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동지冬至⇨황경은 270도 이고
양력 12월 22일 경에 든다
▣1년 중에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로
이날부터 낮 시간이 하루에 2분 정도씩 늘어나는데,
동지는 그간 음기에 밀렸던 양의 기운이 서서히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음양이 서로 다투는 까닭에
만물의 내부에서 t새로운 생명의 힘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로
과거부터 이날을 명절로 맞이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지날을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로 기념하는 등
매우 성스러운 날로 숭배를 했는데,
예수님의 탄생일도
이날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정해졌다
▣ 우리가 성탄절로 지키는 12월 25일은
원래 로마인들의 동지절이었고,
그 동지절기는 곧 태양신 축제일이었는데,
교황 율리우스 1세 시절(337-352년)부터
이 동지절인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탄절 날짜를 정하는데 있어서
서방가톨릭과 동방정교회 사이에
처음부터 견해 차이가 있었는데,
러시아 정교회와 세르비아 정교회는
지금도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다.
▣ 동짓달은 子月로서 동양철학의 근본인
12지지의 첫 자(子水)를 사용하는 것도
1년의 첫 달이 동짓달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와 함께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 중국 주나라 때에는
동지를 새해의 첫 날로 삼았으며,
역경易經에서도 일년의 첫날을 동지로 삼았는데,
이런 전통은 당나라에도 이어져,
당나라의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에서도
이날을 기점으로 역曆을 헤아렸다
◉당나라의 역법을 받아 썼던 고려 시대까지는
동지를 새해의 첫날인 설날로 삼았는데
이 전통은 고려 말까지 이어지다가
원나라의 수시력을 받아들인 충선왕(1309)때에
지금의 설날(1월 1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까지 동지는 설날과 함께
공식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절기로 동지에는
중국에 예물을 보내는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했다
▣이때에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양의 기운을 돌보기 위해 목욕재개하고
몸을 근신하여 색욕 등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동짓 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 등
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 만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동짓팥죽을 끓일 때는 붉은 팥죽 국물을 떠서
집의 문 안팎과 담장, 집앞의 고목 둥치 등에 뿌려서
귀신을 쫓았으며 팥죽이 다 끓으면
사당에 올려 동지 차례를 지냈고,
집안에서 모시는 가신에게 올린 후
가족이 먹는 것이 관례였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즉, 팥죽에는
축귀逐鬼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축귀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팥떡·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 팥죽과 관련한 또 다른 유래는,
중국의“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설날의 떡국과 같이 동지팥죽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동지가 음력 동짓 달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애동지가 드는 해는 동짓날에 팥죽을 먹지 않았는데,
아이 귀신을 물리치는 팥죽의 위력이
집안의 아이한테도
미쳐 탈이 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 이었다.
▣농업을 중시했던 고대에는
동지를 태양이 죽음에서 새로 태어나며,
양의 기운이 시작되는 날로 매우 중요한 절기로
예로부터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 불렀는데,
정조 때 홍석모가 지은“동국세시기“에는
동지를“아세亞歲(작은설)”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짓날 궁 안에 있는 내의원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아,
여기에 백강·정향·계심, 청밀등을 넣어서
약을 만들어 올렸는데,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과거 조정에서는 동짓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관상감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치면
나라에서는“동문지보”라는 어새御璽(옥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다.
▣민간에서는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악귀를 쫓고, 뱀이 들어오지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다
▣매년 동지 무렵이 되면 제주목사는
특산물로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는데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대묘大廟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주었고,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그 공로를 위로하는
사찬(임금이 음식을 내려줌)이 있었으며,
또 포백布帛(베와 비단)등을 하사 하였다. 또한
멀리에서 진기한 과일을 가져온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해서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
▣고려시대에서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하고,
고려와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동짓날은 밤이 가장 길기 때문에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첫댓글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길고 긴 밤 그대하고 술 잔 기울이며 지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