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나는 스물한 살. 목숨 걸고 공부했으나 S대는 결국 불합격. 간신히 다른 대학에 들어간 지 벌써 1년이 훌쩍 흘렀고, 나는 벌써 2ne1. 이제 세뱃돈 달라고 손 내밀기가 조금 부끄러워지는 나이. 나는 여전히 거실에 누워서 유재석이 나오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깔깔대며 웃고 있다. 이영호가 나오는 스타리그에 열광하고, 좋아하는 아이돌이 나오는 가요 프로그램은 빠지지 않고 챙겨보고 있다. 이거 참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어른들이 뭐 할 거냐 물으면 즉흥적으로 대충 얼버무리기. 너는 머리가 좋으니 뭐가 돼도 될게다. 어른들의 말씀. 네. 이어지는 대답.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 엄마가 아닌 다른 엄마들에게 착한 딸, 부러운 딸. 하지만 우리 엄마에게 나는 게으르고 지저분한 딸. 집안일은 뒷전, TV는 내꺼. 노트북은 원래 내거니까 생략. 따뜻한 전기장판, 푹신한 침대. 그리고 우리 집. 다혈질 엄마, 일이 잘 안 풀려서 우울한 우리 아빠. 아주 예민한 내 여동생, 잘 생긴 건 알아서 매일 거울만 보는 남동생. 우리 집. 집, 집은 좋은 곳.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바이준 - 통조림
우울했다. 아니 우울하다. 항상 이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센티멘털. 새벽 2시. 뭔가 무료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 시간. 뜬 눈으로 컴퓨터를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헤어진 지 1주일이 지났다. 전화든 문자든 만남이든 24시간 중 10시간도 넘게 함께하던 우리였는데. 남자친구 없는 10시간 곱하기 일주일. 무려 칠십 시간. 나는 너 없이도 잘 살고 있구나. 너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걱정 했지만 역시 그건 노래 가사일 뿐이었어. 너 없이도 세상 참 잘 돌아간다. 똑딱똑딱 시계 바늘은 잘도 움직인다. 잘 가라, 나의 일곱 번째 남자여.
너는 나 좋아하니? 울먹거리면서 자신 없는 목소리로 너는 나를 좋아하냐고 묻던 목소리. 내가 받은 다섯 번째 고백. 그리고 그 앤 내가 허락한 두 번째 사람이었다, 걘 여자였고, 나도 여자였다.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지기엔 내 마음이 너무 컸다. 나는 정말 그 아이를 좋아했다. 그래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녀석을 받아줬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그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사귀는 동안 그 아이에게는 질릴 만큼 질렸다. 유머감각은 좋았으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너 같은 아이들 지겨워. 늘 이거 사줘. 저거 사줘. 징징대기만 하고. 의젓한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너 같은 아이들, 이제 정말 싫어. 게다가 너는 게임 광……. 게임하는 네게 장난이라도 걸라치면 무섭게 으르렁 대던 너. 나는 게임보다 못한 사람인가를 여러 번 생각하게 하던 너. 아, 몰라. 어차피 철지난 옛날 얘기지, 뭐.
컴퓨터를 껐다. 전자파를 쐬면서 오타쿠처럼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으면 피부에 안 좋다. 피부재생시간은 2시까지라던데. 나의 취침시간은 2시 30분이다. 내일을 기약하며 눈을 감는다. 버릇처럼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숨을 크게 쉬었다. 휴대폰이 조용하니까 이상하다. 나보다 늦게 자던 나의 7th ex boy friend는 나의 수면시간에 맞춰 문자를 보내주곤 했다. 메시지는 간단했다. 자니. 그럼 나는, 자려고 누웠어. 그럼 걘, 잘 자, 여보 쪽. 혹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깨알 같은 문자 메시지 연속3통을 보내왔다. 어떤 식의 문자가 오든 나는 답장을 하지 않고 돌아누워 잠들어 버렸다. 나는 잠이 참 좋다.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 그래야 예뻐진다.
아침. 11시에 일어났다. 아침 겸 점심을 먹어야 한다. 엄마는 게으른 딸을 위해 김치찌개와 고등어구이를 식탁에 차려놓고 나가셨다. 밥을 안 먹으면 혼 구멍이 난다. 우리 엄마는 청소 안 하는 딸은 좋아해도 밥 굶는 딸은 싫어한다. 냠냠 맛있게 밥을 먹고 사과도 하나 깎아먹고 설거지도 했다. 역시 나는 착한 딸이다. 거실에 깔린 전기장판에 온도를 높이고 얇은 이불 한 장을 덮고, TV를 켰다. 지붕 뚫고 하이킥. 최 다니엘은 너무 멋진 남자다. 어디 저런 남자 없나. 휴대폰이 지잉지잉 울린다. 귀찮으니까 나중에 확인 해야지.
큰 스크린에 비치는 최다니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잘 생긴 얼굴은 아닌데 멋있어. 그 잘난 얼굴 몇 번 더 보겠다고 몇 회를 연속해서 봤는지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헉. 3시다. 12시에 온 문자를 이제 확인했다. 뭐해? ^^ . 친절한 이모티콘은 좀 부담스럽다. 이 아이, 얼마 전에 나한테 대쉬했었다. 물론 거절했다. 그 때 나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없으니까 상관없겠지. TV 봐. 답장을 했다. 5초. 거의 5초 만에 답장이 왔다. 뭐? ^^? 으음. 쉬운 남자다. 속이 환히 보이잖아. 네가 너무 좋아 제발 답장해 줘……. 플립을 닫았다. 떡실신 제조기와 최 다니엘이 뽀뽀를 하고 있다. 좋아 보인다. 예쁘고 잘 생기니까 그림이 된다.
난 또 문득, 최 다니엘과 정반대인(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것을 통틀어서) 그 아이를 생각했다. 키도 작았고 시크하지도 않던 그 아이. 우리는 뽀뽀를 참 많이 했다. 한 시간 정도 뽀뽀만 한 적도 있다. 뽀뽀를 잘 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기분이 좋았다. 입술을 붙이고 있으면, 뭔가 다른 세계에 있는 기분이 들어서. 그 아이랑 한 뽀뽀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게 처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내 첫 뽀뽀를 가져간 남자는……. 우읍. 생각하기도 싫다. 어쨌든 그 아인 내가 처음이었다. 우리의 역사적인 첫 뽀뽀 직후에 그 아이는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네가 내 첫 뽀뽀라고. 하지만 나는 아주 나중에 사실을 말해주었다. 미안한데, 나는 아니라고.
집에서 몇 시간을 더 빈둥빈둥 대다가 저녁을 먹고 나면 댄스학원에 간다. 거기엔 고등학교 동창들이 많다. 각자 학교생활을 하다가 방학이나 해야 그나마 고향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랑하는 친구들. 댄스 학원에서 우리는 춤을 춘다. 멋있는 춤이 아니라 그저 그런 아줌마용 댄스. 아줌마들은 젊은 우리를 귀여워하신다. 특히 그 아이는 모든 아줌마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번 방학 때, 걘 댄스학원 등록도 하지 않았건만 원장님은 그 녀석만 찾는다. 그 앤 어딜 가든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못 생긴 주제에 아줌마들에게만은 유독 어필하는 얼굴이다. 딸처럼 생겼다나. 귀엽다나. 뭐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랑이란 사랑은 다 받았다.
짧은 팔다리로 원장 쌤을 따라하느라 애를 좀 먹었지. 후훗. 웃음이 샌다. 동그란 얼굴. 작은 눈. 작은 코. 작은 귀. 작은 손. 작은 발. 소심한 마음……. 어느 것 하나 큰 게 없었다.
“오늘은 남친이랑 전화 안 하네?”
“아, 일주일 전에 깨졌어.”
“왜?”
“그냥, 좀 안 맞는 것 같아서.”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대시를 많이 받아봤다. 자잘한 것까지 합치면 손에 꼽을 수도 없다. 키 165에 몸무게는 45. 이효리 닮았다는 많이 듣는 나는. 그래, 그냥……. 세속적인 말로 좀 예쁘다.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작은 애가 말했다. 나는 네가 예뻐서 좋았다고. 로맨틱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곧 녀석이 너는 나를 왜 좋아하니. 라고 물었을 때 나는 망설였다.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잠시 생각했다.
늦잠으로 아침을 못 먹었던 나를 이끌고 매점으로 데려가던 너. 작은 몸으로 틈새를 비집고 비집어 들어가서 하찮은 빵조각이라도 사오곤 하던 너. 내 숙제를 대신 해주던 너. 야간 자율학습 시간, 내가 잠들면 (거의 9할 이상은) 나를 깨워주던 너. 나는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 그게 좋았어. 로맨틱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아이는 좀 실망한 눈치였다.
왜 헤어졌냐고? 아까도 말했잖아. 그런 타입 질렸다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랑이 식었으니까. 10대에서 20대가 되었고 내 앞에 펼쳐진 더 넓은 세계에 그 아이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수능을 친 후에 그 아이 생각을 많이 해봤다. 어른이 되어서도 함께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처음엔 잘해주더니 점점 응석받이가 되어가는 녀석. 애인이랑 데이트를 하는 건지, 엄마가 애를 보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던 2년 반의 시간. 그래, 차라리 정리하자. 하루라도 빨리 우리 사이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직 입 밖으로 꺼내기엔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어영부영 3월이 되었다. 2월의 마지막 날, 나는 녀석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녀석은 집을 떠나 서울에서 학교생활을 하게 될 터였다. 마지막이었지만 특별할 건 없었다. 아이가 뭐라 뭐라 중얼거렸지만 일단 눈을 감으니 까무룩 잠들고 말았다. 녀석은 넌 내가 떠나는데 섭섭하지도 않냐는 식의 내용을 주절댔는데, 나는 투덜대는 녀석을 한 번 꼭 안아주고 눈을 감았다. 잠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제 서울 시민이 될 녀석과 달리, 내가 가게 된 대학은 설립 목적의 특성상 여초현상이 매우 심각한 시골학교였다. 이러다가 남자친구 한 번 못 만나보고 졸업하게 생겼네. 3월 학기 초에 나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한 오빠가 너무 티 날 만큼 내게 잘해줬다. 20살. 작은 놈의 주절거림과 어리광에 질려있던 나는 그 오빠를 잡자고 결심했다. 오빠와 계속 연락을 했다. 같이 산책도 했다. 몇 번이고 사주는 밥도 얻어먹고 그 오빠가 준 휴대폰 스트랩을 녀석이 사 준 스트랩 대신 휴대폰에 달았다. 때때로 두근거리고 설레는 느낌까지. 이런 게 바로 ‘남녀의 연애’인가 싶었다.
3월 중순. 녀석이 하도 졸라서 서울로 갔다. 전과 변함없는 작은 눈에 작은 코, 작은 입이었다. 말수가 좀 줄어든 것 빼고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사투리를 쓸 줄 알았더니 서울말이 척척 이다. 생긴 것이 하도 촌년이라 같잖기도 했지만 나름 어울렸다. 4월이 생일인 나를 위해 미리 목걸이를 사줬다.
하지만 명동은 붐볐다. 주말이었고, 연인들의 소굴이었다. 인파를 뚫느라 힘을 다 소진한 나는 얼른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시골로 가는 나를 배웅하기 위해 녀석이 탄 전철. 녀석은 빈자리에 저보다 큰 나를 앉혔다. 그리고 의젓하게 그 앞에 섰다. 꼬락서니가 꼭 엄마를 앉힌 효자 아들 같다. 하지만, 난 네 여자 친구고. 너도 내 여자 친구다. 작은 녀석은 할 말이 많아보였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처박고 자는 척했다. 피곤해서 말 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도 뭔가 종알대기에 대충 맞장구 쳐줬다. 서울의 시간은 더뎠다. 벗어나고 싶었다. 역시, 난 시골체질이다.
말은 그 애가 먼저 꺼냈다. 아마 알았을 것이다. 안부를 묻는 문자에 답장도 안 하고, 전화를 안 받는 횟수가 많아졌으니까,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꼭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할 때처럼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녀석이 물었다.
나는 녀석과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 라고 짧은 답장을 보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답장이 왔다. ‘나는 네가 아직 많이 좋은데.’ 그럼 더 잘했어야지, 이 멍청아. 기차는 떠났다고.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키를 꾹꾹 눌렀다. 마음이 아프지도 않았다. ‘더 이상 친구 이상의 느낌이 안 들어.’ 나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화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오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답장은 쉽게 왔다. ‘알았어. 잘 자.’이게 다 였다. 마치 평상시에 잘 자라는 문자를 보낼 때 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는 오늘부터 다시 연인이 아닌 친구 사이가 된 것 뿐. 나는 마지막으로, 키패드를 눌렀다. ‘응, 너도 잘 자.’
이제 진짜 끝! 후련했다. 학기 초였고 한창 술을 마실 때였다. 내일은 또 어떤 즐거운 술자리들이 있을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꿈나라로 날아갔다.
그 후로 녀석과 나는 한참이나 연락이 끊겼다. 나는 그 오빠와 잘됐다. 어쨌든 내 사랑이자 베프이기도 했던 녀석에게 이 소식은 알려야 했는데 녀석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포기했다. 나는 녀석을 홀랑 잊고, 그 오빠와 잘 지냈다. 그 사람은 나보다 3살이 많았다. 자상했고 어른스러웠다. 술 먹고 연애하고 공부하다보니 1학기가 다 지났다. 학점만 빼면 제법 괜찮은 학기였다. 녀석은 어땠을까. 서울생활이 잘 안 맞아서 살이 많이 빠졌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게 다였다.
여름방학이 왔다. 더 이상 내가 보기 싫었던 건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건지 그 아이가 이사를 갔다. 학교는 서울. 집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시골. 우리가 마음먹고 만나지 않는다면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될 만큼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이다. 예전엔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살아서 불려가기도 많이 했지. 물론, 지금이야 그런 귀찮은 일도 없겠지만.
하지만 우리는 만났다. 어쩌다보니. 고향에 일이 있어서, 그 아이는 보름 정도 우리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됐다. 나는 아직도 그 오빠와 만나고 있었다. 근데 작은 애 앞에서는 오빠의 전화 받기가 껄끄러웠다. 그 아이가 나의 ex였기 때문일까? 오빠 전화가 오면 대충 얼버무렸다. 괜히 심장이 쿵쾅거리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작은 애 귀에 오빠 목소리가 안 들어가도록 휴대폰 볼륨을 낮췄다.
“왜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잘 안 들리는데?”
“아, 버스라서 떠들면 안 돼요, 미안해요 오빠.”
집에 처박혀있는 주제에 버스 안 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오빠와의 통화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했다. 오빠와 방학 동안 못 만난만큼 마음도 멀어졌다. 자상하기만 한 사람은 재미가 없다. 헤어질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 그리고 하필 그런 시간에 내 앞에 있는 네 모습.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좀…….
녀석과 나는 보름간 같은 방에서 살았다. 컴퓨터 좋아하는 습관은 아직도 못 버렸는지 새벽까지 컴퓨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제발 좀 끄라고 애원하자 군말 없이 컴퓨터를 오프 시키는 녀석의 모습이 생소했다. 옛날보다 고집은 줄었네. 속으로 생각했다. 이젠, 같이 누워있어도 손도 잡아주지 않고 이쪽을 보지도 않는다. 이것이 친구와 연인의 차이일까. 예전엔 함께 있기만 하면 먼저 입술부터 들이밀던 녀석이었는데. 변했다. 별로 섭섭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 사이에 찾아온 작은 변화가 신기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녀석과 함께한 마지막 날,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에 자주 가던 고기 집에서 돼지고기를 먹었다. 사귀던 시절에는 나이 때문에 먹을 수 없었던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쪼그만 주제에 홀짝홀짝 잘도 마신다. 내 앞에서 이렇게 잘 먹는데, 내가 안 보는 데선 더 잘 먹겠지. 예쁜 언니들 앞에서 헤벌레 웃으면서 꼬맹이의 ‘유일한’ 특기인 귀여운 척이나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으으. 왠지 괘씸했다.
가을. 나는 오빠와 헤어졌다. 작은 애와 나는 서울에서 또 만났다. 명동보다 훨씬 좋았던 롯데월드에서. 게다가 내 마음에 쏙 드는 팥빙수까지 먹었다. 나는 갈 생각이 없었지만 녀석이 졸라댔기 때문에 서울로 간 거였다. 정말, 나 아니면 친구도 없나……. 불쌍해서 이 언니가 한 번 자비를 베풀어줬다. 오빠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걘 무덤덤했다.
한 달 쯤 지나서. 이번엔 그 아이가 나의 학교가 있는 쪽으로 내려왔다. 우리 학교는 볼거리라고는 없는 학교다.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재워준 후에 영화를 봤다.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털모자 하나를 선물했다. 아주 방글방글 웃으며 서울로 돌아갔다. 녀석과 만난 날 중에 내 돈을 가장 많이 쓴 날이다. 분에 넘치는 손님 대접을 받고 녀석이 돌아갔다. 마음이 휑했다.
다시 한 달 쯤 지나니까 이번엔 정말 추운 겨울. 나는 정말, 또 한 번 녀석의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서울로 상경했다. 아주 아주 추운 날씨였다. 연일 기록적인 추위네 뭐네 할 때, 하필 그 때, 내가 서울에 있었다. 그래서 신경질이 났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추운데 왜 불러내냐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하지만 맛있는 고기집 앞에 짜증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역시, 고기가 최고다. 고등학생 때처럼 환타 2병에 공기밥 두 개, 된장찌개 하나와 지글지글 익는 고기까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진심으로 행복했다. 나는 열심히 구웠고, 또 열심히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집이 있다니. 서울이 그렇게 나쁜 곳만은 아닌 것 같았다.
겨울 방학. 나는 녀석이 이사했다는 남쪽의 집으로 가보기로 했다. 이즈음 다른 남자친구가 생겼고, 걔는 아주 괜찮은 놈이었다. 작은 녀석에게는 새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제 새삼스럽게 이런 거 저런 거 말 할 사이도 아닌 것 같아서 말 하지 않았었는데, 친구들을 통해서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왜 말하지 않았냐며 섭섭해 하는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아예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돼버렸는걸. 예전엔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문자는커녕 메신저로 서로가 접속한 걸 알아도 누구 하나 먼저 대화를 걸거나 쪽지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 변했다. 땅꼬맹이, 너 변했어…….
녀석의 집에서 보낼 4박 5일. 4박 5일 중 3박은 그냥 녀석의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방콕 코스다. 시골 터미널에 내려서 녀석을 기다렸다. 여긴, 정말 깡촌이다. 입구가 하나 밖에 없는 터미널 밖에서 작은 녀석이 아장아장 걸어온다. 못 본 사이에 아주 머리를 바보같이 잘라놨네. 어이쿠. 누가 촌년 아니랄까봐. 실컷 비웃어주고 트렁크를 녀석에게 맡겼다. 낑낑대며 차에 싣는 폼이 영 아니지만 이제 나는 뭣도 아니니까 그냥 속으로만 웃었다. 1년 동안 서울에 살더니 애가 많이 시크 해졌다. 아무 말이나 툭툭 내뱉고 정색에도 능숙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손님 대접이라며 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투정부리듯 말했던 것들이 차곡차곡 냉장고에 쌓여있다. 짜식. 내가 애 하나는 잘 키웠다.
오랜 만에 보는 작은 아이의 어머님도 반가웠다. 어머니는 우리가 뽀뽀도 하는 사이였다는 걸 아마 평생 모르시겠지만……. 어머니는 참 좋은 분이세요. 물론 아버님도.
녀석의 집에 있는 동안에도 나를 너무 좋아하는 남자 친구에게서 미친 듯이 문자가 왔다. 하루에 몇 번이나 전화가 왔다. 그래도 싫지 않으니까 다 웃으면서 받아줬다. 남의 집에서 이러는 게 좀 꼴사납긴 해도 어쩔 수 없다. 연애사는 20대의 가장 큰 사업 중 하나니까.
그런데 깨졌다. 1주일이 지났다. 그 남자애랑 헤어진 지.
뭐, 별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애정이 식어서. 일곱 번째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 아이를 보고 난 후에, 마음이 복잡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별로 흥미가 떨어져서.
작은 애가 안 물으면 남자친구와 헤어졌단 사실도 말하지 않을 거다.
우린, 이제 그럴 사이가 아니니까.
요즘은 도통, 문자도 전화도 없는 너.
섭섭한 건 아니고……. 그냥……. 기분이 이상하다고.
사 랑 해 도 헤 어 질 수 있 다 면
F I N
(*) 제목에 의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헤어졌지만... 아직 서로에게 마음이 있는 커플이야기를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서로의 소중함도 그만큼 쉽게 잊게 되는 것 같네요.
우리 모두 잘 하자구용~~ ㅋ_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주말이네요, plz have a nce day :-)
첫댓글 훗~~글을 요목 조목 잘 쓰셨네요 ..^^*
갑자기 애인한테 미안해지는...ㅠㅜ;;잘해줘야겠다..
위트가 있네요..재밌어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