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 『우울한 귀향』
인간은 누구나 가끔 자신의 과거, 특히 젊은 날의 시간을 정리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가장 치열하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였지만 그렇기에 자신의 삶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의미를 지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1978년 발표된 이동하의 『우울한 귀향』도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추적한다. 그것은 개인적인 탐사일 수도 있지만 그 시대 한국에 살았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도 궤적을 같이하는 시간이었다. 1942년생인 작가와 같이 소년시절에 맞이했던 한국전쟁의 비극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한국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유독 1940년대 초반 출생 작가들의 소년시절에 대한 회고를 바탕으로 한 소설들이 많다. 그것은 엄청난 폭풍 속에서 영문도 모르고 무력해야만 했던 당시에 트라우마가 담겨있으며 통제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작품 속 인물 윤은 20대 대학생이다. 또한 나름 성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젊은 문학인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우울과 방황으로 점철되어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은 분명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관계는 항상 충돌하고 어긋나있는 듯하였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저토록 실없는 이야기들을 주절되며, 정말 입에서 신물이 나도록 주절대며 이 하오를 보내고 있는가, 일어서야지 일어서서 어디로든지 류적류적 가야지” 결국 그는 가장 가까운 여성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기고 고향으로 떠난다. “이곳은 너무 추워. 지독히 춥단 말이야. 그래서 지꾸만 웅크리게 된단 말이야. 도저히 배겨낼 수 없을 것 같아. 올핸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들어. 불안해, 이렇게 맥없이 떨고만 있을 순 없지 않아? 그래 고향 생각을 했지. 거긴 친구가 있거든.”
어린 시절 순수한 관계를 가졌던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한 치유, 도시적 불모성을 극복하기 위한 윤의 시도는 처음부터 낯설은 기분으로 시작된다. 분명 회복과 변화를 위해 왔지만 그가 만난 고향은 외형적 변화와 함께 더 이상 그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는 장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시방 귀향했지만 가지고 온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저 고향마을의 많은 골목과 학교 또 저 등 뒤의 역까지도 나와하고 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나는 추위에 떨면서 중얼댔다. 단지 돌아보기 위해서 왔을 뿐이다. 뒤를 돌아보기 위해서 왔을 뿐이다.” 윤에게 각인된 공허의 실체는 그가 자신의 어린 시설을 글로 옮기면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것은 시대의 아픔에 무력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적 모습이었다.
소설은 두 가지 다른 상황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저자의 내면을 추적한다. 하나는 윤이 기록하고 있는 어린시절의 기억, 다른 하나는 그가 도시에서 겪었던 관계의 혼돈이 병행적으로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현재의 윤이 겪고있는 혼란과 불안의 근본적 원인이 과거 소년시절 고향에서 겪었던 상처에서 기인되고 있음을 추정하게 만든다. 과거는 내가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내면 속으로 숨어들어와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더구나 그 기억이 어린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처절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결말이 났다면 그것은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진실인 것이다.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평화롭던 마을은 몇 번의 충돌과 좌우익의 대립이 가져온 상황에서 결국은 끔찍한 살인으로 마무리된다. 그 사이에 한국전쟁은 터지고 사람들의 일상적 관계는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 와중에 어린 시절 친구들 또한 서로의 원수가 되는 관계로 전환되기도 한다. 비록 아이들은 그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없었지만 어른들이 만든 비극적 관계는 아이들의 사이마저 소원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상처는 고향땅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대립되는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거나 출가를 통해서 고향을 탈출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제 고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무너지고 파괴된 관계의 실체이며,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의 흔적뿐이었던 것이다.
윤은 도시의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향으로 갔고 현재를 이겨내기 위해 과거를 극복하려는 작업을 시도했지만 결코 그것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나의 젊음은 이미 찌든 것이지만, 그래도 가장 적은, 그러나 내가 진실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을 하나쯤은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야만 할 것이었다. 이 ‘우울한 귀향’에서 말이다.” 그는 귀향을 통해 변화를 꿈꿨지만 확인한 것은 다만 우울한 귀향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귀향했지만 고향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내 가슴 속에 창백하게 남아있을 뿐인 것이다.”
결국 윤은 고향에서 기대한 어떤 안정도 찾지 못했으며, 도시에서의 관계회복도 달성하지 못했다. 삶의 근본적 부활에 대한 시도는 과거의 상처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과 현재 무너져버린 관계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고향을 완전히 잊는 것뿐이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지만, 그 목소리는 어쩐지 쓸쓸하다. 다만 현실의 삶을 위해 과거를 지우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느껴느껴 울었다. 그러면서 가슴 한구석이 허허하게 트여옴을 느꼈다. 그것은 참으로 황량한 느낌이었지만 저리도록 고독한 자작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마을을 떠나 버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작가에게 젊음은 고통스럽지만 달콤한 추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망각해야할 부정적 시간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의미있는 사람들과의 기억이 응축되어 있으며 현재의 자신을 만든 수많은 사건이 축적되어 있는 시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편안하게 회고적으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될 수 없었다. 버릴 수 없지만 구태여 기억하고도 싶지 않은 과거의 나의 모습인 것이다. 저자의 과거찾기는 그런 점에서 쓸쓸하다. 기대를 갖고 접근했음에도 결국 나에게 준 기억의 파편은 치유하기 어려운 시대적 아픔이며 시간의 경과 속에서 희미해질 역사의 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아픔이 과거의 기억에 대한 침묵을 선택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존재의 기억이 파편화되는 슬픈 현장이며 역사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인간의 절망적 고백이다. “나는 이 진저리나는 젊음이, 얻을 것도 간직할 것도 없는 이 허망한 젊음이 내게서 빨리 떠나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신음하듯 뇌까렸다. 그러면 적어도 더 이상 헤멜 일은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