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시와세계』2017년 여름호에 실린 박찬일 시인 특집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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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난 박찬일 시인
멜랑콜리와 결벽의 아비투스
이영숙
Ⅰ
최초의 언어란 옥타비오 파스에 의하면, 기표와 기의가 동일하였다. 말과 삶이 일치했고, 시인이라면 시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언어가 기표와 기의로 분화된 것이 인간사 혼란과 비극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라면, 시로 거짓을 말하는 것 역시 일반적 추세에 해당한다. 왜곡된 언어로는 삶의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므로 파스는 시인이 최초의 언어와 리듬을 회복해야 한다고 『활과 리라』에서 거듭거듭 주장하고 있다. 최초의 언어가 원시의 언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개연성을 갖는다.
박찬일의 대다수의 시는 우리가 흔히 서정시라 부르는 시적 패턴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어떻게든 대상과 자아를 하나로 묶으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대상에 대한 자아의 폭력적 권위를 가졌다는 서정시에 대한 반발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대상에 대한 자아의 숨김없고 꾸밈없는 태도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 시를 잘 쓰겠다는 자의식 없이 시를 (잘) 쓴 자의 시에 나타나는 자유로운 발성과 대범함, 일상적 어조(억양)와 같은 시적 어조(억양), 삶의 음영을 따라 시에 드리워지는 그늘을 비롯하여 철학적 사유와 존재들에 대한 연민 등이 가감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3무無, 곧 숨김없고, 꾸밈없고, 가감없는 이것이 파스가 꿈꾸는 최초 언어의 전제일 듯도 싶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그의 공식 직함은 대학교수다. 그는 시간의 대부분을 강의하고 시와 철학논문과 비평문을 쓰는데 할애한다. 그에 걸맞게 시집과 평론집과 연구서들이 가끔씩 뚜벅뚜벅 세상으로 걸어 나온다. 자신이 편집인으로 있는 시전문지도 자주 늦어지긴 하지만 결호 없이 꼬박꼬박 발간되고 있다. 성실하고,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인물이 이뤄낼 수 있는 성과들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동작이 느리고(그래서 정신의 작업 속도도 느릴 것 같아 뵈고), 비체계적이고(그래서 우선순위가 꼬여 자주 이런저런 펑크를 낼 것 같아 뵈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비사교적인) 인물이다. 요는 능률적이고 사무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일들을 꾸준히 해내고 있다. 그 ‘정도’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정도’를 초과해서 해낸다. 철학논문만 하더라도, “양자역학을 인문학에 포함시켜야 한다”(『시대정신과 인문비평』)는 신념을 무슨 ‘주의主義’나 ‘운동’처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근거를 그의 ‘결벽’에서 찾는다.
방바닥을 닦는 것은 살갗을 닦는 것이다. 방바닥을 닦지 못하면 몸이 더러워진다. 아무리 씻어 도 금방 더러워진다. 아내의 몸이 더 더럽게 보인다. 두렵다. 방바닥을 닦지 못할까봐 두렵다. 닦 아도 닦아도 안지워질까 두렵다. 걸레가 떨어질까봐 물이 안 나올까 두렵다. 아내는 도망칠 것이 다. 나 혼자 더러운 아들을 키워야 할 것이다. 아들은 커서 더러운 여자를 만나 더러운 아이들을 낳고 기뻐할 것이다. 더러운 아브라함은 더러운 이삭을 낳고 더러운 이삭은 또 더러운 야곱을 낳 고 인간은 전혀 새로운 족속의 조상이 될 것이다.
―「더러운 야곱」 전문
식탁에서/ 작은아들이 생선을 물고기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내가 밉다/ 물고기를 먹어야 하는 내가 밉다/ 아들에게 물고기를 먹으라고 하는 내가 밉다/ 포유류가 밉다
―「아들에게 물고기를 먹으라고 하는 내가 밉다」 전문
“방바닥을 닦지 못할까”, “닦아도 닦아도 안지워질까”, “걸레가 떨어질까” “물이 안 나올까” 두려워하는 그의 조바심은 결벽이며 초자아의 극단적 양상이다. “도덕-양심-죄책감”에 의한 “자기살해”(『멜랑콜리커들』)로 이어지느냐, 걸레질이 “방바닥”에서 시작해 “인간”으로, 그리고 “새로운 족속”, 곧 인류의 구원으로 확장되느냐(인류에 대한 성찰집인 인류에서 보듯)의 치열한 전장이기도 하다. 뒤의 시에서도 “생선”과 “물고기” 사이의 왕복운동이 있다. ‘물고기’라고 하는 순간 어류는 “포유류”가 된다. ‘나’라는 인간종인 포유류가 또 하나의 포유류를 먹고, 아들에게도 먹이는[먹여야 하는] 것을 초자아는 고통스러워한다. 문어가 살해의 고통을 인지할 만큼 지능이 높다는 이유로 문어를 먹지 않는다는 고백이 담긴 그의 또 다른 시에서 보듯 그의 초자아는 그를 몰아부친다. 연민으로 가득 찬 결벽이 그를 고통 중에서 끝없이 순환시킨다. 깨어있게 만든다. 과도한 몰두를 통해 열 가지 일을 한 번에 하게 만든다. 그의 목과 허리가 통증을 겪을 때 정신과 육체도 엎치락뒤치락한다. 여러 권의 시집 속에 산재한 「나비를 보는 고통」 시리즈나, 부모님에 대한 애도의 목록은 그의 결벽과 초자아의 남다른 궤적이다. 그의 생애 절반이 그 사이에 다 지나갔다.
철학적 견지에서는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애도가 불가능하다. 1집에서부터 “죽어가는 자가 불쌍하다/ (……)/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생각할 때/ 산 사람은 산 사람일 수 없다/ 반은 죽은 사람이다”(「탄식」)라는 탄식, 곧 “죽은 자가 산 자를 덮어쓰는” 태도는 어머니 상실이 시작되는 2집부터 7집까지, 그리고 실험시집인 8집을 건너뛰어 9집에서는 아버지 상실로 이어진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애도불가능성은 멜랑콜리로 전환된다. 자아는 상실한 대상과 합체됨으로써 “대상상실”에 이어 “자아상실”을 일으킨다. 자아상실은 “극도의 자아 빈곤”이 됨으로써 주체는 초특급으로 멜랑콜리커가 되는 것이다. “초자아”가 강할수록 “멜랑콜리의 명수”(『멜랑콜리커들』)가 된다.
내가 죽으면/ 어머니를 記憶하는/ 나도 사라진다// 살아야겠다
―「어머니」 부분
하느님, 하느님께서 저를 잠시 맡아주실 수 없나요/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을 몇 군데 갖추고 계 시잖아요// (……)// 애도할 만한 사람이 다 사라진 후/ 다시 내보내 주실 수 없나요/ 그들은 내 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겠지요/ 사라진 그들을 제가 애도해 주고 싶습니다/ 무덤 에도 찾아가 보고/ 강물에도 찾아가 보고/ 구슬피, 구슬피 울어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 저를 잠시 맡아주실 수 없나요」 부분
두 개의 존재 이유가 있다. 내가 죽으면 어머니의 기억도 사라지니 어머니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나의 고통과, 내가 죽은 다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차라리 그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나의 죽음을 유예시켜야 하는 고통이 그것이다. 이 고통의 질량은 초자아의 질량이기도 하다. 부친이 돌아가시던 해 추석을 전후해 “경춘공원묘원 가족용 봉안실”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모텔방을 3박4일간 잡아놓고 매일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는 일화는 멜랑콜리커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의 부모 상실은 인류와 신의 상실로 이어지고, 그것이 인류애와 신성성으로 고양될수록 상대적으로 그의 멜랑콜리도 겹으로 깊어져간다. 애도불가능 속에서 애도의 궁극을 향해 가는 자의 비애다. 그러나 그는 프로이트에서 니체로 나아간다. 그는 “불안에 쾌히 시달리자는 사과”나무다. “불안을 꿈꾸는 사과나무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사과나무의 불안」)는 인식이 니체의 ‘자발적 몰락’과 쉽게 연결되는 것은 이 주제가 그의 전 작품에서 주요하고 일관되게 다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멜랑콜리의 세계에서 “기꺼이 몰락해주리라”를 실현할 때, 시지포스가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듯 자발적 몰락이 역설적으로 멜랑콜리커를 구원한다.
Ⅱ
“‘내겐 막걸리가 아비투스다!’ 교수님, 정말 멋있지 않냐?”
지하철 2호선 아현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5번인지 6번인지를 타고 막 손잡이를 잡았을 때 뒤에서 들린 목소리.
“아비투스가 뭔데?”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막걸리를 예로 들어 개념 설명을 해서 귀에 쏙 들어왔다는 둥 처음 입을 뗀 학생은 아비투스를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친구에게 말해준다. 몇 마디가 더 오가고 ‘박찬일 교수님 학점도 잘 주셔.’라고 했을 때 마침 내릴 때가 되었다. 뒤돌아보지 않고도 이들이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1학년 학생들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내가 2학년의 시창작연습이라는 과목을 맡은 3년차 선생이기 때문이다. 강의가 있는 날 가끔 수업 시작 전에 차를 얻어 마시러 가는 그의 연구실에서와, 문학세미나 등 학교에서의 행사에서와, 그가 편집인으로 있는 문예지에 일 년에 한두 번 시나 평론을 싣고 가끔 회의에 참석도 하는 기획위원으로서와, 드물지만 이런저런 문단 행사에서의 조우 등을 그의 아홉 권의 시집을 읽은 경험에 덧대어 본 것이 위 ‘Ⅰ’의 글이다.
술을 막걸리로 시작하였다. 춘천 팔호광장이란 곳, 혼자였다. 아직 까까머리였을 때였지만 주모(?)는 서슴치 않고 막걸리를 내밀었다. 첫 막걸리의 그 쉰 듯한 냄새를 나는 아직 맡는다. (……) 어머니는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알고 나의 뒤를 좇은 적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따라 오는 것을 눈치채고 교육청 오른쪽 뜰에 가 앉아 먼 산을 바라보았다. 중학교 다니던 동생이 뒤를 밟은 적이 있었다. 동생은 내가 병막걸리를 마시는 것을 보았다
―『멜랑콜리커들』 부분
「소멸의 알레고리: 냄새」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에서는 위 ‘Ⅰ’에서 박찬일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싹 틔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 조숙한 소년은 “오른쪽 뜰에 가 앉아 먼 산을 바라보았”던 시선으로 지금까지 세상을 보고 있다. 이어지는 인용 글에서 그는 남녀관계에 있어서 “묘묘한 냄새에 의한 性的 천생연분이 性的 강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할지라도 문제는 “묘묘한 냄새가 사라졌을 때” 그들 사이에 “경제적 계급적 문화적 아비투스에 의한 천생연분이 만만치 않”아진다고 전제하면서 이 막걸리 얘기를 시작한 것이었는데, 막걸리의 ‘묘묘한 냄새’가 자신과 천생연분이 되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으면서 나는 읽었다. 그에게 막걸리가 의식이나 언어보다 더 근본적인 아비투스였음을 이미 내다본 시기가 고2때였으니, “막걸리가 인생의 전부였던 인생”처럼 그도 “막걸리를 50년 동안 마시”고 비로소 “아버지와 같게”(「리어카인생 50년이면」) 어른이 된 것이다. 적어도 막걸리가 인생의 절반의 스승이었다. 박찬일 시인 덕분에 막걸리로 ‘개종’한 사람이 주위에 여럿이라고 들었다. 나중에는 그의 제자들도 어디선가 ‘내겐 막걸리가 아비투스다!’ 선언하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스승을 그리워할 것이다.
Ⅲ
그는 최근 시집 『아버지의 형이상학』과 평론집 『시대정신과 인문비평』을 낸 후 에너지가 소진된 것 같다고 토로한 바 있다. 철학의 시적 변주, 혹은 시의 철학적 변주가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운동한 시집과, 양자역학 시리즈의 놀라운 진지함을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느껴진다. 디스크 등으로 막걸리를 멀리한 것이 벌써 일 년이 넘었다 하니 이 시점에서 혹 그의 에너지원은 진정 막걸리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또 한 권의 평론집을 준비 중이라는데. 과연 그의 정신주의적인 ‘결벽’이 그를 그토록 일로 몰아붙였다는 나의 진단이 맞기는 하냐는 질문은 책 출간 뒤로 미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