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것만 따르는 서양의학
도를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의 뜻을 좀더 자세히 분석해보면,
말로 표현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말로 표현되거나
글로 표현 할수 있는 도는 무엇이고,
또 그럴 수 없는 도는 무엇일까.
비유를 들어보자.
갑이라는 사람이 을이라는 사람을 보고 있다.
갑은 을의 생김과 체구와 옷차림과
그 밖의 외모에
대해서 말하거나 글로 표현 할 수 있다.
그러나 갑이 을의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 역시 마찬가지다.
도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영역을 말한다.
'여기가 아프니 고쳐주세요" 할 때,
정말 눈에 보이는
그 자리가 아픈 거라면 쉽게 고칠 수가 있다.
그러나 통증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면 쉽게 낫기 어렵다.
무릎이 아프거나 발목이 쑤시는 것처럼
드러나 있고 쉽게 고쳐질 것 같은 증상인데도
잘 낫지 않는 경우는
그 원인이 다른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의학은
환자가 처한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는 환경뿐만 아니라 가족관계, 과거의 병력 등을
고려하고 환자의 자연치유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치료의 중심에는 늘 환자가 있다.
환자를 대할 때 단순히
기계적으로 아픈 곳만을 다루지 않고
환자의 전체적인 몸과 마음의 상태를 고려하여
증상들을 하나하나 모아 종합적으로 치유한다.
동의 학자들은 모든 질병은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것이므로,
궁극적인 치유는 그 병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명이 같으면 백 명에게도
똑같은 약을 처방하는 서양의학과 달리,
동의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 자체를 관찰하고 치유한다.
결국 서양의학은 질병에 집중하고
동의학은 인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요사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말도 많이 들린다.
마음이 병의 원인이라는 말도
의사들 사이에서 왕왕 들린다.
이제는 통중의 원인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픈 사람들에게
종종 화내지 말라고 하는 것은,
화를 내면 병에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병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사들이 원인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나이가 젊은 한 선생이 속이 꼭 막혀서 찾아왔어.
한 달 동안이나
소화가 되지 않아서 괴로운 표정이 역력해.
내가 보니
분노가 간에 가득 차서
비위를 누르고 있어 그렇거든.
무슨 일로 그렇게
화를 냈느냐고 물으니 깜짝 놀라.
자기는 화낸 일 없다고.
그래서 내가 한 달 전에
화를 내지 않았느냐고 되물으니까,
그때서야 수업 중에
학생 하나가 말을 안 들어 좀 패주었다 그래.
내가 그 후에 저녁 먹은 것이
체해서 지금 이 병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선생이 정말
그 화가 자기의 병을 만들었냐는 거야.
그렇다고 하면서 화를 내면 간덩이가 부어
이렇게 비위를 막으니 화를 내지 말라고 충고했지.
바로 목극토의 원리야.
목은 간이고 토는 비장인데.
분노가 간에서 감당 못하고
비장에까지 쏟아지니
비위가 상해 소화가 안 되었던 거지.
이런 사람에게는
소화제가 무용지물이야 분노를 풀어야지.
내가 그 선생더러, 학생을 불러다가 너무
심하게 때려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했어."
할아버지는
환자의 얼굴과 몸을 보면서
체질을 바꿔야겠다는 말도 종종 한다.
병을 치료하려면 보이지 않는
체질을 알고 그것부터 바로 잡으라는 뜻이다.
현대의학의 쾌거 중의 하나가 수혈이다.
피를 너무 흘린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피를 공급해주면 살아난다.
그러나 안전한 수혈 방법을
찾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
어떤 사람은 수혈로 살아났는데,
다른 사람은 수혈로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혈액형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까지,
수혈은 그야말로 위험한 모험이었다.
현대의학은 사람에 따른 혈액형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고 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혈액형과 달리 체질은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명할 수 없다는 말은
아직 현대의학의 기술이 덜 발전되었기 때문이지,
사람의 체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의사들은 마치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했던
중세인들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병을 완전히 고치려면 그 사람의 체질을 알아야 해.
체질을 고려하지 않고 치료하면 실패해요.
서양의학은 마치 사람이 한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기계처럼 몸을 다룬단 말이야.
그러니 어떤 사람은
회복돼도 어떤 사람은 잘 치료되지 않아.
이렇게 잘 치료되지 않는
원인을 서양의학은 설명을 못해요."
사람에게는
부모로부터 받은 선천적 체질과
환경이 만든 후천적 체질이 있다.
선천적 체질은 부모를 통해
결정되는 것으로 혈액형이 대표적이고,
동양에서는
입태와 출생년월일로 결정되는 오운육기 체질,
오행의 특성에 따른 오행체질,
이제마 선생의 사상체질 등이 여기에 속한다.
후천적 체질은
각자의 문화와 생활에 따라 결정되는데,
계절 변화에 따른 기후의 이상변동, 마음의 오욕칠정,
무절제한 성욕과
음식섭취, 교통사고 등이 그 원인이 된다.
후천적 체질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며,
나타났다가도 질병이 치유되면다시 사라진다.
환자를 치유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병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의 선천적 체질을 살피고 나서
생활환경, 먹는 음식, 그리고 현재의 고민 여부 등
마음 상태를 살펴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해."
병의 원인을 몸에서 찾는 것이 현대의학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학은
눈에 보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친다.
그래서 가장 작은 것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자현미경을 개발하여
몸의 최소 단위인 세포를
관찰하고 그 구성 물질을 밝히려고 애써왔다.
다시 이야기하면,
도를 도라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고 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균을 발견했고,
박테리아를 발견했고,바이러스를 찾아냈고,
체내의 많은 영양소와
효소 등을 발견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체의 질병을 다 알 수가 없자,
엄청난 돈을 들인
게놈 프로젝트로 유전정보까지 분석해냈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는
암조차 정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암의 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대의학은
질병치료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양자역학의 선구자 데이비드 봄은
보이는 것만 다루는 현대의학의 맹점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추어진 질서,즉
'숨겨진 질서(impliate order)'가 눈에 보이는
'나타난 질서(explicate oe' 속에
동시에 존재한디는 것이다.
이 우주는 각각의 조각들이 조립되어 이뤄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나누어질 수 없는 전체이며
각각의 사물들은 그 안에서
상호 연관을 맺으며 서로를 껴안고 있다.
인간은 대부분 자신이
인식하는 범위 내에서만 사물을 인식한다.
그러나 인식되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질 수 없는 세계도 분명히 있다.
디팍 초프라Deepak Chopra 박사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정신의 영역을 의학에서 다루어야
환자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부터라도 보이지 않는 영역을
적극적으로 치료에 응용하자 는것이다.
(정신과 육체, 정신과 몸이
하나의 에너지장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이 에너지장을 이용한다면,
당신은 마음의 변화를 통해서 육체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신이 건강하면 육체도 그에 따라 건강해진다.)
할아버지는 진찰할 때
눈에 보이는 증상에 치중하지 않는다.
왜나하면 그에게 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아픈 곳의 원인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무릎 관절이 퉁퉁 부어 잘 건지 못하는 할머니에게는
위장에 문제가 있으니
밥을 아주 적게 먹으라고 처방한다.
그러나 의사들은
노인성 관절염에 대해서 진통제와 소염제를 쏠 뿐,
위장과 연관된 치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할머니는
병원에 그렇게 다녔어도 차도를 보지못했다.
중병이나 난치병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원인이 깊숙이 뿌리 박혀 있어 말로는
그 원인을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단 한 가지 원인으로 생긴 질병은
의사와 한의사들도 쉽게 치료한다.
그러나 수술을 하고 약을 먹고,
침을 맞고 뜸을 떠도 낫지 않는 병은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원인을 찾을 수없다.
"말로 어떻게 설명합니까?
수천수만 마디가 있고 원인 속에 또 원인이 있어요.
지금 당장 설명한다고 해도 이해를 못할 겁니다.
아픈 당신이 부처라는 명의에게 와서
'제발 아픈 곳을 고쳐주세요' 했을 때
그 부처라는 명의가 연꽃을 하나 들었다고 합시다.
그거 알아듣는 사람은 마하 가섭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염화미소가 생긴 것 아닙니까?
그래서 불법을 마하가섭에게 전달하지 않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이지
나는 사실 불법에 대해서는 무식해요.
사람 고치는 법에 대해서도 내가 아는 만큼은 알지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그것을 어떻게 전할지는 모른단 말입니다.'
깨달았다는 스님들도
누가 불법에 대해서 물으면 모른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것을 도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로 이해하기보다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할아버지의 진찰법이나 치유법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제자에게만 전수가 가능해 보인다.
보통 수준에서 해답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설명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은 증명을 원하지만,
그런 일차원적인 관점으로는
우리의 오묘한 몸을 온전히 감당해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