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에 떠나는 성지순례. 특히 대희년을 맞이해서 꼭 가보고 싶었던 이태리 순롓길은 시작 부터 무척이나 각별했다. 경제적인 문제로 공동체에서 해마다 떠났던 순례에 동참할 수 없었던 아쉬움은 시간이 갈수록 은연중에 내 마음에 아픔으로 남았었던 것 같았다. 메토티오 신부님께서 부임하시자 마자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태리 성지순례는 잊으려고 애쓰며 잠재웠던 나의 욕망을 기어이 깨우고 말았다. 몇날 며칠을 혼자 고민을 하다가 한국의 친구에게 부탁해서 여행 경비를 융통해 보려고 생각하고 전화를 했더니 혼쾌히 다녀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뛸듯이 기뻐서 이성 까지 잃고 좋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 속에서 스물스물 피어나는 양심이 나를 괴롭혔다. '꼭 이태리를 가야만 대희년의 은총을 받는 것은 아닐텐데.' '내가 다니는 미국 본당도 대희년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성당으로 지정을 받았는데 내가 빚까지 내어서 이번 순례를 떠나야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한국에 사시는 엘리자벳 대모님께 카톡을 통해 자초지종을 실토하면서 나의 생각이 옳지않음을 고백했다. 대모님의 응답이 빠르게 왔다. "흠! 내딸 글라라가 이번 성지순례를 정말 가고싶었구나!" 하시더니 선뜻 순례 비용을 보내줄테니 부담갖지말고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다녀오라고 하셨다. 펄쩍뛰는 나에게 "멀리 떨어져있어 매일 골골거리며 사는 내가 죽기 전에 우리딸 글라라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하느님의 종답게 날마다 봉사하면서 이웃에게 넘치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내딸에게 하느님을 대신하여 성지순례 비용을 내어줄 수 있음이 너무도 기쁘고 고맙다." 이러한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하시면서 강력하게 거절하는 나를 차분하게 달래주셨다. 그 다음날 톡으로 '송금했으니 은행가서 찾아다 순례 비용 내거라' 하는 멧세지가 왔다. 이번 순례는 이러한 하느님의 깊은 계획이 대모님을 통해 이루어진 특별한 여행이다.
바쁜 일상중에도 틈을 내어 매일 미사를 다녀오고, 성체 조배도 하고, 화살 기도와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준비를 했던 순례 첫날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올 겨울은 아픈 사람과 입원을 해야했던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서 병원 봉사를 거의 매일 다녀야했다. 1월에는 조카가 보내준 11박 쿠르즈 여행을 다녀오느라고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짐도 떠나기 전날에서야 쌌고 어제 자정 넘어서는 폐염에 걸린 환자 때문에 ER 까지 달려갔어야했다. 급한 불만 끄고 집에 와서 쪽잠을 자고 오전에 잠시 병원에 들려서 불안해하는 환자를 위로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겨우 출발 시간을 맞추었다. 우리 집 까지 픽업하러 오신 토마스 형제님의 차를 타고 회장님 댁으로 갔다. 모여서 간단히 기도를 하고 눈발이 날리는 길을 달려 윌밍턴 사제관으로 고고씽씽. 다행히 도버를 지나기 전에 눈은 그치고 회색 하늘 사이로 옅은 옥빛 하늘이 해맑은 얼굴을 내보이며 우리들의 순롓길을 축복해주었다.
사제관의 경당에서 대희년 기도와 주모경으로 기도를 하고 성가를 힘차게 부르고 성모님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40여분을 달려서 필라델피아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 수속을 마치고 두시간쯤 기다렸다가 비행기에 탑승했다. 복이 많은 사람에게 또다른 복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하느님의 글라라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도 엄청났었단 말인가. 3인 좌석중에 가운데 자리였어서 무릎과 허리가 아픈 나는 수시로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해주어야 하는데 출발 시간이 가까이 다가와도 양쪽 좌석의 손님이 오지를 않았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가운데 좌석에서 나는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면서 하느님께서 지정해주신 VIP 고객이 되어 마드리드를 향해 대서양 위를 날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느님, 제가 무엇이건데 이리 크고도 넘치는 은총을 베푸시나이까. 보답할 길은 이미 잘 알고있사오니 순롓길 처음 부터 끝까지 저희와 함께 하소서~"
첫댓글 힘들게 간 순례!
평소 주님위해 열심히 일한 보답아닐까?
은혜로운 순례가 되기를
하나님의 은혜로~~~♡