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갈라 공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나이에 큰 상을 받은 만큼 더
감사히 여기고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17
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열린 '2016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시상식에서
올해 최고 남성 무용수로 김기민(24)의 이름이 불렸다. 브누아 드 라 당스는 1991년 국제무용협회
러시아 본부가 제정해 매년
최고의 남녀 무용수와 안무가를 선정하는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다.
국내에서는 강수진 국립발레단장(1999년)과 김주원 성신여대
교수(2006년)가 각각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다. 남성 무용수로는 김기민이 최초다.
수
상자로 호명되자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트로피를 받고는 러시아어로 "이 상은 저에게 큰 의미"
라며 "감사하다"고
간단히 소감을 밝혔다. 김기민에게 상을 안긴 작품은 지난해 말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공연한 '라 바야데르'. 무희 니키야와
전사 솔로르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솔로르 역을 맡아 뛰어난
기량과 깊이 있는 예술성을 표현해냈다.
행사 직전 만난 김기민은 "제 나이에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나머지 후보는
대부분 30대였다. 강수진 단장과 김주원 교수도 각각 32세, 28세에 수상한 바 있다.
그
의 이름 앞에는 자주 '최연소'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어릴 때부터 '발레 신동'으로 일컬어진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영재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입학했다. 2009년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지크프리트
왕자 역을 맡아 국내 전문
발레단 역사상 최연소(17세) 주역으로 기록됐고, 2011년 동양인 남성 최초로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발레단은 볼쇼이발레단과 함께 러시아
고전 발레를 대표하며 세계적으로도 최정상급이다. 자국민을
선호하는 '순혈주의'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단원
180여 명 중 외국인은 3명, 동양인은 김기민뿐이다. 그는 입단 4년 만인
지난해 수석 무용수로 승급했다.
"발레가 원래 서양 무용이다 보니 동양인인 제가 무대에 등장하면 어색하게 여기는 관객이 많아요.
그런 고정관념을 뛰어넘으려면 월등히 잘해야 합니다. 계속 연습하고 체력 관리하고, 맡은 역할을 어떻게
소화할지 연구하고 있어요."
그는 학창 시절 마린스키발레단 입단을 목표로 노력 해왔다고 한다. 10여 년 만에 입단은 물론 수석 무용수가
되었고, 세계적 무용수로 인정받았다. 한국 발레리노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청년의 다음 목표는 무얼까.
"
더 많은 관객에게 아름다운 발레를 소개하고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구체적 목표보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실 저한테는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에요. 같은 작품이라도 무용수마다 해석이 다양하고 감동의
깊이도 다르거든요. 한국 발레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1일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라 바야데르'에서 점프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김기민씨. [사진=뉴욕타임스 캡처]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서 뉴요커들에 첫선
"센세이션에 또 센세이션…" 뉴욕타임스도 극찬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연습했다 그게 비결"
창단 75주년을 맞은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가 지난 1일 새롭게 역사를 썼다.
발레 '라 바야데르(La Bayadere)' 무대의 두 주인공이 모두 한인 무용수들이었던 것. 한 명은 ABT 소속인
서희씨였고 다른 한 명은 뉴요커들에게는 생소했던 한인 발레리노 김기민(22.사진)씨였다. 그는 동양인 발레리노
최초로 2011년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데 이어 최근 4월에는 동양인 발레리노 최초로 마린스키
수석무용수가 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번 공연에서 주인공 '솔로르'를 연기하며 그는 공식적으로 뉴욕 발레계에 얼굴을 알렸다. 반응은 상당하다.
뉴욕타임스는 "센세이션에 센세이션을 거듭했다"며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랄 만한 점프에 턴도 훌륭하고 귀족적
자태를 뽐낸다"고 호평했다. ABT 측도 "여기저기에서 (그의 연기를 보고) 많이 놀랐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제 매 시즌 뉴욕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1일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선 김기민의 '솔로르'는 힘 있고 기품 있는 전사였다.
명령은 단호하게 사랑은 열정적으로 점프는 편안하게 턴은 박력있게 하는 솔로르다. 첫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이제 두 번째이자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는 김씨를 10일 만났다.
-소감이 어떤가.
"기분이 정말 좋았고 어렸을 때 ABT발레단 영상을 많이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스타들이 섰던 무대에 나도
섰다는 게 많이 기뻤고 감명 깊었다."
-ABT와의 작업은 어땠나.
"이 발레단의 자유로운 매력에 많이 빠졌고 반했다. 관객들의 자유로움 무용수들의 자유로움에 푹 빠졌고 다시
오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러시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물론 나라만의 스타일이 다른데 여기(ABT)는 테크닉이 정말 뛰어나다. 기가 막히다. 저희(마린스키)의 경우
여기보다 실수를 더 할 순 있어도 캐릭터 분석을 더 잘 하는 것 같다.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도 중요시하는 게
러시아의 특징이다."
-동양인 최초 한인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데.
"동양인이 작품을 해석하는 건 공부하면 되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을지 몰라도 동양인이라 '힘든' 건 있다.
무대에 섰는데 모두가 금발이고 혼자 흑발이면 힘든 거다. 그래서 동양인은 잘하면 성공 못한다. 엄~청 잘해야
성공한다. 튀어야 한다. 옆에 있는 금발 무용수가 백인 무용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튀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이
연습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사실 김기민의 '솔로르'는 이미 작품의 안무가 마카로바에게도 인정 받은 연기다. 러시아에서 김기민의 연기를 본
그는 "너의 테크닉 뿐만 아니라 제스처나 마임 하나하나만 보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고의 극찬이다.
-캐릭터 연기하는 것에 얼마나 공을 들이나.
"제일 많이 한다. 사실 무대에서 넘어졌어도 후회는 없었을 거다. 그날(ABT 첫 공연)은 안 그랬지만 전에 많이
넘어지기도 했고. 나는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줬는지를 가장 중요시하는 편이다. 연기와
더불어 그 역할의 이미지를 어떻게 소화했느냐에 초점을 더 맞춘다. 사실 이 작품을 통해서 많이 성장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보기에 나의 이미지와 캐릭터가 잘 맞다고 평해주셔서 더 흥미가 생겼고 더 공부했고 음악도 많이 들었다."
-감정 연기 못지 않게 뛰어난 기술도 화제인데.
"사실 점프의 경우 좋은 선생님께 배워서 참 감사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냥' 점프하는 것이다.
점프마다 항상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하고 점프와 더불어 감정을 많이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다.
또 관객들이 보기 편하게 뛰려고도 한다. 숨이 뻥 뚫리게."
-발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발레랑 올림픽을 비교한다면 가장 큰 차이는 점수를 매기느냐 안 매기느냐다. 발레는 실수를 안 했다고 공연을
성공적으로 한 게 아니라 역할을 얼마나 소화했느냐가 중요하다. 넘어졌어도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에게 캐릭터의
느낌을 어떻게 전달했느냐가 중요하다."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더 보여주고 싶거나 잘해 보고 싶은지.
"잘 하려고 하다 보면 항상 실수가 일어난다. 물론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고 싶긴 하다. 제스처할 때 흥분해서
다른 제스처를 했다든가 한 것. 두 번째 공연이 항상 더 힘들어서 긴장을 더 하려고 한다."
-발레리노의 수명이 긴 편은 아닌데 언제까지 춤 추고 싶은지.
"보통 발레리노들의 전성기는 30~35세라고 보는데 나는 무리가 없다면 40대까지 추고 싶다."
김기민씨와 서희씨가 주역으로 나서 연기하는 '라 바야데르'는 오늘(6일)이 마지막이다.
www.abt.org
출처: 이주사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