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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18.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늙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늙음이 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병들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죽기마련이면서 죽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슬퍼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내게는 지와 견이 생겼다.(*1)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2)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고."
19.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3)
'내가 증득한 이 법은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수승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4)
그러나 사람들은 집착을 좋아하고(*5)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을 즐긴다.
집착을 좋아하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런 경지,
즉 ‘이것에게 조건이 됨’인 연기(*6)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모든 형성된 것들의 가라앉음(*7) 모든 재생의 근거(*8)를 완전히 놓아버림,
갈애의 멸진, 탐욕의 빛바램, 소멸,(*9) 열반(*10)을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설혹 내가 법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저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를 피로하게 만들 뿐이고 나를 성가시게 할뿐이다.'
그때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게송이 즉흥적으로 떠올랐다.
'내가 어렵게 증득한 법을(*11)
과연 설할 필요가 있을까?
탐욕과 성냄으로 가득한 자들이
이 법을 깨닫기란 실로 어렵다.
흐름을 거스르고(*12) 미묘하고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세하여
어둠의 무더기에 덮여 있고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한다.'(*1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숙고할 때
내 마음은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14)으로 기울었다."
(*1) “‘지와 견이 생겼다.’는 것은 모든 법들을 볼 수 있는 능력과 일체지(一切智)가 생겼다는 말이다.”(MA.ⅱ174)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 지와 견이 생겼다.’는 것은 반조의 지혜이다.”(AA.ⅱ.348) : DA.ⅰ.220)
(*2)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는 것은 아라한과의 해탈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확고부동하고,
또한 흔들리지 않는 대상 때문에 확고부동하다. 왜냐하면 이 해탈은 탐욕 등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열반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확고부동하다는 말이다.”(MA.ⅱ174)
(*3) 주석서는, 이 일화는 깨달음을 이루신 뒤 8번째 칠일에
염소치기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있었던 것이라고 적고 있다.(SA.ⅰ.195)
수자타가 고행을 그만두신 세존께 우유죽 공양을 올린 곳이
바로 이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였다고 한다. (J.ⅰ.16, 69)
한편 주석서(MA.ⅱ.181~186)는 세존께서 깨달음을 증득하신 뒤
초전법륜을 결심하시기 전의 7*7=49일 동안에 하셨던 일을 자세하게 적고 있다.
그것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는 깔라 용왕의 거처가 있는 만제리까라는 숲에서 깨달으셨는데,
① 첫 번째 칠 일은 깨달은 바로 그 장소에서 가부좌한 하나의 자세로 좌정하고 계셨다.
② 두 번째 칠 일은 깨달음을 증득하신 바로 그 자리와 그 나무를 눈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면서 보내셨다.
③ 세 번째 칠 일은 그곳 가까이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포행을 하시면서 보내셨다.
④ 네 번째 칠 일은 신들에게 논장(論藏, Abhidhamma-piṭaka)을 자세하게 설하셨다.
⑤ 다섯 번째 칠 일은 보리수 아래로부터 염소치기 니그로다 나무 아래로 가셔서
아비담마에 대한 조직적인 도(naya-magga)를 명상하셨다.
⑥ 여섯 번째 칠 일은 무짤린다 나무아래서 머무셨다.
⑦ 일곱 번째 칠 일은 왕의 처소(Rājāyantana)라 불리는 나무아래서 머무셨다.
이렇게 칠 일을 보내신 뒤 여덞 번째 칠 일에는 다시 염소치기 니그로다 나무 아래로 가셔서
본 경의 이 부분과 『상윳따니까야』 제1권 「권청 경」(S6:1)에 나타나는 전법을 주저하는 사유를 하셨고,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께서 이 세상에 법을 설해주시기를 간청하게 된다.
(*4) “‘내가 증득한 이 법’이란 통찰한 사성제의 법을 말한다.
‘심오하다’는 것은 밝게 드러난 상태와 반대되는 말이다.
‘보기 어렵다’라는 것은 심오하기 때문에 보기 어렵다. 쉽게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깨닫기 어렵다’라는 것은 보기 어렵기 때문에 깨닫기 어렵다. 쉽게 깨달을 수 없다는 말이다.
‘고요하다’는 것은 가라앉았다는 말이고,
‘수승하다’는 것은 괴로움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인데, 이 둘은 오직 출세간과 관련하여 한 말이다.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것은 사유로써는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지혜로써만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미묘하다’는 것은 미세하다는 말이고,
‘현자만이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바른 도닦음으로 수행한 현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MA.ⅱ.174)
(*5) “‘집착을 좋아하고(ālaya-tatā)’에서 집착은 ālaya를 옮긴 것이다.
중생들은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집착하기 때문에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을 ‘집착(ālaya)’이라 부른다.
그 집착과 함께 좋아하기 때문에 집착을 좋아하고 라고 하셨다.”(MA.ⅱ.174)
(*6) ‘이것에게 조건이 됨[此緣性, idappaccayatā]과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는 동일한 뜻을 가진 다른 표현이다.
연기란 조건 짓는 법들(paccaya-dhammā)을 말한다.
즉 ’태어남을 조건하여 늙음·죽음이 있다.‘라는 연기 구문에서는
’태어남‘이 바로 연기이고, 조건 짓는 법이고, 이것(imesaṃ)에게 조건이 됨(paccayā)이다.
즉 늙음·죽음에게 태어남은 조건이 됨이다.
대신 여기서 늙음·죽음은 조건 따라 생긴 법(paṭicca-samuppanna-dhamma)이라 부르지 緣起라고 부르지 않는다.
(*7) “이 이하의 표현들은 모두 열반을 지칭한다.
열반에 이르러서는 모든 형성된 것들의 동요가 가라앉고 고요해지기 때문에
열반을 ’모든 형성된 것들의 가라앉음‘이라 부른다.”(SA.ⅱ.175)
(*8) “‘재생의 근거(upadhi)’라 했다.
여기에 괴로움이 놓이기 때문에 우빠디((upadhi 재생의 근거)라고 한다.
즉 무더기(蘊) 등을 말한다.(DAT.ⅱ175)
(*9) “‘소멸(nirodha)’이라고 하셨다. 모든 재생의 근거들이 완전히 놓아졌고, 모든 갈애들이 멸진되었고,
모든 오염원에 대한 탐욕(kilesa-rāgā)이 빛바랬고, 모든 괴로움이 소멸되었다.
그래서 ‘모든 재생의 근거를 완전히 놓아버림, 갈애의 멸진, 탐욕의 빛바램, 소멸’이라고 하셨다.(SA.ⅱ.175)
(*10) ‘열반’의 범어는 nibbāna(Sk, nirvāna)인데 이것은 접두어 nis와 vāna로 분해가 된다.
여기서 vāna를 숲을 뜻하는 vana의 곡용형으로 간주하여 숲으로 뒤덮인 곳(즉 밀림, jungle)을 뜻하며 (PED)
주석서에서는 이것을 갈애의 밀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주석서는 nibbāa(열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갈애(taṇhā)는 각각의 존재로써 다른 존재를(bhavena bhavaṃ) 얽히게 하거나
혹은 결과와 함께 업(kamma)을 엮기 때문에 vāna(갈애, 밀림)라고 부른다.
이런 와나에서 벗어남(vānato nikkhantaṃ)이 nibbāna(열반)이다.”(MA.ⅱ.175)
“결과와 함께 업을 엮는다는 것은 갈애를 가진 자는 미래에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DAT.ⅱ.77)
(*11) ‘어렵게 증득한(kicchena adhigataṃ)’이라고 하셨다.
주석서에 따르면 부처님들께서는 도닦음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부처님들은 네 가지 도를 쉽게 얻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라밀을 완성하실 때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휩싸인 자들이 보살이 얻은 것을 요구할 때
머리를 베고 목에 피를 뽑고 눈을 뽑고 아들과 부인을 주면서 얻은 도와 관련해서
‘내가 어렵게 증득한 법’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한다.(MA.ⅱ.175)
(*12) “‘흐름을 거스르고(paṭisota-gāmiṃ)’란 영원함 등의 흐름을 거스르는
무상, 고, 무아 부정의 이런 네 가지 진리의 법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MA.ⅱ.176)
(*13) “‘어둠의 무더기(tamo-khandha)’란 무명의 더미(avijjā-rāsi)를 말하고,
‘탐욕에 물들었다(rāgarattā)’는 것은 감각적 욕망의 탐욕(kāma-rāga)과 존재의 탐욕(bhava-rāga)과
사견의 탐욕(diṭṭhi-rāga)에 물들었다(rattā)는 말이다.”(MA.ⅱ.176)
(*14) “‘무관심(appossukkatā)’이란 관심이 없음이니 가르치고자 하지 않음을 뜻한다.(MA.ⅱ.176; SA.ⅰ.197)
그러면 왜 이와 같은 마음을 내셨을까? 주석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체지(sabbaññutā)를 얻고서 중생들의 오염원이 두꺼움과 법의 심오함을 반조해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관심으로 기울면 범천이 권청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생들은 범천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범천이 권청을 하면
중생들은 법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씩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MA.ⅱ.176~177; SA.ⅰ.197~198)
20.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1)은 그의 마음으로
내 마음의 일으킨 생각을 알고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여래‧아라한‧정등각자께서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마음을 기울이신다면
세상은 망할 것이고, 세상은 파멸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편 팔을 구부리듯이
그렇게 재빨리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나를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선서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듣지 않으면 타락할 것입니다.
그 법을 이해할만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때 묻은 자들이 궁리해낸(*2) 청정하지 못한 법이
전에 마가다에 나타났습니다.
불사의 문(*3)을 여소서.
때 없는 분이 깨달으신 법을 듣게 하소서.
마치 바위산 꼭대기에 서면
주변의 사람들을 두루 볼 수 있듯이
현자시여,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분이시여
그와 같이 법으로 충만한 궁전에 올라
슬픔을 제거한 분께서는
슬픔에 빠져있고 태어남과 늙음에 압도된
저들을 굽어 살피시오소서.
일어서소서. 영웅이시여, 전쟁에서 승리하신 분이시여
대상의 지도자이시여, 빚 없는 분이시여, 세상에 유행하소서.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법을 이해할만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21.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범천의 간청을 충분히 알고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부처의 눈[佛眼]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았다.
비구들이여, 나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중생들 가운데는 [눈에] 때가 엷게 낀 사람도 있고 두텁게 낀 사람도 있고,
기능이 예리한 사람도 있고(*4) 둔한 사람도 있고,
자질이 선량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가르치기 쉬운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저 세상과 비난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것도 보았다.
예를 들면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고 물에 잠겨 그 속에서만 자란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의 표면까지 나온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여 물 위로 올라와 당당하게 서서 물에 젖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나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중생들 가운데는 [눈에] 때가 엷게 낀 사람도 있고 두텁게 낀 사람도 있고,
기능이 예리한 사람도 있고 둔한 사람도 있고,
자질이 선량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가르치기 쉬운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저 세상과 비난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것도 보았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그대들에게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 자신의 믿음을 보여라.(*5)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을
피로해질 뿐이라는 생각에(*6)
사람들에게 설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나는 세존께 법을 설하시도록 기회를 제공했다.'라고 [생각하면서]
내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그곳에서 사라졌다."
22.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지자이시고 슬기롭고 현명하여 오랫동안 [눈에] 때가 엷게 낀 분이다.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는 이 법을 빨리 이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천신들은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칠 일 전에 임종했습니다."
그러자 내게도 '알라라 깔라마는 칠 일 전에 임종을 했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7)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크게 잃었구나!(*8)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즉시 이해했을 것이다."
23.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자이시고 슬기롭고 현명하며 랫동안 [눈에] 때가 엷게 낀 분이다.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는 이 법을 빨리 이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천신들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밤에 임종했습니다.'
그러자 내게도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밤에 임종을 했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크게 잃었구나!
그가 이 법을 들었다면 즉시 이해했을 것이다.'"
24.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용맹정진을 할 때 오비구(五比丘)(*9)들이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오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들은 이 법을 즉시 이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오비구는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天眼]으로
오비구가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1) “사함빠띠 범천(brahmā Sahampati)은
옛날 깟사빠 세존의 교단에서 사하까(Sahaka)라는 이름의 장로였다.
그가 초선을 증득하여 초선의 검의 수명을 가진 대범천으로 태어났다.
그곳에서 그를 사함빠띠 범천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해서 그는 사함빠띠 범천이라 불리었다.”(MA.ⅱ.177)
사함빠띠 범천은 본경에서 보듯이 이 세상에 불교가 시작되는데 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법의 바퀴를 굴리 것을 간청하는 자도 사함빠띠 범천이고
세존이 입멸하시자 맨 처음 게송을 읊은 자도 그다.
(*2) “‘때 묻은 자들이 궁리해낸(samalehi cintito)’이란
때가 있는 육사외도들이 궁리해낸 것을 말한다.(MA.ⅱ.178)
(*3) “‘불사의 문(amatassa dvāra)’이란
열반으로 향하는 문인 성스러운 도(ariya-magga)를 말한다.
탐욕 등의 때가 없는 정등각자께서 깨달으신 그 사성제의 법을
중생들로 하여금 듣게 해달라고 세존께 간청하는 것이다.”(MA.ⅱ.178)
(*4) “‘기능이 예리한(tikkh-indrya)’이란 것은
믿음, 정진 등 다섯 가지 기능[五根, pañc-indriya]이 예리한 것을 말하고,
‘자질이 선량하다(svākāra),’는 것은 믿음, 정진 등의 자질이
아름다운 것(sundarā)을 말한다.”(MA.ⅱ.181)
(*5) “‘믿음을 보여라(pamuñcantu saddhaṃ)’는 것은
불사(不死, amata)라고 불리는 열반의 문인 성스러운 도를 설했으니
이제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믿음(attana saddhā)을 보내라(pamuñcantu),
펴 보여라(vissajjentu)는 말씀이다.”(MA.ⅱ.181)
(*6) “‘피로해질 뿐이라는 생각 때문에(vihiṃsa-saññī)’라고 하셨다.
이것은 ‘내 몸과 입이 피로해질 뿐이라는 생각 때문에 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모든 사람들이 믿음의 그릇을 가지고 오라.
그들의 사유(saṅkappa)를 충족시켜 주리라.’는 말씀이다.”(MA.ⅱ.181)
(*7) “세존께서는 천신들이 소식을 알려주어 알고 계셨지만
스스로 일체지로 살펴보아 칠일 전에 여기서 임종하여 무소유처에 태어난 것을 보셨다.
그것을 두고 ‘지와 견이 일어났다’라고 한다.”(MA.ⅱ.186)
(*8) “칠 일만 더 살아있었더라면 얻어야 할 도와 과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칠 일 전에 임종함으로써 그가 잃은 것이 크다는 것이다.”(MA.ⅱ.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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