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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폐셜 86회. '금관은 죽은 자의 것이었다' (2000.09.23.)
86회 : 금관은 죽은 자의 것이었다
금관은 죽은 자의 것이었다
방송일: 20000923 조회수 : 4282번 읽음
동영상 : 줄거리:
< 역사스페셜 제 86회 >
금관은 죽은 자의 것이었다.
PD : 윤한용 / 작가 : 송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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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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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장면
-발굴모습 1973년 경주 대릉원에 있는 천마총에서
9초 역사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상자내려오는 (3초) 1500년동안 땅속에서 침묵하고 있던 유물들..
-천마도 (5초) 그 속에서 신라황금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금관 빠져나오는 3초 금관이 발견됐다.
-유물출토모습 부감FS 그러나 발굴될 당시 금관은
9초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다.
#CG 금관은 고깔모양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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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금관은 죽은 자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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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 1 - 오프닝 >
#금관 ( 핀 조명 )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하면 우리는 으레 이 금관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부분 국보나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고 또 외관상으로 볼 때도 찬란하고 화려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
로서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인데요,
#출토당시 금관모습
그러나 1973년 천마총에서 금관이 출토될 당시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가 박물관 전시실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금관의 세움장식들이 모두 가운데로 모아진 형태,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고깔모양을 띠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출토당시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금관 (고깔모양으로 굽어진다 )
그 의문은 금관의 원래 모양이 박물관 전시실에서 본 것처럼 세움장식이 밖으로 펴진 상태가 아니라
이렇게 고깔모양의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겁니다.
금관에는 이렇게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금관 ( 원래 모습으로)
금관하면 우리는 역대 어느 왕이 이 금관을 쓰고 집무를 보는 모습을 쉽게 상상하게 되죠..
역대 왕이라면 누구나 이 금관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금관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사실 중에 하나입니다.
#조선/고려 왕의 복식 익선관
이것은 조선시대 왕의 복식을 복원한 건데요,
평상시 집무를 볼 때 이렇게 왕은 곤룡포를 입고 머리에는 익선관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군왕의 표신으로 삼았던 복장으로 왕이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내거나 동짓날, 설날,
왕의 즉위식, 혼례식과 같은 중요한 대례식 때는 또로 이렇게 곤복에 면류관을 썼죠..
이것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 4년에 중국복식을 따르도록 복식을 정비하면서 통일신라,
고려시대를 거쳐 우리나라에 정착된 왕의 관모였습니다.
#금관으로 MC 이동하면서
그러니까 조선시대, 고려시대는 물론 통일신라시대에도 왕은 모두 천으로 된 관모를 썼던 것이고
금속제 그것도 순금으로 만든 금관은 존재하지 않았던 거죠..
금관은 우리 역사상 삼국시대 그것도 4-6세기 약 150년간만 존재했던 겁니다.
이것이 금관에 대한 또 하나의 미스테리입니다.
그렇다면 금관은 왜 특정한 시기에만 나타났다 사라진 걸까요?
과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금관은 왕이 썼던 왕관이었을까요?
역사스페셜, 오늘은 이 금관에 대한 미스테리를 하나하나 풀어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서
이 금관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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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1 금관은 신라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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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샷 경주 시내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노서동 신라고분군.
11초
#걸어들어가는 여기에 봉분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는 고분이 있다.
11초
-발굴사진 (5초) 1921년 이곳에서 세기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민가 팬 TD 14초 한 민가에서 앞마당을 넓히기 위해 땅을 고르던 중에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유물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금관 6초 그것은 황금빛 찬란한 금관이었다.
#테두리 팬 순금으로 둥근 테두리를 만들고
TS 거기에 비취 옥돌과 금장식을 단 화려한 모습였다.
20초
#금관돌아가는 CG 금관총금관에 이어 1500년간 땅속에서 침묵하고 있던
27초 금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 금관은 모두 여섯점. 모두 최고의 세공기술로 만들어진 순금제 금관이었다.
무덤은 황금의 지하궁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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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INT 황금빛의 온화한 금판에다가 비취색이 나는 찬 감이 나는 곡옥을 매달았다
는 것은 아주 정과 동의 조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세움대 끝부분을 보주형으로 만들어서 직선과 곡선의 대조를 이룬다
든지 또는 곡옥하고 영락하고 흔들림의 관계라든지 같은 금판으로 만들었지만 타출문이라고 해서 송곳으로
콕콕 찍어서 변화를 주었다든지 이런 것은 대단히 예술적 공예적 가치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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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허리띠 무덤 안에서는 금관과 함께 화려한 황금유물들이
7초 쏟아져 나왔다.
#팔찌 금판 위에 작은 금알갱이를 붙이고 그 안에 보석을
13초 상감기법으로 장식한 정교한 황금팔찌,
#귀걸이 8초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멋을 자랑하는 금귀걸이.
#금그릇 5초 장신구뿐 아니라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었다.
#마구 28초 또한 말에 쓰이는 마구장식까지도 화려한 황금으로 치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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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INT 심지어는 마구까지도 금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당시 신라인들이 대단히 화려한 금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덤 속에서 수 많은 금제유물이 나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신라의 고분들에서 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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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하늘에서 TD 충남 공주에 있는 백제 무녕왕릉.
9초 금관이 발견된 신라고분들과 비슷한 시기의 고분으로.
-무덤 내부 12초 도굴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채 발굴이 되었지만 여기서 금관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고구려도 마찬가지였다.
#고구려 백라관 안악 3호분 황해도 안악 3호분 벽화를 보면 왕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9초 금관이 아니라 비단으로 된 관모를 쓰고 있다.
#수나라 문제 면류관 그리고 같은 시기 중국의 황제도 금관은 쓰지 않았다
11초 .
#가야금관 신라를 제외하고 금관이 발견된 것은
20초 가야가 유일한 예다.
그러나 가야금관은 신라금관에 비해 기법이나 장식, 모양이 아주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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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모INT 지금부터 1500-1600년 전에 순금으로 만든 금관을 만들어 쓴 민족은 지구상에 한국 밖에,
신라인 밖에 없습니다.
신라인이 창작한 금관, 그 디자인 거기 달린 장식 이런 것들은 세계 최고급의 전무, 후무 최대 이 세가지를
고루 갖춘 걸작품입니다. 이것은 한국인의 조상이 만든 문화재 가운데 둘째 아니면 셋째 가는
굉장히 고급의 문화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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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금관은 같은 시기 고구려나 백제는 물론
15초 중국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신라만의 독특한 것였다.
< ST 2 >
#천마총 주인공의 금제유물 착장 모습 복원 CG
이것은 천마총 발굴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겁니다.
무덤의 주인공은 찬란한 황금빛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온갖 화려한 금제유물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는데요,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귀에는 금귀걸이,
목에는 가슴까지 늘어진 금목걸이를하고 허리에는 금허리띠를 찼습니다.
그리고 허리춤에는 지배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으로 된 큰 칼을 차고 심지어 발에도 금동신발을
신었습니다.
팔에는 금팔찌를 그리고 열 손가락 모두 금반지를 끼었군요.
신라가 가히 황금의 나라였음을 실감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몸 하나를 치장하는데 과연 어느 정도의 금이 들어갔을까요?
유물 출토 당시 각각 무게를 재어 놓은 결과가 있어서 전체 금의 양이 따져봤는데
이 몸 하나를 치장하는 데 들어간 금의 양이 무려 ( )돈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이 정도 무게를 늘 감당하면서 생활하기에는 좀 불편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의문을 갖게 됩니다.
과연 이것들을 모두 실생활에서 사용했을까하는 겁니다.
물론 각각 따로 따로 착용을 했다면 별 문제는 없겠죠..
그렇다면 금관의 경우는 어떨까요?
우선 금관의 무게를 따져보면 그 무게가 금 320돈, 즉 1200g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상상만 해도 목이 빳빳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금관을 어떻게 썼을까요? 과연 평상시에 쓰고 다녔던 걸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모르고 있는 또 다른 용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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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2 신라금관은 죽은 자의 것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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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6초 신라금관을 재현해보기 위해
#삼선방 TD 들어가는 -11초 경주공예촌 내에 있는 삼선방을 찾았다.
#김진배 작업모습 6초 산라금관을 재현하고 있는 김진배씨.
#얼굴 CU 3초 그는 신라금관을실제 크기와 모양 그대로
#재현금관들 6초 재현해낼 수 있는 국내의 유일의 복제전문가이다.
#금사 만드는 금은 다른 금속에 비해 경도가 물러서 가공하기 쉽다.
23초 크기가 각각 다른 작은 구멍 속에 금줄을 집어넣고 뽑아내면 실처럼 가느다란 금사가 만들어진다.
금 1g을 가지고도
-금사TS 3초 길이 3.3km의 금사를 만들 수 있다.
#금판만드는 11초 또한 금을 두드리면서 계속해서 펴면 종이 보다도 얇은 금판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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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 종이 두께가 지금 0.09mm,
" 금판 0.06mm
" 종이 보다 얇네요 지금 이 상태로 두드려서 넓히면 종이보다 훨씬 얇아지고 금박으로도 쓸 수 있게 얇게
까지 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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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판 모양 떠내는 천마총금관을 그대로 재현해보기로 했다.
9초 금관은 두께 1mm가 채 안되는 얇은 금판으로 만들어진다.
#장식다는 10초 그리고 여기에 수백여개의 장식을 단다.
#fs 금관 마무리 작업 각각의 세움장식을 금못으로 고정시키면
18초 금관은 완성된다.
이렇게 금관 하나를 만드는데는 보통 한달여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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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드는 AL. 완성된 겁니까? 앞모양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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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각 8초 완성된 금관은 수많은 장식의 무게 때문에 휘청거리고 불안정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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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배 AL. 다른 부분은 다 .. 요 가지 부분하고 테하고 연결되는 부분이 전체 돌무게하고 금무게를 받는데
이게 몇발자국 걸으면 흔들려서 부분이 꺾일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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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실험남녀 LS 완성된 금관을 실제로 써보기로 했다.
23 초 그러나 세움장식을 실로 고정시키고 안에 모자를 쓰고서야 겨우 금관을 머리에 쓸 수 있었다.
신라 왕들도 이렇게 금관을 썼던 것일까?
과연 쓰고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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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머리에 시골아줌마들이 항아리 이고 손 잡지 않고 조심조심 머리가 흔들리지 않게 걸었다.
떨어질까봐 벗겨질까봐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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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12초 금관은 평소에 쓰기고 다니기엔 좀 불편한 구조였다.
그렇다면 신라 왕들은 이런 금관을 어떻게 썼을까?
#천마총 들어가는 경주의 천마총.
10초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내부가 그대로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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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상과 2S AL 현재 돌 윤곽이 있는 게 관이 있는 자리가 되겠고 피장자 머리쪽 수북하게 되어 있는 것이
부장품을 전용으로 넣었던 상자가 된다 이 주변에 돌을 채우고 나무시설이 목곽입니다.
원래 사이즈대로 복원해놓은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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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팬 목관 안을 살펴보면 허리 쪽에서는 금제허리띠,
18초 가슴부터 어깨부근에 목걸이와 가슴걸이, 그리고 금관은 머리부분에서 고깔모양으로 발견됐다.
#FS에서 금제 유물 부각 6초 컴퓨터그래픽으로 실제모습을 복원해봤다.
#출토모습 인체라인 복원 주인공은 유물을 착용한 채로 무덤 속에 누워있었다.
유물의 위치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유물들은 모두 제 위치에서 발견된 반면
#금관으로ZI 금관은 가슴걸이의 어깨선까지
8초 내려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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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상 AL 이 가슴걸이 제일 위하고 금관의 아래쪽이 서로 중복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착용할 때 금관의 아래부분이 어깨까지 내려왔을 가능성이 다는 것을 얘기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결국 고깔모양으로 올려져있는 사실과 연결될 수 있을 텐데요, 마도 피장자 얼굴 내지 머리전체를
덮어서 무덤 속에 넣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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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으로ZI (머리 위 돌) 무덤의 내부구조를 살펴봐도
14초 금관은 목관의 거의 끝부분에 놓여있어서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다.
#적석목곽분 구조 TD 금관이 발견된 천마총은
16초 돌과 흙을 덮어 만들어진 거대한 무덤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라에서만 발견되는 적석목곽분이라는 독특한 묘제다.
#CG 바닥에 시신을 안치한 목관을 놓고 머리쪽에
16초 부장품을 넣어두는 상자를 놓고 그 위에 다시 커다란 나무상자를 만들어 덮은 후에 돌을 쌓고 그 위에
다시 봉토를 쌓는다.
#CG ( 썪는 상황) 그렇다면 나무가 썩고
12초 그 위에 돌이 떨어지면서 금관의 형태를 변형시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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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상INT 이게 넘어질 때 2-30년 시간이 경과하면 안의 곽에서 균열이 생기면서 조금씩 모래가 들어가고
나중에 돌무지가 한 곳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전체가 주저 앉는 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그런 상태라면 흙이 어느 정도 가운데 차있고 다시 돌이
무너지기 때문에 유물자체가 돌에 맞아 튄다거나 그런 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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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관 결국 금관은 주인공을 안치할 때부터
12초 얼굴전체를 고깔모양으로 감싼 채 넣어졌던 것이다.
#발굴현장으로 팬 1973년부터 75년까지 무려 2년여에 걸쳐 발굴된
8초 황남대총.
-거두어 내는 모습(4초) 여기서도 금관은 피장자의 턱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금관 들어내는 그리고 조심스럽게 금관을 꺼내올렸을 때
8초 그것은 고깔모양을 한 채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서봉총 TU 금관( 1936) 1926년 발굴된 서봉총 금관도 천마총, 황남대총금관과
12초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금령총 금관 팬 발굴사진 그리고 금령총금관의 경우도
13초 발굴당시의 사진을 살펴보면 금관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고 고깔모양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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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상INT 경주의 왕릉에서 나오는 금관총, 황남대총, 천마총에서 나오는 금관의 출토상태는 매우 특이합니다.
얇은 금판으로 만들었는데다가 입식이 매우 높습니다
곡옥도 수백개씩 달려있기 때문에 구조가 약하고 금관의 출토상태가 턱아래까지 내려왔다.
그것으로 볼 때 금관은 평소에 왕이나 왕족이 썼던 것이 아니라 그런 분이 돌아가셨을 경우에 장례용품으로
특별히 만들어서 매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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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금관 돌아가다가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금관.
18초 이것은 생전에 자신의 지위와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썼던 왕관이 아니었다.
죽은 후에 왕의 얼굴을 덮어주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였다.
<ST 3 >
#금관이 얼굴을 고깔모양으로 덮어쓰고 있는 모습 ( CG )
금관이 실제로 왕이 썼던 것이 아니라 데드마스크였다.
선뜻 받아들이기엔 좀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금관이 데드마스크였다'는 이 사실에 대해서 그래서 또 다른 반론도 있습니다.
장송용이 아니라 특별한 의식, 즉 즉위식이나 제사와 같은 국가의 중요행사 때에만 잠깐 썼을 거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금관이 평소에 쓰고 다니기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전제가 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죠..
게다가 금관과 함께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면 금관을 데드마스크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 있는 유물은 모두 주인공이 착장한 채로 발견된 것인데요,
#금제허리띠
이것은 허리춤에서 나온 허리띠인입니다.
모두 순금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처럼 간단하게 허리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길게 장식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치렁치렁해서 실제로 허리에 차고 다니기엔 좀 불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이 허리띠를 만드는데는 금관에 들어간 금의 양의 약 3배 가량의 금이 들어갔다고 하니까..
그 무게가 3.6kg, 거의 4kg에 이릅니다. 실제로 허리에 차고 다니기엔 좀 무리가 있었겠죠?
#금동신발 나오고
그리고 이것은 피장자의 발 위치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입니다
금동, 그러니까 구리에 금도금을 한 신발이죠..
근데 이 신발의 크기를 재 보면 크기가 무려 342mm
한국인성인남자 평균 발 크기가 ( )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큰 편이죠..
딱딱해서 안에 천이나 뭔가를 깔고 덧대어 신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상당히 큰 편입니다.
그리고 바닥을 살펴봐도 평소에 신고 다니기엔 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이걸 신고 과연 한발짝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주인공이 착장한 채로 발견된 금으로 된 유물들은 모두 평소에 쓰던 실용품이 아니라 무덤에 넣어주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장송의례용였던 것 같습니다.
금관과 함께 착장한 채로 발견된 유물들이 모두 실용품이 아니라 장송의례용였다는 점을 통해 유추해보더라도
금관은 무덤의 주인공이 살아생전 머리에 썼던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 무덤에 넣어주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데드마스크였다는 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왜 죽은 자를 위해 귀한 금으로 금관까지 만들어서 무덤 속에 넣어주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줄 암호는 바로 금관에 있겠죠..
신라인들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금관, 그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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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3 금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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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헬기샷 경주 대릉원.
15초 금관은 4세기부터 6세기 약 150년동안 조성된 거대한 무덤에서만 발견된다.
#황남대총 표형분 신라고분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황남대총.
12초 (남분 북분) 높이 23m, 길이 120m의 거대한 고분으로 두 개의 무덤이 이어져있다.
#유물 환두대도 16초 남분에서 출토된 금제 환두대도.
지배자의 상징인 환두대도가 출토된 것으로 봐서 남분의 주인공은 왕으로 추정된다.
#인골로 TD 고분 안에서 무덤의 주인공을 추정할만한 단서가 나왔다.
14초 그것은 두개골의 일부와 치아였다.
# 인골과 치아 분석 CG 이것을 분석해 본 결과
15초 무덤의 주인공은 60대의 남자로 밝혀졌다
#황남대총 전경 북분 7초 남분에 이어 북분에서도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허리띠 /금관 6초 이곳에서는 금관이 발견됐는데.. 신라 금관 가운데 가장 장식이 많고 화려하다.
-금관 TS 13초
#은제허리띠 9초 금관과 함께 출토된 유물 가운데 허리띠가 있는데 이 허리띠에는 금관의 주인공을 추정할만한
-명문 부인대 10초 단서가 보인다
'부인대' 즉 황남대총 금관의 주인공은 여성였다
#고분 (왕제연표 ) 이 금관의 주인공은 여왕이었을까?
15초 그러나 금관이 발견되는 4세기부터 6세기 초까지 신라에 여왕은 없었다
금관의 주인공은 왕비였던 것이다.
#전시실 팬 금관 (금령총 ) 1925년 발견된 금령총금관.
11초 다른 금관의 지름이 20cm가 넘는 데 반해
-금관 FS 4초 금령총금관은 16.4cm에 불과하다.
#허리띠 11초 또한 허리띠의 길이도 다른 허리띠에 비해 상당히 작아서 금관의 주인공은 소년으로 추정된다.
#교동금관 경주 교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교동금관.
12초 이 금관 역시 어린아이용으로 추정된다.
#비교 CG 관테지름이 14cm로 한국성인남성의 평균 머리크기와
9초 비교하면 작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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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상INT 아마도 왕은 착용한 것 같습니다 금령총이나 교동보면 왕자나 공주도 착용
그리고 황남대총 북분보면 왕비도 착용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왕과 일족 중에서 왕과 친연성이 강한 자들만이 제한적으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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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 금관의 주인공은 왕뿐 아니라 왕과 가까운 왕족였다.
15초 그렇다면 왜 4세기에 들어서면서 금관이 등장한 것일까?
#계림TD 경주의 계림.
9초 신라 김씨왕족의 시조인 김알지가 탄생한 곳이다.
#계림비각 삼국사기에는
11초 김알지탄생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해놓고 있는데
여림수간.. 7초 나무가지에 금궤가 걸려있고 흰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었다
백계명어기하 3초 금궤를 열어보니 남자아이가 나왔고.
기출어금궤 5초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성을 김씨로 했다.
#계림 7초 김알지탄생신화는 김알지를 비롯한 김씨왕족이
금을 바탕으로 한 세력이었음을 암시한다.
-금관 나오는 그리고 금관이 등장하는 4세기 말은
12초 신라의 김씨 세습왕조를 열어가던 내물왕 때였다.
#삼국유사 내물왕 이전의 신라에서는
25초 박,석,김 세 성씨에서 왕이 번갈아 나왔다.
내물왕 때에 이르러서야 김씨왕족의 세습체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왕의 칭호도 바꾸는데 이전까지는 이사금을 쓰다가
4세기 내물왕 대에 이르러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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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돈 INT 4세기 중엽이전까지 왕호는 이사금이었다 이사금은 이빨을 의미 따라서 이사금은 연장자를
뜻하기 때문에 지배자의 칭호가 이사금이라고 하는 것은 지배자가 그렇게 강한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17대 내물왕에 와서 왕호가 마립간으로 바뀌게 된다.
마립간이라고 하는 것은 따라서 간 중의 간으로서 경주 뿐 아니라 지방세력을 대표해서 아우른 존재 유력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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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돌아가는) 4세기에 신라의 강력한 지배자로 등장한 김씨왕족은
11초 화려한 금관을 만들어
#고분 11초 거대한 무덤 속에 넣었다.
금관은 바로 마립간 시대 김씨왕족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 ST4 >
#건국신화 삽화들
이것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근거해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신화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납니다.
이것은 신라인들에게 새가 영혼의 운반자로서 죽음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중요한 지도자의 탄생과도
어떤 관련이 있다고 믿어왔던 믿음의 반영일 겁니다.
지도자의 탄생이 날 때부터 범상치 않았음을 주장하기 위해 알에서 태어났다고 표현했던 것,
이 난생신화는 왕이 새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의 대리자로서,
신의 의지를 인간세상에 구현하는 신성한 존재라고 믿었던 고대 신라인들의 믿음의 표현였던 거죠..
결국 금관 속의 새와 나무는 금관의 주인공이 하늘, 즉 신의 대리자라는 것을 상징함과 동시에 죽어서는
영혼을 하늘로 실어나르는 운반자로서의 상징성까지 지니고 있는 겁니다.
귀한 금으로 금관을 만들고 거기에 새나 나무를 형상화해서 죽은 이의 무덤 속에 넣어주었던 것,
여기에는 찬란한 빛이 영원히 바래지 않는 금처럼 금관의 주인공이 현세에서 신의 대리자로서 누렸던 지위와
권능이 내세에세도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것으로 금관이 데드마스크라는 것이 보다 명확해집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금관이 실제로 왕이 썼던 것이 아니라 무덤 속에 넣어주기 위해 만든 장송의례용였다.
그렇다면 이 왕들은 실제로 무엇을 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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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4 금관의 구조를 통해본 금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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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학교 전경 2초 충남 부여에 있는
-김병모 8초 한국전통문화학교의 김병모총장.
-금관의 비밀 그는 오랫동안 신라금관의 구조와 그 상징성에 대해 연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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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모 INT 1925년 금관총금관이 발견됐다 그때 일본의 고고학자들이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일본에 그런 게 하나도 없고 지구상에서 그런 게 한번도 발견된 적도 없고 그리고 도대체 이게 무슨
모양인지 알 수 없으니까
10년 지나도록 보고서 내지 못했다. 오로지 하나 추정하는 것은 녹각 보고 시베리아 사는 무당들 중에서
모자에 녹각 붙이는 민족이 있다
라고 생각하고 시베리아 샤먼의 모자하고 연결된다.. 굉장히 중요한 관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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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TU (사슴뿔) 금관의 관테두리 위로 솟아있는 장식은
13초 사슴뿔을 상징한 것이다.
그렇다면 금관에 왜 사슴뿔을 표현한 것일까?
#엠블럼(세계문화엑스포 )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 현장.
-새천년의 숨결 북방민족의 다양한 유물이 초청 전시되고 있는데
13초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카자흐스탄의 이씩에서 발굴된 황금인간.
#금루인간 TU 발에서 머리끝까지 온통 황금으로 둘러싸여 있다.
14초
#칼 ZO 허리띠 황금인간은 신라무덤의 주인공처럼 금으로 만든 칼과
14초 허리띠를 찼다.
#모자 위의 사슴 TD 그리고 고깔형의 모자를 썼는데
17초 모자에는 산양과 사슴, 새 등의 동물이 보인다.
#사르마트금관 ZI 시베리아남부에서 발견된 사르마트금관.
사슴 나무 13초 우리는 여기서 신라금관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금관의 테두리 위로 사슴, 그리고 잎과 열매가 풍성한 나무가 서 있는 것이다.
#신라금관과 비교 10초 사르마트금관의 추상화된 표현
그것이 바로 신라금관인 것이다.
#출자형 10초 금관의 가운데 세움장식은 나무가지를 표현한 것였다.
#장식 12초 그리고 거기에 달린 비취 옥과 금장식은 바로 나무열매와 나뭇잎였다.
#도안 펼쳐진 모습 10초 결국 금관은 사슴과 나무의 상징적 표현였다.
왜 금관에는 사슴과 나무를 표현한 것일까?
#순록과 나무 22초 고대북방민족들에게 사슴과 나무는 신성한 존재였다.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자라는 나무는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 즉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 믿었다.
또한 사슴을 비롯한 동물은 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신령스런 존재로 믿었던 것이다.
#샤먼복장 이같은 사실은
8초 고대 샤먼의 복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등에서 TU 당시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매개자이자
12초 절대적인 지배자로써 군림했던 샤먼.
이들은 대개 머리 위에 사슴뿔 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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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라INT 샤먼은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는 매개자로서 종교적 역할 수행합니다.
그런데 샤먼이 인간들의 이야기를 신에게 전달하고 신의 의지를 받아올 때는 샤먼 혼자의 힘만으로 보다는
보호자라든지 수호자로서의 또 다른 매개가 필요한데 그런 매개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이런 동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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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동물에 대한 신앙은 고대 스키타이 영역이었던, 흉노족의 몽골초원, 그리고 만주와 한반도 신라까지
15초 동서로 길게 이어진 초원의 길을 따라 널리 공유되었던 믿음이었다.
#서봉총금관 새로 ZI 금관에 나타난 또 하나의 상징은 새이다.
서봉총 금관에는 세 마리의 새가 표현되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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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모INT 그들의 신앙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즉 그 모자를 쓴 사람, 그 종족이 처음 태어날 때,
그들의 조상이 태어날 때 그 어머니가 나무 밑에서 간절한 기도를 하다가 하늘의 정령을 가져온 새가 그 여인이
기도하고 있는 나무꼭대기에 앉았다가 갈 때 그 밑에서 기도하고 있던 여인이 정령으로 잉태한다는
시베리아사람의 민속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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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13초 중요한 지도자의 탄생에 새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은 신라도 마찬가지였다.
박혁거세나 김알지탄생신화에는 모두 새가 등장한다
#새 위대한 지도자가 새를 통해
10초 하늘에서 내려왔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삼국지 기록 14초 또한 새는 장례와도 연관이 있다.
삼국지 변진조에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날아가도록 큰 새의 깃털로 장례를 지낸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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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모INT 나무, 새 이것은 어느 씨족의 조상이 태어날 때 생명을 그런 과정에서 받았기 때문에 그 분이
살다가 이 세상을 버리고 다시 돌아가시면 이것을 통해서 다시 정령이 하늘로 돌아가시게 하느라고 높은
사다리를 만든 겁니다
때로는 이 사다리에 새가 앉아있는 것도 있다 이 말입니다.
그 새가 한 마리도 있고 세 마리도 있다 이 말입니다.
그만큼 새가 정령을, 육신은 남아있지만 정령만 고향인 하늘로 데려간다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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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아가는 새 고대 신라인들에게 새는
21초 하늘과 인간세상을 연결하는, 신령스런 매개체였다.
따라서 금관에 새의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태어날 때처럼 금관의 주인공이 새의 인도를 받아 다시 하늘로
돌아가길 기원했던 것이다.
< ST 5 >
# 대릉원
경주 시내를 지나다 보면 집들 사이로 신라의 옛 고분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다보면 마치 천여년 전의 신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시공을 초월한 신비감이 느껴집니다.
경주 시내에만도 이런 고분이 모두 155기나 밀집해 있는데요,
그 중 가장 큰 고분군이 바로 이곳 대릉원입니다.
약 12만평의 평지에 미추왕릉, 천마총이나 황남대총을 비롯해 모두 23기의 능이 솟아있습니다.
이 가운데 천마총을 보면 봉분의 높이가 13m, 너비가 47m에 이르는 거대한 고분입니다.
( )층짜리 건물의 규모죠..
이렇게 큰 고분은 적석목곽분이라 불리는 무덤으로 삼국 가운데 신라에서만 발견되고 신라에서도 4세기부터
갑자기 등장한 무덤입니다.
그리고 금관은 바로 이 거대한 적석목곽분에서만 발견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적석목곽분과 금관 그리고 4세기라는 시기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적석목곽분이 등장하던 4세기에 신라에서는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바로 그 비밀의 열쇠는 거대한 고분의 주인공, 그리고 금관의 주인공이 쥐고 있을 겁니다.
금관의 주인공들은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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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CR 5 > 평소에는 무얼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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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금제모자 금관과 함께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11초 순금으로 만들어진 고깔형의 모자와 새날개모양의 장식이 보인다.
#금제관모(금관총) 그러나 이 모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13초 손 한뼘높이에, 폭도 6cm내외로 지나치게 좁다.
과연 이걸 실제로 쓸 수 있었을까?
#책TU 강순제 교수 신라 왕이 평소에 어떤 모자를 썼는지 알아보기 위해
13초 우리나라 관모를 연구하고 있는 카톨릭대학교의 강순제교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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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여기서 보이는 이러이러한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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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ZI 고구려 무용총벽화를 보면 사냥하는
9초 고구려인들이 보이는데 모두 신라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고깔형의 모자다.
#무영총벽화 TS 8초 그러나 그 모습은 머리 위에 살짝 얹어놓는 형태였고 모자에는 하나같이 새깃을 달았다.
#기록 중국의 기록에는 고구려인이 머리에 절풍을 쓰는데
11초 그 모양이 고깔과 같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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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제INT 삼각형의 관모에다가 무엇인가를 꽂은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 재료에 있어서는 삼국에 있어서
조금씩 다르거나 아니면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본다면 삼국의
공통적인 관모가 삼각형의 고깔형의 관모다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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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모자 투각 ZO (굴곡 ) 실제로 금모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부분이 곡선으로
9초 돼있어 정수리의 굴곡을 고려한 흔적이 보인다.
-TD 구멍 17초 또 바닥에는 돌아가면서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끈을 연결해서 턱에 고정시켰던 것은 아닐까?
#CG 컴퓨터그래픽으로 머리에 쓴 모습을 복원해봤는데
15초 금제관모와 정수리의 곡선이 일치했고 구멍에 끈을 연결하면 턱밑에 고정시킬 수 있었다
# 새날개 13초 새가 날개를 활짝 편 모양의 장식.
무용총 벽화의 새 깃털을 연상케한다.
-TD 끼움장치 장식의 아래부분을 살펴봐도 어딘가에
11초 끼울 수 있게 끝이 뾰족하게 되어 있다.
#관모 앞장치 TU 18초 그리고 금모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앞부분에 금판을 덧댄 부분이 있다.
그리고 뭔가를 끼울 수 있게 공간이 비어있다
#접합 + 7초 그렇다면 금모자에 새날개모양의 장식을 끼워서 썼던 것은 아닐까?
#조익형관식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원해 본 결과
17초 모자 앞부분의 접합부분과 새날개모양의 끼움장치가 꼭 맞았다.
왕은 순금으로 된 고깔형의 모자를 쓰고 새날개 장식을 달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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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제INT 기본 모델은 삼각형의 고깔형 관모 이것이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있죠.
그리고 신라시대에 오면 재료상의 변화로 그래서 금속제로 변화한 고깔모양의 모자 여기에 장식조차도 자연
조우에서 변화해서 금속제의 보다 더 대형화된 잘 생긴 조익형관모장식으로 변화한 것이니까
기본 형상에서는 똑같고 재질의 변화라든가 수식의 차이라든가 이런것들이 신분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
이라고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좋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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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관모 순금으로 만든 고깔모자와 새날개장식은
8초 과연 왕만 썼던 것일까?
#팬 무령왕 금꽃장식 백제왕도 역시 순금으로 된 모자장식을 했던 것을
12초 알 수 있다 .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순금제장식.
-TU 11초 이것은 왕의 모자장식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전체적으로 꽃모양을 띠고 있다.
#기록 구당서의 기록에는
14초 백제에서 왕은 금꽃, 신하는 은꽃으로 장식한 모자를 쓴다고 돼있어 재질로써 신분을 구분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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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순섭INT 삼국시대 사람들이 고깔모양의 모자를 썼다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다.
근데 기록에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단으로 만든 모자를 썼던 것 같다 근데 거기서 왕은 아마 좀 더 특별한
의미로 금으로 만든 모자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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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모자 (물레) 13초 신라왕은 지배자로서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서 순금으로 만든 고깔
모양의 모자를 썼던 것이다.
< ST 6 >
# 황남대총 발굴조사보고서
이것은 1973년에 발굴된 황남대총의 발굴조사보고서입니다.
여기에는 발굴당시의 모습, 출토유물에 대한 기록 뿐 아니라 무덤을 하나를 쌓는데 필요한 인력과 물량까지
분석돼 있습니다.
이 분석을 통해 우리는 마립간 시대 왕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 황남대총 고분 CG
황남대총의 규모는 길이 120m, 높이 23m로
우선 무덤을 조성하는 데 들었을 돌의 양이 1,928m, ( )톤 트럭 ( )대분,
그리고 봉토를 쌓는데 들었을 흙의 양이 67,377m, ( )톤 트럭 ( )대 분에 이릅니다.
이 무덤 하나를 만드는데 필요한 인원수를 계산하면 총 37,000명으로 하루 200명 정도가 작업한 것으로 계산
하면 전체기간은 약 185일,6개월정도가 소요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덤 하나를 조성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인력과 기간만을 따진 것인데요,
여기에 부장된 유물들을 보면 수 많은 금제유물 외에도 토기류가 약 1500여점,
철기도 300여점에 달하는 것으로 봐서 부장유물을 만들고 그것을 무덤까지 이동하는 인력까지 고려한다면
이보다 훨씬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무덤 하나를 만드는데 3만7천명이상의 인력이 동원됐고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마립간 시대 왕족의 배타적인 권위를 과시하기엔 충분할만큼 국가적인 대역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자신들의 배타적인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수 많은 인력과 시간을 들여서 무덤을 만들었
을까요?
고대 삼국시대에는 왕을 비롯한 왕족의 장례는 호사의 의미뿐 아니라 어떤 정치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
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무덤을 조성하고 수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그 안에 부장할 토기나 금제유물을 만들고
금관을 부장하는 과정에서
왕이나 왕족인 무덤의 주인공이 신의 대리자이자 천손임을 과시하고..
따라서 그들이 다스리는 이 나라는 신성한 것이고 그들에 의한 정치행위는 신성한 행위다 이런 믿음이
피지배계층에 널리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이죠..
즉 왕을 비롯한 왕족의 장례식은 자신들의 지배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또 신라라는 국가 내부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정치적인 장였던 것입니다.
#금관과 금동관
왕족의 무덤에 넣어주었던 이 금관에는 신라인의 종교관 뿐만 아니라 이런 정치적인 의미도 깊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금관과 비슷한 금동관이 지방에서도 발견된다는 겁니다.
금동관은 구리에 금도금을 한 것으로 금관보다는 한 단계 아래지만 최고 권위를 상징하던 금관과 형태가
아주 흡사한 점을 고려하면 금동관 역시 금관처럼 지위와 권능의 상징였던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 금동관이 경주 인근이 아닌 지방에서도 발견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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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CR 6 > 금동관은 왜 지방에서 발견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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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TD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
13초 나즈막한 구릉 위에 수천여기의 무덤이 모여있다.
-무덤에서 팬 이 가운데 경주의 무덤에 버금가는 거대한 무덤들도 보이는데
이것은 이 지역을 다스리는 최고지배자의 무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관이 나온다 12초 여기서 금동관이 하나 출토됐다.
신라금관과 비슷한 모양였다.
#조익형은제관식 5초 / 그리고 금동관과 함께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면 새날개모양의 관식,
허리띠/7초 은으로 된 허리띠,
금동신발 5초 금동으로 만든 신발,
환두대도 14초 그리고 지배자의 상징인 환두대도 등
경주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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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순섭INT 경주와 지방, 지방이라고 했을 때는 대구라든지 창녕, 의성 안동지역까지 포함될 수 있겠지만
그쪽에서 보면 순금제 관이 경주에서 나온다 했을 때 똑같은 모양의 비록 재질이 다른 금동관이 다른 지방
에서 다 나온다.
그리고 순금제 허리띠가 있다면 그 모양과 똑같은 거지만 재질이 다른 금동이나 은으로 만든 것이 지방에서
다 나온다.
그것은 바로 경주에서 동일한 공인집단에 의해서 규범화된 형태를 만들어서 그것을 지방에 하나씩 나눠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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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당고분 ZO 경주에서는 왜 지방에 금동관을 나눠준 것일까?
11초 이곳 임당은 당시 경주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삼국사기 압독국 11초 삼국사기에는 임당에는 일찍이 압독국이라는 독립국이 있었는데
일성왕 때 신라가 압독국을 평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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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돈INT 4세기 중엽만 하더라도 경산의 압독, 압량 세력은 완전한 독자세력이었는데
이 이후에는 경주세력에게 포섭이 됩니다, 포섭이 되는데 완전하게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기반을 해체
당한 상태는 아니고 어느 정도는 자립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대신 독자적으로 군사적인 활동을 한다거나
대외적으로 다른 정치세력과 교섭을 한다거나 요즘말로 하면 외교권 군사권은 경주의 지시를 받아가지고
행사해야만 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독립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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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전시관 무덤의 내부구조를 그대로 복원해서
18초 전시해놓고 있는 임당고분전시관.
내부를 살펴보면 무덤의 주인공이 이 지역에서 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뚜껑돌에서 팬 무덤은 주인공이 묻힌 주곽과 유물을 부장한 유물수장부 7초 부곽이 따로 있는 구조인데
-인골 2초 여기서 사람의 두개골을
-뼈들 11초 비롯해 여러 구의 인골이 발견됐다.
#주인공에서 팬 인골 주곽에서는 무덤의 주인공 외에
8초 여자아이의 인골 2구가 발견됐다.
#수장부로ZI 인골 그리고 유물을 넣어두는 부곽에서는 성인남자의 인골
11초 2구가 발견됐다. 그것은 순장의 흔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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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성INT 이런 무덤이 계급에 따라서 다 달라진다.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가장 큰 무덤을 만든 사람들의 무덤 속에만 순장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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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여러사람을 함께 순장할 수 있었던 강력한 권력.
16초 금동관의 주인공은 이 지역에서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CG 금동관은 경산 외에도 여러지역에서 발견된다.
24초 그런데 이들 지역은 경주일대에만 세력을 가지고 있던 신라가 4세기 경부터 영토를 확장하면서 새로이
편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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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돈INT 금동관을 지급하던 시기는 신라영역에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고 그 지역에 거주하던 수장층,
지배세력을 이용해서 지방지배를 하던 그런 형태를 우리는 간접지배라고 하고 있다. 바로 그런 시기에
유효적절하게 활용했던 것이 바로 금동관의 지급이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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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 17초 금동관은 신라가
지역의 독립세력들을 자국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면서 여전히 그 지역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배자들에게 종속관계를 다짐하기 위해 하사했던 것이다.
#석양 13초 그리고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김씨왕족은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순금으로 만든
금관을 무덤 속에 넣었던 것이다.
< ST 7 - 클로징 >
# 지도 ( 6세기 중엽 진흥왕 때 )
금동관은 신라가 비약적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면서 고대국가로서 기틀을 확립하는데 효율적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역시 금관처럼 정치적인 상징물였던 겁니다.
그러나 금관과 금동관은 6세기 중엽으로 접어들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왜 이 시기에 갑자기 금관과 금동관이 사라진걸까요?
여기 이 지도는 6세기 중엽 진흥왕 때의 신라영역을 표시한 지도인데요,
서기 551년에는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는 한강유역을 점령하였고 동해안으로는 함흥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이렇게 신라가 영역을 확장하면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져가던 시기에 금관과 금동관은 사라진 것입니다.
# 삼국사기 -주군현 제정 /왕호제정
이 시기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삼국사기를 살펴보면요,
6세기에 접어들면서 신라에는 몇가지 중요한 정치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증왕 6년인 505년 주군제를 실시하게 됩니다.
이것은 중앙에서 직접 지방관을 파견하는 중앙집권체제를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리고 왕의 칭호도 이전의 마립간에서 왕으로 바꾸게 됩니다.
지방을 아우르는 수장이라는 의미의 마립간에서 왕으로 칭호가 바뀌었다는 것은 보다 강력해진 왕권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6세기에 접어들면서 보다 강력해진 왕권을 이용해서 지방에 지방관을 파견하고
따라서 신라 전 지역을 왕의 직접 통치권 아래 두게 된 겁니다.
이렇게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춘 신라로서는 더 이상 금관이나 금동관같은 위세품, 즉 정치적인 상징물은
필요없게 된 거죠..
신라가 불과 150년만에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고 비약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금동관과 금관이 있었습니다.
#금관
금관은 단지 화려한 예술품만은 아닙니다.
4-6세기 신라의 독특한 정치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탄생했던 정치적 상징물이자 종교적인 상징물였습니다.
금관은 4-6세기 신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의 정치사회적인 배경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역사의 단초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