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24) 끝없는 조조의 은혜
한편, 관우의 거처에 오랜 벗 장료가 찾아왔다.
"축하하오 관장군!"
관우가 그 소리를 듣고, 장료를 돌아보며 예를 표한다.
"문원형! 무슨 일로 축하요?"
하고 묻자 장료는,
"승상께서 식사중에 두번이나 음식을 하사해, 다들 감탄을 금치 못하오."
하고, 말하며 관우에게 다가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운장! 승상께서는 인재에 목이 마르네, 그러니 자네에게 극진하신게지."
그러자 담담한 표정의 관우는,
"내겐 하늘같은 은혜지만, 그 하늘에 눌려 숨이 막히려하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장료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그러자 관우는,
"내가 문원형의 권유대로 조승상을 따른 뒤, 승상께서 연이은 잔치에, 금은보석과 호화 저택에 하사가 끝이없지만, 이 몸은 세운 공도 하나 없으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오. 승상의 하늘 같은 은혜에 어찌 보답해야 할런지 난감할 뿐이오. 귀한 음식일 수록 더 목에 걸리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오! 그 말을 들으니 알겠소. 매일 진수성찬을 들어도 되려 초최해 지더라니, 그런 부담이 있었구려..."
"더 걱정스러운 건, 형님과 아우의 행방도 생사도 모르는 것이오."
"너무 걱정 마시오. 인명은 재천이라 했으니, 조만간 두 사람의 소식도 있지않겠소? 그나저나, 승상이 이리 아끼시니 부러울 따름이오. 운장! 한잔 주지않겠나? 이 좋은 안주가 아깝네그려."
장료는 관우의 식탁에, 조조가 보낸 사슴고기를 가르키며 말했다.
그러자 관우는 벗과 술 한잔을 하게 되는 기쁨보다는 의례의 인사말로 권한다.
"어서 앉으시오."
...
관우의 거처를 다녀온 장료는 조조를 찾아 뵈었다.
그리하여 다녀온 결과를 보고하였다.
사실, 장료는 조조의 명을 받고 관우의 거처를 다녀온 것이었다.
"관우는 승상의 연이은 은혜에 숨막혀 하고 불안해 합니다. 관우의 걱정은 승상을 위해 세운 공 하나 없이 받는 은혜가 부끄럽고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승상의 하늘 같은 은혜를 어찌 보답할까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것 괜찮군!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네. 우선 관우를 감동시켜, 불안과 초조함에 보은하고 감탄하게 만들어야지, 잘 되고 있군. 잘 되고 있어!"
조조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장료가 주저하며 말한다.
"승상의 은혜와 위엄은 천하의 으뜸으로 따를 자가 없지요. 허나...."
"계속하게."
"관우는 아직 유비와 장비를 밤낮으로 염려하지요. 유비를 향한 관우의 충의는 변치 않았습니다."
"그래? 충의가 뭐가 나쁜가? 사내 대장부가 그쯤은 되야지, 충성스런 혈기 없이 어찌 영웅이라 하겠나? 그러나 조만간 유비에 대한 관우의 충의를 나를 향하게 만들겠네. 문원! 두고 봐, 내일 그에게 보물을 하사하면 분명 감동해서 나를 섬기게 될 것이네."
조조는 확신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장료는 미소를 띠며,
"정말입니까?"
하고, 반색을 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허!>하고 짧게 웃으며,
"기대하라구!"
하고, 대답하였다.
다음날, 조조는 휘하 장군들을 앞줄에 세우고, 그 뒷줄에는 백관들을 나열시킨 뒤, 사냥을 나갈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같이 사냥을 나가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조조가 말한다.
"관우에게 명한 사냥 시간이 되었는데, 왜 아직 안 오나?"
그러자 장료가 두 손을 모아 아뢴다.
"염려 마십시오. 명을 전달했으니 꼭 오겝니다."
그때, 관우가 말을 타고 뒤늦게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수하 장군들과 조조 조차, 늦게 나타난 관우에게 눈길이 한번에 쏠렸다.
조조가 자리에서 일어나 친히 관우를 영접하러 발걸음을 움직였다.
관우는 조조가 걸어오는 것이 보이자 즉시 말에서 내려,
"승상께 인사를 올립니다."
하고 손을 모아 예를 표하였다.
조조는 미소를 띠며 물었다.
"운장, 어찌 늦었는고?"
관우는 겸언쩍은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소장의 말이 쇠약한 탓에, 이리 늦었사오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다시 손을 모아 예를 표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웃으며,
"허허허! 말은 장군의 목숨과도 같지, 전쟁터를 누빈지가 얼만데 쓸 만한 준마 한 필 없던가?"
하고, 말하며 관우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관우는 눈을 내리깐 채로,
"옳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은 장수의 목숨과도 같고, 인연이 닿아야 하는 법이지요."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올커니! 멋진 표현일세!"
하고, 관우의 대꾸에 흡족해 하며, 갑자기 먼 곳을 향해 입에 손가락을 말아 넣어 휘파람을 불었다.
"휘? ~ 휘익!~..."
그러자 그와 동시에 멀리서 누군가가 말 한 필을 끌고 이쪽으로 뛰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조조가 묻는다.
"운장!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겠나?"
"네! 승상의 아드님 조비지요."
조조는 관우와 조비를 번갈아 쳐다보며,
"그럼 이 말은 알겠나?"
하고, 묻는데, 조비가 끌고 나타난 말은 한눈에 보아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늠름한 기상의 말이 아닌가?
"적토마! 여포가 타던 적토마군요."
관우가 말을 살펴보며 대답하자,
"맞네! 사람 중엔 <여포>, 말 중엔 <적토>라고 했지! 이제 여포는 죽고 없으니, 운장이 적토마의 새 주인이 되게! 이 말은 천하 제일로 하루에 천리를 가며, 산도 강도 평지처럼 달린다지? 두 해 동안이나 조비가 달라고 부탁했지만 차마 줄 수가 없었지."
조조는 이렇게 말하고 아들을 불렀다.
"비야! 내가 뭐라더냐?"
그러자 조비는 말고삐를 쥔 채로 대답한다.
"소자는 적토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맞아! 넌 적토마에 걸맞지 않아! 이런 말은 의당, 용장이 가져야지! "
하,고 단언하면서 관우를 돌아보며 말한다.
"운장! 오늘부터 이 말은 자네가 타게나."
관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조조를 바라보며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적토마와 관우! 귀한 말과 영웅! 그야말로 하늘의 조화로세!"
조조는 관우보다 더 기쁜 얼굴로 말하였다.
그러자 관우가 두 손을 들어 맞잡고 조조에게 극진한 예를 표하며 말했다.
"감사하옵니다. 소신이 타 보아도 되겠습니까?"
"타 보게! 자네 말일세!"
조조는 흔쾌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관우는 적토마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말 등에 풀쩍 뛰어올라 고삐를 움켜 쥐고 잡아당기니, 적토마는 그 자리에서 반 바퀴 빙글돌아, 번개같이 내달렸다.
그리고 질풍노도와 같이 산야를 한바퀴 돌아 조조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왔다.
이런 모습을 장료가 미소를 머금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다른 장군들은 언잖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들의 속에는 (십 수년간 주공을 위해 죽자고나 싸움터에서 고생한 자기들을 제치고) 투항한 일개 장수에게 적토마라는 천하의 명마를 선물한 것에 대한 섭섭함이 있었다.
만족한 승마를 경험한 관우가 조조의 앞에 부복하고 아뢴다.
"승상의 크신 은혜 갚을 길이 없나이다!"
조조가 만족한 웃음을 웃으며, 부복하고 있는 관우에게 다가가 친히 잡아 일으키며,
"운장! 일어나게, 귀한 보물에 미녀를 줘도 이렇게 기뻐하지 않더니..."
하고, 말하자 관우는 ,
"하루에 천리를 가는 적토마를 얻었으니, 형님의 소식이 들리면 하룻만에 달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을 하고 조조를 쳐다보니, 조조는 미소만 머금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관우는 <앗차!> 싶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조는,
"허허허허...!"
하고, 쓴 웃음을 지으며 관우의 손을 <탁> 쳐대었다.
그리고 조금 뜸을 들인 뒤,
"하오! (好), 그래 좋아! 운장의 이런 충의는 드물지, 드물어 ...가보게나..."
관우는 이미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난감한 표정이 되어 한발짝 뒤로 물러선 뒤에 조조에게 읍하며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가보게"
관우로부터 실망스런 소리를 들었지만 대범하게 용서하고 은혜를 베푼 조조가 떠나가는 관우를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수하의 장군들과 아들 조비까지도, 관우에 대한 조조의 과도한 은혜를 몹시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감히 조조의 앞에서 이를 발설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는 중에 조조가 갑자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승상! 승상!"
"아버님!"
장군들과 조비가 우르르 달려들어 조조를 부축했다.
그러자 조조는
"두통이 몹시 도지는구나."
하고, 말하자, 조인이 방금 자리를 떠난 관우가 행한 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승상! 이리 은혜를 베푸셨는데, 관우는 유비를 못 잊고 있습니다."
조홍이 뒤이어 아뢴다.
"오늘 관우를 살려두면, 훗날 우리의 적이 됩니다!"
"승상! 천하를 배반할 망정, 배반 당하진 않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관우는 은혜에 보답하기는 커녕, 승상을 배반했습니다. 헌데 왜 관우를 죽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장군 채양이 목소리를 높여 아뢴다.
그러자 또 다른 장수가,
"승상! 관우를 죽이라 명하십시오! "
그러자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조조가 고개를 떨구자 이를 본 조인이 조조가 허락한 것으로 보고,
"허락하셨다! 장군들! 어서 말에 오르세!"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장군들이,
"관우를 참하러 가자!"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자기들 말이 있는 곳으로 우루르 달려갔다.
그러자 장료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조조에게 바짝 다가가서,
"승상! 정신 차리세요, 장군들이 관우를 죽이러 갑니다. 승상!"
하고, 큰 소리로 아뢰었다.
그러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조조가 말한다.
"돌아와!..."
순간, 장료가 말을 타고 떠나는 장군들을 향하여 있는 목청껏 소리 질렀다.
"돌아오시오! 승상의 명이오! 돌아와!..."
장료가 외치는 소리에, <승상의 명>이라는 구절은 장군들로 하여금 더 이상 관우의 뒤를 쫓지 못하게 하였다.
장료가 뛰어나가며 다시 한번 외쳤다.
"승상께서 돌아오라고 하시오!"
이윽고 모두 돌아와, 조조를 둘러 싼 장군들에게 조조는 힘겨운 목소리로,
"잘 듣거라, 관우의 충의는 여러 장군들의 본보기니라, 훗날 관우와 적이 될지언 정, 오늘 죽이긴 아깝느니..."
하고, 미소를 보이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