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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자: 우찬제(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소설, 그 속악한 현실에 대한 비판의 형식
그대, 여전히 삶을 꿈꿀 수 있는가. 희망의 대장간에서 풀무질할 수 있는가. 혹은 여전히 푸시킨을 읊조릴 수 있는가.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를 사는 것"이라 읊조리고픈, 그렇게 꿈꾸고픈 그대의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어떠한가. 구차한가. 차라리 그냥 눈감아 버리고 싶은가. 아, 그렇다고 그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도대체 어쩔 것인가. 영혼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현실에서 누구나 이런 질문과 회한에 빠질 수 있다. 현실에서 희망이 가망 없는 난망으로 곤두박질칠 때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하며 미래를 예비할 수 있을까.
서정인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그런 속절없는 번민에 빠지게 하는 속악(俗惡)한 현실에 대한 비판의 형식으로 소설을 택한 작가다. 1962년 『사상계』 신인 작품 공모에 단편 「후송」이 당선된 이후 40년이 넘는 창작 기간 동안 그는 끊임없이 소설 언어와 그 형식을 나름대로 계발하며 현실에 대한 의미 있는 문학적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그런 까닭에 그의 소설 언어와 문체는 그를 주목한 많은 논자들의 공통된 관심사였다.1) 예컨대 김현은 서정인 소설의 가장 큰 특색으로 그의 문체를 꼽고, "그가 만들어 낸 말들의 팽팽하게 긴장된 관계"를 주목했다. 특히 "문학 언어가 일상 언어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 주려는 그의 의도"와 화법을 요령 있게 분석한 바 있다. 오생근은 "'어떤 중요한 것에 관한 것'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리듬을 '그것답게' 표현하는 것"에 서정인 소설이 중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그의 소설이 비평적 언어로 포착되기 어렵다는 점을 밝혔다.) 끊임없이 기존의 소설 스타일을 넘어서서 새로운 소설 스타일을 탐색해 온 서정인의 서사적 혁신 도정은 한마디로 소설을 소설답게 하는 소설성의 탐색이었으며, 그것은 또한 우리 삶에서 소설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 질문에 답하려는 모색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작가들이 소설을 쓰면서 이런 질문과 탐색을 행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서정인만큼 소설 혹은 소설성 그 자체에 대한 자의식을 특징적으로 드러내 보인 작가는 드문 편이라고 해야 옳다. 기존의 소설 스타일은 물론 자신의 과거 소설 스타일을 손쉽게 모사하여 재생산하는 소설적 매너리즘을 그는 기질적으로 거부해 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도 초기에는 고전적 소설 미학을 충실하게 구현했던 작가였다. 군대 공간을 배경으로 실존적 분노의 문제를 이명(耳鳴)의 사회임상학으로 풀어 본 데뷔작 「후송」을 비롯하여, 자유 의지에 입각한 삶의 방향 모색의 비극적 좌절을 보여 준 「미로」, 「물결이 높던 날」 등 실존주의 색채를 지닌 초기 단편에서, 그는 비속한 현실에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내면적으로 다루었다. 소설 형식의 고전적 미학을 유지하던 시절의 작품의 백미는 아무래도 평판작 「강」(1968)일 터이다. 「강」 이후에 차츰 그는 속악한 현실을 그같이 단정한 형식으로 실체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삭막하고 막막한 소시민들의 일상적 풍경들을 조명하고 그 삶의 리듬과 자잘한 기미들을 형상화하기 위해 서정인은 서사적 혁신을 도모한다. 그 과정에서 「원무(圓舞)」(1969)가 새로운 리듬으로 휘돌아가고, 「남문통(南門通)」(1975)이 새로운 소설 언어로 생기를 얻게 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남문통」을 경유하여 연작 중편 「철쭉제」(1983∼1986)에서 생기 있는 인물들의 발랄한 대화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를 보인 그는 『달궁』에 이르러 더욱 적극적으로 소설적 실험을 펼친다. 판소리의 창조적 계승이라 평가되기도 한 『달궁』에서 작가는 해학과 연민의 페이소스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교감의 형식을 창출한다. 그런 가운데 삶의 누추함과 고단함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살아 있는 말과 그 말의 리듬으로 생기 있는 현실을 포착하고자 한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달궁』의 세계는 『봄꽃 가을열매』의 세계로 나아간다.
『달궁』과 『봄꽃 가을열매』에서 보인 열린 서사 형식 실험에 세계 해석의 폭을 넓힌 시도가 밀레니엄 시기에 발표한 '르네상스 시리즈'다.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1999)에서 『용병대장』(2000), 『말뚝』(2000) 등은 14, 5세기 이탈리아의 문예 부흥기에 대한 새로운 소설적 탐구라는 성격을 띤다. 르네상스의 긍정적 빛의 이면을 해체적 시선으로 날카롭게 해부하면서, 르네상스의 진실은 무엇이었고 또 진실의 르네상스는 어떤 모습이었어야 했는지에 대한 본원적인 탐문의 방식을 보여 준다. 교회와 귀족과 용병의 타락과 문화의 위장된 순응 양상들은 다채로운 소설 언어와 스타일에 의해 재조명된다. 특히 『용병대장』에서 보이는 바, 르네상스의 기운이 기울기 시작하는 15세기 후반에 대한 서정인의 집중적인 탐구는, 타락한 시대에 대한 소설적 대응 담론의 구체적 실천의 측면에서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말뚝』은 그 르네상스 탐문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서정인은 "삶의 형식적 모방이 그 삶의 혼돈을 보여 주고, 형식이 모방의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실체를 보여 줄 수 없을 때 그 형식을 새로운 형식으로 파괴하여 유리된 현실이 아니라 놓친 실체를 보여 주려는 노력이 리얼리즘"(「리얼리즘 고」)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강조와 더불어 끊임없이 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실험하고 추구해온 작가가 바로 서정인이다.
2. 60년대적인 미학적 황금률
60년대 소설사에서 빛나는 「강」은 서정인의 평판작이다. 그만큼 「강」에는 60년대 소설의 의미심장한 징후와 초기 서정인 소설의 미학적 황금률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 희망 사이의 도저한 거리의 심연을 응시하고 그 간극의 뿌리로 내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60년대적이고, 고전적 소설 미학이 웅숭 깊게 구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미학적 황금률로 빛나는 텍스트라고 얘기해도 좋은 것이다. 그렇다면 서정인의 「강」에는 어떤 미학적 기미들이 물결치고 있는가.
우선 세 사람이 있다. 김. 이. 박. 이렇게 셋이다. 그들의 이름은 없다. 아니 이름이 없다기보다 고유한 이름으로 불릴 기회가 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기에 굳이 개성적인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60년대 초반이다. 어느 겨울날이다. 군하리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강」의 기본적 구성 요소들은 그렇다. 처음에 그 인물들은 성(姓)도 없다. 그저 외투 입은 사람, 잠바를 입은 사나이, 고깔모자의 사나이로 불릴 따름이다. 어쨌든 그들은 군하리 결혼식에 함께 가는 길이다.
그들의 삶의 물굽이는 구질구질하다. 검은 외투를 입은 김씨는 좀 과묵한 편이다. 매우 누추하게 살아온 늦깎이 대학생인 김은 비관주의자다. 한때 삶의 희망을 꿈꾸고 노력하던 그였으나 가망 없는 희망의 덧없음에 허탈해 있다. '검은 안경'을 보면, 운명의 장난으로 장님이 되고 우연히 장님 안마사로서 옛 애인 옆에서 그녀의 남편을 안마하는 상상을 할 정도다. 잠바를 입은 이씨는 세무서 직원이다. 당구, 춤 등 잡기에 능한 그는 검은 안경을 보면, 그것을 쓰고 폼 잡고 싶어 하는 건달 같은 겉멋쟁이다. 이 둘은 하숙생이다. 그 주인인 박씨는 고깔모자를 쓴 전직 교사이다. 병역 기피자라서 군대와 관련한 이야기만 나오면 짜증을 내며, 검은 안경을 보면 형사를 떠올린다. 또한 매우 소심하고 열등감이 많은 인물이다.
60년대 초반 동네 이발소거나 시골의 버스 정류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삼이사들의 초상이다. 이들이 누구의 결혼식에 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여로에서 이들이 보여 주는 내면 정경과 그 외면 풍경이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셋이 그만그만한 장삼이사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김씨는 이씨나 박씨와는 좀 다르다. 김씨는 그나마 꿈을 꾸었던 인물이다. 그는 현재의 현실을 넘어 미래의 희망을 보듬고자 했다. 또 그 희망의 실현 가능성에 신뢰를 걸었던 사람이다. 가령 입대 풍경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가 막연히 꿈꾸었던 입대 풍경이란 낭만적인 것이었다. 악대의 연주 속에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어 주고 단아한 여자가 슬픔을 머금고 저만치서 송별하고 있는 영화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다. 실제는 낭만과 달랐다. 머리가 헝클어진 매춘부들의 이미지나 더러운 공중변소의 악취 속에서 진눈깨비 내리는 날 병든 창부처럼 끌려갔던 것이다. "환송 나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악대도, 단 한 장의 태극기도 없었다. 진눈깨비만이 내리고 있었다."
3. 꿈과 현실의 거리
이렇게 꿈과 현실의 거리는 멀었다. 낭만과 실제의 거리는 아득했다. 꿈과 낭만은 지극히 아름다웠지만, 현실은 매우 초라하고 누추했다. 세상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비관주의자가 된다.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는 일상에서 그는 너무나 피로하다. 결혼식에 다녀온 후 '이'와 '박'이 술을 마시러 가는데 혼자 먼저 여인숙으로 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거기서 그의 성격은 다시 한 번 입증된다. 반장이며 일등을 했다는 여인숙 꼬마에게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발견하며 매우 안타까운 심사를 노출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몽롱한 가운데서 하나의 천재가 열등생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는 천재, 중학교에 가선 수재,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 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에 나오는 과정을 떠올린다. 결국 삶이란 이처럼 열등생이 되기 위해서 꾸준히 고생해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과거사이자 소년의 미래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천재가 가난과 끈질긴 싸움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열등생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몰랐"던 지난 나날들을 안타깝게 곱씹는다. 그의 회한은 깊은 상실감으로 강물 되어 흐른다. "그가 처음 출발할 때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으로부터 사뭇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아-, 되찾을 수 없는 것의 상실임이여!"
김씨가 그랬다. 한때 주위 사람들의 촉망을 받았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 어떤가. 이씨나 박씨와 자신이 다를 게 무언가. 그런데, 저 꼬마도 필경 그럴 것이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자신의 과거를 비춰주는 거울 구실을 하는 꼬마로 인해 김씨는 더욱 누추해진다. 비관적이 된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에 젖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처음 출발할 때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으로부터 사뭇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는 문장이 독자의 진한 울림을 동반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리고 "아-, 되찾을 수 없는 것의 상실"감에 부려 놓은 느낌표라니. 그런 것이다. 꿈의 비속화 과정은 그렇게 누추하고 초라한 것이다.1) 예컨대 김현은 서정인 소설의 가장 큰 특색으로 그의 문체를 꼽고, "그가 만들어 낸 말들의 팽팽하게 긴장된 관계"를 주목했다. 특히 "문학 언어가 일상 언어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 주려는 그의 의도"와 화법을 요령 있게 분석한 바 있다. 오생근은 "'어떤 중요한 것에 관한 것'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리듬을 '그것답게' 표현하는 것"에 서정인 소설이 중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그의 소설이 비평적 언어로 포착되기 어렵다는 점을 밝혔다.) 우여곡절이나 우울한 체험을 거치면서 꿈은 바스라지고 아름다운 낭만은 빛을 바랜다. 인생이란 도저한 강물 속에 그저 침잠되고 만다. 어찌 그것을 다시 건져 내고 생명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까울 정도로 아득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떠내려가 버렸는데.
이처럼 「강」에서 삶은 초라하고 쓸쓸한 것으로 묘사된다. 꿈을 잃고 희망을 상실한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같은 파토스에 다름 아니다. 하여, 김씨는 일찍 잠드는 것으로 피로하고 지친 육신의 눈을 감아 버린다. 이렇게 눈감아 버린 김씨의 꿈은 정녕 되찾을 수 없을 것인가. 삶이란 정녕 그런 것인가. 이 슬픈 이야기에 작가는 다소 감상적이고 환상적인 희망의 지렛대를 슬며시 덧붙여 본다. 이씨와 박씨와 더불어 술을 마시던 작부가 홀로 김씨의 방에 들어와 그를 모성적으로 보듬으면서 갖는 대학생에 대한 환상과 결혼에 대한 아름다운 동경을 보이는 끝부분의 반전이 바로 그것이다. 처절한 비관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좌절의 순간에 이런 아름다운 낭만이 포개어질 수도 있는 것일까. 거기서 나는 60년대식 현실적 절망과 낭만적 희망의 풍경을 읽는다.
남진우가 적절하게 정리한 대로 "꽉 짜인 구성과 치밀한 복선의 배치, 생동감 넘치는 대화, 경제적인 언어 구사를 통한 인물 성격의 부각, 적절한 반전에 의한 산뜻한 마무리 등 단편소설이 요구하는 미학적 황금률을 두루 충족시켜 주고 있"다는 '서정인적(的)' 세계를 말할 때,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강」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고전 미학의 관점에서 소설의 한 전범을 알게 하는 작품이다. 이런 「강」에는 절망과 희망, 현실과 꿈, 현실성과 낭만성, 세계와 자아 사이의 대립과 갈등의 겹무늬들이 일렁거린다. 그 강의 물결은 곧 서정인이 찾아낸 삶의 리듬이다. 그런데 그 리듬은 개인이나 자아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씁쓸하고 허탈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것은 꿈의 정치적 무의식의 역학 구조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늙은 대학생 김씨의 경우처럼 아름다운 꿈을 지녔던 존재는 비록 현실에서 좌절하고 누추하게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꿈의 무의식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무의식과 현실적 에고의 충돌로 인해 비극의 에너지는 증폭된다. 그 에너지는 삶의 깊은 심연을 형성한다. 강물이 퍽 깊어지는 것이다. 심연으로 내려갈수록, 혹은 꿈의 무의식 지대로 침강할수록, 현실적 억압의 무게는 더해지고, 그럴 경우 때때로 쓸쓸하게 현실을 에둘러 가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강물이 깊을수록 진실 발견은 어려운 법이다. 응시를 통해서든 행동을 통해서든 말이다. 그 같은 곤혹스러운 허탈감을 「강」은 보여 준다. 이때 소설은 고전적 소설 미학의 방식으로 전혀 고전적이지 않은 비속한 나날의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언어 기행이 된다.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서정인의 「강」에는 검은색 안경에 대한 세 사람의 심리적 반응이 각각 제시된다. 이런 반응을 바탕으로 각 인물의 성격에 대한 확장된 논의를 전개한 다음, 이런 인물의 성격들이 소설의 주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자.
1) 색안경은 사치품일까. 필수품일까. 대부분의 경우, 필수품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뻔뻔스럽게 길거리에서 파는 백 원짜리로 사치를 하려고 하다니! 그는 이천 원짜리를 사려다가 너무 비싸서 천 원을 주고 중고를 산 바 있다. 그것은 지금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 눈만 하얗게 쌓인다면 언제든지 꺼내서 코 위에 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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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씨는 색안경을 낀 사람을 보면 장님을 생각한다. 그는 한때 자기가 검은 안경을 쓰고 장님이 되어 안마장이 노릇을 하는 상상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전투에서 눈을 부상당한다. 육군병원에 입원한다. 눈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다. 애인이 찾아온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차이로 인해서 만나지 못한다. 장님이 되어 색안경을 낀다. 지팡이로 밤의 아스팔트 위를 더듬으며 퉁소를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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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깔모자를 쓴 사람은 색안경이라면 질색이다. 그에겐 색안경을 쓴 사람은 형사다. 그리고 형사는 기피자를 단속한다. 그는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까지 월급날이면 정기적으로 형사의 '예방'을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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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정인의 첫 소설집 『강』의 해설을 쓰면서 비평가 김현은 다음과 같이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 "일상 언어와 문학 언어 사이의 차이는 현실 속의 사건과 소설 속의 사건의 그것에 버금한다. 일상 언어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와 너의 언어이다. 그것은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그러나 문학 언어는 본질적으로 삼인칭에 속하는 언어이다. 다시 말해 체계적이며 구조적이다.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는 차원이 다른 언어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문학 언어를 규범 언어에서 일탈한 것으로 보는 현대 수사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언어 역시 규범 언어에서 벗어난 언어일 뿐만 아니라, 언어의 규범성이란 사실상에 있어 하나의 환상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추상적인 논리 속에서가 아니라면 어떻게 언어의 규범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문학 언어의 특이함은 문학 언어의 체계가 갖는 구조적 모습에 주어진, 규범 언어라는 것을 상정한 후에 붙인 명칭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문학 언어는 그것 특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황순원의 문학 언어는 황순원 특유의 문학적 체계를, 김동리의 문학 언어는 김동리 특유의 문학적 체계를 지칭할 뿐이다." 이런 김현의 논의를 바탕으로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의 차이에 대한 자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정인의 문학 언어의 특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추천할 만한 텍스트]
『강』, 서정인 지음, 문학과지성사, 1976/1996.
<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강, 우찬제/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