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가방이 없었다. 책가방 대신 책보라는 보자기에 뭐든지 싸가지고 다녔다. 하긴 좀 깨끗한 보자기를 골라 책을 싸가지고 다니니 책보인 게지 그 시절의 보자기는 광목이거나 기껏 뽀쁘링(포플린)이었으니 다른 물건을 싸면 그냥 허드레 보자기였다. 책보에는 국어책 도덕책 자연책 산수책 사회책 공책도 넣어 가지고 다녔다. 필통은 책을 반으로 나눈 다음 그 중간에 끼워서 쌌다. 때에 따라 도시락도 누룽지도 고구마도 무 한 덩어리도 거기에 둘둘 말아 가지고 다녔다. 보자기를 가지런히 펴 놓고 사각 모퉁이 중에 한 쪽에 책이나 물건을 놓고는 그냥 둘둘 말면 그만이다. 둘둘 만 책보는 마지막에 핀으로 꿰어서 풀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 책보를 남학생은 한쪽 어깨에서 반대쪽 겨드랑이 아래로 가로 메고 여학생은 허리에 메고 다녔다. 그 때는 누구나 그런 모습을 하고 다녔으니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남학생은 그렇다 치고 여학생의 허리에 동여맨 모습이란 참으로 볼품 없다. 하교길 에는 숟가락 젓가락을 넣은 빈 도시락이 들어서 딸그락 딸그락 요란한 소리를 낸다. 산 기슭에서 채집한 시엉도 괭이밥도 옥수수 깡도 모두 책보에 책과 함께 둘둘 말아 싸가지고 다녔다. 보자기는 물자가 귀한 시절에는 지금의 배낭이나 다름없었다.
책보에 얽힌 추억도 있다. 학교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친구랑 시비가 붙어 쌈질 이라도 할라치면 어깨에 멘 책보를 벗어 던지고 우당탕탕 치고 받고 뒹굴다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녀석을 쫓다 보면 어깨에 책보가 있는지 없는지도 겨를도 없이 그냥 집에 오기도 하였다. 씩씩거리면서 집에 다 도착할 때쯤에야 어깨가 허전해서 뒤돌아보면 책보가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냇가를 건너다가 물에 스치기만 해도 책보와 그 속의 책은 이내 젖어버렸다.
보자기처럼 한 가지 물건으로 쓰임새가 다양한 것이 또 있을까?
그 시절에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만능 가방이었다. 오일장에 가기 위해서 우리 어머니들은 자루처럼 만들어 곡식도 담고 살아 있는 생 닭을 싸 가지고 머리에 이고 가셨다. 시장 다녀오는 길에는 고무신과 동태 한 꾸러미를 거기에 싸가지고 오셨다. 들에 일하러 나가신 아버지 진지를 차려서 덮어 놓는 것도 새참을 이고 나가실 때 덮는 것도 보자기였다. 삶은 보리쌀을 바구니에 매달아 덮을 때는 모시로 만든 보자기였다.
보자기는 머리에 쓰기도 하였다. 어머니들이 부엌에서 밥할 때, 들에서 일할 때에는 보자기를 머리에 고깔처럼 쓰셨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도 스카프라는 서양식 보자기를 머리에 쓰기도 하고 목에 두르기도 하고 치마처럼 두르기도 한다.
보자기라는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냥 적당한 크기이면 거기에 얼마나 큰 물건을 담느냐에 따라 크기가 결정된다. 또 보자기는 모양이 따로 없다.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예단을 넣으면 예단보가 되고 빨래 감을 싸면 빨래보가 되는 것이다. 항아리를 싸면 도자기 모양이 되고 보석함을 싸면 상자 모양이 되는 것이다. 보자기는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접으면 손수건 만한 크기가 되어 공간활용이 뛰어나 가재도구로서 활용성 기능성이 뛰어나다.
조선시대 보자기는 용도에 따라 사용계층이나 구조, 색상, 재료, 문양에 따라 다양하게 쓰였다고 한다. 하찮은 물건 같지만, 보자기에 대한 문헌의 기록이나 사화(史話)도 있다. 조선 태종 때 황색보자기를 들고 한양에 들어 가던 대감이 사헌부 하급관리에게 보자기를 빼앗기고 봉변을 당하였다. 이 일로 양쪽 모두 벌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황색이 중국 황제를 뜻한다 하여 사용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종 때는 서인들은 붉은색(紅) 보자기의 사용을 금하였다고 한다.
신혼시절에 어머니께서 아내에게 만들어주셨던 여러 가지 색의 천 조각을 모아서 모자이크처럼 만든 오색 상보(床褓)가 가장 예뻤다. 그런데 요즘 보자기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색이 얼마나 곱고 아름다운지! 그런데도 보자기는 명품 가방에 밀려서 별로 쓰임새가 없다. 기껏 명절선물을 싸는 포장용 정도로 쓰인다. 나는 명절선물을 받아서 풀면 쌌던 보자기를 차곡차곡 개 놓곤 한다. 그러면 아내는 아무 소용없는 물건이라면서 쓰레기통에 넣기 일쑤다. 그렇게 버리는 것이 아깝지만 딱히 쓸 데도 없으니 할말이 없다.
그릇이나 가방이 귀했던 예전에는 보자기가 없어서는 안될 생활필수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다 보니 중요한 혼수품 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그나마 보자기 디자이너, 보자기 공예, 보자기 예쁘게 묶는 법, 보자기 가방, 이런 단어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다양하게 색을 조합하여 만든 보자기도 아름답지만, 단색의 보자기로 어떻게 예쁘게 선물을 포장하느냐는 것, 묶은 매듭 부분을 아름다운 꽃이나 나비처럼 꾸미기도 하여 우리 전통 한복만큼이나 색이 다양하고 아름답다. 서양의 어떤 소품 가방 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보자기가 또 하나의 한류 아이템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책보를 멘 여학생이 아파트 단지를 가로 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고 나는 혼자 미소 짓는다.
첫댓글 보자기는 그릇의 모양이 따로 없다.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예단을 넣으면 예단보가 되고 빨래 감을 싸면 빨래보가 되는 것이다.
향수를 불러 이르키는 어린 시절 보자기. 각종 그릇 대용으로 사용하던 보자기, 지금은 아무데도 쓸데없는 보자기, 참 세월이 많이도 흘렀소이다. 글이 많이 좋아 졌네요, 얼심히 글을 쓰다보면 대작이 나올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관심가져주시는 선배가 있으니 든든합니다. 고맙습니다.
보자기요...아, 어쩌지요선생님? 저의 집 다용도실 한켠에도 보자기가 수도 없이 많이 접혀있으니 말입니다.
버릴 수도, 그렇다고 딱히 쓸만한 데도 없어서 모아모아 두다보니 장수가 꽤 많습니다.
한번은 이런생각도 했습니다. 집집마다 쌓인 보자기들을 모아 긴요하게 쓸 방법은 없을까 하고요.
보자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냈셨군요. 보자기를 솔솔 풀어 놓듯이요...감상 잘 하고 갑니다. 더욱 건필하십시오.
선생님은 손길이 고우시니까, 곧 명절도 되니 선물하실때 사용해 보세요. 인터넷에 보면 좋은 안내글 들이 있어서 배우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항상 관심과 댓글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보자기가 또 하나의 한류 아이템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책보에서 나는 도시락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아름다웠습니다. ~ 고운 글을 감상하고 갑니다. 건필~!!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스러운 소재인데, 갑자기 책보가 생각이 나서 몇 줄 메모했다가 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혼시절에 어머니께서 아내에게 만들어주셨던 여러 가지 색의 천 조각을 모아서 모자이크처럼 만든 오색 상보(床褓)가 가장 예뻤다.
보자기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많군요. 추억어린 작품 감상 잘 하였습니다.
저는 보자기를 모아 시골 아는 친구에게 주었더니 아주 고마워 하였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내한테 혼났습니다. 내가 언제 바렸냐구요. 한 쪽에 두었다가 썼는데, 마누라 뭐 만드냐구......ㅋ ㅋ ㅋ
감사합니다!
아! 돌아보니 보자기는 우리 생활에서 많은 애환과 사연을 싸 날랐네요.
옛날에는 보자기가 가방을 대신해서 편하게 쓰였지만 요즘에는 귀한 것이란 표시로 보자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아직도 보자기는 유용한 것인가 봅니다. 비록 너무 흔해서 가치가 떨어지긴 했지만...
보자기도 무엇이든 다 품을 수 있고 자기 모양을 주장하기보다 담기는 것에 따라 형태를 바꿀 수 있으니 가히 물같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상선약수(上善若水)! 물같이 살라 했는데 이젠 상선약보(上善若褓)! 보자기처럼 살아야 겠네요.ㅎㅎㅎ 글 잘읽었습니다.
회장님! 항상 잘 지내시지요! 자주 뵈어야 하는데, 곧 개강이니 뵙겠네요. 그럼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