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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교 교주 최태민 실체… "사이비종교 주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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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이단대책위… 보고서 전국교회에 배포 경각심 고취키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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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신앙> 】 영세교 교주 최태민을 ‘사이비종교 주술가’로 규정한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기성, 총회장 여성삼 목사)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위원장 김철원 목사)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총회 산하 전국교회에 배포될 예정이다. 기성 이대위는 11월 9일 총회본부에서 회의를 열어 현 시국에 대해서 “사이비종교 주술가와 그 가족들, 이들과 결탁한 탐욕적인 인사들에 의해 박근혜 정부의 국정이 농단되고 국기문란 사태에 이르렀다.”며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이 무거운 책임을 자각하고 앞으로는 나라와 민족이 사이비종교에 좌우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자.”고 제언하고, 최태민 연구보고서를 전국교회에 배포해 이단사이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키로 했다. 이대위의 보고서는 △최태민의 출생과 사회활동 △영세교의 출발 △대한구국선교단 조직 △사회복지 재단을 통한 비리 △최태민에 대한 평가 △현 시국에 대한 제언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최태민은 영세교를 창설하고 스스로를 ‘원자경’으로 부르며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사이비종교 행각을 벌였으며, 육영수 여사의 현몽을 미끼로 정신적으로 심약해진 박근혜 영애에게 접근해 영혼과 몸을 지배하고 그녀의 배후 지배자로서 각종 국가적 이권사업에 개입하는 비리와 성적 추문을 저질렀던 사이비종교 지도자로 규정되어 있다. 이대위는 특히 최태민이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제대로 된 신학교육을 받지 않았고 불교와 천주교 등 여러 종교를 섭렵했으며 영세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만들고 스스로를 ‘태자마마’와 ‘칙사’로 불렀다는 점에서 호칭을 목사가 아닌 교주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영세교에 대해서는 1973년 5월 13일 대전일보에 실린 광고에서 ‘불교에서의 깨침’, ‘기독교에서의 성령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 등을 언급하며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 난치병자와 모든 재난에서 고민하시는 분은 즉시 오시어 상의하시라”고 소개한 점과 같은 해 7월에 뿌려진 전단에서는 영세교 칙사관이라는 명의로 태몽, 현몽, 기도, 신유 등의 상담을 한다고 주장한 점, 그리고 이후에는 스스로를 ‘칙사’, ‘태자마마’로 자칭하며 사이비 교주 노릇을 한 점 등을 들어 불교와 기독교와 천주교를 복합한 종교로 영혼합일법을 주장했다고 분석했다. 최태민이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4년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후였던 것으로 보았다. 최태민은 당시 박근혜 영애에게 접근해 “육영수 여사의 영혼이 나에게 빙의되었다”며 육영수 여사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이후 박근혜 영애와 최태민은 굉장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 보고서는 또 최태민은 1994년 5월 만성신부전증을 앓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전하면서, 그러나 최태민의 뒤를 이어 최순실을 비롯한 최 씨 일가들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박근혜 영애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며 국정을 농락하고 한국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보았다. 결국 한 사이비 교주의 사기행각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의 시발점이 된 것이라면서도, 한국교회도 권력 지향의 모습을 보이며 일부 동참했다는 점에서 국정 농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과거 최태민에게 부역했던 행동에 대해 회개하고 앞으로 사이비종교에 국정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일이 지금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