘분), 12월 25일 가운데 어느 하루가 선택되기되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주 긴 것입니다. 몇 달 내내 크리스마스 시즌인 것이지요.
로마 교회(서방교회)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된 것은 354년경부터입니다. 이 [크리스마스] 날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유력한 설이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날을 채택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다음해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교회의 로마주교가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다라고도 합니다. 4세기부터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결정하고 1월 6일을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를 방문한 현현일 (Epiphany)로 기념하였습니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이날을 축제일로 삼아 농업을 주관하는 Saturnalia라고 불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빛"의 탄생인 것이지요.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 것과 기독교에서 세상의 빛이 탄생한 날을 12월 25일로 결정한 것은 이교도들의 태양의 빛과 기독교의 세상의 빛을 일치시킴으로 기독교를 이교도들에게 더욱 의미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3. 국가별 일자 : 크리스마스는 어째서 12월 25일 일까요?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사람은 히폴리투스입니다. 그는 마리아의 수태(受胎)로부터 아홉 달을 계산하면 그리스도의 생일이 12월 25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날은 낮이 밤 보다 길어지는 태양이 승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즉,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 태양이 승리하는 날, 밝은 날, 착한 날 이러한 의미가 있으니 즐거운 날이고 축제의 날인 것이지요.
아기 예수의 시련
아기 예수는 태어나는 순간에도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아기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베들레헴의 허름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동방박사는 위대한 구세주 아기 예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헤롯왕에게 유대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헤롯왕은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실지 알아보라고 명했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예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헤롯왕은 동방박사에게 아기 예수를 발견하면 자신에게 꼭 알리라고 하였지만 사실은 아기 예수님을 없애고 자신이 계속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는 헤롯왕에게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곳을 알리지 말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축복한 후 멀리 떠나갔습니다. 아기 예수는 태어나자마 큰 고난을 겪게 되었지만 그 위기에서 무사하실 수 있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마침내 세상의 귀한 분이 되신 예수님처럼 세상의 많은 어려움과 난관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을 새겨보아야겠습니다.
동방박사는 누구입니까?
동방박사는 아기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동쪽에서 먼 길을 찾아온 예언자들 입니다. 멜콰이어, 발다사르, 가스파르인데, 동방박사를 가르키는 마고이(Magi)라는 말에는 존경을 받으실 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멜콰이어는 아라비아의 왕이고, 발다사르는 페르시아의 왕이었으며, 가스파르는 인도의 왕이라고 합니다.
멜콰이어는 키는 작지만 순하고 긴 수염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이가 든 위품 있는 모습이고, 발다사르는 약간 검은 얼굴에 수염이 난 사십 세 정도의 인물이며, 가스파르는 키가 크고 아직 수염이 없는 이십대의 사람으로 얘기되는데 그 인물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리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의 왕이 되실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수 없는 고생 끝에 베들레헴의 허름한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째서 아기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났을까요?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기 위해 호구조사를 했는데, 꼭 자기 고향에서 사람의 인원수를 확인하고 세금을 걷었습니다.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도 고향으로 돌아가 호구조사에 응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고향 베들레헴에 다다랐을 때 잠을 잘 곳을 미처 구하지 못해 마구간에 머물렀는데, 거기서 아기 예수가 탄생하셨답니다. 아기 예수가 동물들의 잠자리인 마구간, 집이 없이 길을 떠난 가난한 사람들이 잠시 묵는 사람이 자는 곳이 아닌 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기 예수가 가난하고 힘없는 것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5. 크리스마스캐럴
캐럴은 본래 불란서 말 carole에서 온 말로 중세 프랑스에서 둥근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던 원무를 일컫던 말이었습니다. 이 원무는 동지 때 가졌던 축제에서 사용한 이교도들의 무곡이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이전에 후렴을 가진 춤추는 무곡에서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동정녀 마리아, 아기예수,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하는 크리스마스 노래로 민간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캐럴은 마구간에서 불려졌다고 전해집니다. 13세기 아씨씨의 성 프랜시스가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경축하기 위하여 마구간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을 권장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지금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6. 크리스마스의 3가지색과 그 색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붉은색
빨간색은 사랑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를 위한 희생과 그 보혈을 붉은 색으로 그린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 이웃을 생각하고 가족을 생각하고 연인을 생각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역시 붉은 색으로 나타납니다.
녹색
영원한 생명과 희망을 나타내는 크리스마스 색이 녹색입니다. 녹색은 겨울이 되어도 시들지 않는 상록수의 짙푸른 잎처럼 영원하고 무한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색이다. 간절한 희망과 소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흰색
반짝이는 별빛을 나타내는 순수의 색이 흰색입니다. 겨울철의 흰 눈처럼 깨끗하고 맑은 빛이 순결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초대 교인들은 예수의 생애와 업적, 특히 부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예수 탄생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성탄절을 기념하여 지키게 된 것은 4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주후 98년에 성탄절을 처음 지키기 시작했고, 주후 137년 로마의 주교텔스포루스가 성탄절을 엄숙한 절기로 지키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식으로 성탄절이 지키게 된 것은 로마의 주교 줄리어스 1세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한 주후 350년의 일이었다.
성탄절에 대한 역사적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을 찾아와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다는 내용을 토대로 성탄절이 정해졌다는 설이다. 4세기 당시 사람들은 수태고지의 날을 3월 25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태고지를 받은 날에 9개월을 더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12월 25일로 정했다고 한다.
둘째는 이교도의 축제인 태양신의 탄생과 결부되었다는 설이다. 4세기의 동지는 12월 21일이 아니고 25일 이었다. 이것은 연중 해가 제일 짧은 날이며 이후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졌다. 이런 사실에 초대 교인들은 의미 부여를 하고는 의의 태양이신 예수를 기린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되었다. 이교도의 축제가 기독교화 외어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교회는 상당 수의 이교적 관습을 흡수하여 기독교화 하였다. 그 관습 가운데 비기독교적인 것을 제거하고 기독교적인 것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다가선다. 이후 성탄절의 풍습이 각 나라마다 독특하게 생겨나 기독교 문화로 정착하게 되었다. '도움말:21세기 문화포럼 대표 박양식 목사'
출처 : 주간기독신문(https://www.kidok.com)
6. 교황청의 의견 :
성탄 대축일의 뿌리가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틀이 갖춰진 것은 분명 3세기이다. 동방 교회에서는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이, 서방 교회에서는 12월 25일 성탄 대축일이 성립된 것이 대략 비슷한 시기였다. 다만 축일 성립 과정의 바탕이 되는 종교/문화적 맥락이 달라 축일의 의미에 부여되는 강조점도 달랐다. 그러나 궁극적인 의미는 동일했다.
즉, 새로운 빛이요 역사상 진정한 태양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다. 두 축일이 틀을 잡는 과정에서의 복잡다단한 세부 사항들을 이 책에 모두 담을 수는 없다. 다만 두 축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간략히 짚어 보고자 한다. 먼저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결정할 때 출발점은 놀랍게도 3월 25일이다.
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아프리카의 교부 테르툴리아노(150?-207?)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널리 알려진 사실, 곧 그리스도께서 3월 25일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았다. 갈리아에서는 6세기까지 이날이 부활대축일로 지켜졌다. 아프리카 역시 243년에 작성된 부활 대축일의 날짜 계산에 관한 다른 문헌에서 3월 25일을 천지 창조의 날로 해석해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정하는 독특한 계산법을 볼 수 있다. 창세기에 의하면 태양이 만들어진 것은 창조 나흘째 되는 날이다. 곧 3월 28일이다. 따라서 이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진정한 태양이 떠오른 날이라는 의미로서 말이다.
이러한 견해가 3세기에도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변화되는 가운데 마침내 그리스도의 수난일과 수태일을 같은 날로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3월 25일에 천사가 주님의 탄생을 예고하고 주님이 성령에 의해 동정 마리아의 태내에 잉태된 것을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12월 25일(3월 25일에서 9개월 뒤)을 성탄 대축일로 정하는 것이 서방 교회에서는 3세기에 진행되며 자리를 잡았다. 반면 동방 교회에서는 1월 6일을(아마도 두 교회에서 사용하던 달력이 달랐기 때문인 듯하다)[27]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렸다. 이와 함께 알렉산드리아에서 거행되던 신비로운 신들의 탄생 기념 축제에 대한 해답도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러므로 로마에서 페르시아의 태양신에 대한 반발이나 불멸의 태양 숭배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으로 12월 25일을 택했으리라는 설과 3세기 로마 황제들에 의해 새 제국의 국교로 시험하기 위해 장려되었다는 옛 이론은 오늘날 유지되지 못한다.
《전례의 정신》, 교황 베네딕토 16세, 정종휴 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2006
7. 씬타의 유래
지금의 산타클로서는 1700년 전, 소아시아 터키의 파타라에 살았던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 주교에서 유래합니다. 성 니콜라스는 오늘날의 산타클로스를 있게 한 실존 인물로 어렸을 때부터 남의 어려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배고파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음식을 나누어 주었고 옷이 없어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옷을 벗어 주었으며,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돈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독실한 신앙을 갖고 있던 성 니콜라스는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마치고 터키로 돌아가던 어느 날, 큰 폭풍우가 쳤을 때 선원들을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성 니콜라스는 어부들을 보호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성니콜라스는 무엇보다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2세기 초부터 프랑스의 수녀들에 의해 성 니콜라스 축일 하루 전날인 12월5일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겨났고, 어린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성 니콜라스의 미담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유럽인들,에게 성 니콜라스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서기 17세기경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이 세인트 니콜라스를 신터 클라스라고 부르면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에 이주한 네덜라드인들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 지금의 산타클로스라는 인물로 재창조된 것입니다.
8.요약:
산타클로스가 실존 인물에서
기원했다는 사실, 알고계셨나요?
산타클로스는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의
별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 니콜라스는 3세기에 실존한 인물로
터키의 파타라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평생 돌봐주어 '성자(Saint)'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해요.
성 니콜라스의 이름은 라틴어로 하면
상투스 니콜라우스이며,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 니콜라우스라고 불렀는데요.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이
'산테 클라스'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 발음이 미국어화 되어서 '산타클로스'가 되었습니다.
그의 기일은 12월 6일로
네덜란드에서는 여전히 성 니콜라스의 날을 기념하며
아이들은 '세인트 닉'으로 부터
쿠키와 사탕을 받기 위해 신발을 바깥에 놓아요.
그는 후에 대주교가 되고 나서도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고 하는데요.
그가 죽고 난 후,
프랑스 수녀들이 그의 선행을 기억하며
그의 기일 하루 전인 12월 5일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고
이 모습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을 나눠주는 풍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왜 굴뚝으로 들어올까?
산타클로스는 굴뚝으로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이 이야기도 성 니콜라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가난한 세 자매가 있었는데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성 니콜라스는 이 자매를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아무도 모르게 금 주머니를 굴뚝으로
떨어뜨렸다고 해요.
그리고 세 자매는 이 금을 이용해서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와
산타클로스가 굴뚝으로 내려온다는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루돌프는 어디서 처음 등장했을까?
루돌프는 산타클로스의 9번째 순록인데요.
평소 다른 순록들에게 무시당하다가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로부터
썰매를 끌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이후로 인기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루돌프 이야기는 누가 만든 것일까요?
바로 뉴욕 출신의 '로버트 루이스 메이'라는 사람이
만든 이야기인데요.
이 작가는 가난한데다가 아내까지 아팠다고 해요.
하지만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루돌프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루돌프 이야기는 이후
로버트 루이스 메이의 부인의 형제가
노래로 만들어 불렀는데요.
1949년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캐럴의 유래는?
크리스마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죠!
바로 캐럴입니다.
캐럴은 언제부터 크리스마스와 연관이 깊어진 걸까요?
캐럴(Carol)은 옛 프랑스어 카롤르(Carole)나
고대 그리스어 코라울리엔(Choraulien)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지는데요.
카롤르는 원 모양을 그리며 추던 춤의 일종이고,
코라울리엔 역시 피리 연주에 맞춰 추는 춤을 말해요.
교회에서 캐럴이 본격적으로 불리게 된 때는
5세기 경으로 전해지는데요.
당시 캐럴의 내용은 주로 예수, 마리아, 아기 예수 등이었어요.
시간이 흐른 후 16세기에 오면
캐럴이 보다 본격적으로 발간되는데요.
영국인 윈킨 드 워드가
영국 최초의 캐럴집을 발간하였고
캐럴은 점점 민중적인 크리스마스와 연결됩니다.
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캐럴이 전파되었으며
지금에 와서는 캐럴에
종교적인 내용보다는 크리스마스 자체를
즐기는 내용이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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