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샘 김동환의 시한편-‘경서동에서’ 시집'날고 있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경서동에서
김 동 환
소주 안주 동치미 한종지로 하루가 간다
월출산 고요는 해안 매립지에 묻혀지고
경서동 골프장으로 출근한 아내 없는 빈 방
시‘산성비’는 칸칸히 녹아 가지만
시인이 피워내는 마음불은 다섯 평 네 식구의
온기 하나 채우지 못한다
막걸리도 비싸 소주를 마셔야 하는데
동네 한 바퀴 휘돌다 간 실개천
그 흔한 미꾸라지 한 마리 없고
이빠진 칼날처럼 원고지는 빈자리만 무성하다
골프장과 한마당 술주정도 못하는 주제에
시인은 뚝방 풀밭에
무공해 호박이나 애써 가꿔보지만
장터에서는 폐지처럼 팔리고
개학은 다가오고 학비는 내야 하건만
몇 푼 원고료라고 받아야 할 ‘산성눈’은
소한 추위에 푸석푸석 경서동을 감싼다.
<길샘 김동환 시집‘날고 있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에서>
*1997년 펼쳐 낸 시집 ‘날고 있는것은 새들만이 아니다’(시집 표지 사진은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감사를 역임하다 퇴임한 강정길 사진가의 작품사진으로 새떼 사진이다)에서 한편 끄집어 냈다. 참으로 오랫동안 묵혔던 시 한편을 새삼 들춰 낸 것은 최근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으로 새로 부임한 송병억사장이 경서동에서만 17대째 뿌리 깊은 나무로 살고 있다는 충격적인 역사적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이다.
청라도의 청라분교(시 ‘청라분교’발표)도 폐교되고 갯벌이 매립되면서 황량한 들판에 나무를 심어가던 그 시절도 23년이 지났다.(국립환경과학원 임직원과 함께 수 십그루의 나무를 심었지만 겨우 몇 그루만 살아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불광동에서 매립지로 2000년에 이전했다.) 환경단지가 조성된 이후에야 악취가 풀풀 풍기며 수도권에서 밀려오는 쓰레기차량과 마주해야 했던 곳이긴 하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경서동은 故 이효윤 시인의 집을 찾았던 것이 기억의 전부이다.
월출산 자락 강진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경서동에 정착한 이후 평생 시만 쓰다가 떠난 시인이다. 말년에는 모든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해 소주와 포도 몇송이를 먹다가 떠났다. 부인이 국제CC에서 캐디(보조) 생활로 벌어 온 돈으로 살림을 이어갔고 시인은 술과 시를 쓰며 한평생을 보냈다.
호박을 키우다가 신선초도 키워보겠다고 했지만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도 작물을 키우는 것은 여전히 또 다른 세상인가 모두 실패했다.
어쩌다 고향에 다녀오던 길이면 귀한 춘난 몇 뿌리를 받았던 것이 소중한 선물이었다.
자연속에 숨겨진 인간의 본성적 행위를 서정적으로 구성한 시들을 읽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그 모습 그대로가 시였다.
생전 한 권의 시집 ‘빈집’만을 출간하고 그 시집으로 받은 문학상 상금은 고생만 하는 그의 부인과 자녀에게 유품처럼 받쳐졌다. 아마도 시인이 가족에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월급과 같은 거금이었으리라 본다,
경서동 군부대 앞 타일 공장과 주물 공단을 바라보면서,야금야금 매립되어 가는 갯벌을 바라보면서, 환경론자가 되어 인생 마지막 열차에서는 ‘산성눈’등 환경생태시를 쓰기 시작했다.(원고료를 주기 위해 생태를 주제로 한 시를 써 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병문안을 갔을 때 알콜성 황달로 노란 얼굴이 되어 누워있는 한 켠에는 원고지에 ‘산성비’가 미완성인 체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산성비 원고료라고 돈봉투를 내밀고 황혼마차를 타고 경서동을 떠났던 것이 시인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경서동 일대가 고려시대 녹청자 가마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경서동은 고려시대부터 서해 바다와 함께 생활도자기를 구워가던 고장이었다.
그런 오랜 역사가 있는 경서동에서 17대 째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인물이 매립지의 주인장으로 돌아 왔으니 이것 또한 참 묘한 인연의 고리이다.
녹청색의 청자를 구워내던 녹갈색 토양 주변은 매립지가 되었고 이효윤 시인의 빈집은 철새가 되어 떠나 버렸다.
경서동에서 시인을 떠나 보냈지만 뿌리 깊은 송병억사장을 만남으로서 경서동의 역사는 서녁노을보다 진하게 또 이어져 가고 있다.
이효윤 시인의 시‘산길’중 한 부분을 담는다
나는 갔지만 산길은 옛모습대로 남아
훗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이 산길을 내가 걸어간 것이 아니라
어두운 시대가 걸어간 흔적일 뿐이라고
(이효윤 시 ‘산길’ 부분)
호수
어렸을 적엔 잉어들이 살았다
커서는 붕어들이 살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피라미들만 살더니
지금은 구름만 오락가락.
(이효윤 시 ‘호수’ 전문)
*이효윤 시인은 1949년 전남 강진산으로 이원섭 선생의 추천으로 1980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남긴 시집‘빈집’에는 ‘산성눈’은 있어도 산성비는 담지 못했다. 인천 경서동에는 20대 이후 정착하여 1997년 5월 49세의 나이로 이승과 하직하기까지 살았던 제 2의 고향이기도 하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환경경영학박사,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