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요가
18장 | 그리스도 요가 (자유)
나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다. 스승과 나는 아침 식사 후 히말라야를 넘어서 칼림퐁까지여행을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 아침 나의 기분은 소년 시절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를 떠날 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휴일이면 나는 언제나 그곳으로 갔고, 학교로 돌아가야 할 날이 돌아오면 깊은 슬픔을 느끼곤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곳의 언덕, 헤더(역주: 히스 속의 작은 관목), 호수, 강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아침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스승에게 그런 나의 기분을 말했다.
모든 사람이 아침 식사를 위해 일어났다. 원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별 선물로 실크 스카프를 내 목에 둘러주었다. 그 스카프는 아주 얇아서 작은 봉투에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선물은 티베트인들에게 전통적인 것이었고,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모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원장으로부터 받을 때, 그것은 영원한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내일은 게쉬 린포체, 원장, 창타파를 제외하고 모두 오크 협곡을 떠날 예정이었다. 퉁라, 밀라파, 다르창은 하추 협곡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다르창은 얀탕 사원으로, 밀라파는 곤사카 사원으로, 퉁라는 타코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앞으로 오랜 시일동안 그런 아데프트들의 모임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늘 평소 식사하던 장소에 모여 앉아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 게쉬 린포체가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삶 속에서 한 번은 우리들 각자에게 잊지 못할 사건이 한 번쯤은 일어납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봉우리들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산과 같아서 우리는 그 사건을 항상 기억하게 됩니다. 세계의 지붕인 이곳 고적한 땅에서 우리 삶에 바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여러분들 모두 동의하실 겁니다.
“여기 내 사랑하는 아들이 거의 7 개월 동안 우리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곁을 막 떠나려합니다. 육신으로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으로 그와 같이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서의 그의 사역을 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일입니다. 짧은 시기 동안 우리는 두 번이나 모두 모였습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 각자의 장소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얻은 보다 큰 이해를 안고서 말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에게 그가 누구인지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 여러 시대에 우리와 함께 있었고, 이제 사역을 위해 필요한 혼의 체험을 가지고 돌아가려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서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별이 그나마 덜 애석합니다. 우리는 잠시 안녕을 고하는 것이니까요. 그는 우리의 사랑과 축복을 가져갑니다. 그리고 신의 사랑이 항상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모든 아데프트들에게 익숙한 축복의 사인을 한 뒤 앉았다. 모든 눈들이 나에게 쏠렸다. 그러자 내 주위를 감싸는 힘이 느껴졌다. 내가 일어나 말했다. “어떤 말로도 나의 가슴 속에 담긴 것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나는 진정한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사랑은 말을 넘어선 것을 말하며, 사랑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은 인간들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가슴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마음이 어떻게 조건화 되게 되는지. 거울처럼 우리의 관계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그 점을 편견 없이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인식을 통해 노력 없이 변성이 발생했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볼 때 그 사실이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진리입니다. 자아가 문제라는 것을 알 때, 그리고 그것의 진실성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숨으려고 애쓰지 않고 그 사실을 보았을 때 변성이 발생합니다. 그것만이 문제의 해결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진리를 인식하였을 때 마음은 고요해 지게 되고, 그 속에서 투쟁은 그치게 됩니다. 고요 속에서 실재-사랑은 존재합니다. 실재-사랑이 작동할 때 문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아는 녹아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단순한 사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해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재는 지금 존재합니다! 따라서 변성은 즉각적인 것입니다. 시간은 무시간적인 존재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지금인지 알고, 과거의 기억이나 낡은 것으로 새로움을 가리지 않고 순간순간 의식하게 되었을 때 새로움 역시 순간순간 거듭됩니다. 내가 과거로부터 해방되어 순간을 만날 때 이것은 바로 지금 가능합니다.
“제가 세상에 전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그것은 이미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마음에 더 많은 관념을 얹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념이 얼마나 거짓된 것이고 어떻게 우리를 구속하는 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관념은 진리를 드러낼 수 없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사랑은 즉각적입니다. 우리가 과거, 신조, 기억의 조건화를 이해할 때 사랑은 현현하고 문제들은 녹아사라집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면서 얻은 사랑과 지혜에 대해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거운 가슴으로 여러분을 떠납니다. 잘 아실 겁니다, 제가 얼마나 당신들과 함께 여기 머물고 싶어 하는 지.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내게 맡겨진 사역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사역을 당신들이 도와주실 거라는 걸 알기에 기쁩니다."
말을 마친 후 나는 축복의 사인으로 그들에게 인사했다. 이제 나는 내게 부과된 모든 시험들을 통과함으로써 그렇게 할 권리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 후 스승과 나는 길을 나섰다. 사람들이 모두 나와 발코니에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우리는 해가 떠오를 때 출발했다. 라마들이 "옴 마니 반메 훔"을 영창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사원 전체가 우리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그 날 아침의 일출은 특히 더 아름다웠다. 사랑스러운 산, 초몰하리. 아침저녁 얼마나 자주 바라보았던가. 초몰하리도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는 듯 보였다. 초몰하리가 반짝이는 보석처럼 일출의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파리 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많은 얼어붙은 개울 위를 가로질러 건넜다. 두 마리의 눈 표범들이 우리를 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벌판은 완전 황량했다. 야생 야크와 토끼들을 제외하고 수마일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초몰하리로부터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벌판을 휩쓸며 파리쪽으로 향했다. 여름에 이 벌판에는 풍성하게 핀 야생화들로 온통 울긋불긋했다. 하지만 오늘은 어찌나 다르던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파리로 들어설 무렵 우리는 야크와 나귀 행렬들을 만났다. 파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춥고 가장 불결한 곳이다. 수많은 거지들이 차가운 눈 속에 앉아 기도바퀴를 돌리며 한 푼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여자들은 한 겨울의 서리와 바람,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야크 피와 흙을 섞은 걸 얼굴에 발랐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막 바로 그것들에 노출되면 피부가 아주 욱신거렸다.
거리거리마다 수 세기동안 쌓인 쓰레기들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춥고 더러운 데서 개구쟁이들이 아랑곳 하지 않고 뛰놀고 있었다. 죽은 개들이 거리에 방치돼 있었지만 누구도 치우려 들지 않았다. 살아 있는 개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은 개 시체들을 뜯어 먹고 있었다.
우리는 오후 4시 경에 파리 방갈로에 도착하였다. 거기에는 많은 땔감이 있었기 때문에 불을 활활 지펴서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파리를 떠나게 되자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무척 행복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계란 프라이 토스트를 먹은 뒤 우리는, 16 마일 가량 떨어진 가우차로 향했다. 우리 뒤로는 초몰하리가 햇빛 속에 반짝이고 있었고, 앞에는 광대한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벌판 위에는 수 백 마리의 야크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눈 속을 파헤치고 있었다. 또 거기에는 여우와 산토끼들이 십 여 마리씩 무리지어 먹을거리를 찾고 있었다.
우리는 양모를 나르고 있는 야크와 나귀 행렬을 만났다. 그것은 보기 좋은 흔한 풍경이었다. 이곳의 길은 산허리로 난 오르막길로, 머리 위로 커다란 바위들이 울퉁불퉁 솟아 있었다.
우리는 한 다리를 건넌 후에 가우차에 도착했다. 그 다리는 두 부분, 즉 낡은 부분과 새로 만들어진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작은 마을에 나무로 지어진 집들이 있었다. 우리가 찾은 한 헛간에 많은 노새 마부들이 창(티베트 맥주)을 마시며 왁자지껄 놀고 있었다. 술에 취해도 티베트인들은 서로 흥겹게 잘 놀았다. 그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스승이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둘은 라마 승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성심껏 우리를 대해주었다. 그 큰 헛간에서 그들은 춤추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어떤 춤은 아주 격렬했다. 그들은 놀라운 속도로 빙빙 돌고 또 돌았다. 옷자락이 거의 날아갈 듯 했다. 그들은 잠도 자지 않고 이른 새벽까지 몇 시간동안 계속 춤을 추었다.
이른 아침, 길은 꽁꽁 얼어 있었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자 눈이 녹으며 진창길이 되었다. 우리는 아마추 강변을 따라 나 있는 길을 따라갔다. 아마추는 1만 5천 피트의 두 산 사이 계곡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물살이 제법 쌨다. 하지만 여름에는 산 속의 눈이 녹으면서 거친 급류가 되었다.
계곡 끝에 이르자 링마탕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는 거기서 그날 밤을 보낼 예정이었다. 나는 기뻤다. 왜냐하면 그곳 사원 원장이 우리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은 내가 게쉬 린포체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춤비 협곡으로 들어선 우리는 사원을 향해 갔다. 링마탕은 협곡 끝, 산협 입구에 위치해 있었다. 저 멀리 야퉁 마을이 보였다. 그곳은 히말라야 너머에 있는 첫 번째 티베트 마을이었다.
여기서 부르할이라는 야생 양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야생 곰들이 산 숲에서 내려와 농작물들을 망쳐놓기도 했다. 이곳 유목민들은 표범이나 늑대로부터 가축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티프 개들을 길렀다.
우리를 다시 만나게 되자 승원장은 무척 기뻐했다. 그가 우리에게 이틀 밤을 머물도록 극구 권하는 바람에 우리는 그렇게 했다. 이제 한 산맥만 넘으면 바깥 세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 전에 쉬면서 힘을 고를 수 있게 되어 우리는 기뻤다.
겨울이었음에도 춤비 협곡은 아름다웠다. 야퉁은 잘 사는 마을이었다. 아마추의 양쪽 강변을 따라 이곳저곳에 돌집들이 산재해 있었다.
거기 체류하는 동안, 나는 게쉬 린포체의 숙소에서 잠을 잤다. 거기 머무는 동안 내가 그의 숙소에서 자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푹 쉬고 든든히 먹어두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제펠령嶺을 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동절기에 나탈라를 지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는 이제 인도와 티베트의 경계를 이루는 히말라야 산맥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게쉬 린포체의 숙소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 고요히 앉아 있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게쉬 린포체의 영향이 느껴졌다. 나의 스승 역시 그런 영향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스승이 말했다. “평화는 투쟁의 부정이 아니야. 악을 무조건 부정한다고 해서 네가 고결해지는 것은 아니야. 추함을 부정한다고 해서 네가 아름다워지니? 대대待對의 추구는 결코 평화적인 것도, 덕스러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니야. 왜냐하면 대대는 항상 투쟁 속에 있기 때문이지. 어떤 것에 대한 부정 그 자체가 투쟁을 만들어. 미덕은 결코 대립되는 것에 대한 부정의 결과가 아니야. 평화는 전쟁의 부정이 아니야. 왜냐하면 전쟁은 우리자신의 투사投射이기 때문이지.
“무슨무슨 주의자들이 보통사람들보다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이념이 다른 무엇보다도 더 인간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어. 게쉬 린포체로부터 유사한 말을 들은 걸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거듭 말해야만 해. 왜냐하면 너의 사역에 있어서 이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지.
“좌파나 우파나 관념을 따르기는 마찬가지야. 자신의 관념이 상대방의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 전쟁, 증오가 발생하게 되는 거야. 관념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갈라놓는지 인식할 때에만 화해가 가능해.
“우리는 스스로를 영국인, 미국인, 러시아인, 중국인, 인도인 등등으로 부르고 있어. 사람들은 집단에 매달리고 있어. 왜냐하면 사람들은 안전을 원하기 때문이지. 그러한 소속감이 우리에게 안전감을 주기 때문이지. 그러나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분리, 분열, 전쟁을 야기하게 되지. 하지만 그런 속에서 안전은 불가능해.
“좌익이든 우익이든 모든 이념주의자들의 꿈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를 믿게 하는 거야. 하지만 그런 건 불가능해. 왜냐하면 신조는 항상 분리를 낳기 때문이지. 따라서 그것은 분열의 요소이지 통합의 요소가 아니야.
“내적으로, 심리적으로 갈등이 있는 한, 그 갈등의 투사는 필연적이야. 따라서 평화를 얻기 위한 노력과 함께 우리 자신의 내적인 갈등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조직이라는 것은 무의미해.
“내적인 심리적 갈등은 그대로 둔 채 단순히 전쟁에 반대하기만 하면 오히려 더 큰 갈등만을 야기하게 돼. 그러나 전쟁의 원인이 되는 내적 갈등의 모든 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너는 전쟁도발자도 평화주의자도 되지 않아. 너는 완전히 달라지게 돼. 왜냐하면 내면에서 평화를 얻었기에 세계에 대해서도 평화적이 되기 때문이지.
“따라서 너에게 필요한 것은 이곳저곳에 속하거나 이런저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원인을 이해하는 거야.
“사람들은 때때로 적을 바꿔.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 아주 흔쾌해 하지. 그리고 이것은 주의주장이나 내적인 심리적 갈등에 의해 지속되게 돼.
“그렇게 사람들은 사상, 국적을 통해, 탐욕과 자기강화를 통해 전쟁을 부추기고 있어. 내적인 전쟁이 외적인 전쟁으로 표현되는 것이지.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평화를 원해. 하지만 이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야. 그것은 항상 대립 속에 있는 미숙한 마음의 외침에 불과해.
“너는 무언가 되기를 원해. 전쟁 영웅, 백만장자, 고결한 사람, 평화주의자 등등. 하지만 바로 그 뭔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갈등을 낳게 돼.
“뭔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없을 때 평화가 있게 돼. 그리고 '되기'가 실재로부터 멀어지는 행위라는 걸 인식하게 되면 너는 '되기'를 그치게 돼. 그리고 그때 비로소 실재가, 창조성이 현전하게 되지.
“너는 더 이상 안전을 구하지 않게 돼. 안전을 구하는 마음은 언제나 두려움 속에 있어. 그런 상태에서는 창조적 존재의 환희를 알 수 없어. 안전의 바탕은 앎에 있지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야.
“가장 고차원적인 생각-느낌은 자기인식과 신성한 이해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이지, 이상주의자의 공격적인 자기 독단을 통해 얻어지는 게 아니야.
“마음과 가슴은 평화롭고 고요해야만 해. 그랬을 때 비로소 갈등이 없는 상태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어.
“하나의 전쟁이 또 다른 전쟁을 만들어 내듯이 하나의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만들어내. 갈등을 종식시키려면 너는 반드시 자아를 이해해야만 해. 왜냐하면 자아인식과 더불어서만 내적, 외적 갈등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이지.
“대량 학살, 기아, 불행, 파괴 등과 같은 문제들을 그 문제가 발생한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붙들고 늘어지면 오히려 더 큰 불행이 초래되게 돼. 그렇게 되면 관심이 오로지 탐욕과 악의를 재조직하는 데만 쏠리게 되고, 혼란과 적대감은 계속 남게 돼. 그것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속에 깊이 심겨진 뿌리를 직접 다루어야만 해.
“문제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걸 인식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자기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진정한 가치에 대한 내적 깨달음도 불가능하고, 우리의 노력은 혼란과 불행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야. 이점이 이제 분명해지지, 그렇지?
“우리는 때때로 고통을 통해 스러질 꿈으로부터 깨어나게 돼. 그리고 다름 아닌 스스로 가 자신의 고통을 영속화시키고 있음을 깨닫게 되지. 방법과 수단에 대해 덜 생각하면 할수록 너는 자기 자신을 더욱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돼. 그리고 더 빨리 영원한 가치를 지닌, 대대待對의 갈등이 아닌 진정한 평화를 얻게 돼.
“이해력을 지닌 자의 입술 속에서 우리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어. 그러나 이해력이 부재한 자에게는 몽둥이찜질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그가 말을 마쳤다. 그러나 나는 한동안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 나는 듣는 법을 배웠다. 나는 단순히 말만 듣지 않는다. 나는 보다 깊은 이해를 가지고 듣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내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바라봄 속에서 자유와 변화가 찾아온다.
원장 또한 깊은 명상 속에 잠겨 있었다. 그 명상은 자아를 드러내는 명상이었다. 그것은 진정한 명상이다. 하나의 관념에 집중한 채 다른 것들을 배제하는 것은 진정한 명상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는 갈등으로부터 행방되는 것도 실재를 깨닫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날 밤 나는 푹 자고 푹 쉬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새로운 기운이 넘쳤다. 이제 제펠령을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일찍 출발하였다. 제펠령의 중턱에 왔을 때 한 오두막이 보였다. 우리는 거기서 그날 밤을 묵었다. 우리는 장장 8시간동안 깊은 눈 속을 헤치며 여행했다. 때로 눈이 우리 허벅지까지 쌓여 있는 곳도 있었다.
내 생각에 다음 날이 최악일 것만 같았다. 제발 눈폭풍만 불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고지대 준령에서 맞는 폭풍은 끔찍한 체험이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몹시 사나웠다. 눈폭풍이 불면 몇 야드 앞도 볼 수 없게 된다. 동절기에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길 위에는 눈들이 높게 쌓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이런 체험을 한 번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또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우리가 여행하는 내내 날씨가 아주 좋았다. 햇볕이 뜨거웠다.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따갑게 내리쬐었다. 제펠령 꼭대기에 이르자 저 아래로 시킴의 수도 강톡이 내려다 보였다.
준령을 막 넘어서자 또 하나의 오두막이 보였다. 거기서 우리는 그날 밤을 보냈다. 우리는 통나무 장작불을 피운 뒤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장작불이 붉은 잔화로 될 때까지 불가에 앉아 있었다. 촛불이 오두막 안을 은은히 밝혀주었다.
그때 게쉬 린포체의 파장이 느껴졌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스승에게 나의 느낌을 말하자 그도 역시 동일한 파장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잠시 동안 고요히 있도록 하자. 그러면 그를 볼 수 있을지 몰라.” 우리가 선정에 들자 얼마 안 돼 우리 앞에 게쉬 린포체의 형상이 나타났다. 나의 눈에 그가 뚜렷하게 보였다. 내게 있어 이제 이런 방문은 낯설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들아, 네가 보고 있듯이, 나는 여전히 너와 함께 있단다.” 이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링쉬라 은자님이 나타나 말했다. “아들아, 믿음을 가져라. 태산을 움직일 정도로. 우리는 그 믿음을 통해 너를 돕게 될 것이다. 의심하지 말고 일하라. 그 속에서 실재는 작동하게 될 것이다 기억하라, 일을 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이라는 것을."
그러고는 두 분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 나는 기쁨에 넘쳤다. 이제 나의 확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만큼 굳건해졌다.
내가 스승에게 말했다. "오늘 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놀라운 것 같아요. 내게 있어서 이것은 준비된 영교 모임에서의 만남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내게 있어서 이 몇 분간은 영원 그 자체였습니다."
그날 밤 나는 어린아이처럼 푹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후에도 전날 밤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전히 게쉬 린포체와 링쉬라 은자님의 파장이 느껴졌다. 그리고 전체 의미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시킴의 수도 강톡을 향해 내려가는 동안 내 발에는 날개라도 달린 듯 했다. 나는 새처럼 가벼웠다. 가슴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나의 마음은 영원한 고요를 느꼈다. 그리고 황홀감이 계속 남아 있었다. 나의 젊음을 계속 유지시켜 준 것은 바로 그 느낌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런 일이 있었다. 20년 동안 나를 보지 못한 한 친구가 있었다. 내가 자기가 사는 지방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나를 꼭 한 번 봤으면 해서 만나러왔다. 그는 내가 많이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보자 이렇게 외쳤다. "세상에! 넌 어떻게 하루도 안 늙은 것처럼 보이냐? 비밀이 뭐지?" 그러자 내가 대답했다. "비밀 같은 건 없어.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일 뿐이야." 물론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우리는 그날 밤 강톡에 도착했다. 나는 다시 문명 세계에 돌아온 것이 유감스러웠다. 그것은 독특한 느낌이었다. 내 말은 그것이 싫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이편 세상을 생각하면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동시에, 나는 사역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세상에 주어야 할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확신감이 없었다. 이 확신감의 부재 때문에 나는 스스로 사기꾼이라는 느낌이 들곤 했다. 왜냐하면 내면에서 내가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게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거짓을 안다. 전에 나는 그 거짓을 참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나는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나는 가능한 빨리 사역을 시작하고 싶었다.
우리는 고울드 씨와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날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대화의 방향이 지난 몇 달 동안 내게 일어났던 사건들로 흘렀다. 그동안 지인들과 완전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고울드 씨에게 그동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말하자 그는 거의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간 어떤 백인도 발을 디뎌 보지 못한 미답의 티베트 오지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티베트 아데프트들과 함께 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 그 자체보다는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 더 흥미를 갖는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진리이다.
다음 날 우리는 소형 오스틴(역주: 영국제 소형 자동차)을 몰고 여행의 귀착지인 칼림퐁까지 갔다.
거기서 나는 스승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때 내가 느꼈던 외로움이 다시 밀려오는 듯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감정적이 되지는 않았다. 마치 목발을 잃고, 홀로 서 있을 수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승도 나의 생각을 읽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떠나는 것이 좋겠다. 네 내면에 있는 영이 나머지 너의 길을 인도해 주실 거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너를 창조한 신이 너의 곁에 있어. 그는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해. 왜냐하면 그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지. 그는 전체야. 그는 생명 그 자체야. 아버지는 자신 안의 생명을 아들에게 주시는 거야.
“너는 홀로 서기를 배웠어. 그럼에도 의존적인 느낌이 나. 이 의존의 환영이 너를 속박하고 있어. 만일 너에게 도움, 희망, 용기를 주는 타인에게 의존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고상하다 할지라도 너는 의존과 분리 속에서 길을 잃게 돼.
“만일 네가 시작과 끝을 갖고 있는 존재에 의존한다면 거기에는 두려움이 있게 돼.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한 진리를 인식한다면 그때 너는 시작도 끝도 없는 존재를 발견하게 될 거야. 그것은 너의 내면에 있어. 그 밖의 모든 것은 혼란, 무지, 환영으로 이끌 뿐이야.
네가 의존의 환영으로부터 해방될 때 실재는 현현하게 돼. 지금 너의 생각-느낌-반응을 식별한다면 너는 그것의 거짓됨을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거짓은 떨어져 나가게 되지. 그리고 우리 사이에 분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왜냐하면 오로지 유일자만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그 속에서 분리, 분열은 없어.
“즉각적인 현존 안에는 차별도, 분리도 결코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영원한 현재, 사랑의 왕국 속에서 살고 있어. 그것을 마지막에 깨달은 사람이나 처음 깨달은 사람이나 모두 똑같아.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이 왕국 안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야.”
그러고 나서 그가 내 어깨에 팔을 올린 채 말했다. “아들아, 나는 세상의 끝 날까지 너와 함께 있을 거야." 그리고는 그가 몸을 돌리더니 나를 떠나갔다.
나는 떠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가 뒤돌아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계속 똑 같은 걸음으로 갈 길을 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가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가 혼잣말을 했다. "이것이 모두 꿈인가?"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윽고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게 맡겨진 사역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세계 어디에 가든 내가 어디에 있든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세계 곳곳으로 갔다. 지구의 구석구석마다 나는 자유의 메시지를 전했다.
스승과의 이별의 순간 노르부가 떠올랐다. 그리고 3년 후 다시 나의 스승과 그녀를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래.” 나는 혼잣말을 했다. “이것은 모두 현실이야." 나는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일어났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은 어떤 힘이 계획한 듯 모든 일들이 척척 들어맞게 진행되었다.
나는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나, 그 일은 참으로 일어난 것이며, 다만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할 수 없을 뿐이다. 이 모든 일들은 너무나도 척척 들어맞게 이토록 놀라운 방식으로 일어났으며, 마치 이 뒤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듯 했다(Things just came to pass all dovetailed in such a way as if by some unseen agency).
* * * * *
나는 이 책을 대부분 거짓된 것을 밝혀내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으로서, 거짓된 것을 앎으로써 그대는 참인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진리가 그대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요가 (THE YOGA OF THE CHRIST)
오 전능하신 하나시여, 나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니나, 당신과 함께 할 때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나누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거룩하게 이치를 헤아리고 거짓된 것들을 살펴보았을 때, 나는 당신의 살아 계신 현존이 들어설 길을 마련하였습니다.
당신의 현존 안에서 저는 그 어떤 악도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유일한 하나이실 뿐, 제가 본 악이란, 제 자신의 마음에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별적인 인격 안에는 그 어떤 진실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홀로 실재이시며 나누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 안에는 그 어떤 진실도 없다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안에는 죄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당신 홀로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람의 마음 안에서만 죄는 머물고 있는 것이며, 사람의 마음이 거짓된 것입니다.
진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진리는 결코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보지 못하게 나를 가리고 있던 것을 알아보게 되었을 때, 저는 그 거짓된 것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진리는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었으며, 거짓된 것이 참된 것이라 믿었던 그 오류가 바로 내 자신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아는 이제 죽었기에, 제 생명은 당신의 것이며, 당신의 생명은 저의 것입니다. 영원토록.
오! 복되시며 영원히 살아계신 현존이시여!
오! 복되시며 영원히 살아계신 현존이시여!
(O Mighty One, I myself am nothing but with Thee I am all there is, for Thou art not divided.
When I reasoned Divinely and observed the false I cleared the way for Thy Living Presence.
In Thy Living Presence I saw no evil because Thou art the only One; evil I saw was of my own mind.
I saw there could be no Reality in personality because Thou alone art Real and Indivisible.
I saw there could be no Reality in sin because in Thee there is no sin and Thou alone existeth. Only in the mind of man does sin dwell and the mind of man is false.
Truth is all there is, Truth is indivisible because there is nothing else to divide It.
Truth is unchangeable because there is nothing else to change It.
When I saw what blinded me to the Truth I died with the false.
Now the Truth has set me free knowing that in myself was the error believing the false to be true.
Now that the self has died, my Life is Thine, Thy Life is mine, for evermore,
O Blessed Eternal Living Presence
O BLESSED ETERNAL LIVING PRESENCE)
* * * * *
이 책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그대들을 향한 내 바람은 이렇습니다:
신께서 그대를 축복하시고 그대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이제와 영원토록.
그대에게 진심을 담아.
M. 맥도날드-베인
https://blog.naver.com/jjhhope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