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과 인연을 맺은 건 당연히 수원시민학교가 교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부터이다.
그후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교동에 있는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시민학교 수업이 끝나면 만나서 집까지 태워서 가곤했다.
지금은 아들 대신 딸이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교동에 더 자주 오게되었다.
햇수로 6년을 매주 몇 번씩 다녔어도 밤에만 수업 때문에, 혹은 자녀를 데리러 오는 목적으로만 다녔기에 교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근래에 아들이 '동천홍(东天红)'이란 중국집을 소개해 주어서 교동에 관한 한 가지를 알게되었다. 이곳은 삼선짬뽕이 기가 막히다. 평소 매운 짬뽕을 맛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나로서는 '여기도 매운 짬뽕 이겠지' 라고 생각해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맵지 않고 시원한 감칠맛이 난다. 사장님이 화교인 것 같고, 내 예상에 이집 맛의 비결은 홀 이곳저곳에 쌓여있는 '치킨스톡'에 있지 않을까싶다.
오늘 아침 딸을 미술학원에 내려다주고 아내와 '수원가족여성회관' 뒷길로 들어섰다.
여성회관과 '안점순 기억의 방'은 일제시대 건물의 특징이 있다. 기억의 방은 확실히 일제의 잔재이다. 이곳을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안점순의 기념관으로 삼은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겠다.
그 옆의 여성회관은 한국전쟁후 지은 수원시청 청사인데, 해방후 지었으나 일본식 건물이다.
여성회관 바로 뒤 골목에 구'부국원'이 있다.
일본의 농업회사 건물이었는데 올해로 딱 백년이 되었단다. 해방후 수원 법원. 검찰청으로 쓰이다가, 공화당사, 병원, 인쇄소 였다가 지금은 전시장이 되었다.
안에 들어가보니 쌀, 보리, 옥수수 육종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었다. 70년대 초에 만들었다는 '유신쌀'에 눈이 간다. 박정희의 종신대통령을 위해 만든 '유신헌법', 거기에 아부하기 위해 '유신쌀'이란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박정희는 분명히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따서 '유신'이라고 했을텐데, 보는 내가 다 부끄럽다.
부국원에서 조금만 더 가면 '성공회 수원교회'가 나온다. 1906년 부터 이곳에 자리잡았다고한다. 하지만 옛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회는 수원의 교육과 복지를 위해 오랫동안 힘써왔다.
교회입구에 흥미로운 비석이 보인다.
한자로 '노라수녀('로라'로추정)','이사수녀('리사'로 추정)라고 새겨져있다. 이곳에 봉직했던 수녀님의 '비'인가보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기독교 장로회 수원교회'가 나온다. 1955년에 지은 '돌교회'가 단아하다. 장준하, 문익환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장로회는 우리 나라 민주화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교회도 수원지역 민주화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한다.
그저 큰길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봤을 뿐이지만, 수원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짧은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