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길림 천양 마씨 왕생기
나의 아버지는 형제 가운데 둘째였고, 어머니는 별명이 ‘이선인(二善人)’이었는데, 글은 모르셨지만 평생 오로지 명호만을 부르셨다.
1950년대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었다. 그때 명옥령 선생은 우리 집에 자주 와서 어머니와 함께 불법을 이야기하곤 하였다. 나는 몰래 문틈에 엎드려 두 분이 하는 말을 엿들었는데, 말법 시대에는 사람들이 재난을 겪게 되어 밥은 있어도 먹을 사람이 없고, 아무리 멀리 가도 사람 그림자조차 보기 어려우며, 오직 염불만이 살길이라고 하였다.
나는 ‘가정 성분이 좋지 않은’ 집안 출신이었다. 조상 대대로 큰 지주였기 때문에 이런 일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려서 철이 없던 나는 그것을 미신이라 여겨, 때때로 어머니와 다투기라도 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 건드리지 마세요. 자꾸 그러면 엄마를 미신 우두머리라고 신고해 버릴 거예요.”
그러면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야 신고당해도 두렵지 않다만, 괜히 남까지 해치지는 말아라.”
그분들은 늘 함께 모여 불법을 이야기하곤 하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자주 듣다 보니 어느새 나 역시 불법을 믿게 되었다.
1966년, 어머니는 왕생하시기 사흘 전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이제 죽게 되는구나. 서방으로 가서 부처님의 광명을 뵈니, 관음노모께서 고향에 계시는구나.”
왕생하시던 날 오전에는 큰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내신 뒤, 돌아와 점심을 지으셨다. 오후에는 나에게 『어떻게 염불할 것인가』를 읽어 달라고 하셨고, 저녁에는 다시 밥을 짓고 우리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며 집안일도 하나하나 당부하셨다. 그러고는 염불 횟수를 적어 두던 공책을 꺼내셨다.
내가 말했다.
“어머니, 무슨 장부까지 쓰세요?”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마치 가래가 한 번 올라오는 듯하더니 숨을 세 번 들이쉬고는 그대로 떠나셨다.
(길림 천양(泉陽) 마춘아(馬春雅) 구술 · 석정종 기록, 2002년 7월)
생각건대:
사람 죽어 서방에 가니 부처님 광명 뵈오니
관음노모 고향에 계시네
염라대왕 생사부를 들춰볼 필요 없이
스스로 염불 장부를 펼쳐 보이네
첫댓글 수희찬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합장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일향전칭(一向專稱)일향전념(一向專念)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念佛真好)
수희찬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말법시대에는
오직 염불만이 살길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수희찬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종교의 자유가 없던 시절에도 염불만이 살길이라며 집지명호하신 이선인 연우님 수희찬탄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