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24
부끄러워 얼굴을 가린 가리산 산신
<아이 부끄러워라, 여신의 얼굴 가림>
“아이 부끄러워라.”
가리산 산신이 한 말이다. 가리산 산신은 여신(女神)이라 부끄럼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가리산은 동서남북 어디서 보더라도 봉우리가 두 개만 보인다. 봉우리 하나는 항상 가려 있다. 그래서 산 이름이 ‘가리산’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가리산 산신의 싸움과 결혼>
사람이 죽어 산신이 된 이야기는 이미 우리의 조상이신 단군(檀君) 이야기에 나온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이 죽어 산신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비운에 죽은 단종(端宗)도 태백산의 산신이 되었다. 동해안에서 지내는 산멕이는 모두 산신이 된 조상신을 멕이[먹이다]는 제사이다. 산소(山所, 뫼)가 생긴 유래이기도 하다. 그렇듯 산신 이야기는 대부분 사람이 죽어서 된다. 산신의 형상이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이유도 늙어 죽어서 산으로 간 이미지가 깔려 있다.
그런데 산신은 총각신도 있고 처녀신도 있다. 춘천시 북산면 물로리에 있는 가리산의 산신은 처녀가 죽어 산신이 된 사례이다. 『강원의 전설2』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옛날 어느 날 높은 벼슬을 한 양반집 외동딸이 처녀로 죽었다, 억울한 처녀는 조상들을 찾아가서 산신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자 조상신들은 처녀를 가리산 산신이 되게 했다. 가리산 산신이 된 처녀는 열심히 산을 보살펴서 산에 있는 풀이며 산짐승을 행복하게 살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리산 밑에 살던 총각이 죽었다. 총각도 억울해서 조상신을 찾아가 하소연하자 가리산을 다스리는 산신이 되라고 했다. 그러나 총각신이 와보니 이미 가리산을 다스리는 처녀신이 있었다. 두 신은 서로 산을 다스리겠다고 싸웠다. 산은 황폐해졌다. 그러자 쳐녀신은 총각신에게 결혼하여 같이 다스리자고 제의했다. 총각신은 흔쾌히 응했고, 둘은 결혼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총각신은 말을 타고 앞서고, 처녀신은 가마를 따고 뒤따르다가 처녀신이 말했다.
“이왕 나서신 길, 당신은 그대로 구멍동[가리산 옆에 있는 작은 봉우리]으로 넘어가십시오. 저는 이쪽 가리산 골짜기로 내려가겠습니다.”
그래서 구멍동은 총각 산신이 다스리고, 가리산은 처녀 산신이 다스리게 되었다. 두 신은 일 년에 한 번씩 만난다고 한다.
<가리산 봉우리에 얽힌 또 다른 사연>
가리산에는 산신이야기 말고도, 큰바위 얼굴, 연리지, 한천자 무덤 등의 이야기도 있다. 한천자 무덤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고, 오늘은 큰바위얼굴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가리산 2봉에 얽힌 이야기이다. 큰바위얼굴은 정말 사람의 얼굴 모양처럼 생겼다.
옛날 조선조 때 한 청년이 가리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기르며 과거시험 공부를 했고, 과거에 급제해서 판서 벼슬까지 했다. 그 후 가리산 2봉은 점차 사람 얼굴 모양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큰바위얼굴이라 불렀다. 그 후 이 소문을 들은 많은 선비가 이곳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며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했고, 높은 벼슬을 했다. 요즘은 대학 수능시험을 앞둔 학부형들과 각종 시험을 치를 사람들이 와서 기도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렇게 시험에 합격하는 일도 기리산 여신의 보살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