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속의 벌 한 마리
정호순
내 유년의 뜰 안에
호박벌 한 마리 살고 있습니다
호박꽃이 한창 피어나던
어느 여름 날
꽃 속을 날아들던 벌 한 마리
가두었습니다
잉잉 잉잉 울고 있네요
호박꽃 속의 벌 한 마리
내 가슴속에서 울고 있네요
호박꽃 향기 머금은 내 유년의
호박벌 한 마리 울고 있네요
내 가슴속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잉잉잉 울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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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 호박꽃 속의 벌 한 마리
어린 시절 호박꽃 속에 들어간 벌을 가둬 본 적이 있었다. 호박벌이 꿀에 취해 정신없이 꽃 속을 맴돌 때 꽃 입구를 오므려 막아 버린다. 그제야 갇힌 것을 알아차린 벌은 웅웅, 웅웅 소리를 낸다. 이 시는 그 유년의 기억에서 비롯된 양가적인 감정에서 출발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어린 시절 호박꽃 속에 가두었던 벌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의 이야기다. 그러나 짝사랑의 관점에서 읽으면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기억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호박꽃은 사랑의 대상이고, 벌은 그 꽃에 이끌려 들어간 화자의 마음이다.
꽃 속에 갇힌 벌의 울음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아픔이며,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놓을 수 없는 그리움을 상징한다. 유년의 뜰에 머물던 벌은 세월이 많이 지나도 여전히 화자의 가슴속으로 옮겨 와 잉잉거린다. 어린 시절의 장난은 시간이 흐르면서 미안함이 되고, 그 기억은 꺼내 놓지 못한 첫사랑의 그리움과 겹쳐진다. 짝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호박꽃 속에 갇힌 벌의 울음은 첫사랑의 울음이기도 하다. 꽃 속에 갇힌 것은 벌이지만, 오랜 세월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움에 갇힌 채 빠져 나오고 싶지 않는 나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_정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