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루르드의 풍경
2024. 7. 11
예레미야서 26장~35장
(예레 29,14)
그러면 내가 너희 운명을 되돌려 주어~
(예레 30,3)
그때에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운명을 되돌리겠다.
(예레 33,26)
그러나 나는 그들의 운명을 되돌리고
그들을 가엾이 여기겠다.
묵상-
운명이라는 단어가 연거푸 읽힌다.
오늘은 읽을 분량이 많아서,
모바일 성경 말고, 성경책으로 읽었다.
34장까지 읽고 나니 마지막 35장은
패스해버릴까 하는 유혹이 막
올라왔지만, 성과를 내야만 하는
직업에 종사하다보니, 끝까지
읽어버렸다.
살면서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고?’
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사람들은 그만큼 자기 운명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애를 쓴다.
미래의 운명을 점쳐보기 위해 사주를
보기도 하고, 용하다는 예언자를
찾아 다니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듣기도 한다.
예레미야 26장에서 35장까지의 글엔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주님밖에
없음을 암시해 놓았다.
그렇다면 그 운명을 어떻게
바꾸신다는 걸까?
‘강하게 뻗은 손과 두 팔로?’
내가 이해한 주관적인 생각은 이랬다.
주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전하신
말씀 중, ‘상처와 치유’ 부분이 있다.
“두려워말고 무서워 말거라.
너의 후손을 포로 살이 하던 땅에서
구원해 내리라.”
그 예전,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집트 파라오의 손에서 종살이하며
묶여 살던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를 종살이에서 끌어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려갈 하느님’
이라고 선포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예레 31,16)
‘네 노고가 보상을 받아 그들이 원수의
땅에서 돌아올 것이다.’
유배지 바빌론에서 고생하며 억압당하던
백성들을 옛날처럼 회복시켜주시고,
평안한 공동체로 살게 해주신
주님의 구원 역사가 탈출기뿐 아니라,
구약 성경의 전 과정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주님의 그 섭리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대물림되어 우리의 믿음과
행실(순종)에 따라, 운명을 바꿔주신다.
운명이 바뀐 이들에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예레 31,18)
내가 분명히 들었다.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 같은 저에게
주님께서 순종을 가르치시어 제가
순종을 배웠습니다. 저를 돌아가게
해주소서. 제가 돌아가겠습니다.
젊어서 부끄러운 일을 저지른 탓으로
치욕과 수모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백,
성경에서 자주 접하기 힘든 장면이다.
다윗처럼 자기 죄와 악습의 민낯을
주님께 숨김없이 열어 보이며 기도한
백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이거야말로 참다운 자아인식,
참으로 겸손한 회개이며 보속 아닌가.
자기의 내면에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거나 깨닫거나 인식할 수만
있다면, 이미 반은 치유가 된 거다.
거기서부턴 가속도가 붙어서
하느님과 화해하고 자신과 만나는
일이 쉬워지기에 말이다.
20년 전, 위중한 몸으로 수도원
경당에 가서 종일 성체조배를 할 때,
맨 먼저 올라온 것은, 내 안에
길들여지지 않은, 나조차도 몰랐던
존재, 즉 야생마가 내는 거친
목소리였다. 나의 본성과 타고난
기질일 수 있는 그 야생마의 존재가
너무 높게 설정해놓은 나의 이상과
에고에 묻혀, 억압당하고 짓눌린
상태에서 오랫동안 밀쳐진 거다.
서슬 퍼런 모습으로 펄떡펄떡 뛰어다니는
나의 야생마를 직면하는 순간, 그만
정신을 잃을 뻔 했다. 그만큼 나를
몰랐다고 거고, 그런 모습이 싫어
포장지로 감싸서 창고에 쳐 박아 놓고
나는 가면을 쓰고 착하고 우아한 척,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살려고
발버둥을 친 것이다.
에프라임이 탄식하며 내뱉은 이 말,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 같은 저에게
주님께서 순종을 가르치시어 제가
순종을 배웠습니다.’
정말 놀라운 자아인식,
자기 분수를 알고 주제 파악 제대로 된
변형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발견한
자아인식의 결과는, 이내 새 계약을
맺으시려는 주님에 대한 인식으로
탈바꿈된다.
(예레 31,34)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인식,
우리 주님의 성품과 성향, 가치와 철학을
제대로 알고 파악하는 눈과 마음인거다.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와 야생마 같은 존재가
내 안에 숨어서, 호시탐탐 돌아다니며
말썽을 일으키고, 악습에 젖어 죄를 짓고
우상을 섬기는 불순종의 인간을 만들어
왔다는 것, 하지만 이제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고, 그분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단
각오와 다짐을 통해,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하고
주님의 착한 자녀로 거듭난 것이다.
유다의 회복이 내겐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제법 긴 분량이었지만, 역사적인 배경보단
말씀에 머물러 음미해보라는 봉사자의
조언에 순종하면서 어찌어찌 읽고 묵상했다.
주님,
불순종의 죄로 폭망하여 고생을 하다,
다시금 당신 자비의 손길에 의해 회복된
유다 백성들의 모습에서,
저와 저희 가정, 제 주변의 사람들의
신앙 여정이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당신에게 어려운 일이 뭐가 있을까요.
당신의 뻗은 손과 두 팔이,
못할 게 뭐가 있을까요.
(예레 32,26~27)
“나는 주님이며 모든 인간의 하느님이다.
무엇이 나에게 어려운 일이냐”
네, 주님, 정말 다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운명까지 바꿔주시는
불가능이 없으신 분,
잠시 허락된 고통의 터널마저,
내 안의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의 존재를
정화하고 치유하시어, 순종하게 하시려는
사랑의 선물이었던 겁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약한 저희 안에서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저희가 항상 깨어서
성경 말씀을 읽고, 당신께 머물러서
열매 맺을 수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도와주소서.
첫댓글 요셉피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