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장군봉 호거대507m》산행지도
<장군봉 507m>장군봉은 한때 호거대로 불리기도 했다. '호거(虎踞)'는 호랑이가 무릎을 구부려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국을 말한다. 운문사 입구 석주와 현판에 '호거산(虎踞山) 운문사'라고 적혔는데 이 봉우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운문사 같은 대찰(大刹)의 이름이 장군봉의 기운이 약하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도 범봉을 중심으로 운문사를 둘러싼 산릉을 호거산으로 표시했다.
오늘의 산행은 화랑교-방음산-호거산-호거대(장군봉)-서래봉-굴렁쇠바위-문수선원 -운문사 12km 7시간 소요된다.
<화랑교>을 건너 소머리 암장을 지난 30여분 전망바위에 도착하자 송곳처럼 우뚝 솟은 호거대와 깨진 바위라 불리는 억산, 범봉, 운문산 등 아름답게 펼쳐진다.
<방음산 芳音山>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에 위치한 산이다. 방음동 새마을 동산이 있다. 방음산 정상석 아래에 제법 큰 풍혈이 있다.
방음산 장상석 바로 아래 있는 풍혈. 풍혈은 땅속에서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여름에는 찬바람이 나온다는 신비로움을 간직한 바람구멍이 있다.
<호거산. 해들개봉> 갈림지점에서 왼쪽은 호거대 방향. 우측은 호거산(해들개봉)방향으로 이곳에서 호거산을 다녀오기 위해 우측으로 진행하며 4분후 약 100m 떨어진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는 호거산(614m) 정상에 도달한다.
금천면 박곡리 주민들은 이곳을 해들개봉이라고 부르는데 정상에서 직진하면 도룡굴산(까치산)으로 이어진다.
호거산에서 완만한 능선 따라 3분후 우측 발 아래로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슬픈 이무기의
전설이 녹아 있는 대비지와 대비사, 저수지 뒷편으로 귀천봉(개물방산)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전망대에 도달한다.
<장군봉將軍峰 507m> 장군봉은 정상에 집채보다 훨씬 큰 바윗 한덩어리로 정상봉이다. 우측으로 감아 돌면 거대한 암석 2개가 맞닿아 통천문이 있다. 정상 호거대는 이지역 사람은 아주 옛날 어느 장군이 공기돌 놀이를 하던 수많돌 귀암수석이 돌들이 라 한다
쇠줄을 타고 바위에 기어올라 서니 사위가 뻥 뚫린다. 운문천 너머 지룡산부터 오른쪽으로 문복산 상운산 가지산 억산과 멀리 청도 읍내의 용각산까지 보인다.
<호거대虎踞臺>호랑이가 웅크린 모양 5개의 암봉으로된 호거대 에는 장군봉 정상석이 있다.
집채보다 훨씬 큰 바윗덩어리를 우측으로 감아 돌면 거대한 암석 2개가 맞닿아 통천문이 있다.
우측으로 한 바퀴 돌면 큰 바위 정상부에서 쇠줄이 늘어뜨려져 있다. 높이 7, 8m나 되는 직벽을 굵은 쇠사슬을 잡고 올라야 호거대 정상이다.
사면이 낭떠러지라 아슬아슬한 조망이 사면으로 펼쳐진다. 장군봉이라 쓰인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망무제다.
가까이는 운문천 너머 지룡산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문복산·상운산·가지산·운문산·억산·귀천봉·용각산이 차례대로 펼쳐진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쇠사슬은 바위
위에 고정할 데가 없어 반대편 바위 아래로 와이어로 묶어놓았다.
호거대에서의 男似靑山의 덕을 남긴 채 바위를 내려서며, 완만한 능선 따라 6분후 전망바위를 지나고 돌탑이 있는 명태재에 도달한다.
<청산청수의 덕 德>남사청산 여여청수(男似靑山 女如淸水) 그 나라의 산이 푸르면 남자가 깨끗하다고 하고 그 나라의 강이 맑으면 여자가 깨끗하다고 한다.
<서래봉 西來峰663m> 은 명태재 지나 서래봉이다.우리나라에 이름있 산에는 서래봉 있다. 사찰경내에 서래각이 있다. 이 서래의 뜻은 서쪽에 있는 봉이다.
<서래>달마대사(達磨大師)가 서쪽 땅 인도에서 동쪽 땅 중국으로 건너 온 까닭이 무엇인가라는 말. 불교의 근본이 무엇이냐,
우리 모두에게 깃들어 있는 일체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즉 자성청정심이 우리 모두에게 본래부터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이땅에 온 것이다.
선가(禪家)에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큰 화두입니다.여기서 조사(祖師)는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를 가리킵니다.
달마대사께서는 양(梁)라 보통(普通) 원년(元年=520년)에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 오시면서 특별한 법,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는곧 선법(禪法)이다 하는 것을 전했습니다.
선법(禪法)은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 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것입니다.
즉,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해서
마음밖에 부처가 없고, 자기 마음을 밝히는 것이 곧 부처임을 아는 것이라 하는 선법을 전했습니다.
자성(自性)을 보고 부처님이 된다고 했다.
성품을 본다는 것으로 참 이치를 깨친다는 뜻.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와 일치하는 정각을 이루어 부처님이 된다. 견성성불이다.
부언하면 불자(佛子)가 지켜야 할 규범 곧 계율(戒律)이나 송주(誦呪)를 모두 부인하고,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의 근본이 되는 의취(意趣)는,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고 하는 달마대사 큰 깨달음이라고 하는 선지(禪旨)를 전했다.
범어(梵語로 디야아나 속어로는 자아나의 음(音)을 중국에서 선나(禪那) 또는 타연나(駝衍那)라고도 하는
선법(禪法)을 전한 것을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라 한다.<네이버에서 발췌>
<굴렁쇠바위>서래봉 아래쪽 너덜바위 구간으로 예전에는 따로 이름이 없었는데 누간가에 의해 "굴렁쇠바위"로 불리기 시작 하였다
<장군평將軍坪>운문사 앞의 너른들 장군평(將軍坪)은 밀양 출신의 손긍훈장군이 고려개국 초에 이곳 장군평에서 군사를 조련하여 운문사를 토적들로 부터 지켜준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도 호거산 운문사》
<운문사 사적기 寺蹟記>고려시대인 937년(태조 20) 중국 당(唐)나라에서 법을 전수받고 돌아온 보양국사(寶壤國師)가 까치떼의 도움으로 이 절을 짓고 작갑사(鵲岬寺)라 했으나,
943년 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이 보양국사가 절을 세웠다는 말을 듣고 많은 전답과 함께 '운문선사'(雲門禪寺)라고 사액한 뒤부터 운문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운문사雲門寺>는 신라 진흥왕 21년(560년) 신승에 의해 창건된 운문사는 청도군의 대표적인 고찰로 운문면 호거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창건된 이후 608년 원광국사, 신라말 보양국사, 고려 숙종 10년(1105년) 원진국사 등에 의해 8번중창.운문승가 대학장 명성스님이 중창하였다.
이곳은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인 세속오계를 전한 원광국사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이 머무르셨던 곳으로 현재 최대의 비구니 교육기관이다.
경내에는 보물 제 193호인 금당 앞 석등, 보물 제 208호인 동호, 보물 제 316호인 원응국사비, 보물 제 317호인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 318호인 사천왕석주, 보물 제 678호인 삼층석탑,
천연기념물 제 180호인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 대웅보전, 작압전, 미륵전, 금법당, 만세루 등이 있습니다.
사찰 주위에는 사리암, 내원암, 북대암, 청신암 등 4개의 암자와 울창한 소나무, 전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운문사의 경관을 한층 아름답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