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같이 맑고 고운 눈동자들이 나를 보고 앉아 있다. 이번 수업은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려면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하고 자가용 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실천을 강조하며 진행할 생각이다.
수업을 준비하며 지난날이 생각났다.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간 해에 우리는 작고 아담한 이층집을 샀다. 은행에 다달이 갚아야 하는 대출금이 부담되었으나 자가용까지 구입했다. 에어컨도 없는 중고차였다. 새로 산 집 대문 앞에 세워 놓은 차를 보면 황홀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요즘은 차 한 대로도 부족해 식구 수대로 가지고 있는 집이 많다. 그러나 그때는 자가용이 흔하지 않았다. 함께 근무하던 같은 학년 선생님 다섯 명 중 가장 경력이 많은 주임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내가 두 번째다. 남편도 동료 중에 자기 차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혼자뿐이라며 고맙다고 했다.
아들은 누가 묻지 않아도 “이 차 우리 차다”라고 말하며 한껏 으스댄다. 자랑은 아들만이 아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퇴근 시간에 맞추어 학교 정문에 차를 보란 듯이 세워 놓고 나를 기다렸다. 가까운 곳도 걸어가지 않고 차로 이동한다. 일요일에 집에서 조금 떨어진 목욕탕에도 네 식구 모두 태우고 간다. 주차해 놓고 별일 없어도 발로 바퀴를 툭 차며 차를 한 바퀴 돌아본다. 처가 근처 식당에서 장인 장모와 함께 밥을 먹으려고 두 분을 모실때도 반드시 차로 모신다. 나 역시 일요일 일직을 하는 날이면 집에서 학교가 멀지 않았지만 태워다 달라고 했다. 함께 근무한 선생님의 집 방향이 달라도 우쭐대는 마음으로 태워다 주곤 했다. 장을 보면 무겁다는 핑계로 태우러 오라고 부탁했다. 남편도 그러려니 했다.
남편은 우리 모두 태우고 빨리 고향 집에 내려가고 싶어 여름휴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고향 집으로 떠나는 날 이른 아침부터 우리 가족은 집 앞 골목에서 차에 매달려 바빴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 세제를 풀고 바퀴까지 깨끗이 닦았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네 식구를 태운 차는 고향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남편은 라디오 볼륨을 크게 올리고 내 손을 한번 꼭 잡더니 씩 웃는다.
차에 에어컨이 없어 떠날 때 창문을 열고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소음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다. 차 안은 무척 더웠다. 도로에 차가 좀 뜸하면 창문을 내렸고 몰리면 다시 올려야 했다. 한참 가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 머리가 물에 빠진 생쥐처럼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래도 남매는 투정도 하지 않고 끝말잇기를 하며 즐거워했다. 해마다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할머니 댁에 다니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로 가니 좋아서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빨리 가고 싶었는지 휴게소에도 들리지 않고 계속 달렸다. 힐끗 뒤돌아보니 두 아이 모두 윗옷을 벗고 앉아 있었다. 더위를 참기 힘들었나 보다. 얼마 후 조용해서 뒷좌석을 보니 옷을 다 벗어 던지고 팬티만 입은 채 잠 들어 있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비포장 고갯길로 들어서니 차가 덜컹덜컹 흔들렸다. 잠들었던 아이들은 놀랐는지 잠에서 깼다. 드디어 좁은 농로를 지나 집에 도착했다. 뒷집 아이 네 명이 조르르 나와 우리 애마 노란색 포니를 보며 눈이 동그래졌다. 차에 타고 싶은 눈치였다. 남편은 짐을 풀고 곧바로 아이들을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장거리 운전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어머니와 시고모님을 모시고 장에도 가고 산 너머 외가에도 다녀왔다.
이제는 새로 산 값비싼 승용차를 집 앞에 세워 놓아도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다. 우리가 타고 간 포니를 보며 부러워하던 뒷집 후배도 자신의 차 제네시스, 들에 갈 때 타는 포터, 일꾼을 태우고 다니는 승합차 그리고 부인이 타는 차까지 모두 네 대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마을의 거의 모든 집이 두 대씩은 가지고 있다. 우리 차를 타 보고 싶어 했던 아이들도 모두 장성해 중형차를 몰고 다닌다. 덜컹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깰 수밖에 없던 산비탈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위태롭게 운전하던 좁은 농로는 이 차선으로 넓어졌다. 장거리를 운전해도 피곤한 줄 모르던 남편은 수원 집에 가느라 고속도로를 지나게 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휴게소에 자주 들린다. 그리고 다음 날은 온종일 누워서 쉬어야 한다. 39년 전 우리가 처음 차를 장만했을 때는 대기 오염이라는 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구호도 없었다. 그저 좋아서 또 편리해서 어디든 차를 타고 다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즈음은 어떠한가? 늘어나는 차량으로 대기 오염과 온실가스가 증가하여 지구 온난화 현상이 심각해 환경 교육이 중시되고 있다. 나도 환경 강사로 활동하며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는 뚜벅이'라는 별명을 이름보다 먼저 알려주며 수업을 시작한다. 이번 강의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지도하였다. 수업이 끝날 무렵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는 집 앞 마트나 외식하러 갈 때 언제나 차를 타고 다닌다고 저마다 쫑알거렸다.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각오를 말했다. 수업 목표에 도달한 것 같아 흡족했다. 이제 실천은 그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