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장관님, ‘국민주권의 대북정책’ 제대로 부탁드립니다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5선의 정동영 의원이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2004년 31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후 20년 만에 두 번째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으로 정동영 장관이 어떤 한반도, 어떤 남북관계를 설계할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이 글에서는 정동영 장관이 이끄는 통일부의 새로운 남북관계 구상을 살펴보고 '국민주권의 대북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안하려 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새로운 남북관계 구상
지난 7월 25일 제44대 통일부 장관의 취임식이 개최됐다. 정동영 신임 장관은 ‘정책의 대전환을 통해 실종된 평화를 회복하고 무너진 남북관계를 을으켜 세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정동영의 새로운 남북관계 구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정동영 장관은 새로운 남북관계 구상으로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첫 번째로 남북 간 평화공존이다. 그는 지금은 평화의 시간이며, 공존의 시간이라고 지적하고 상호 적대가 아닌 상호 공존을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실용적인 방안을 찾아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남북 간 끊어진 연락 채널을 신속히 복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 평화경제와 남북의 공동 성장을 제시했다. 정 장관은 평화가 경제를 안정시키고 경제가 다시 평화를 확장하는 남북 간 ‘평화경제’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해서 정 장관은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남북 간 경제협력을 재개하고, ‘한반도 AI 모델’과 같은 첨단형 미래 협력 모델도 모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정동영 장관은 국민주권의 대북정책을 제시했다. 통일부는 가장 시민친화적이고, 가장 시민참여적인 부처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주권자인 국민이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 기구 출범과 국회와의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였다.
국민주권의 대북정책, 닫힌 ‘사회적 대화’ 넘어선 실천으로 이어져야
정동영 장관이 취임사에서 제시한 새로운 남북관계 비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민주권의 대북정책’이다. 필자 또한 이재명 정부가 대북·통일정책에 있어 정책 독점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관련 기사: 이재명 정부, '정책 독점'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https://omn.kr/2e8jt).
관련하여 정동영 장관은 국민주권의 대북정책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는 광장에서의 빛의 혁명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국민주권정부란, 평화와 통일문제에 주권자가
폭넓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평화와 통일에 구경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부는 가장 시민친화적이고,
가장 시민참여적인 부처로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역사와 국민의 뜻이어야 합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조속한 시일 내에 ‘사회적 대화 기구’를 출범하도록 할 것입니다.
정동영 신임 장관이 ‘국민주권의 대북정책’을 전면에 제시한 것은, 이재명 정부가 어떻게 탄생했고 그 주체가 우리 국민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한 결과라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다만 ‘국민주권의 대북정책’이 단지 ‘사회적 대화 기구’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으로 끝나 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사회적 대화’는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됐던 사회적 대화와 그 결과로서의 ‘통일국민협약’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관련 자료: 통일국민협약, https://www.korea.kr/special/policyCurationView.do?newsId=148897704). 통일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는 기존의 ‘통일국민협약’을 넘어서 한반도 미래 이슈를 새롭게 토론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선순환의 프로세스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래 세대의 참여와 역할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부 내 허수아비 위원회 재정비해야
좀 더 구체적으로 대북·통일정책에서 국민주권의 실현은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통일부는 법률에 의거 해 각종 위원회를 운용하고 있다. 관련 위원회로는 남북관계발전위원회(남북관계발전법), 남북교류협력 추진협의회(남북교류협력법), 평화경제특별구역위원회(평화경제특구법) 등이 있으며 통일부 장관 산하의 위원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 위원회들이 ‘국민주권의 대북정책’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점이다. 다소 거칠게 질문해보자. 윤석열 정부가 ‘즉·강·끝’(즉시·강력히·끝까지) 원칙을 외치며 대북 강경정책으로 남북대결이 극에 달했을 때 남북관계발전위원회와 남북교류협력 추진협의회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 산하로 운영한 통일미래기획위원회는 전문가들이 제시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8.15 통일 독트린’을 만드는데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25억 5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대부분 2024년 통일부 업무계획을 ‘복붙’(복사해 붙임)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관련 기사: 2년 동안 준비한 '통일 독트린', 매우 실망입니다, https://omn.kr/29tdl).
통일부는 이들 위원회가 ‘국민주권의 대북정책’을 구현하는 현장이 될 수 있도록 구성과 운영을 새롭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 물론 통일부 입장에서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정책 독점과 내란 세력의 계엄에 맞서 일어선 국민들의 의지로 탄생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 위원회들이 정부의 정책 독점을 견제하고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겸비한 시민사회의 참여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통일부는 또한 각종 정책자문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실효적인 자문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 반영의 결과를 피드백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50대’, ‘남성’, ‘전문가’인 필자 스스로 고백하건대, 통일분야의 각종 위원회와 학술회의 패널 구성은 과도하게 ‘50-60대’, ‘남성’, ‘전문가’로 편중되어 있다. 통일부는 산하의 각종 위원회와 자문위원회, 그리고 학술회의 패널 구성에서 미래 세대와 여성, 시민사회 활동가의 역할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정동영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복원을 기대하며
필자는 지난 3년간 윤석열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에 누구보다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윤석열 정부가 극단적인 정책 독점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한반도 평화를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를 악용해 국내 정치에 악용했기 때문이다.
정동영 장관은 새로운 통일부가 만들어갈 남북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통일부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적 남북관계, 남북이 공존하는 평화적 남북관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실용적 남북관계, 세계시민과 연대하는 보편적 남북관계를 열어갈 것입니다.”
물론 현실은 녹녹지 않다. 북한은 돌아서 있고 우리 사회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어려운 국내외 정세 속에서도 이재명 정부의 통일부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상생이란 미래를 꿈꾸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필자 또한 건전한 비판자로서 정동영 장관이 제시한 세 가지 비전이 실현될 수 있도록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리빌딩 전략 2025>,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 등을 집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