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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자신을 충실히 다지며 여러해에 걸쳐 나무를 심었지만 그렇게 성장한 나무들도 시간이 지나면 바람과 세월이 그것들을 베어버린다. 우리의 관계나 인생의 일정부분 역시 불가피하게 변화하고 사라진다.
동료들이 하나둘 우리에게서 자신들의 그림자를 빼내어 간다.
나의 사람들이 서서히 사라져 간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사람들이나 관계가 서서히 사라지고 잊혀지는 과정을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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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마음이나 기억에서 나오는 고통스러운 생각을 차단하려고 노력했지만 뇌가 계속해서 그 생각들을 돌이켜보게 만든다고 표한한다.
영화나 책에 대해 생각하여 뇌가 다른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려 했지만 결국 다시 현재의 상황에 집중해야 하는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감정을 표현한 것 같다.
나는 그저 뇌에게 이미지만 골라줄 수 있었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거나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완전한 통제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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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마주하는 문제는 결국 모든 인간의 문제라는 것은
사람마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 근본적인 감정이나 도전은 공통적이라는 뜻인가
개인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종류의 문제를 겪고 있다.
예를들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어려움, 인생의 목적에 대한 고민등......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된다.
물질적인 것, 비행기는 목적이 아니라 연장일 뿐이다. 쟁기와 같은 연장..
우리는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할 때 과거에 만들어진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의 삶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언어가 우리의 언어에 더 잘 맞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과거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인식과 이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큰 영향을 받는다.
-> 과거의 생각과 언어 패턴을 그대로 유지
인간의 대지
물과 공기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환경의 상징이다. 조종사는 이 환경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기계가 바닷물을 가르고 물결에 부딪히는 순간을 감지한다. 이는 자연과 기계가 상호작용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조종사는 자신의 몸과 기계를 하나로 느낀다. 진동을 통해 기계의 작동을 느끼고, 조종관을 통해 기계의 힘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마치 선물을 받는거처럼 표현되어 있다.
사람과 기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힘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
조종사가 부드러운 동작으로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장면은 조종사의 능숙함과 숙련도를 보여준다. 이는 마치 꽃을 따듯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이륙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묘사하며 조종사의 전문성과 자신감을 보여준다.
결국 이 글은 자연, 기계, 인간의 조화로운 상호작용과 조종사의 능숙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비행기의 이륙을 가능하게 한다.
완성이란 덧붙일 것이 없을때가 아니라 빼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 같네 발전의 한계에 다다르면 기계는 제 모습을 완전히 감추지.
조종사는 물과 공기, 기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과정에서 점차 자연스럽고 능숙한 동작을 보인다. 이는 조종사가 자신의 기술을 완벽하게 숙달하여 기계와 하나가 되는 순간을 묘사한다. 이러한 순간은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나타냄.
“완성”은 불필요한 것을 모두 제거했을 때 아루어진다. 기계가 발전의 한계에 다다르면 제 모습을 완전히감추는 것은 기계의 작동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워져서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음을 의미. 이는 조종사가 기계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부드럽게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순간과 일치한다.
완성과 발전의 궁극적인 상태는 더 이상 추가하거나 수정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조화와 자연스러움에 도달했을 때 이루어진다. 이는 조종사가 기계를 조종하며 느끼는 완벽한 순간과 발전의 점점에 이르렀을 때 기계의 완벽한 모습을 감추는 상태가 된다는 것.
조종사가 능숙하게 기계를 다루어 마치 그의 몸의 연장선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기계의 모습이 감춰진다는 것은 기계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정도로 조종사의 조작이 자연스럽고 유기적이라는 것.
조종사는 기계의 작동을 의식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듯이 기계를 다룬다. 이때 기계는 그저 조종사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도구가되어 그 자체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된다.
기계와 인간의 완벽한 조화는 모든 불필요한 요소가 제거되고 기계가 인간의 의도대로 매끄럽게 작동하는 상태. 이는 기술이 극도로 발전하여 인간과 기계가 하나로 합쳐져 자연스럽게 동작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즉 조종사가 비행기를 연장으로서 완벽하게 다루어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를 묘사.
기술이 인간의 의도와 능력을 확장시키는 도구로서 기능할 때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급격한 기술발전으로 인간의 소외감,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했다.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므로 정복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술은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술과 인간의 완벽한 조화를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기술 그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가 세워야 할 건조물은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봉사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과거 많은 경우 인간을 학대하고 지배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기술과 산업발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했다. 이러한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기술과 산업발전이 인간성을 존중하고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술과 산업발전이 인간 중심의 가치와 도덕을 바탕으로 발전해야한다.
축약
인간의 대지
조종사는 자신의 몸과 기계를 하나로 느낀다.
조종사가 부드러운 동작으로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장면은 조종사의 능숙함과 숙련도를 보여준다. 이는 마치 꽃을 따듯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이륙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묘사한다.
결국 이 글은 자연, 기계, 인간의 조화로운 상호작용과 조종사의 능숙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비행기의 이륙을 가능하게 한다.
완성이란 덧붙일 것이 없을때가 아니라 빼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 같네 발전의 한계에 다다르면 기계는 제 모습을 완전히 감추지.
이는 조종사가 자신의 기술을 완벽하게 숙달하여 기계와 하나가 되는 순간을 묘사한다. 이러한 순간은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나타냄.
조종사가 능숙하게 기계를 다루어 마치 그의 몸의 연장선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기계의 모습이 감춰진다는 것은 기계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정도로 조종사의 조작이 자연스럽고 유기적이라는 것.
조종사는 기계의 작동을 의식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듯이 기계를 다룬다. 이때 기계는 그저 조종사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도구가 되어 그 자체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된다.
기술이 인간의 의도와 능력을 확장시키는 도구로서 기능할 때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급격한 기술발전으로 인간의 소외감,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했다.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므로 정복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술은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술과 인간의 완벽한 조화를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기술 그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가 세워야 할 건조물은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봉사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과거 많은 경우 인간을 학대하고 지배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기술과 산업발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했다. 이러한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기술과 산업발전이 인간성을 존중하고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술과 산업발전이 인간 중심의 가치와 도덕을 바탕으로 발전해야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특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일시성과 자연의 지속성을 표현한 것 같다.
푼타아레나스와 같은 도시는 자연의 극단적인 환경속에서 존재하며 인간의 생존과 번영이 얼마나 기적적인지 보여준다. 인간이 짧은 시간 동안 자연속에서 살아가며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자연의 경이로움과 인간의 덧없음을 대조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하나의 지질학적 시대 중 우수한 날 가운데 축복받은 어느날 어느 단 하루동안만.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이 얼마나 짧고 귀한지를 강조한다.
인간의 삶은 지구의 긴 역사 속에서 매우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이 특별하고 소중하다.
인간의 고독과 소외, 그리고 소통의 어려움을 강조한다. 자연속의 생명체들은 서로 쉽게 어울리고 조화를 이루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바람이 쉬어가는 곳에서 조차 꽃과 꽃이 쉽게 뒤섞이는 세계는 자연의 조화와 연결성을 나타내는데,
인간은 “고독의 성”을 쌓고 그로인해 서로 마음의 통로가 막혀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소녀의 꿈이 그녀와 나를 갈라놓는다.
개인의 꿈이나 생각, 감정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어떻게 그 꿈속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고 연결되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
결국 인간 사이의 소통과 연결이 자연의 다른 생명체에 비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타내는 것 아닐까?
거리란 멀고 가까움을 가늠하는 단위가 아니다. 우리집 정원의 담이 중국의 만리장성보다 더 많은 비밀을 감쌀 수 있다.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들도 두터운 모래보다는 한 소녀의 영혼이 침묵하는 것으로 더 잘 보호받을 수 있다.
거리가 물리적 거리나 길이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정신적인 거리도 있다.
우리집 정원에서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추억이 만리장성보다 더 큰 의미와 비밀을 담고 있을 수 있다.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는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소로, 두터운 모래로 보호받고 있다.
한 소녀의 영혼이 침묵한다는 것은 내면의 평온함과 안정감을 의미한다. 즉 외부의 물리적인 보호보다도 내면의 정식적, 감정적 평화가 더 큰 보호를 제공한다는 뜻인 것 같다.
이는 외부환경보다도 마음의 상태와 내면의 힘이 더 중요한 보호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엘 맘문은 한때 프랑스 관리 부대의 일원으로서 명예와 부를 얻었지만, 결국 자신의 뿌리와 신념을 배신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의 반역과 탈주는 배신이라고 여겨지지만, 그 배신의 배경에는 깊은 신념의 혼란과 내적 갈등이 존재한다.
엘 만문은 처음에는 프랑스를 위해 일하면서 많은 물질적 이득과 존경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이 이슬람 신과 자신의 문화에 반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늙어가면서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진정한 가치를 되찾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반역을 통해 사막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사막으로 돌아온 그는 과거의 영광과 위협을 잃고, 이제는 황량한 사막에서 방황할 뿐이다.
과거의 흥분과 긴장감, 그리고 전사의 삶을 그리워하며, 그는 지금의 평온한 삶이 오히려 황량하게 느껴집니다. 엘 맘문의 이야기는 신념과 배신, 그리고 잃어버린 과거를 그리워하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잘 보여줍니다.
인간의 신념과 믿음이 흔들릴 때 어떤 혼란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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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내면세계와 잃어버린 꿈, 잊혀지는 기억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순간들이 어떤모습일지.....
그 상자와 머리뼈를 보물상자에 비유한것이 인상적이다.
그안에 담긴 기억들과 삶의 조각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잊혀지기 어려운것들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어릴때봤던
새까맣게 탄채로 매일매일 산에가 농사일을 하시던 어른들이 생각났다.
자물쇠로 잠긴채 육중하게 있는 그의 보물상자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있는지 궁금했다.
배두인족이 가진 고귀하고 친절한 모습을 통해 생텍쥐페리는 인류 전체와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두인족은 단순한 구세주가 아니라 인류애와 유대감을 상징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로인해 주인공은 더 이상 적을 보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과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에게 인간의 본질적인 선함과 유대감을 깨닫게 한것같다.
주인공이 배두인족을 단순한 개인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배두인족의 도움과 인간적인 행동은 주인공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 것 같다. 이는 주인공이 더 이상 세상에 적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을 형제와 같이 느끼게 된 이유이다. 배두인족을 통해 주인공은 인간의 본질적인 선함과 유대감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그가 세상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내 모든 친구들, 내 모든 적들이 당신을 통해 나에게로 걸어온다”
“일단 체념을 받아들이자 평화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란 그런때에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친구가 되는 모양이다. 그러면 이제 더는 그 무엇도, 충만감을 이길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내면에서 우리 자신도 알지 못했던 어떤 본질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그 충만감을.”
이 구절에서 주인공이 절망과 체념을 넘어서 평화를 찾게 된 과정을 나타내는 것 같다.
자신이 길을 잃고 절망의 밑바닥에 있다고 느꼈으나 체념을 받아들이면서 평화를 경험했다.이 평화는 자신을 발견하고 내면의 본질적인 욕구를 채우는 충만감에서오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겪었던 갈증과 고통속에서도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한 평온과 충만감을 느낀다. 그는 그 평온을 경험한 인물들인 보나푸와 기요매와 자신을 연결짓는다.
이 충만감은 외부의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평화와 행복을 의미하는 것 같다.
“어떻게하면 우리 마음속에서 이런 해방감을 일으켜 가득 채울 수있을까?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역설적이다. 우리는 이점을 잘 안다. 어떤 이가 창조적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그의 생계를 보장해주면 그는 그저 잠만 잔다. 승리한 정복자는 물렁해지고 인심좋은 사람도 부자가 되면 인색해진다. 인간에게 번영을 가져다주겠다고 주장하는 정치강령도 어떤 종류의 사람을 행복하게 할 것인지를 먼저 알지 못한다면 무슨소용이 있겠는가?.....”
이 구절에서 인간의 본질과 그에 따른 역설적인 점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해방감을 일으켜 가득 채우려면 본질적인 만족과 기쁨은 예측할 수 없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인간의 본성과 관련하여 번영과 성공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며 역설적으로 승리한 자나 부유한자가 오히려 만족감을 잃고 인색해질 수 있다.
정치적 강령이나 외적인 성공이 인간의 내적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진정하 기쁨과 만족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며 그러한 경험이 종종 우리의 비참함이나 고통속에서도 의미를 찾게 만든다.
동료와 함께한 고통스러운 기억조차 그 경험의 일부로서 소중하고,
그러한 향수가 우리의 비참함마저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그것이 우리는 비옥하게 해주는 미지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빼놓고는 무엇을? 인간의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진리는 어떤 특정한 증명이나 공식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렌지 나무가 특정한 땅에서만 잘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면 그 땅이 오렌지나무의 진리다.
인간이 충만감을 느기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것 역시 그 사람에게는 특정한 종교, 문화, 가치체계가 진리가 될 수있다.
논리는 이런 진리를 설명하는 도구일 뿐 진리를 완전히 정의하거나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진리와 의미는 개인의 경험과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논리와 이성만으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저자는 사막이나 항공로와 같은극단적인 환경을 선택한 사람들을 언급하며,
이들이 추구한 소명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감탄해야 하는 것은 이들을 가능하게 한 대지, 즉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자체라는 점이다. 이 대지가 이들의 삶과 소명을 가능하게 만든 근본적인 배경이다.
소명이 인간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소명이 개인의 진정한 위대함을 깨닫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단순히 소명의식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명을 수행하면서 위대한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소명 자체를 실현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져야 한다. 소명의식을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하늘에서의 밤이나 사막에서의 밤 같은 드문기회”
이러한 특별한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의 진정한 욕망과 소명을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그들이 소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결을 느끼도록돕고, 일상적인 삶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이와 진정성을 제공한다.
사막에서의 경험에서 소명의식은 생명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면의 평화와 충만감을 발견하고 극한의 조건속에서 본질적인 욕망과 인간의 깊은 본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명의식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자신의 존재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깊은 의미를 찾는 것이었다.
중사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느끼는 진실한 욕구에 따라 행동했으며 그런 행동을 통해 동료애와 일체감을 느끼고 자신의 소명을 완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마치 영양들이 자유를 갈망하며 철망을 떠받는 것처럼 중사도 자신의 진정한 목적과 욕구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진실한 소명을 따랐다.
자기 마음속에서 잠자는 미지의 것을 짐작조차 못하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무정부주의자의 지하실에서 어느순간 그것이 깨어남을 느껴본 사람은 이제 오직 하나의 진리만을 알게 될 것이다. 희생과 상호원조, 그리고 정의의 엄격한 비전을 통해 무정부주의자의 진리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어떤 중요한 순간이나 사건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무정부주의자의 진리를 깨닫게 된 사람은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 더 큰 사회적 목표와 이상을 추구하게 된다. 자신이 속한 사회나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스페인의 수녀원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경험을 한 사람은 그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강한신념과 충성을 갖게 된다.
이런 경험들은 자신이 어떤 길을 선택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극한상황(사막에서)에서 서로 도우며 생존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나눌 때, 깊은 유대감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 사회학자들이 예측하는 논리적 분석을 넘어서는 인간의 본질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을 마다치 않는 사람에게 전쟁의 공포를 납득시키고 싫다면 절대로 그를 야만인처럼 대해서는 안된다. 비판하기에 앞서 그를 이해해야 한다.
그 사람의 관점과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부 모코로 한 장교가 산악지대에 있는 전초기지를 지휘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저녁
서부 산악지대에서 휴전 교섭단이 찾아왔고 그들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부 산악지대의 부족들이 기지를 공격했다. 장교는 전투를 준비하면서 교섭단에게 돌아가달라고 요청했지만 교섭단은 “우리는 그대의 손님이오. 신은 그대를 버리고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소”라고 대답했다. 교섭단은 장교의 군대와 함께 싸워서 기지를 구한 후 자신들의 요새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다음날 저녁 교섭단이 다시와서 우리가 그대를 도와주었으니 사용한 300발의 총탄을 돌려줘야 정당한 것이라고 했다. 대위는 그들에게 총탄을 돌려주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을 향해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전쟁 중에서도 존재하는 상호존중, 명예를 강조하는 이야기다. 교섭단은 손님의 의무를 다했고, 장교도 그에 맞는 예의를 갖추었다.
진리란 인간의 품격과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품격있는 관계의 성실한 승부, 상호존중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가치를 배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이해하게 되는데 이를 선동가의 겉만 번지르르한 친절과 비교한다.
선동가의 친절은 표면적이고, 때로는 고통을 줄 수 있지만 진정한 관계는 깊은 존중과 우애를 기반으로 한다.
“전쟁을 증오하는데에도 일리가 있다.”
전쟁을 증오하는 이유는 고통과 파괴뿐 아니라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진정한 관계와 상호존중이 훼손되는 것이 포함되므로.
선동가는 표면적으로 친절하지만 그 친절은 깊이와 진정성이 부족하다. 만약 자기에 반하는 의견을 말하면 선동가는 상대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약간의 격려와 연민만을 느낄 거라고 한다. 이는 그가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동가는 상대의 의견에 공감하거나 진정으로 논의하려는 의도 없이 단순히 겉으로만 친절하게 보이려는 태도를 취한다.
진정한 관계는 서로의 의견을 깊이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화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에 있다.
개척자는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아를 실현하지만 도형수는 그저 기계적으로 일만 하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도형수는 일의 의미를 칮지 못하고 자아를 잃은 채 노동에만 몰두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것.
일의 의미와 가치에 따라 사람의 자존감과 위대함이 달라진다.
도형수의 곡괭이 질은 그에게 의미없이 반복되는 일이라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만 개척자의 곡괭이 질은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있어
그를 위대하게 만든다.
결국 일의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일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단순한 노동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그 노동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도형장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일을 하게 만드는 장소로
사람들이 이러한 의미없는 일에서 벗아나기를 바라는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더 깊은 의미와 공동체적 연결을 추구하는 욕망을 표현 한 것.
산업화로 인해 그들은 농업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마치 검은 열차들이 들어찬 종착역 같은 거대한
폐쇄된 공간에 갇혀버린상황을 묘사한다.
노동자 주택 단지의 밑바닥에서 그들은 이제 눈을 뜨고 새로운 삶을 갈망하고 있다.
이는 현대 산업 사회에서 사람들의 소외감과 의미없는 삶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다.
일상업무의 톱니바퀴에 갇혀 선구자의 기쁨, 종교적인 기쁨, 지식인의 기쁨을 알지못한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과거에는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옷을 입히고 먹을 것을 주는 등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충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결국 쿠르틀린의 희곡 작품에 나오는 소시민, 내면세계에 무관심한 기술자, 그리고 정치적 촌뜨기들이 그들 속에 뿌리내리게 했다.
이는 인간의 진정한 기쁨과 위대함이 단순히 물질적 충족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교양을 쌓는 것이 공식을 잘 암기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여 교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
전문학교의 열등생조차도 자연과 법칙에 대해데카르트나 파스칼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질 수 있지만 그가 사유방식에서도 같은 능력을 보일지는 의문이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사유방식과 내면의 깊이를 갖추는 것이
진정한 목적임을 강조한다.
사람들에게 군복을 입혀 활기를 되찾게 할 수 있고,
군가를 부르며 전우들과 빵을 나눠먹을 수도 있다.
이는 그들이 추구하던 보편적인 것을 잠시나마 맛볼 수 있게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제공된 빵 때문에 죽어가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해결책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더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 해결책이 기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에게 활기를 되찾게 하고
일시적인 만족을 주지만
궁극적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해치기 때문.
사람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군가를 부르게 하고
빵을 나누느 것은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그들의 진정한 욕망과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이 제공된 빵 때문에 죽어갔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해결책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해롭고 사람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점을
보여준다.
독일인들이 베토벤과 한나라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과거의 위대함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욕망이 존재한다는 의미.
과거의 영광이나 신비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은 일시적인 자부심은 줄 수 있지만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는 없다.
내면이 진정한 욕망과 의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거에 집착하기 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정한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배고픔이 단순히 육체적인 배고픔을 넘어선 존재론적 의미를 가진다는 내용.
스페인 군인들이 식물학 강의를 듣고, 에르모를 남대사양 쪽으로 보내고, 누군가는 시를 쓰도록 내모는 이 배고픔은 우리의 존재와 우주에 대한 자각을 요구하는 것
이는 천지창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우리가 스스로와 우주를 이해해야 한다는것.
어둠 속으로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해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
이기적인 무관심을 지혜로 여기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혜롭지 않다고 말하며, 진정한 지혜는 더 깊은 진심을 포함한다고 한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과 우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결에서 비롯된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내적 성찰과 성장의 중요하다는것.
과거의 경험과 사람들, 특히 나이 든 사무원들을 회상하며 그들의 삶을 반추하는 내용
이 사무원들은 비록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갔지만, 자신들이 굶주렸다는 점, 즉 삶의 더 깊은 의미나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며, 더 깊은 의미나 성찰 없이 그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삶이 단순히 생존을 넘어선 더 큰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