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같은 인생
최명애
햇살이 가려져 찌푸린 하늘이다. 비가 올 듯이 종일 쌀쌀하더니 저녁에는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다. 한번 내릴 때마다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듯하다. 올해 그 뜨겁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은 비를 앞세우고 서둘러 겨울을 맞이하는가보다.
가을의 절정기에는 나뭇잎이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연출한다. 단풍철이 되면 온 산과 공원에 은행잎과 단풍 잎이 알록달록해진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형형색색 차림으로 이산 저산을 찾아간다. 가을 단풍은 보는 것만으로 지친 일상의 그림자를 씻고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설악산 봉정암의 고운 빛깔의 단풍과 내장산 단풍,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 등의 단풍놀이는 우리들을 잠시나마 피로를 잊게 해주고 벗이 되어준다. 단풍이 매력 있는 경관 자원이 되면 그곳은 문화공간이자 소통의 장이 되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
올여름은 더위가 길었던 탓인지 아직 단풍이 보이지 않는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집 앞의 공원은 계절의 변화를 젤 먼저 보게 해준다. 올해는 아직 울긋불긋한 오색 단풍을 볼 수 없다. 뉴스에서 단풍이 드는 시기가 늦어진다고 했다. 9월 29일 설악산을 시작으로, 중부지방에서는 10월 15~17일, 지리산과 남부지방에서는 10월 14~24일 사이에 첫 단풍을 볼 수 있고, 설악산 국립공원에 울창하게 들어선 푸른 나뭇잎은 군데군데 붉은 물이 들고 있다고 한다. 폭염으로 인해 기후변화가 식생의 생장 리듬을 바꾸고 있음을 나타낸다.
며칠 전에 팔공산에 갔다. 아직도 나뭇잎들은 푸른색을 띠고 청청하게 매달려 있다. 은행잎은 윗부분부터 노르스름하게 물든 것이 보인다. 일찌감치 땅에 떨어져 구르는 잎도 있고, 빨갛게 노랗게 물들이는 잎들도 조금씩 보인다. 사람도 요절하는 이가 있고 백수를 누리는 사람이 있듯이 잎들도 제가끔 타고난 수명이 있다. 낙엽이 계절의 불청객이 되어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도로 귀퉁이나 한쪽 구석에 모여있는 낙엽을 보면 왠지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해인사는 입구부터 웅장한 계곡을 따라 들어간다. 도반 8명이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에 있는 선 수행체험을 동참하기로 했다. 가을 단풍은 보이지를 않고 풀과 나무가 시퍼런 잎을 무성하게 달고 울창한 숲을 이룬다. 최근엔 기후변화 영향으로 봄꽃이 일찍 피거나 개화 순서가 다른 꽃들이 동시에 피어나기도 한다. 철모르는 벚나무 잎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 잎들은 서리가 내리면 바로 얼어버릴 수도 있다. 식물은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잎이 물들고 지는 등 잎의 생애 주기를 매년 반복하며 계절의 변화를 반영한다.
해인사 원당암 법당은 아늑하기만 하다. 참선기도 동참자들은 평균나이 60대 이상이 되는 것 같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보살님들이 모두 법복을 갖추어 입고 정성스럽게 예불을 올리고 있다. 우리는 저녁 공양을 하고 사찰 순례를 한 뒤 예불에 참석했다. 청량한 공기와 야간 법당의 불빛들은 마음마저 차분하게 한다. 하늘의 별도 크고 밝게 빛났다. 7시부터 45분간 참선을 하고 15분간 포행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시간은 새벽 3시까지 이어진다. 영상으로 보는 혜암스님의 법문‘세월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모든 것은 공짜가 없다.’ 이 마음에 와닿았다. 시간마다 저리는 다리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견디는 일은 힘들다. 혼자서는 참고 할 수 없다. 여러 사람들의 힘으로 견딜 수 있다. 우리는 11시까지 하고 집으로 왔다.
얼마 전부터 머리 염색을 그만둘지 생각한다. 자연의 색, 순리에 한발 다가가고 싶어서이다. 나의 인생도 봄 같은 철모르던 유년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세상을 향해 바쁘게 달려온 긴 여름 같은 계절이 지나고 가을을 맞고 있다. 누군가는 60대 인생을 계절에 비유해서 늦가을 단풍이라고 한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의 절정기라 생각한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와 돌고 도는 순환의 이치를 알고, 나를 찾는 여행으로 인생의 절정기를 간직하고 싶다.
첫댓글 산사와 단풍이 어울리는 글입니다
좋은 곳에 가서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면 더욱 정진 할 수 있습니다. 빛나는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저도 머리 염색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