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 자녀들은 장성했습니다.
큰 녀석은 대학 2학년이고 둘째는 고3입니다.
그래서 이젠 아빠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곧바로 인터넷을 접속합니다.
컸으니까 당연한 행동이겠지만 어느 땐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엔 그야말로 미주알 고주알 많은 질문을 해대던 녀석들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럽습니다.
옛날에, 애들이 질문하면 단 하나라도 허투로 빠트리지 않고 꼭 귀 기울여 들었으며 애들의 눈높이에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꼭 메모해 두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자주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세상만사엔 다 때가 있는 법이란 것을 알게 될 게다"
살아보니 진리였습니다.
어느 날 문득, 아들이 또 질문했습니다.
이번엔 '소매치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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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대장, 아들의 질문이다.
녀석은 자신이 궁금한 점들을 끊임 없이 묻고 또 물어본다.
"아빠! 슈퍼 아저씨가 물건을 훔쳐가는 애들에게 '소매치기 하는 놈들'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소매치기란 말이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뜻같은데요, 어째서 소매치기가 도둑놈이란 뜻이됐죠?"
(아들의 왕성한 호기심은 단연 금메달감이다)
"아들아!
소매치기란 남의 물건을 훔쳐가는 나쁜 행동이나 사람을 일컫는 말이란다.
네 물건이 소중한 것처럼, 남들 물건도 그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하고 값진 것이므로 절대로 타인의 물건에 탐심을 내선 안 된다.
본디, 소매치기란 단어는 우리의 복식(의복)과 관계된 말이다.
현재 우리는 거의 다 서양식 의복을 입고 생활하지만, 옛날엔 우리 민족 모두가 한복을 입고 생활했지.
서양복식의 철학은 멋과 기능성의 구현이 첫번째였지.
바로 그런 컨셉들이 디자인의 시발점이었고.
대신 우리의 복식은 고매함과 단아함 그리고 품격이 매우 중요시 되었단다.
의생활도 아주 중차대한 예절과 법도의 일부로 삼아 늘 조신하게 처신해야만 했단다.
그리고 사람들이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늘 고민했던 문제중의 하나는
물건의 편리한 수납과 휴대에 대한 문제였단다.
특히, 서양복식에서는 돈이나 서류뭉치, 펜, 연장과 공구, 기타 여러가지 물건들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지니고 다닐 수 있을까하는 고민들을 많이 했지.
그래서 태어난 대표적인 작품들이 페인터 팬츠(주머니가 많이 달린 청바지 또는 면바지)나 오버롤 팬츠(일명 뽀빠이 바지)같이,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 포켓을 다 포함하여 포켓이 무려 십여개 이상이나 되는 옷들도 있단다.
그러나 우리 한복에서는 물건을 소지할 수 있는 호주머니(포켓)등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구조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돈과 서류및 간단한 용품들은 가슴과 배 부위에 넣고 다녔거나
제법 넉넉한 소매에 넣고 다녔지.
예나 지금이나 남의 물건을 훔치려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기는 마찬가지란다.
그래서 도둑놈들은 타인의 소매를 집중적으로 노렸고, 소매를 털어 돈이나 기타 물건들을 빼앗아 갔단다.
이제 긴 소매달린 옷을 입고 생활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낱말은 살아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단어지.
'소매치기'란 말은 그렇게 해서 태어난 말이야.
서양복식에서는 각종 용도의 호주머니(pocket)가 발달했는데, 그 안의 물건을 노리는 도둑놈들이 호주머니를 뜯거나, 따거나, 찌르거나(pick) 하여 물건을 훔쳐갔단다.
그래서 소매치기하는 나쁜 녀석들이 영어로는 pickpocket이 된 거란다"
"이해가 가니?"
"예, 아빠!"
"근데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녀석들은 그 긴 소매로 두 팔을 꽁꽁 묶어 버렸으면 좋겠어요. 요렇게 말이에요"
그러면서 녀석은 자기가 입고있던 스웨터 소매 끄트머리를 쭉 빼서 묶는 시늉을 했다.
"하하하"
"사랑하는 아들아!
남의 물건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소중하게 다룰줄 알아야 한다. 그게 배려의 시발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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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도 다 때가 있습니다.
현재 애들과의 대화는 "어째서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는 것일까?" 등등 시사적인 내용들, 인생의 진로에 대한 얘기들, 삶의 의미와 인생의 가치에 대한 생각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도전 등 다양한 대화들을 주고 받습니다.
이젠 더 이상 "왜 해남 땅끝마을에서 제주도까지 다리를 놓지 않죠?" 라거나 "독도를 일본에 주고 대마도를 차지하면 안 되나요?" 같은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돈가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돈가스는 가스불에 튀겼기 때문에 붙혀진 이름이죠?" 같은 질문도 하지 않습니다.
혹여,
지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아이를 두고 있는 부모라면 애들과 재미난 대화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왕성한 호기심을 꺽지 말고 늘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질문과 얘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세월은 금방 흐릅니다.
나중엔 그런 대화를 하고 싶어도 애들은 아빠나 엄마보다 인터넷으로 먼저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이라도 메모하면서 애들과의 대화를 다정다감하게 이끌어간다면 가정 전체에 매우 유익하고 살가운 대화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회사나 집안 살림에 바쁘고, 사업에 바쁠지라도 식구간의 대화보다 더 중요하고 긴요한 건 없지 싶습니다.
세월은 쏜살보다 더 빠르게 흐를 것입니다.
지금 어린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은, 지금은 신이 허락하신 '가족간의 사랑과 신뢰의 고속도로를 만들 수 있는 최적기'란 것을 잊지 마시고 꼭 삶에 적용해 보실 것을 권면합니다.
애들도 크고 부모도 나이가 들어 그때 본격적인 대화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면 아마도 그 땐 너무 늦어버린 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