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 생가 터
주소 인천시 강화군 월곶리 대금동 교구 인천교구
■ 찾아가는 길
강화 읍내에서 강화 경찰서 방향으로 난 큰길을 따라 2km쯤 가면 강화 농협 창고가 있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 길로 접어들어 700m쯤 가다가 다시 우측으로 700m쯤 들어가면 황씨 문중 사당에 당도한다.
1801년 신유박해의 상황을 적은 백서(帛書)의 주인공 황사영 알렉산데르의 생가 터는 갑곶 돈대, 관청리 형방과 함께 강화를 방문한 순례자들이 꼭 한번 들러야 하는 곳이다.
강화읍 월곶리 대금동에 위치한 생가 터는 강화 터미널 뒤편 강화 경찰서를 지나 걸어서 30분 남짓이면 도착한다. 생가 터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하고 거기가 거기 같은지라 찾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
생가 터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넘는 언덕 위에 서면 멀리 아련하게 산들이 내다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먼 산이 북녘 땅이다. 먼 시간의 간격을 넘어 신앙의 선조와 만나는 자리이지만 가깝고도 먼 북한 땅의 형제들은 역사의 시간보다도 오히려 먼 듯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그쯤에서 아직은 깨끗하고 효험 있는 물을 자랑하는 '뺄우물' 또는 '빼루물'을 찾아 목을 축이고 바로 옆에 서 있는 집 문을 두드리면 친절하게 순례자들을 맞는 신자 부부를 만날 수 있다.
황사영은 그의 선조 10여 대가 판서 벼슬을 지낸 명문가 태생으로 부친 황석범 역시 진사 시험에 합격돼 한림 학사로 있었다. 하지만 황석범은 1774년 병사하고 사영은 유복자로 태어나게 됐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불릴만큼 영리해 1791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진사에 합격해 정조(正祖)는 그를 친히 궁으로 불러 손목을 어루만지며 치하했다. 그래서 그는 국왕이 만진 손목에 풍속에 따라 붉은 비단을 감고 다니기도 했다.
황사영은 당대의 석학들을 만나 학문을 넓히던 중 다산 정약용 일가를 만나고 마침내 정약현의 사위가 된다. 처가인 마재 정씨 집안으로부터 천주교의 교리에 대해 전해 들은 황사영은 그 오묘한 진리에 깊이 매료되어 입교를 청하게 되고 중국인 주문모 신부에게 알렉산데르라는 본명으로 영세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활짝 열려 있던 출세길을 마다하고 주 신부를 도와 전교에 전력했으며 그와 함께 동숙하며 전교길에 올랐다.
그 후 10년 후인 1801년, 전국에는 신유박해의 모진 회오리가 몰아친다. 주문모 신부가 순교하고 이승훈, 정약종 등 조선 교회의 핵심 지도자들이 순교한다. 황사영 역시 몸을 피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충북 배론에 있는 토굴에 몸을 숨긴다.
조정에서는 그를 서학의 주요 지도자로 간주했고 박해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김 대왕 대비는 특별히 그를 10일 내 시한부로 잡아들이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조선 교회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를 지켜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리던 황사영은 마침내 조선의 상황을 북경 교회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백서를 썼다. 가로 38센티미터, 세로 62센티미터의 흰 명주천에 깨알 같은 글씨로 한줄에 1백10여 자씩, 1백21행, 모두 1만 3천3백11자를 써서 교회에 대한 박해와 앞으로의 전교를 위한 근본 대책 등을 적었던 것이다.
이렇게 쓰여진 백서는 같은 해 10월 동지사 편으로 북경 주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밀서를 지니고 가던 황심(黃沁)이 사전에 관헌에게 체포되고 황사영도 역시 관헌에게 붙잡힌다.
그는 즉시 의금부에 끌려가고 그가 쓴 백서는 조정으로 알려진다. 이를 받아 읽은 조정 대신과 임금은 크게 놀라 그를 극악 무도한 대역 죄인이라 하여 참수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시신을 여섯으로 토막내는 처참한 육시형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모친은 거제도로, 부인인 정 마리아는 제주도 모슬포 대정골로, 그의 두 살배기 아들 황경헌(黃景憲)은 추자도로 가는 비운을 맞게 된다.
황사영의 탄생지이자 소년 시절을 보낸 대금동 마을은 대대로 창원 황씨의 세도가 크게 떨치던 곳으로 말끔하게 단장돼 서있는 황씨 문중 사당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바로 그 문중 사당 옆에 황사영의 생가 터가 남아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사당 옆에 황사영의 생가는 흔적도 없고 다만 길게 자란 잡초와 갈대 사이로 약간의 공터만이 그 자취를 짐작케 해준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