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달픔, 즐거움, 그리고 설렘을 주는 그
정동식
그를 떠올리면 애달픔과 안타까움, 기쁨과 즐거움, 설렘이 있다.
내가 어린 시절, 그는 슬픔을 데리고 찾아왔다.
초근목피는 나에게 낯설었다. 그럴 땅도 풀나무도 우리 주변엔 없었다. 언젠가부터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며,
민둥산 자락 산동네도 변하기 시작했다.
맨땅에 시멘트가 깔리고, 집 아래에 있는 산복도로는 검은 아스팔트로 덮였다.
어정쩡한 도시화는 오히려 자연에 누더기를 입힌 듯 깔끔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비가 지나간 뒤, 질지 않아서 좋았고, 바람 부는 날은 먼지가 나지 않아 괜찮았다. 시골 사람들이 보리죽도 배불리 못 먹던 시절, 달동네 주민들은 된장국과 김치 하나로 버텼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미술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그림에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이것저것, 준비물이 많은 경우에는 적든 많든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점토, 판화, 색연필 등이 필요하거나 공작물을 만드는 재료 등을 마련해야 할 시간은 특히 그랬던 것 같다.
6학년 가을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경주행 2박 3일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나는 즐겁지 않았다. 떠나지 못한 아이들끼리 구덕산 어디론가 소풍을 다녀왔다.
원족에 참여한 학생은 30여 명쯤 되어 보였다. 한 학년에 10 학급이었으니 한 반에서 3~4명은 부산을 떠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난이 주제가 아닌데 얘기가 자꾸 산으로 간다. 사무치고 맺힌 게 많았던 모양이다. 중학교 다닐 때는, 일찍 시근이 들기도 했지만 아픔도 컸다. 어느 날 담임선생 수업시간에 밀린 공납금을 언제까지 낼 수 있는지, 당장 부모님의 확답을 받아오라는 얘기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그날 집에 가도 뾰족한 수가 없음에도 말이다.
애달픈 사연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중학교 현장학습장소는 서울이었다. 아름다운 경복궁,, 창덕궁도 있고, 빌딩도 높고, 좋은 차도 많다는 꿈의 도시 서울, 하지만 언감생심이었다. 엄두도 못 냈다.
나는 유년 시절 그와의 인연은 없나 보다 했다. 희한하게도 그와의 만남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서울을 다녀온 짝꿍에게 장난을 치려고 물었다.
“완수야, 서울 갔더니 좋더나? ”
”응, 좋더라! 있다. 아이가~~ 중략”
“차는 어떻더노? 차도 좋제?”
“차도 좋~지! ”
나는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친구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찼다.
“니, 와 차노? 인마!”
“아니, 니가 방금 ‘차도 좋~지’켔다 아이가?”
나는 친구의 팔을 감싸 어깨동무를 하며 씽긋 웃어주었다. 이렇듯 유년의 그를 생각하면 씁쓸하고 아픈 추억이
잠을 깨고 일어난다.
그가 성숙해서 어른이 되었을 때 이번에는 가족과 같이 가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단 싸우지 말고 기쁜 마음
으로 즐겁게 다녀와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도 마침 그를 찾아 막 나서려던 참이라, 흔쾌히 약속했다.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귀한 시간을 보내면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나는 경치를 좋아하므로 중국의 명산이나 알프스의 희귀한 풍경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혹자들은 역사와 인류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을 좋아하고, 극한지역이나 미지의 세계를 누비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부류는 패키지형 그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자유스러운 그를 좋아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가 그를 좋아하는 한, 즐거우냐, 아니냐는 오롯이 본인들의 취향에 달려있다.
그와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
될 수 있으면 이타적 성향이나 배려심이 깊은 사람과 같이 가는 게 좋다.
그와 동행을 시작하면,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사소한 문제에서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기적인 사람은 대체로 환영받지 못한다. 개성이 존중돼야 할 경우가 있겠지만, 가족이라도 최대한 전체 분위기에 맞추어 나가려고 노력한다면 큰 무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와 일정을 끝내면서 ‘아~, 이 멤버로 한 번 더 가고 싶어!’라는!’ 기분이 들어야 그와의 동행은 성공이요, 만일 ‘아~ 피곤해!’라고 느꼈다면 실패라고 보는 게 맞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늘 아프다 하시다가도 그가 찾아올 때는 거짓말처럼 통증도 사라진다고 하셨다.
어머니께 여쭈었다.
“엄마, 아프다면서 놀러는 어떻게 가시려고요?”하니
“나는 놀러 갈 때는 아픈 것도 낫는다.” 하시면서 태연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명의 못지않게,
고달픈 우리에게 엔도르핀을 돌게 하고, 심리적 치유에도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는 여성팬이 더 많은 것 같다. 대개 여성들은 그와 같이 있으면 일단 만세를 부르며 좋아한다. 가족을 위한 주방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은 무슨 반찬을 하지, 내일 아침에 무슨 국을 끓일까, 하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죽하면 남이 해 준 밥은 다 맛있다고 할까. 아내에게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많다. 세상의 남편들이 아내들을 가사노동에 시달리게 한 잘못이 너무 크다.
이 점에서 남자들은 사랑하는 아내가 잠시라도, 그와 함께 데이트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최근에 우리는 그가 보고 싶어 애태우며, 그와 함께 지내지 못해 안달이다.
기회만 있으면 떠날 계획을 세우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행선지를 바꾼다.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 그동안 시간이 없었고, 돈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지금도 그다지 달라진 건
없지만 일단 그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는 바뀌었다. 가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린다.
하지만 근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이제 걱정은 환경과 체력이다.
아직 어른을 모시고 있으니 시간을 쪼개기 어렵고, 우리의 체력은 차츰 떨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어디 마음대로 되는 삶이 있던가? 그래도 주어진 일상에서 또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좋은 여건이 아니니 국내의 숨은 명소, 가보지 못한 곳을 차곡차곡 다니는 게 어떨까 싶다.
그리고 사부작사부작 밖으로 눈을 돌려 조건이 맞을 때까지 마음에 드는 장소를 물색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그가 가까운 미래에, 나에게 온다면 설렘을 친구로 데리고 나타나면 좋겠다. 그는 친절하게도 미리, 두어 달 전에 예고를 해 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누구와 함께, 어디로 떠날 것인가, 코스를 짜고, 일정을 잡으면 된다.
그가 가벼운 메시지만 슬쩍 던져주어도 나는 기대와 환희 속에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겠는가? 궂은일을 해도 피곤한 줄 모를 게다. 떠나는 날까지, 부푼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비행기 트랩 오를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 된다.
그는 내가 원하는 곳에 항상 같이 가지만, 먼 길을 다녀오면 가까운 미래에 또 그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만이 가지는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는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게 하고 아픔도 치유하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그와 다시 만날 생각에 벌써 가슴이 설렌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에게 헤쳐나갈 용기와 지혜를 주는 그!
만일 이 세상에 그가 없다면, 우리는 숨이 턱턱 막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2023. 3.03)
첫댓글 여행은 새로움을 줍니다. 낯선 곳에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음식을 만나면 새로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