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세례
세례는 물세례와 불세례와 성령세례가 있다. 물세례는 죄에 대한 죽음이고, 불세례는 죄의 몸에 대한 죽음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되어 죽는 죽음을 상징한다. 성령세례는 십자가에서 죽은 자를 하나님이 성령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는 부활을 의미한다. 물세례는 비신자가 신자가 되겠다고 마음의 결심할 때 주는 언약체결식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불세례는 물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는데, 여전히 죄의 몸이 죽지 않은 자가 회개하여 받는 세례인 것이다. 성령세례는 물세례와 불세레를 받은 자에게 하나님이 언약을 확증하는 것이다.
물세례에 대해서 살펴보면, 요한복음 3장 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은 물세례를 의미하며,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죄에 대해 죽으므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나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마음이 주어진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의 표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물세례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즉 물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부활하여 구원을 얻게되는 것이다.
물세례는 구원의 표라고 했다. 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물세례는 구원의 약속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믿을 때, 하나님이 성령으로 나게 해 주시는 것이다.
물세례와 성령세례와의 시간적 차이는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 만이 알고 계신다. 물세례와 성령세례와의 사이에는 사탄의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믿음을 시험하신다. 바랄 수 없는 중에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세례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세례는 예수님이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말씀하신 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말씀 중에서 물에 해당된다. 성령은 불세례와 성령세례에 해당된다. 그래서 물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물은 육체의 더러움을 씻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즉 죄를 씻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물(휘다토스δατος)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로 인해서 두번 나야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태(양수)로부터 나는 것이고, 두번째는 성령을 태어난다는 것이다. 물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로 번역된 헬라어 휘다토스(후도르)는 율법의 말씀을 상징한다. 요한복음 2장 7절에서도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다.『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표면적으로는 유대인의 결례에 따라 손을 씻기 위해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율법에 해당된다.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은 율법의 말씀을 의미한다.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이 선행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부활생명이 주어진다. 그래서 성령세례는 부활생명이 되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물에 대해서, 세례로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다. 세례 또는 침례는 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세례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물세례라고 표현하지 않고 세례라고 표현한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죽음을 표현하는 것이 물세례, 불세례이고, 부활생명을 얻는 것이 성령세례인 것이다.
로마서 6장 3-5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로마서 6장 3절은 세례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의 죽음을 표현하고, 6장 4-5절은 세례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시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는 예수님의 경우 삼일이라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물을 세례로 동일시하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생각한다. 즉 목사가 세례받은 신도에게 당신은 이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라고 선언해준다. 물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임을 나타낼 뿐이다. 불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율법 속에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날마다 예수의 피로 죄를 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세례는 로마서 6장 2절에서 처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처럼, 신도의 마음 속에 탐욕의 우상이 있기 때문에 이 죄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것이다. 희생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 불세례는 로마서 6장 6절에서 처럼 죄의 몸이 죽는 것이다. 죄의 몸(육적 몸:fresh)은 죄를 담는 그릇과 같은 것이다. 희생제물의 고기를 태우는 개념이다.
신도가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믿으면, 사탄의 시험이 들어온다. 세상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었는지 시험하는 것이다.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기복주의에 있는가, 죄를 날마다 회개해야만 하는 율법주의에 있는가, 자신에게 신성(하나님의 형상)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되살리기 위해 영지주의자 처럼 노력하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신비와 경험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여전히 죽지 않은 율법 속에 있는 자들이다. 이것은 신도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죽지도 않았으면서도 스스로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믿는 자들은 스스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이후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하여금 성령세례를 통하여 부활생명을 주신다. 부활생명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늘로부터 신령한 영의 몸을 받는 것이다. 육의 눈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믿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만 영안이 열릴 것이다.
물세례만 받고 마치 천국 백성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예수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물세례는 천국가는 티켓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