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높다. 아침은 서늘하고 한나절은 한참 더운 전형적인 가을날씨.. 이런 날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어디론가 가야지. 떠나야 하지... 그래서 정한 곳이 상암동의 하늘공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해마다 걷는 길 위에는 낙엽이 소복했는데. 지난해도, 그전해도...그러니까 올해엔 조금 일찍 와서 낙엽은커녕 나뭇잎이 아직 푸르고 그늘도 짙다.
아직 억새철도 아니건만 웬 사람들은 벌써부터 하늘공원을 찾고 있는가? 나야, 제철을 잘못 짚어서 왔지만 말이다. 자전거 하이커들이 한 떼 몰려와서 자전거를 눕히고 사진을 찍는다. 젊음이 부럽다.
하늘공원은 해마다 변신한다. 코스모스밭이 바뀌고 쑤세미는 길 한복판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바로 오늘, 인부들이 이 넝쿨을 걷느라 부산하다.
억새가 보기좋게 피려면 앞으로도 한달은 더 있어야 하겠는데 발빠른 내 방문이 억울하다. 걸음이 시언찮아 지하철에서 기본요금의 택시요금을 내고 입구까지 간 내 형편을 들으면 사정이 짐작되지 않을까? 그런 곳을 오늘 다녀온 것만으로도 흐믓하다.
어제는 유언 같은 글을 썼다. 다음 주에 미국에서 사는 딸 내외가 온다고 해서 할 말을 적었는데 죽음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고 평상시에 할 말을 해야 하기 때문. 장례는 산 자의 몫이지만 그래도 死者의 책임도 있는 법이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몇가지 사항을 적었다. 사죄할 일이 있으면 사죄하고, 치하할 일이 있으면 고맙단 말을 해야 한다.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다. 어느날엔가는 모든 걸 훌훌 벗고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모든 게 허망하다. 우리의 부모가 그러했고 조상이 그러했고 선인이 그랬듯이.
나는 어디서 왔으면 어디로 가는가? 흔적 없이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無에서, 有로 존재하다가 다시 無로 돌아가는 인생이 奇하고 妙한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답게 죽을 일이다.
오늘따라 가을하늘이 음침하고 억새조차 무표정한 채 꼿꼿하다. 아! 하늘공원은 말이 없는데 어찌하여 난 왜 이리도 말이 많지? 하늘공원을 다녀온 나는 녹초가 되어 집에 와 쓰러졌다. 내게 내년이란 상상도 못할 時空이지만 실존하는 현재만이 감격으로 다가선다. 그러하니 오늘을 만끽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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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대 그리고 나 원문보기 글쓴이: 보견심
첫댓글 권사님 올려 주신 글과 사진 잘 보고 감 니다 늘 함께 하지못해 죄송...
건강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